이번 글은 전투기 그림으로 시작하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U.S. Navy)은 전투기 및 폭격기의 개선 방안 연구했습니다. 전투에서 무사히(?) 돌아온 비행기를 대상으로 비행기의 어느 부위에 대공 중기관총의 총알이 집중되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통계를 내어보니 아래 그림처럼, 꼬리 날개부분, 중앙 몸통, 앞 날개 양 쪽에 총탄이 집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 해군은 이에 대한 처방으로 총탄이 집중된 부분에 강판을 추가로 부착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미 해군의 개선방안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통계학자 아브라함 월드(Abraham Wald)입니다. 월드는 오히려 총탄을 맞지 않은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 일까요? 미국 공군은 전투기 및 폭격기의 무사 귀환을 목적으로 연구했지만, 연구 대상을 무사 귀환 전투기로 제한하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월드에 따르면 다른 부분에 공격을 받았기에 전투기가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후 통계학에서는 미 해군의 실수를 생존자 편향(survivor bias) 또는 표본 편향(sample bias)의 오류의 대표 사례로 설명합니다.
표본 편향,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일과 전략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까지 일이 진행된 패턴, 자신의 생각 등을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 글의 제목은 ‘미 해군처럼 생각하지 않기’입니다. 이 주제에 어울리는 사례 또는 소식을 담아 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고객 의견
2018/2019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프로그램은 지난 3년과 비교한다면 큰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프로그램 전체 과정을 통해 집중했던 질문은 “왜 (젊은층은)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가?”였습니다.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뉴스의 경험을 새롭게 설계하는 데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의 목표를 두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는 아래 글을 참조하세요.
다수의 마케팅 결정들도 위의 미 해군 사례와 유사합니다. 마케터의 시각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셜 미디어가 없던 시절, 기업의 경우 핫라인 또는 CRM 형식으로 고객 불만에 대응해 왔습니다. 여기서 고객 불만은 ‘보이는 것’입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대중화와 함께 기업은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해 만족감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고객과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객의 의견을 ‘초보자’의 생각으로 취급하는 경향, 고객의 의견을 듣는 척하는 경향, 긍정 의견을 유도하기 위해 댓글을 쓰는 고객에게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고객 의견을 호도하는 경향 등이 존재합니다. 보이지 않았던 고객 의견을 ‘잘못 보이게 하는’ 실수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고객 의견을 보이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견이 서로 연결되는 고객 네트워크를 기업이 직접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 의견을 거부하지 않고, 긍정 의견을 인위적으로 유도해서는 안됩니다.
고객 네트워크, 고객 커뮤니티를 아름답게 운영하며 성장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글로시에(Glossier.com)입니다. 2010년부터 뷰티 블로그 ‘Into the Gloss’를 운영해 온 에밀리 와이스(Emily Weiss)가 media-curated commerce라는 컨셉으로 2014년 시작한 서비스가 글로시에입니다. 저는 에밀리 와이스에게서 (다소 과장하면) 아마존 제프 베조스를 뛰어 넘을 인물의 탄생을 봅니다. 그의 발표 영상을 보시죠.
발표 내용을 박상현 님이 영문으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여유 있으실 때 아래 글을 펼쳐 놓고 위의 영상을 보시길 바랍니다. 무릎을 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Emily Weiss, Founder & CEO of Glossier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Brand Reverse Engineering(BRE)이란 행사입니다. 2018년 메디아티는 5회에 걸쳐 Media Reverse Engineering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성장하는 해외 미디어의 특성과 성공요인을 데이터, UI/UX, 스토리 구성, 비즈니스 모델 등의 관점에서 뜯어 보았습니다. 이 방법론의 대상을 브랜드 전략과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꾼 행사가 BRE입니다. 그 첫 번째 분석 대상은 이니스프리, 올리브 영으로 대표되는 뷰티산업입니다. 2019년 3월 19일 열리는 첫 번째 BRE에 참여를 부탁합니다. BRE는 매달 진행됩니다.
청소년, 공공예산의 권력을 갖다
청소년 또는 젊은층이 어떻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들의 정치 참여 또는 투표 참여를 강화시킬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 지금까지 다양한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그 중 대다수가 당위와 규범을 앞세웠습니다. 정반대 시도가 소개합니다. 보이지 않았던 젊은 층의 목소리와 참여를 보이게 한 프로젝트입니다.
미국 보스턴 시정부는 2014년부터 만 12세부터 만 2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Youth Lead the Chang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만 12세부터 만 25세 청(소)년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해마다(!) 1백만 달러의 시정부 예산의 집행 내역을 결정하고 집행 과정을 감독합니다.
보스턴 시에 거주하며 해당 나이에 해당되는 사람은 누구나 예산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고, 12세에서 25세 나이의 청(소)년으로 구성된 위원회(위원회 이름은 Change Agents)는 이렇게 모인 제안 중에 5개를 선정해서 이를 투표에 부칩니다. 보스턴 거주 청(소)년은 이 투표에 참여해서 매년 1백만 달러 예산 집행을 함께 결정합니다. 참고로 2018년 7백여 개의 제안이 모였고, 5천 여명의 청(소)년이 투표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제안이 채택되었을까요?
- 보스턴 시 소유 건물에 태양열 패널 달기
- Youth Wi-Fi Lounge
- 장애인을 위한 놀이터
-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 3D 프린터, STEM 교육을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센터
- 그라피티 공원 등
청(소)년의 미래를 그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경험하는 일, 그 무엇보다 이들의 투표 참여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이들 중 누군가는 제 2의 AOC가 될 것입니다.
2019년 2월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와 상원의원 에드워드 마키(Ed Markey)는 그린 뉴 딜(Green New Deal) 정책을 제안합니다. 슬로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재생 에너지 산업 성장과 관련 일자리 창출을 위해 거대한 규모의 공공 예산을 투자하자는 내용입니다. AOC의 인기만큼 그린 뉴 딜이 미국 언론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린 뉴 딜 정책에서 새롭다, 혁신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유럽 각 정부 및 영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기가스 제로’, ‘재생 에너지 100%’ 정책 등과 연결시켜 본다면 하나의 뚜렷한 흐름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관심은 AOC가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Brand New Congress(BNC)라는 조직입니다. BNC는 2016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버니 샌더스 지지자와 선거운동본부 참여자들이 만든 조직입니다. 목표는 샌더스 지지자들의 정치 세력화와 ‘젊은 신인 정치인’ 육성 그리고 이를 위한 경제 정책 연구입니다. BNC를 통해 총 30명이 2018년 하원선거에 출마했습니다. 그 중 28명이 민주당, 1명이 공화당, 1명이 무소속입니다. 이들 중 당내 경선을 통과한 사람은 10명,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은 1명, 바로 AOC입니다.
현재 BNC의 설립자 중 한 명인 Saikat Chakrabarti가 AOC의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AOC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를 떠나 AOC는 벤 톰슨(Ben Thompson)의 아래 주장처럼 인터넷을 통해 태어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정치인입니다.
“요약하자면, AOC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첫 번째—아마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이다. 인터넷에 의해 미디어 관심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AOC는 인터넷에서 태어났다.”
“In short, she is the first ? but certainly not the last ? of an entirely new archetype: a politician that is not only fueled by the Internet, but born of it.”
우리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정치인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AOC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도 목마르게 기다리는 새로운 흐름 아닐까요.
[divide style=”2″]
[box type=”info”]
강정수의 디지털 경제 브리핑
강정수 박사가 바라보는 전 세계 디지털 경제의 풍경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이 연재물의 원문(초안)은 ‘디지털 이코노미’의 ‘이메일링 서비스’를 통해서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의 미래, 테슬라의 생존 가능성
- DHL의 오판, 아마존의 배송 혁명
- 2018년 노벨경제학상과 아마존 규제 논리
- 자율주행, 기술의 진보인가 시장의 확장인가
- 우버의 기업공개, 우버의 경제학
- 전기자동차가 가져올 변화
- 웨이모와 안드로이드: 구글의 시장 지배 가능성
- “바보야, 문제는 소프트웨어야!”: 눈앞에 전기차, 저 멀리 수소차
- 2018 미디어 시장 회고, 그리고 희망은 계획이 아니다
- 미세먼지 특수, 유튜브 수익모델의 진화, 탈내연기관 가속화
- 전기차의 ‘시장 재편’ 조건
- 페북이 ‘웃동’ 실험(LOL) 하는 이유
- 페이스북과 이별해야 하는 이유
- 유튜브처럼 성장하려면? 창작자 보상체계가 중요!
- 아마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다
- 테슬라발 자동차 시장 재편
- 미 해군처럼 생각하지 않기!
[/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