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8일 스웨덴 왕립 과학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은 폴 로머(Paul Romer)와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두 명의 경제학자는 혁신(로머)과 지속가능성(노드하우스)을 거시 경제 모델에 통합시킨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두 명의 경제학자에게는 공통점이 없어 보입니다. 두 명은 공동 연구 경험이 단 한번도 없으며, 두 학자 모두 수리 모델을 중시하는 (보수적) 네오클래식 학파에 속했다는 점외에 특정 학파로 분류되지도 않습니다.
시장실패, 분석의 전제는 ‘가격’
그런데 왜 이들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을까요? 이 두 명은 여느 아이비리그 출신 경제학자들처럼 ‘자유시장’ 신봉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경쟁 또는 경쟁적 혁신이 물질적 풍유를 가능케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노드하우스와 로머는 시장 경쟁을 방해하는 요소와 구조를 반대하며, 이와 관련된 연구에 헌신해 왔습니다.
스웨덴 왕립 과학원은, 수상자 선정 근거를 밝힌 글을 통해 시장실패(market failures)를 분석하는 프레임워크 연구에 대한 두 사람의 기여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노드하우스는 환경을 매개로 부정 외부 효과(negative externalities)를, 로머는 혁신과 지식을 소재로 긍정 외부 효과(positive externalities)를 연구해 왔습니다. 외부효과(externalities)는 일반적인 시장 가격(market price)으로 파악될 수 없는 시장의 결함(imperfections)이 존재함을 뜻합니다.
로머의 (내생적) 경제성장 이론은 다음 기회에 비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고요, 오늘은 로머와 노드하우스 이론이 갖는 ‘(규제) 경제학’의 한계를 짚어 볼까 합니다. 노드하우스에 따르면, 휘발유, 경유 등 석유 가격에는 ‘미래 세대’가 감당할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드하우스는 그 유명한 탄소세(carbon tax)를 제안했었습니다.
로머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뿜는 나무를 심는 행위를 예로 듭니다. 로머는 숲을 구성하고 열매 수확이 가능한 나무의 가격에는 자연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봅니다. 그에게 있어 나무를 심는 행위와 과학과 혁신은 동의어입니다. 로머에 따르면 트랜지스터(transistor) 연구개발 비용은 긍정적인 경제 외부효과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이는 수리적으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두 명의 학자에 따르면 가격에 포함되지 않는 시장 효과를 측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를 경제 규제라 부를 수도 있고 경제 진흥 정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명의 학자가 전제하고 있는 시장 구조가 ‘가격’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격에 매몰되면서 규제가 어려운 대상과 영역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플랫폼 기업과 관련 시장입니다.
아마존과 소비자 후생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말 그대로 파죽지세로 성장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아마존의 예를 볼까요? 연회비에 기초한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 덕택에 소비자는 배송비 무료(free shipping)의 혜택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배송비를 가상 계산할 경우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은 가격 경쟁력이 있습니다.
한편, 소비자들이 아마존의 낮은 가격과 가격 할인에 기뻐하는 동안 아마존의 경쟁자들은 떨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북미와 유럽시장에서 거대한 판매자가 되었고(시장 점유율: 2017년 기준 50% 전후), 강력한 배송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구글의 아성을 위협하는 광고 플랫폼, 다시 말해 기업들의 마케팅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신용카드 서비스와 대출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스스로 대형 출판사가 되었고,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고 있으며, 다양한 패션 브랜드의 주인이며, 동시에 하드웨어 생산자이며 거대한 클라우드 서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장의 경계를 허물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지만, 아마존의 이윤은 형편 없이 낮습니다. 아마존의 지배가 이룩된 시장 영역에서도 아마존은 계속해서 (생산) 비용보다 낮은 (소비자) 가격을 유지하고, 이러한 가격 정책에 기반해서 더욱 거칠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윤보다 성장을 중요시하는 것은 아마존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아마존의 전략은 투자자들을 기쁘게 합니다.
반독점 규제: 가격이 아닌 시장 구조 결정력 기준으로 해야
이러한 아마존을 전통적인 반독점금지법 또는 반독점정책으로 제어할 수 있을까요? 아마존을 통제해야한다는 여론은 미국과 유럽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데 통제 방법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반독점금지법이 ‘소비자 가격‘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전통 시장 규제론자들이 “소비자 후생(consumer welfare)”에 매달려 왔기 때문입니다.
201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장 티롤(Jean Tirole)은 “양면시장이론(Two-sided markets theory)”에 기초해서 구글, 아마존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사업 영역 확장이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됨을 수리적으로 입증하면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을 전통적인 반독점이론에 근거해서 규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업 아마존에는 재앙같은, 독과점 규제 정책 관련자들에게는 단비같은 논문이 2017년 초 발행되었고, 이 논문이 2018년 본격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논문의 주인공은 현재 만 29세의 법학자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리나 칸(Lina Khan)입니다.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기 직전 2017년 초 리나 칸이 공개한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은 지금까지의 반독점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아마존을 규제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은 아마존의 구조, 아마존의 시장 행위, 아마존의 성과를 분석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아니라 투자자에게서 보상받는’ 구조를 가진 아마존의 시장 지배력이 중장기적으로 타 경쟁자 또는 타 시장행위자의 행위와 성과를 규정할 수 있는 ‘구조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적 힘은 이윤보다 성장을 중시하기 때문에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 아닌 ‘시장 구조‘를 매개로 아마존의 규제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죠. 설득력이 매우 높습니다.
기업 아마존에 달갑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미국 연방통상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의 새로운 위원인 로힛 초프라(Rohit Chopra)가 리나 칸을 자신의 법률 자문으로 임명하고, 리나 칸과 함께 연속 공청회를 열고 있습니다. 연속 공청회의 제목은 ’21세기 경쟁과 소비자 보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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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수의 디지털 경제 브리핑
강정수 박사가 바라보는 전 세계 디지털 경제의 풍경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이 연재물의 원문(초안)은 ‘디지털 이코노미’의 ‘이메일링 서비스’를 통해서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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