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온디맨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중 하나이다. 하지만 1997년 설립되어 1998년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우편을 이용해 비디오와 DVD를 대여[footnote]메일로 발송하는 데는 1~3일밖에 안 걸렸다.[/footnote]해주는 서비스였다. 잦은 연체료를 내느니 그냥 월정액을 내고 비디오를 편하게 빌려보자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것.[footnote]CEO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비디오 하나를 빌렸다가 $40의 연체료를 물었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빌린 비디오는 [아폴로 13]이었다고.[/footnote]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들
이 당시부터 넷플릭스의 성공적인 서비스 기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숨겨진 추가 요금 없음(no hidden fees)”으로 대표되는 단순함이다. 비디오·DVD를 빌려주던 초창기에는 연체료가 없었고, 인터넷 스트리밍을 하는 지금[footnote]넷플릭스는 지금도 DVD, 블루레이 대여 서비스를 하고 있다.[/footnote]도 월정액 외에는 건당 추가요금이라던지, 특별 상품 월정액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함은 ‘사용자 경험’ 측면에도 존재한다. 우편으로 DVD를 주고받던 시절엔 이용자들은 넷플릭스가 집까지 보내준 봉투에 DVD를 넣고 새로운 목록을 적어 우편함에 넣기만 하면 다시 DVD가 봉투에 담겨 집에 왔다. 스트리밍 시대에도 단순하고 편리한 UX를 제공한다. 이용자가 좋아할 영화들을 추천[footnote]영화를 무려 76,897개의 장르로 구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footnote]하고, 드라마 이어보기(binge watching)를 하면 다음 편을 볼 때 영상 초반 오프닝 크레딧을 건너뛰고 바로 본편부터 시작한다. 회원가입은 요금제 선택, 이메일, 비밀번호, 신용카드 정보만 넣으면 끝이다.[footnote]회원가입시 아이핀·휴대폰 인증, 결제할 때 공인인증서, 간편(?)결제 등등 속 터지는 한국의 서비스와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다.[/footnote] 탈퇴하기 전까지 추가로 입력할 것이 있다면 별점뿐이다.
이런 이용자의 편리함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것이 있다. 비디오 대여 시절부터 내려오는 또 다른 성공 기조 중 하나, 바로 “이용자 취향 분석(data analysis)”으로 대표되는 기술과 조직화다. 초기에도 이용자에게 영화 리스트 생성 기능을 제공하거나 감상한 영화에 별점을 주는 기능[footnote]이용자들이 영화를 재밌게 보고도 영화의 완성도에 따라 객관적인 관점에서 별점을 주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조만간 이 별점 시스템을 손볼 예정이라고 한다.[/footnote]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고, 지금은 아예 이런 이용자의 선호도를 자제 제작 프로젝트에 반영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편 발송에서 스트리밍 시대로 변하긴 했으나 지역마다 자사 물류 센터를 두고 효과적으로 운용하던 것이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통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변했을 뿐이다. 아마존닷컴의 한국 진출 시기와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시기가 정확히 맞물린 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위험 요소
넷플릭스를 가장 괴롭히는 것 중의 하나는 저작권과 컨텐츠 수급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1월 6일(현지시각) 130개 이상의 국가로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가별로 볼 수 있는 컨텐츠의 수는 차이가 크다.
가장 많은 컨텐츠를 볼 수 있는 나라는 역시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이다. 파인더닷컴의 정리를 따르면 미국에서는 1,801개의 TV쇼(드라마, 리얼리티쇼 등)[footnote]여러 에피소드와 시즌이 존재하는 드라마 같은 컨텐츠의 경우 1개의 TV쇼로 친다.[/footnote]와 4,579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152개의 TV쇼(미국의 12.8% 수준)와 507편의 영화(미국의 10.5% 수준)만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405개의 TV쇼(미국의 34% 수준), 1,360편의 영화(미국의 25.7% 수준)를 볼 수 있다. 내는 돈은 차이가 거의 없는데 말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넷플릭스를 최근에 가장 유명하게 만든 TV쇼인 [하우스 오브 카드]는 한국에서 볼 수 없다.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의 해외 판권을 소니픽처스텔레비전에 팔았기 때문이다. [프렌즈], [셜록], [그레이 아나토미] 등 오래된 인기작이나 최신작들도 한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는 감상할 수 없다.
이용자의 불만만 문제는 아니다. 넷플릭스는 계약 만료 때문에 매년 수백 편 이상의 작품을 보유 리스트에서 내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물론 계약을 연장해 서비스를 유지하는 작품도 있고, 새로 수급하는 작품도 수백 편이 되긴 한다. 요점은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2014년 넷플릭스가 컨텐츠 수급을 위해 들인 돈은 약 30억 달러에 이른다. BGR의 기사를 따르면 2016년에는 5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할 예정[footnote]이 추정치는 매체의 보도마다 차이가 있다. 2017~8년까지 60억 달러를 투입할 것이라는 보도들도 있다.[/footnote]이라고 한다.
넷플릭스는 보유 작품들의 숫자는 적지만 대체로 인기 있는 작품 위주로 보유하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넷플릭스가 이용자 성향을 기반으로 팔릴만한 컨텐츠만을 수급하더라도 컨텐츠 수급 비용이 점점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넷플릭스가 모든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와 인기 컨텐츠를 수급할 돈은 당연히 없다.
컨텐츠 수가 부족하니 아무리 데이터 분석을 잘하고 이용자의 취향에 맞춘 작품을 추천한다 하더라도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존 DVD 대여 때는 수많은 영화를 빌려주다가 인터넷 스트리밍으로는 매우 제한적인 작품만 제공하기 때문에 이 비교가 작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작은 동네 도서관에 가면 책 자체가 별로 없어서 빌리고 싶은 책이 별로 없지 않느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넷플릭스의 도전은 계속된다
넷플릭스는 힘든 시기들을 거쳐왔다. 예를 들자면 2011년 넷플릭스는 DVD 대여 서비스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분리와 DVD 사업 분사 발표로 준 혼란, 컨텐츠 제공 업체와의 재계약 불발, 요금 인상에 대한 이용자의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2011년 2분기에만 80만 명의 회원을 잃고 주가가 그해 최고치 수준 1/3 토막이 되기도 했다.
훌루, HBO 나우,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같은 경쟁자들도 신경 써야 하는 데다가 마이너스 성장이 아니라 성장률이 둔화하기만 해도 주가가 출렁거린다. 이용자 수 성장세가 주춤했던 2011년 이후로 넷플릭스는 다시 급격히 회원수를 늘려가기 시작해 2015년 3분기 기준 6천5백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회원 수가 약 8백만 명 정도 늘어 미국 이용자의 2배 규모를 확보하게 됐다. 덕분에 주가도 2015년 10월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5년 동안 500% 이상 성장을 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단기적인 위험은 없어 보인다.
넷플릭스의 성장 이유로 기업문화부터 데이터 처리 능력, 발상의 전환 등 다양한 성공 요인을 꼽는다. 자체 컨텐츠를 제작하면서 더욱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확보하여 데이터 분석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가는 면도 있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자체 제작한 [하우스 오브 카드]를 히트시키며 자리를 잡았다. 현재 오리지널 컨텐츠는 제작 예정 작품을 포함하여 188개다.[footnote]한국에서 볼 수 없는 컨텐츠 포함[/footnote] 전 세계 서비스에 발맞춰 자체 제작 편수를 늘려가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세상은 바뀌고 있다. 유튜브가 거실의 TV를 대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거실에 앉아 TV를 보지도 않는 시대가 됐다. 넷플릭스가 아니더라도 토렌트 다운로드, 유료 다운로드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몰아보기가 매우 익숙해진 세대가 자라고 있다. 모바일로 보다가 PC 앞에서 이어보고, TV로 이어보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유튜브를 편하게 즐길 수만 있다면 돈을 기꺼이 내는 사람들이 생기도 있다.
넷플릭스는 오프라인 비즈니스 시절부터 축적한 컨텐츠 서비스 경험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이식한 후 지속적으로 컨텐츠를 다듬어가며 끊임없이 데이터 분석 기술[footnote]넷플릭스가 76,897개의 마이크로 장르로 컨텐츠를 구분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하는 기사도 있었다.[/footnote]과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을 키워왔다. 그런 넷플릭스가 이제 실험의 장을 전 세계로 확대했다. 그들의 실험이 이제 어떤 방향에서 놀라움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넷플릭스의 전 세계 서비스 발표에 맞춰 이제 한국에서도 2016년 1월 7일부터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 한국 상륙을 전하는 주요 미디어들의 기사를 보면 대체로 비관적이다. 특히 제공 작품 수가 너무 적고,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면이 있어 기존 IPTV나 케이블TV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반면 해외 기술을 전하는 미디어나 테크 위주의 미디어에서는 반응이 나쁘지 않다. 쉬운 회원가입, 쉬운 결제, 편한 인터페이스, 다양한 기기 제공, 한국 컨텐츠를 비롯한 컨텐츠의 점진적인 확대 예상 등을 꼽는다.
넷플릭스가 미국 외 나라에 진출할 때 보통 현지 사업자와의 제휴를 해왔다. 영국에 진출할 때 버진미디어·보다폰, 독일에 진출할 때 도이치텔레콤·오렌지, 일본에 진출할 때 소프트뱅크 등과 제휴한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한국 서비스 시작 전에도 다양한 한국 사업자들과 제휴를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서인지 현재는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footnote]CES 2016에서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LG전자와 협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웹OS가 설치된 LG전자 스마트TV에 넷플릭스 앱을 설치할 수 있는 것 외에는 현재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LG전자의 UHD 스마트TV를 NRTV(Netflix Recommended TV)로 선정했다.[/footnote]
넷플릭스가 과연 IPTV나 케이블TV를 해지(코드 커팅; cord cutting)하고 이용할 만할 서비스일까? 일단 지금의 TV 감상 패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절대 아니다. IPTV·케이블TV는 기본적으로 실시간으로 모든 지상파 채널과 200개가 넘는 케이블 채널을 볼 수 있다. 요즘 케이블TV와 지상파 방송국 간의 힘겨루기로 다시보기가 중단된 상황이긴 하지만 IPTV에서는 종영 드라마 수십 편과 영화 몇백 편도 무료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코드 커팅이 아니라 코드 쉐이빙(cord shaving), 즉 기존에 비싼 가격으로 유료 IPTV·케이블TV를 보던 이용자들이 어차피 잘 이용하지도 않는 혜택 아닌 혜택을 받으면서 상위 요금제를 이용하느니 저렴한 요금제로 갈아탈 확률은? 다양한 환경에서 동영상을 보는 데 익숙한 이용자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구글 크롬캐스트나 티빙스틱 등 기존의 N스크린 제품을 써본 이용자들에게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먼저 출시된 각종 OTT 서비스들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유플릭스[footnote]서비스 이름부터 넷플릭스 짝퉁 느낌이 난다.[/footnote], 티빙, 푹(pooq), 호핀, 에브리온TV, 빙고 등 유의미한 흑자를 낸 서비스는 없었고, 아예 사라진 서비스들도 있다. 사용자경험 쪽으로 호평을 받은 서비스도 없다.
반면 닐슨코리아는 2014년 자체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TV가 없는(제로TV; 코드 커터와 같은 의미) 이용자가 6.6%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2014년 4분기에 발간한 ‘가구 내 TV 보유현황 및 가구원의 TV 시청 시간 비교’ 보고서를 보면 TV 없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만으로 영상을 보는 제로TV 가구가 15.3%에 이르며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제로TV가구’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1인 가구 수는 5백만을 넘어 전체 가구의 26.5%에 이르고 있고,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즉, 제대로 어필한 서비스가 없었을 뿐 여전히 기회는 있다는 뜻이다.
이상을 통해 살펴보자면, 넷플릭스가 아마도 한국에서 성공한다면 그건 컨텐츠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한 서비스와 인터넷에 익숙한 20~30대 위주의 1인 가구의 증가 때문일 것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서비스할 수 있는 컨텐츠 수는 비약적으로 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성공의 날은 온다 해도 빨리 오진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철수하든 넷플릭스가 점차 성공하든, 한 명의 유료 컨텐츠 이용자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그동안 이용자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각종 인터넷 규제가 사라졌으면 좋겠고,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 업체들이 제발 이용자경험을 끌어올릴 수 있게 투자를 했으면 좋겠다.
이제 2016년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의 유료 컨텐츠 이용자들은 불편한 회원가입·결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복잡한 요금제를 암호 해독하듯이 들여다봐야 하는 것일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이 그렇게 큰 바람인 걸까. 넷플릭스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유다.
첫 댓글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