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과거 일본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큰 파문이 일었던 저작권 분쟁 비화를 소개합니다. 국내 창작 콘텐츠업계가 반면교사로 참고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창작자의 권리가 올바르게 보호받고, 활발한 미디어 믹스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필자 주)
- 우주전함 야마토: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잔꾀 (상) / 승자와 패자 (하)
- 울트라맨: 가문의 영광과 비극 (상) / 국제 분쟁 된 울트라 재판 (하)
- 파이브 스타 스토리: 저작권 때문에 환골탈태한 FSS (상) / 탐욕에서 시작된 FSS의 비극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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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이와 유사한 재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내에서도 뉴스로 보도된 바 있던 만화 [캔디 캔디]의 저작권 소송이었는데, 글을 쓴 미즈키 쿄코(水木杏子)와 그림을 그린 이가라시 유미코(いがらしゆみこ)와의 분쟁이었다.
일반적으로 보면, 만화는 기본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 이가라시 유미코가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미즈키 쿄코의 글이 1차 저작물이고, 이가라시 유미코의 그림을 2차 저작물로 해석한 것이다. 이가라시 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최고재판소에서 기각되면서 미즈키 측이 최종 승소했다.
벼르던 칼 빼든 마쓰모토: ‘캔디 캔디’와는 달랐던 ‘야마토’
하지만 [우주전함 야마토]는 [캔디 캔디] 판례를 적용하기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그것은 애초에 니시자키가 글을 쓰고,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가 그림을 그리는 프로세스가 아니고 작품의 기초 설정 단계에서부터 마쓰모토가 깊이 참여해 창작에 일조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우주전함 야마토]의 대성공 속에서도 니시자키로부터 철저히 무시를 당해왔던 마쓰모토는 그동안의 보상 심리까지 더해져 칼을 빼들었고, 결국 반다이와 토호쿠신샤를 대신해 저작권 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이것은 니시자키의 입장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더구나 지금의 마쓰모토는 과거에 자신이 부리던 일개 스태프 신분이 아닌, 일본을 대표하는 최상위 서열 만화가의 신분으로 소를 제기한 것이었기 때문에 재판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양상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쓰모토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스토리 설정을 구성하는 여러 아이디어와 용어들(이동성 블랙홀, 가밀라스 등)이 자신이 만들어낸 것임을 입증해 내고, 결국 2001년 재판에서 이기게 된다.
반격당한 니시자키, ‘저작인격권’ 무기로 반다이를 찌르다
당연히 재판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 니시자키였지만, 그는 또다시 경제 사범 특유의 동물적 직관에 의해 작가(마쓰모토)와 싸우는 것보다는 기업(반다이)과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다시 반다이를 타겟으로 재판을 재개한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가져온 법률적 카드는 ‘저작인격권’이었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재산권, 저작인접권과 더불어 저작권을 구성하는 권리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인격에 관계한 권리(일신전속권)로서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등이 이에 속하는데, 해당 저작자의 일신에 전속하므로 이를 사고팔 수 없다. 다시 말해 니시자키가 저작재산권적 권리를 팔았다고 해도 저작인격권은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토호쿠신샤에게 저작권에 관한 모든 권리가 넘어갔다고 생각한 반다이는 이를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재판의 향방은 다시 점입가경이 됐다. 여러 법리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이 오가는 가운데 수년에 걸쳐 맞고소와 항소, 불복, 재항소가 이어졌고 소송 당사자들은 지쳐갔다. 니시자키도 감옥에서 재판을 계속 지휘해야 했기 때문에 싸움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재판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했던 것은 역시 반다이였다.
지친 소송 당사자들, ‘재판상 화해’로 타협점
자사가 발매한 게임을 정상적으로 유통하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었던 반다이가 적극적으로 관계자들 사이의 중재에 나서면서 마침내 이 길고 길었던 재판은 2004년 극적으로 재판상 화해를 성립시킨다.
재판상 화해의 주요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과거에 만들어진 [우주전함 야마토]에 대한 니시자키의 저작권은 상실된 것으로 간주한다. 둘째, 하지만 니시자키의 저작인격권은 유효해 그에 대한 권리는 보호(크레딧 표기 등) 받아야 한다. 셋째, 이후로 새롭게 만들어질 [우주전함 야마토]에 대해서는 니시자키 요시노부와 마쓰모토 레이지가 권리를 공동으로 소유해 각자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1:3으로 싸운 니시자키 요시노부가 최대한 자신의 권리를 지켜낸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동안 [우주전함 야마토]에 대한 권리를 독점해 왔던 니시자키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패배한 셈이었다.
‘야마토 키드’의 등장
지구로부터 이스칸달까지의 대원정처럼 [우주전함 야마토]의 저작권 소송 분쟁 기간도 길었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흘러 니시자키 요시노부는 2007년 12월 19일 모든 형량을 마치고 출소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출소를 앞두고 면회를 온 인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였다. 과거 [우주전함 야마토]의 LD 박스 표지 작업을 자원해서 했을 정도로 [야마토]에 그 누구보다 애착을 가지고 있는 안노 감독은 어찌 보면 니시자키가 키워낸 야마토 키드(오타쿠 1세대)이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의 영상 콘텐츠 업계에는 안노 감독처럼 [우주전함 야마토]가 심어준 영감을 받아 관련 직종에 뛰어든 인물들이 매우 많다.
감옥에서 출소한 니시자키를 마중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 야마토 키드였다. 온갖 경제범죄와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며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던 니시자키였지만, 적어도 그가 만들어 놓은 [우주전함 야마토]의 가치는 어려서 그것을 보고 자란 세대들에 의해 다시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이었다.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키무라 타쿠야가 주연했던 [우주전함 야마토]의 실사 영화(2010년)는 흥행수입 41억 엔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안노 히데아키만큼이나 야마토 마니아로 알려져 있는 이즈부치 유타카(出渕裕) 감독이 연출한 [우주전함 야마토] 시즌 1의 리메이크 [우주전함 야마토 2199]는 최고의 퀄리티를 선사하며 지난해 개봉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eO9Ua8GVo4
참고로 [우주전함 야마토 2199]의 오프닝은 안노 히데아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 스케줄을 미루면서까지 짬을 내어 원작 [우주전함 야마토]의 오프닝을 컷 바이 컷으로 오마쥬해 헌사했다.
운명처럼 ‘야마토’에서 맞이한 죽음… 남겨진 유산들
다만 중간에 아쉬운 비보가 있었던 것은 실사판 [우주전함 야마토]의 개봉을 불과 1달여 남겨 놓은 시점이었다. [야마토] 실사판의 완성을 기념하기 위해 니시자키는 한 수산학교에서 485톤급 기선을 구입해 이 배의 이름을 ‘야마토’로 명명했는데, 바로 이 ‘야마토’호의 첫 출항이 있던 날 정박 중이던 배에 먼저 올랐다가 그만 그 위에서 실족사하는 비극이 일어나 버린 것이었다.
[우주전함 야마토]로 인해 부와 명예를 얻었고, 야마토와 함께 실패와 좌절도 겪어야 했던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파란만장 인생은 결국 실사 영화로 만들어진 [야마토]가 발진하기 직전, 안타깝게도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채 ‘야마토’호 위에서 끝나버린 것이었다.
비록 니시자키 요시노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렸지만, 그가 남겨 놓은 [우주전함 야마토]는 아직도 비상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올여름 개봉을 목표로 신작 극장판이 제작되고 있으며, 할리우드에서는 [미션 임파서블 5]의 감독으로 내정된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의 연출로 실사 영화 제작이 발표된 상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고 긴 저작권 분쟁의 과정에서 애니메이션 판권 비즈니스의 중요한 법적 근거들이 만들어졌다. [우주전함 야먀토] 분쟁은 이후 관련 콘텐츠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선례를 남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box type=”info”] [예고] 저작권 분쟁 비화는 제2편 ‘울트라맨’으로 이어집니다. [/box]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흥미진진
완전 정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