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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읽다 울먹…판사도 고통스러웠던 계모 사건” (세계일보)
“9살 가방감금 살해 계모 징역 22년 가볍다” 검찰도 항소 (뉴스1)

최근 동거남의 아들을 가방에 가뒀다가 사망하게 한 사건에 대한 중형 선고를 다룬 뉴스 제목들이다. 하나 같이 계모를 강조하고 있고, 일부 언론은 징역 22년이 가볍다는 점, 판사도 울먹였다는 묘사까지 곁들였다. 일부 이른바 ‘진보’ 언론이 계모라는 표현을 피하고 사실 전달에 치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동거남 아들 여행가방 감금·살해 40대, 징역 22년 선고”, 한겨레), 전체적으로 주류 언론의 보도 관행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혐오’로 이어지는 갈등지향적 저널리즘 

혈연관계든 아니든 아동을 잔인한 수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 전에도 학대를 반복했음이 드러난 상황에서 엄중한 법적·도덕적 단죄는 당연하다. 생명을 경시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 시점에서 중형은 마땅하고, ‘천인공노’란 말은 이럴 때 필요하다.

문제는 본질에서 벗어난 고질적인 ‘갈등지향적’ 보도 태도이다. 개인적으로 논문 쓸 때 많이 인용하는 개념인 ‘갈등지향적 저널리즘’은 십여 년 전 언론인 출신 교수가 쓴 논문에서 공부한 바 있다. 한국과 함께 세계적으로 상업성과 정파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특종·속보 경쟁에 여념이 없는 주류 언론들의 성향을 잘 설명해 준다. 한국 사회의 진영 간 갈등은 혐오수준으로 점점 더 치닫고 있다. 정파들이 자신들만 선이라며 극한 대결을 벌이는 상황도 심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언론 보도다.

‘혐오’는 정치 이념을 초월해 경제, 문화, 질병·건강 등 실로 다양한 영역들에서 작동하며, 공수가 뒤바뀌기도 한다. 불평등과 격차가 일상 깊숙이 침투하면서 야기된 사회적 분열과 대치가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코로나 19속에서 중소상공인들과 배달·운송·청소·경비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생계와 건강이 위기에 내몰린 가운데 여전히 특혜와 반칙에 익숙하면서 사과나 개선 노력조차 외면하는 후안무치한 일부 기득권층 간 불평등과 혐오의 골도 깊어가고 있다.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는 언론의 틀짓기가 정도를 더해간다. (출처: https://flic.kr/p/owu3P David Sim, CC BY)
끝내 혐오로 이어지는 갈등지향적 저널리즘이 점점 더 득세하고 있다. (출처: David Sim, CC BY)

정상 가족 프레임… ‘계모’라서 학대했나? 

이런 가운데 언론은 이른바 ‘정상 가족 프레임’에 젖어 가족을 놓고도 갈등과 박탈감, 혐오를 조장한다. ‘아동학대’ 사건이 나올 때마다 대놓고 ‘계모’에 초점을 두면서 가정의 문제와 여성·엄마의 역할 부재를 부각하고 있다. 편파적이고 부당한 혈통주의 관습과 법·제도 속에서도 혈연에 상관없이 아동들의 양육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많고, 실제 아동학대 사건은 친부모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통계도 엘리트 주류 언론이 신봉하는 ‘정상 가족 프레임’ 앞에선 무색하다. 혈연 관계와 무관하게 아동학대는 범죄이며, 가정은 물론 사회적으로 대책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비혈연관계’와 함께 여성과 계모의 책임을 강조하는 고질적인 ‘정상 가족 프레임’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수 년 전 아동학대 보도 분석 논문에서 계모에 의한 학대를 강조하면서 재혼·동거가정에 대한 낙인과 함께 여성에 대한 편견까지 낳고 있음을 비판한 바 있다. 아동학대 보도에서 친부모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지 말고,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의 문제 등 피해자 돌봄과 지원, 학대 예방을 위한 공동체의 노력, 공권력의 적극적 역할과 정책개선에 초점을 둘 것을 강조했다. 언론이 범죄를 단죄하는 심판관 역할까지 하고 있음도 지적했고, 아동학대에 평소엔 무심해 왔던 주류사회와 언론의 태도와 관행을 비판하면서 사건 발생 후 충격적 범행수법과 처벌 강조에서 아동학대의 원인을 진단하고 예방책을 제시하는 프레임으로의 변화를 주장했다.

최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으로 많은 반칙과 특혜, 불법과 무례, 나아가 사회갈등과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언론이 ‘정상 가족 프레임’, 나아가 ‘혈연지상주의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시민의 힘으로 바뀌어야 한다. 불평등의 시대, 기계적 균형과 익숙한 단정에서 벗어나 갈등이 아닌 다양성을 촉진하는 보도가 요구된다.

1인 가구, 재혼 가정, 동거 가정, 소년소녀 가정,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 성소수자 가정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생물학적 혈연에 기반한 ‘정상 가족’만 사랑이 가득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문제가 있다는 왜곡된 시선으로 묘사하는 것은 언론의 무지이며, 다수자의 횡포이고, 다양한 가정을 이루어 온 분들에게는 차별이자 혐오로 다가올 수 있다.

가족은 무엇으로 어떻게 태어나는가. '정상 가족'이라는 기준을 정하면 나머지 가족 형태는 모두 '비정상'이 되어버린다. [가족의 탄생] (김태용, 2006)
가족은 무엇으로 어떻게 태어나는가. ‘정상 가족’이라는 기준을 정하면 나머지 가족 형태는 모두 ‘비정상’이 되어버린다. [가족의 탄생] (김태용, 2006)

‘계모’ 담론 속 ‘퇴행적 가부장주의’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돌봄 노동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장애인, 취약한 노인과 아동 등에 대한 돌봄 노동을 가족에게만 전가하지 말고 공동체가 책임지는 방안의 논의가 시급하다. ‘계모’라는 담론 속에는 양육을 가정만의, 여성만의 의무로 보는 퇴행적인 가부장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수사기관, 아동보호기관과 시민사회의 협력을 통해 아동학대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빈곤에 처해 있는 취약계층의 안전한 양육과 교육, 생계를 돌보는 튼튼한 사회 지원망 구축도 시급하다.

이와 동시에 언론은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약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표현들을 멈추고 비판에 앞장설 것을 시청자이자 독자로서 강력히 요구한다. 대안으로 ‘성찰적 저널리즘’을 제안한다. 사실에 대한 팩트체크를 넘어 그 보도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 특히 피해자를 포함한 소수자·약자들의 일상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더욱 고민해야 한다.

제목부터 자극적이고 차별적인 표현을 지양하면서 사실에 기반함과 동시에 인간과 공동체의 삶에 기여하는 언론으로의 변화를 기대한다. 언론인권센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도 정치뿐 아니라 경제, 문화, 질병·건강, 범죄 보도 등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차별과 혐오 담론들을 감시하면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강화할 것을 소망한다.

친모와 계모로 구별하고 차별하기 전에 아이의 건강과 안녕, 미래를 위한 공동체 전체의 고민이 먼저다.
친모와 계모로 구별하고 차별하기 전에 아이의 건강과 안녕, 미래를 위한 공동체 전체의 고민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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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필자는 정의철 상지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입니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보도 피해자 상담 및 구조, 정보공개청구, 미디어 이용자 권익 옹호, 언론관계법 개정 활동과 언론인 인권교육, 청소년 및 일반인 미디어 인권교육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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