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과거 일본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큰 파문이 일었던 저작권 분쟁 비화를 소개합니다. 국내 창작 콘텐츠업계가 반면교사로 참고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창작자의 권리가 올바르게 보호받고, 활발한 미디어 믹스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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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본 만화 콘텐츠 업계 최대 이슈는 나가노 마모루(永野護) 원작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가 무려 9년 만에 연재 재개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2004년 이후 휴재 중에 있었던 이 작품은 방대한 스토리와 치밀한 설정, 그리고 매력 만점의 캐릭터와 메카닉이 어우러져 일본 내 그 어떤 만화보다도 팬덤의 충성도가 극단에 도달해 있는 작품이다. (단행본 12권까지의 판매 누계 850만 부)
그래서 이 소식은 그 자체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파이브 스타 스토리]가 연재되는 애니메이션 잡지 월간 [뉴타입]의 발행일은 마치 특정 영화의 개봉일을 기다리는 듯한 열혈팬들의 설렘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고딕메이드(GOTHICMADE)라는 이름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한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그래픽은 그 충성도 높은 이 작품의 팬덤조차 수긍하기 힘들 정도로 낯선 광경들이었고 인터넷은 순식간에 팬들의 성토장이 되어버린다.

대체 9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기에 팬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밀리언셀러 타이틀에 메스를 그어 전면적인 성형수술을 단행해 버린 것일까?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이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30여 년 전으로 가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얽혀버린 저작권의 실타래가 발목을 잡은 예정된 악재였다.
나가노 마모루와 반다이의 악연
나가노 마모루는 본래 애니메이터 출신이다. 타쿠쇼쿠 대학 재학 당시 [기동전사 건담]의 창조자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 감독에게 발탁되어 학교를 중퇴하고 [건담]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선라이즈에 입사한다.
이 무렵 토미노 감독의 행적들을 추적해 보면 나가노를 자신의 수제자로 키우려 했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2.22 아니메 신세기 선언 대회’이다. 이는 [기동전사 건담]의 극장 개봉을 기념하기 위해 1981년 2월 2일 신주쿠역 광장에서 거행된 특별 이벤트로 전국에서 1만 5천 명의 건담 오타쿠들이 모여들어 언론에서 큰 이슈가 되었고 이후 [건담]이 사회 현상으로 확장되는 발원지가 된다.
바로 이 역사적인 현장에 토미노 감독은 나가노를 [건담]의 주인공 ‘샤아 아즈나브르’로 코스프레 해서 단상에 세운다. 고교 시절 락백드 활동을 했던 나가노는 다른 애니메이터들과 달리 몸에서 발산되는 끼가 있었고, 토미노 감독은 이것을 나가노의 스타성으로 키우려 했던 것이다.

다만 문제는 토미노 감독의 편애를 받는 과정에서 나가노 스스로 생각하는 사내 입지가 일개 애니메이터의 신분을 초과하는 영역으로 향하고 있었고, 심지어 자신이 창안해낸 아이디어들을 연출자가 수용하도록 강요하고, 반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토미노 감독과 나가노는 대립하게 되는데, 바로 문제의 작품인 [중전기 엘가임, 1984]이 이때 만들어진다. 그 때문에 이 작품 안에는 감독인 토미노의 연출 지시를 따르지 않고 나가노의 독단으로 강행된 설정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가노는 회사(선라이즈)의 재산이 아닌 자기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포켓 속에 넣어두게 된다.

이듬해(1985년) 선라이즈는 최고의 화제작을 발표한다. 자사의 간판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두 번째 시리즈 [Z 건담]을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작품적으로는 반목했지만, 여전히 나가노의 천재성을 인정하는 토미노 감독은 [Z 건담]에 등장하는 여러 모빌슈트(건담에 나오는 로봇들을 부르는 말)들의 디자인을 나가노가 담당하게 한다.
토미노 감독은 후속작 [기동전사 건담 ZZ]와 극장판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에서 계속해서 나가노를 메카닉 디자이너로 추천하지만 스폰서인 반다이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이것은 나가노 마모루 창작 인생에 커다란 원한(?)으로 남게 된다.
![나가노 마모루가 디자인했던 [건담 ZZ]의 모습. 스폰서인 반다이의 반대로 버려진다.](https://i0.wp.com/slownews.kr/wp-content/uploads/2014/03/1-6.jpg?resize=555%2C351&ssl=1)
알 수 없는 뉴타입과 FSS의 공생 관계
[건담] 시리즈에서 제외되어 실의에 빠져있던 나가노 마모루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노우에 신이치로(井上伸一郎)라는 인물이다. 본래 관련업계에서 가장 발이 넓은 사람을 찾으려면 해당 분야의 잡지 기자부터 만나보라는 말이 있다. 오랜 기간 취재를 해오면서 업계 내부의 강력한 네트워트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당시 이노우에는 출판 메이저 카도카와 서점에서 발행하는 [The 텔레비전]의 애니메이션 담당 기자였다. 정확히는 연예 정보지 기자임에도 이 무렵 이미 애니메이션계의 마당발로 정평이 나고 있었던 그는 편집장을 설득해 [중전기 엘가임]의 무크지를 기획하게 되는데 이때 나가노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런데 때마침 카도카와 서점 내부에서는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뉴타입]의 창간 움직임이 일고 있었고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었던 이노우에는 [뉴타입] 창간팀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강력한 추천으로 나가노는 [뉴타입] 지면에 만화 한 편을 연재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파이브 스타 스토리]였던 것이다.
[뉴타입] 1986년 4월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하는 [파이브 스타 스토리]는 이후 [뉴타입]의 간판 콘텐츠로서 입지를 확고히 해 간다. 파격적이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뉴타입]의 컬러 지면이 [파이브 스타 스토리]에 집중되었고 심지어 작가인 나가노 마모루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치 연예잡지 가십 기사처럼 코너를 채워가게 된다.
특히 신인급 작가들이 만들어낸 콘텐츠들이 이런 식으로 이용당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경우도 이 같은 마수(?)에 걸려들었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전술한 바와 같이 [뉴타입]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파이브 스타 스토리]를 밀었다. 본래 기업이 특정 대상을 밀 때는 다 이유가 있다. 그로인해 취할 수 있는 이익이 클 때 밀어주는 것이다.
가령 방송사가 특정 애니메이션을 밀어주는 것은 해당 애니메이션의 공동제작사로 참여해 지분을 가지고 있어서 그 애니메이션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경우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너무 이상했다. 해당 작품을 저렇게 밀어주더라도 카도카와 서점에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은 매우 미진했기 때문이다.
이 의문을 풀기위한 해법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파이브 스타 스토리]가 성공하면 누가 가장 많은 이득을 얻게 되는지를 조사해 보면 된다. 검색해 보면 답은 의외로 금방 나온다. 토이즈프레스(TOYSPRESS)라는 회사이다. 이 회사가 [파이브 스타 스토리]에 대한 권리를 독점하여 해당 콘텐츠에서 발생하는 사업상의 이윤을 모두 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오히려 의문은 더 증폭된다. 그렇다면 카도카와 서점이 왕서방의 곰도 아니고 어째서 열심히 재주를 부려서 토이즈프레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준 것일까?
이 대목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토이즈프레스의 사장이 다름 아닌 월간 [뉴타입]의 초대 편집장 사토 료에쓰(佐藤良悅) 였던 것이다. (계속)
[box type=”info”][예고] 저작권 분쟁 비화 3편 ‘파이브 스타 스토리’는 ‘탐욕에서 시작된 FSS의 비극’ (하)으로 이어집니다.[/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