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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논에 마련한 작은 웅덩이 ‘둠벙’. 요새 보기 힘든 둠벙이 고성에는 500개 남짓 남았습니다. 9명 농부와 만난 김훤주 기자가 고성 둠벙의 자초지종(시말)을 기록합니다. (⏳6분)


고성 둠벙 시말기 (연재)
  1. 논의 생명줄, ‘둠벙’을 아십니까?
  2. 둠벙의 있고 없고와 크고 작고는 어떻게 결정될까?
  3. 둠벙 만들기: 여섯이서 이레는 일해야
  4. 저 논에 고인 것은 물이었나 땀이었나
  5. 주렁주렁 풍성하게 매달린 옛날 추억들
  6. 갖은 생명을 풍성하게 품는 삶터이자 놀이터 (끝)

물을 푸는 두레채

둠벙에서 물을 푸는 도구를 보면 먼저 두레채가 있습니다. 이 두레채는 물을 푸는 데 쓰는 작수바리(바지랑대 또는 나무막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길이가 대략 3.5m 안팎에 이르는데 나무 밑둥에 해당하는 퉁퉁한 쪽을 손으로 잡도록 했고 위쪽 줄기 끄트머리에는 한 말 가웃 정도 되는 두레박을 달아 붙였습니다.

이 두레채는 손으로 잡는 쪽은 지름이 15㎝ 정도로 굵고 두레박 쪽은 지름 5~6㎝로 가늘게 했습니다. 손으로 잡는 쪽은 무거울수록 좋고 끄트머리 두레박 쪽은 가벼울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지렛대의 원리에 따라 좀 더 손쉽게 물을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레채를 손으로 잡는 밑둥에는 끝자락에서 두 뼘 정도 되는 곳에 작은 나무를 하나 쐐기처럼 박아 넣었습니다. 굵기는 엄지손가락 정도 되고 길이는 한 뼘 남짓 되는 크기로 한 손으로 움켜쥐기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두레 손잡이라고 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핸들입니다. 두레채 앞의 두레박이 땅을 보고 있다면 이 손잡이는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손잡이를 비틀면 두레박에서 바로 물이 쏟아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성 둠벙 생태체험장에 복원해 놓은 두레채. 경남생태관광협회.

걸채와 두레줄

두레채 말고 걸채와 두레줄도 있어야 합니다. 둠벙 위에 세우는 세 가닥 작수바리를 걸채라 합니다. 가는 쪽 끄트머리를 단단히 묶은 다음 아래쪽 굵은 밑둥을 삼발이처럼 펼치는 것입니다. 두레줄은 두레채 짝지(지팡이 또는 작대기)를 끼워서 상하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요, 걸채를 이루는 세 작수바리가 만나는 꼭지점에 이것을 매달아 놓으면 물 풀 준비는 다 된 것입니다.

두레줄은 짚으로 꼬아서 만든 새끼줄 세 개를 머리카락을 땋듯이 묶어서 굵고 여물게 만들어 썼습니다. 이렇게 엮는 것을 삼가배 또는 삼가베(어원을 찾지 못했음)라고 했는데요 나중에는 굵은 새끼줄 대신 방앗간 탯줄(피댓줄)이나 자동차 타이어 같은 것도 두레줄로 썼습니다.

두레줄에 두레채를 올려서 걸어놓고 그것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물을 퍼냈습니다. 손으로 잡는 밑둥에서 두레줄까지는 1~1.5m 정도(3분의1) 되고 두레줄에서 두레박까지는 2~3m 가량(3분의2) 되었습니다. 이처럼 걸채를 세우고 두레줄을 건 다음 두레채로 둠벙 물을 푸는 것을 두레질이라고 합니다.

두레질하는 자세는

먼저 논을 등진 채로 두레채를 바라보고 비스듬하게 섭니다. 다음에 왼손으로는 두레 손잡이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두레채 밑둥을 붙잡습니다. 이렇게 하면 두 발은 자연스럽게 왼발이 앞으로 나가고 오른발은 왼발보다 한 걸음 정도 뒤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자세에서 오른손을 들어올리면 두레박이 둠벙 안으로 내려가 물을 담을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오른손을 아래로 누르면 두레박이 올라갑니다. 두레박이 올라온 상태에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면 두레박은 반대편 논 위로 옮아갑니다. 여기서 왼손으로 두레 손잡이를 몸쪽으로 비틀면 두레박에 담겨 있던 물이 논으로 쏟아져 내립니다.

두레채와 걸채로 쓰는 작수바리는 주로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가 소나무니까 그랬습니다. 소나무는 구불구불해서 많이 안 썼을 것 같지만 그래도 쏘물면(빽빽하면 또는 촘촘하면) 곧게 바로 올라가니까 그런 데를 찾아서 나무를 베어 썼습니다. 그밖에 노송나무(편백나무의 일종)나 삼나무로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바가지도

그렇지만 모든 둠벙에서 두레질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레질은 규모가 있는 큰 둠벙에 해당이 되었고 작은 둠벙에서는 작대기에 바가지를 달아서 물을 퍼냈습니다. 두레채가 아닌 바가지로 퍼낼 때는 가벼울수록 좋으니까 주로 사용한 작대기는 대나무였습니다. 바가지는 원래는 박바가지를 썼지만 나중에는 양철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가지도 썼지요.

바가지는 손쉽고 간단하니까 어린아이도 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두레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두레채나 두레박을 부술 수도 있기 때문에 농사일을 관장하는 어른들이 아무나 두레질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물을 푸는 것은 6~7월에 하는데 날씨가 더우니까 주로 새벽에 시작했습니다. 물이 다 다라질(닳(어간)+아(경상도식 사동형 접사)+질(보조 동사).닳게 될) 때까지 퍼올리는데요, 대체로 두세 시간이면 끝났습니다. 양수기로 하면 5~10분이면 충분한 것을 아침에 시작했으면 점심 때 끝나고 점심에 시작하면 저녁에 끝났습니다. 물론 둠벙이 크면 네댓 시간 정도 걸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요.

바닥까지 싹 퍼냈어도 그냥 놔두면 물이 다시 차입니다(채워집니다). 금세 바로 차는 건 아니고 보통은 하루종일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번씩 물을 푸는 셈인데 물이 천천히 차면 이틀에 한 번씩 퍼내기도 했습니다. 너무 가물면 몰라도 어지간하면 이렇게 해서 논에 물을 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진짜 너무 가물어지면 둠벙에 물이 가득 고이지 않았어도 서로 경쟁하듯이 퍼냈습니다. 물은 땅 밑에서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이쪽 둠벙에서 퍼내면 저쪽 둠벙에는 물이 덜 고이게 마련입니다. 자기 논에 한 방울이라도 더 대기 위해 이런 노력을 했습니다.

원형과 타원형, 그 차이는?

여기서 잠깐 둠벙이 생긴 모양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둠벙은 대체로 네 가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①가로세로 길이가 비슷한 원형, ②가로로 길쭉한 타원형, ③모서리가 둥그스럼한 세모꼴, ④가로로 길쭉한 네모형이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④네모꼴은 거의가 요즘 들어 새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옛날에 만든 둠벙은 각진 것이 없습니다. 반면 ①원형과 ②타원형 그리고 ③세모꼴은 옛날에 만든 것이 대부분입니다. 다만 원형은 지름이 2m 안팎으로 작은 편이면 옛날 것이지만 3~4m 넘게 큰 것은 최근에 만들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요즘 만들어진 긴 네모꼴 둠벙. 화당리84-1.

원형과 타원형의 차이는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일까요? 그것은 둠벙에서 물을 푸는 방법이 서로 달라서 생겼습니다. 원형 둠벙은 바가지로 물을 퍼냈고 타원형 둠벙은 두레질로 물을 퍼냈습니다. 바가지로 물을 풀 때는 별도 공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두레질을 하려면 별도 공간이 있어야 했습니다.

타원형 둠벙. 신용리 248-1.

그런 별도 공간을 물자리라 했습니다. 들어가서 두 발로 땅을 딛고 몸을 움직여 두레질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원형 둠벙은 작아서 바가지로 퍼내면 될 정도였으니 물자리가 없어도 되었고 타원형 둠벙은 커서 두레질을 하는 물자리를 마련하다 보니 그렇게 가로로 길쭉해졌던 것입니다.

그런 물자리가 원래는 뚜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힘을 많이 쓰는 왼발이 놓이는 자리는 오른발 자리보다 한 뼘가량 움푹 꺼져 있는 특징도 있었습니다. 물자리는 어느 둠벙이든 논에서 바라볼 때 오른편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논 주인이 왼손잡이라도 물자리의 이런 위치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모꼴 둠벙은 구석진 자리에 지형을 따라 만들어서 생긴 모양입니다. 어쩌면 반달 모양이라 할 수도 있겠는데요, 조그맣고 물자리가 없는 것이 많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모꼴 둠벙. 화당리 410-2. 대부분 사라진 물자리가 이 둠벙에는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다.
전봇대가 옆에 있는 네모꼴 둠벙. 거산리 311.

1970년대 들어 양수기가 보급되었고 지금은 둠벙마다 옆에 전봇대가 하나씩 서 있습니다. 양수기는 전기로 가동하니까요. 이렇게 두레질을 안 해도 되니까 새로 파는 둠벙은 지름 3~4m에 이르는 커다란 원형이 많아졌습니다. 그에 따라 물자리도 원래 자취가 조금씩 희미하게 지워지고 있습니다.

물이 아니라 땀이었다

앞에서 본 대로 둠벙은 조상들이 물려준 지혜의 산물인 동시에 피땀 어린 노력의 결정체였습니다. 삽과 곡괭이로 둠벙을 팠고 돌은 지게로 져다 날라 쌓았습니다. 궁개는 어떻습니까? 물 한 방울 더 얻기 위해 그토록 엄청나게 많은 흙을 팠고 기다란 터널을 만들고는 다시 파묻었습니다.

궁개. 경남 생태관광협회.

두레질 또한 달리 말할 것이 없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오뉴월 염천에 수시로 나가서 물을 퍼내야 했습니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200번이고 300번이고 두레질을 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뻘뻘 흘렀습니다. 그러다 둠벙에 다시 물이 고이면 누구한테 빼앗길세라 바로 나가서 두레채를 잡아야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아련한 느낌마저 듭니다. 양수기를 돌리면 5~10분이면 끝나는 일인데 그때는 그렇게 하루종일 둠벙에 매달려 물을 푸고 또 푸고 했구나……. 그때 퍼올렸던 것이 물이 아니고 땀이었구나…….

물 푸느라 고단하고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오히려 퍼낼 물이 있어 주니 참 고맙구나, 이렇게만 여겼습니다. (계속)

오래 전에 만들어졌지만 요즘 만들어진 것처럼 긴 네모꼴인 둠벙. 신용리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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