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성탄 시즌, 아직 11월이었지만 파리 노트르담 성당 측은 항상 하던 대로 성당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놓아야 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노트르담 성당에 트리를 세울 만한 기부금이 부족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못 세울 위기에 빠졌다. 이때 노트르담 성당을 구해준 외부인이 있었다.
러시아다. 러시아 정부가 직접 나서서 노트르담 성당에 전나무를 가져다주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켤 때는 오를로프(Александр Орлов) 주불 러시아 대사가 직접 참여했다. 왜 하필이면 러시아가 나섰을까? 정말 주프랑스 러시아 대사 말마따나 “우정”의 표시였을 따름일까?
시즌 1. 니콜라 사르코지
2007년 가을, 정교회 역사상 최초로 러시아 정교회의 총대주교가 파리를 방문했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인 사르코지를 방문했었고, 그에게 파리에 정교회를 하나 세워달라고 요청했었다. 모든 종교의 친구를 자처하는 사르코지로서는 당연히 받아줘야 할 일이기도 했었고,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러시아와 친했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을 놀렸었기 때문에 이미지 쇄신도 해야 했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에 정교회 성당이 없지 않았다. 바로 성 알렉산드르-네프스키(Saint-Alexandre-Nevsky) 성당이다. 피카소가 첫 번째 부인인 올가 호흘로바와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로 유명한 이 성당은 백계 러시아인[footnote]미국, 캐나다 등 러시아 밖에 거주하는 반소비에트파 러시아인[/footnote]의 프랑스 근거지였다.
즉, 왕당파의 소굴이자 로마노프 왕가를 지지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정교회는 러시아 혁명 때문에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사람들이 1931년,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플 소속으로 바꿔 버렸다. 물론 여기만 있지는 않다.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성삼박사(Trois-Saints-Docteurs) 성당이다. 여기는 러시아 정교회소속으로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프랑스 왔을 때 방문하기도 했었다.
사진만 보더라도 좁음을 알 수 있으며, 저곳이 성당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초라하다. 자, 사르코지 대통령의 허락으로 파리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이제 부지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마침 에펠탑 근처의 국유지가 하나 있었다[footnote]원래는 프랑스 기상청(Météo France)이 있던 자리다.[/footnote]. 여기에 뛰어든 나라는 러시아만이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캐나다, 중국도 이 국유지를 노리고 있었다.
승자는 러시아. 가격은 비밀로 하자고 했지만 대충 7,300만 유로로 알려졌다. 이때가 2010년 2월이었다. 그래서 장소는 일단 확보했는데…
“에펠 탑 바로 옆에다가 양파 돔을 놓겠다고?”
– 프레데릭 미테랑, 당시 문화부 장관
당시 문화부 장관인 프레데릭 미테랑은 이 계획을 처음부터 의심하고 앞으로 일이 더 안 좋아지리라 예상했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성-블라디미르”라 붙였다.
시즌 2. 성당 건축 경진대회
신규 성당의 설계에 대한 경진대회가 곧 열렸다. “양파 돔” 1~5개가 조건이었고 정교회 양식이 잘 드러나야 했었다. 이윽고 110개의 후보가 도착했고, 러시아-프랑스 50:50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평가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2010년 12월, 프랑스 안 5개, 러시아 안 5개가 선별됐다.
이중 우승자는 러시아 쪽 후보로 나오고 제일 연장자였던 누녜스-야놉스키(Manuel Nuñez-Yanowsky)였다. 스페인의 건축가이지만 러시아-스페인 혼혈이었고(고향은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그의 작품은 “성모 마리아”의 거대한 면사포를 상징하는 유리가 지붕을 모두 뒤덮고 있었다. 그의 설계를 한 번 보자. 이때가 2011년 3월이었다. 일단 누녜스-야놉스키는 승리를 자축했다.
시즌 3. 파리 시장의 역습
2011년 11월,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도시 계획 비서관인 안 이달고[footnote]들라노에 이후, 파리 시장에 오른다.[/footnote]를 동반하고 관계자들을 모두 초청한 다음, 폭탄선언을 한다. 장장 40여 분에 걸쳐서 성당 설계 경진대회 우승작이 잘못됐음을 연설한 것이다. 러시아 전통은 물론 파리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왔고, 좌중은 술렁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뻔뻔하게도 그는 우승자인 누녜스-야놉스키도 초대해 놓았었다.[footnote]그는 당시 시장을 “때려눕히고 싶었다”고 한다.[/footnote]
러시아도 당황스러웠다. 이때 들라노에는 한 번 더 공격을 감행한다. 이듬해인 2012년 2월 27일, “센 강(la Seine) 강변을 지키기 위해 시간에 쫓겨 급히 완성한 허접스러운 설계를 막아달라”고 유네스코에 요청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한 것이다. 게다가 설계안과는 별개로 외교안보비서관 관저와 멀지 않기 때문에 “국가 안보”를 위해 아예 허용을 말아야 한다는 등,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있었다. 하지만… 곧 대통령 선거도 있었고, 파리 시는 정식 건축 허가증을 발급하지 않았다.
시즌 4. 러시아의 후퇴
프랑스의 대통령은 우파인 사르코지에서 좌파인 올랑드로 바뀌었고, 들라노에 파리 시장도 원래 사회당 소속이기 때문에, 원안에 대한 반대는 좀더 분명해졌다. 정권 교체 이후 첫 만남에서 필리페티 신임 문화부 장관이 직접, “파리의 반대” 때문에 건축 허가를 줄 수 없노라 얘기했기 때문이다. 오를로프 대사는 엘리제 궁이 “볼셰비키”로 가득 찼다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누녜스-야놉스키 또한 이러한 와중에 러시아 쪽 파트너사인 아크그룹(Arch Group)과 불화 상태였고 아예 갈라져 나왔었다. 그는 혼자 뭐든 다 하려 했고, 러시아 쪽에서는 자기 혼자 수정을 너무 많이 했다는 불만이 나왔었다. 물론 “거대한 금색 양파”라는 별명도 잇따랐다. 또한, 정말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러시아 정교회 측에서도 너무 급진적이라 비판을 많이 받았었다.
결국, 러시아는 2012년 11월, 건축 허가 신청을 취소했다.
시즌 5. 차선책
차선책이 없지는 않았다. 경진대회 2등작을 택했기 때문이다. 윌모트(Wilmotte) 건축사무소는 이미 모스크바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럽 대학 리노베이션도 맡아 러시아에는 친숙한 존재였다. 마침 그의 설계안은 러시아 정교회의 협력도 받아 만들어졌었다.
2013년 2월, 러시아를 방문한 올랑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사이의 주제 중 하나도 이 성당 건립계획이었고, 파리시도 시원스럽게 건축 허가를 내줬다. 윌모트의 설계안은 아래와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소송들이었다. 원래 우승을 차지했다가 파리 시장의 농간에 설계안을 뺏긴 누녜스-야놉스키는 (1) 러시아 연방, (2) 파리 시장, (3) 문화부 장관, (4) 윌모트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의 소송은 모두 그의 패배로 끝났다. 이제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완공은 2016년으로 계획돼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있고 서방의 제재도 강화되고 있지만, 이면에는 이런 교류가 끈끈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겠다. 150년 된 두 나라의 친밀한 끈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기는 힘들 것이다. 이 성당의 이름은 미테랑 장관이 장난스럽게 이름 붙였던 성-블라디미르가 아니라, 성-삼위일체(Sainte-Trinité)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