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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균 처리된 쌍문동, 아름다운 동화 ‘응팔’이 지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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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이하 ‘응팔’)에 등장하는 쌍문동은 마치 멸균 처리된 공간처럼 보입니다. 그 속에는 악인도 동네 바깥의 사회관계도 거의 그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지웠다고 해서, 사회를 지웠다고 나쁜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그 지워진 요소가 응팔의 열광에서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악인을 지우는 것은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동화를 만드는 한 방법이겠지요. 악의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작은 선량한 마음도 큰 감동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마음속에 선량한 마음이 남아있다면 말입니다.

응팔의 훌륭한 점은 단지 추억팔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고적 소품을 배경으로 가족이나 이웃 간에 생겨날 수 있는 선량한 마음이 주는 감동을 섬세한 드라마로 풀어내는 데 있습니다. 응팔은 김치로 뺨을 치는 드라마들 속에서 자극이 아닌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얻어내는 꽤 괜찮은 드라마로 보입니다.

응답하라 1988 ⓒtvN

응답하라 1988 ⓒtvN

사적 관계로의 퇴각

다만 사회를 지운 것은 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응팔에는 마을을 벗어난 사회적 관계가 거의 생략되어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마을 사람들의 개인적 문제이며, 가족과 이웃의 선의로 해결됩니다. 자식들이 모두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도 사회를 지우는 한 방식일 것입니다. 모두 잘하고 있으니 바깥 얘기는 하지 말자는 이야기이지요.

바깥 사회가 느껴지는 것이 동화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뜻일 것입니다. 마치 휴일에 거래처의 전화를 받는 것처럼 말이죠. 이는 우리 사회 공동체에 대한, 혹은 사회 공동체를 통해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대한 냉소주의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딸 보라의 운동권 에피소드를 보아도 조금 생뚱맞은 느낌이 있습니다. 보라는 사상적 열병에 빠진 상태도 현실에 대한 치열한 비판의식을 가진 것으로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냥 모든 동기는 알 수 없게 생략되어 운동하는 위험한 행동으로만 남아 버렸고, 그 결과 보라의 고집 센 성정으로만 그려지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 학생 운동조차도 가족애 앞에서 쉽게 무릎 꿇고 맙니다.

극 중 서울대 운동권 '보라' ⓒtvN

극 중 서울대 운동권 ‘보라’ ⓒtvN

이는 당시 민주화 운동에 심정적 공감을 할지언정 돌이켜 보았을 때 개인적 희생과 비교하면 그만큼이나 가치가 있었나 하는 부분에서는 회의적인 태도로 보입니다. 민주정권 10년과 그 뒤 보수정권을 살아가며 응팔 세대들이 느낀 현재와 역사에 대한 종합 점수는 왠지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 냉소는 결국 가족밖에 없다는 방어적인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현실적으로도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한국 사회는 가족밖에 없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조용히 스며든 가난의 그림자

그 대신 응팔에는 조용히 가난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응팔이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들과 다른 점은 경제적 어려움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대 상황이기도 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지금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 조용히 스며든 결과로 보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이 체감할 수준에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사람들의 미래전망 역시도 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 돕고 사는 쌍문동의 모습에서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전 시리즈들에 비해 묘하게 애조를 띕니다. 어려움은 목전의 현실이고 지나간 과거를 통해서 위로를 얻기 때문일 것입니다. 응팔은 복고적 대중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실에 대한 자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응팔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아름다웠습니다. 집안 내부에까지 들어가 그린 재개발되는 쌍문동의 황폐한 풍경은 돌이킬 수 없는 삶을 살아버린 보편적인 사람들의 마음의 풍경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풍경에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터전이 되는 2016년 우리 사회의 모습 또한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응팔

응팔은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게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너는 이미 나이가 들었으며 돌이킬 수 없으며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응팔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무척 아름다웠음에도 바라보기 괴로웠던 이유는 우리가 바로 그 속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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