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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장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출처: 아하!서울시립청소년문화센터) https://m.facebook.com/ahacenter
경고장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출처: 아하!서울시립청소년문화센터)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사진과 동영상 유포 = 2차 가해. 지금 당신이 멈춰야 합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문화센터에서 경고장을 만들었습니다. 슬로우뉴스는 그 취지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정준영의 카톡’은 당연히 호기심을 불러옵니다. 우리는 그 호기심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은 적극적으로 억제되어야 합니다. 강력하게 봉인되어야 합니다. 그 호기심이 동물의 본능이라면, 그 호기심을 억제하는 것은 인간이 약육강식의 생태계 속 동물이길 거부하는 도덕과 윤리의 최소한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경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을 보십시오. 피해자로 추정되는 혹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연예인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기사의 형식은 물론 해당 피해 추정 연예인의 반응(해명)을 전하는 ‘선의’로 포장되어 있긴 합니다. 해당 연예인의 해명을 들어주고, 2차 피해를 경고하는 것처럼 포장된 그 기사들이야말로 사실상 2차 피해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경고[footnote]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코끼리(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을 이야기하는 순간 공화당의 틀짓기(프레이밍)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footnote]를 상기해야 합니다. 피해 추정 연예인의 이름이 ‘호명’되는 바로 그 순간 2차 가해는 완성됩니다. 언론은 그리고 그 기사를 소재로 해당 연예인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우리는, 아무리 그 해당 연예인을 진심으로 걱정하더라도 2차 가해의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2차 가해는 그 순간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당연한 호기심은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와는 전혀 상관 없습니다. 그것은 피해자의 고통보다 열등합니다. 아니 그 둘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해 있습니다. 호기심이 한 인격의 부당한 고통을 담보해야 한다면, 그 호기심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아니 우리 사회를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사진과 동영상 유포는 2차 가해입니다.”
“지금 당신이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에 요구해야 합니다.

“피해자를 추정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보도를 지금 당장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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