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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특집 인터뷰 

  1. 체중 미달 꼬마, 복싱 레전드 되다: 이옥성 인터뷰
  2. “나이는 숫자일 뿐”: 수영 레전드 남유선 인터뷰
  3. 국가대표는 선수와 지도자만 있는 게 아니다: 탁구 국제심판 안국희 인터뷰
  4. 미소천사, 세계를 들다: 역도 레전드 이배영 인터뷰
  5. 히어로는 막판이다: 유도 레전드 송대남 인터뷰
  6. 스포츠의 사회 공헌을 위한 ‘두드림’: 김세진 위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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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개최된 제100회 전국체전은 우리나라 체육계 100년의 역사를 기리는 의미도 있었지만, 수영 종목에서는 남다르게 의미 있는 무대가 있었다. 바로 29년간 수영선수로서, 그리고 16년간 국가대표로서 누구보다 오랫동안 활동하고, 가장 잘해왔던 남유선 선수의 은퇴식이 거행된 것이다.

남유선 선수는 제100회 전국체전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남유선 선수는 제100회 전국체전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몸이 약했던 아마추어 소녀, 국가대표가 되다

남유선 선수가 처음 수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건강’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몸이 약했던 남유선 선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유아체능단에 입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 수영을 배웠다.

가원초등학교 4학년, 아마추어반이었던 그녀는 우연히 참가했던 전국소년체전 선발전에서 운이 좋게 선발 기회를 얻어 소년체전에 출전하게 되었다. 생에 첫 대회가 전국소년체전이었던 그녀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의 선수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소년체전이 끝난 후, 바로 선수반에 들어가 체계적인 훈련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고강도의 훈련을 견디며 엘리트 수영선수로 전환한 지 만 5년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였다.

“선수촌 입촌 전에는 이른 새벽에 훈련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선수촌에서는 매일 새벽 훈련이 있었고, 아침마다 얼음장 같은 물에 들어가 훈련하는 것이 가장 고되었습니다.”

주종목인 개인혼영 그리고 매력 있는 수영

남유선 선수의 주종목은 개인혼영이다. 개인혼영은 일정 거리를 접영 → 배영 → 평영 → 자유형 순으로 반환점에서 다음 영법으로 바꾸어 수영의 네 가지 영법을 모두 수영해야 한다. 개인혼영은 200m와 400m로 나누어져 있고, 200m의 경우, 한 영법 당 50m씩, 그리고 400m는 한 영법 당 100m를 수영한다.

남유선 선수는 서울체육고등학교 시절, 제82회 전국체전에 출전하여 개인혼영 400m에서 처음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이 종목에서만 1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대학 재학시절 제85회 전국체전에서는 개인혼영 200m, 400m, 혼계영 400m, 800m 4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제100회 전국체전까지 지난 19년간 단 한 번의 전국체전도 빠지지 않고 출전하여 개인혼영 200m와 400m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개인혼영은 네 가지 영법을 고루 잘해야 하는 만큼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훈련마다 퍼즐을 끼워 맞추는 게임처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수영 특성상 오롯이 타고난 신체만 활용하는 한정적인 부분의 한계를 네 가지 종목을 스스로 몸에 맞게 잘 발전 시키면 기록을 줄여나가기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한가지 기술을 습득하고, 그 기술로 기록을 줄인다면 개인혼영은 네 가지 기술을 습득해서 기록을 단축하는 기회의 창이 더 많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혼영은 한 가지 영법을 주종목으로 구사하는 것보다 더 매력적이고, 훈련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또한, 수영은 수영장 물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 외 다른 그 어떤 것의 도움도 없으므로 끊임없이 스스로 대화하고, 만들고, 책임지는 것들의 연속이다. 수영은 그렇게 매력 있다.

가장 많은 배움을 준 인생에서의 첫 올림픽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출전 당시 맨 왼쪽이 남유선 선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출전 당시 맨 왼쪽이 남유선 선수다.

남유선 선수는 가원중학교 3학년 당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수영 대표팀의 최연소 출전자로 발탁되었다. 꿈의 무대에 처음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남유선 선수는 개인혼영 200m에서 26위를 하였다. 당시만 해도 국내 수영은 세계 무대에서 격차가 워낙 멀었던 터라 올림픽은 메달보다는 ‘참가의 의의’에 더 많은 중점이 있었다.

남유선 선수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출전 후 수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많이 달라졌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고 나니 스포츠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며, 그로 인해 운동의 가치와 경쟁의 본질적인 참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제가 하는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순한 성적 향상이나 개인 만족이 아니라, 자긍심을 갖게 하고, 국가를 대신 할 수 있고, 순수한 종목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년 올림픽, 국내 수영 역사를 새로 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서울체육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그녀는 주종목을 개인혼영 200m에서 400m로 바꾸었다. 그 후, 2001년 동아시안게임 개인혼영 400m 동메달을 획득하며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 사이, 학업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그녀는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캠퍼스의 낭만도 잠깐, 그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며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게 되었다.

아테네 현지 수영장 여건에 맞추어 한 달간 사이판 야외수영장에서 진행되었던 전지훈련은 혹독했다. 그러나 남유선 선수는 바람의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 지붕이 없는 아쿠아틱센터에서 시합을 준비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남유선 선수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국내 수영 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했고 개인혼영 400m에서 7위를 하며 역대 최고의 기록은 물론, 한국 신기록도 새로 썼다.

남유선 선수 역시 이 순간을 지난 16년 간의 국가대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는다.

당시만 해도 20살의 여성 수영선수는 ‘노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였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그녀에게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참가하는 국제무대이고, 선수로서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생각으로 참여했고. 유종의 미를 잘 거두고 학업에 열중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던 그녀였다.

“코치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의지가 아닌 스스로 자의적인 훈련을 하고, 제가 원하는 수영을 하다 보니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고, 성적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게 되면서 올림픽에 참가해서 한국 선수 최초로 결승에 진출했고, 생애 첫 한국신기록을 작성했습니다. 그 대회 이후, 수영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할 만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은퇴라고 생각했던 그때, 출전한 2016년 올림픽

네 번째 올림픽이었던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 당시.
네 번째 올림픽이었던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 당시.

남유선 선수는 그 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올림픽도 참가하였다. 그리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4번 연속으로 발탁되어 출전하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서 발탁되지 못했을 때, 그리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국제대회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은퇴를 예상했다. 그러나 남유선 선수는 2016년, 만 31세의 나이로 개인혼영 200m에서 그것도 올림픽 자동 진출권이 보장되는 A 기준 기록을 통과하며 리우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어 출전하였다.

남유선 선수의 행보는 ‘나이는 숫자의 불과하다’라는 것을 몸소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수영이라는 종목은 누군가를 이기고 진다는 것보다 자신의 기록을 단축하고 스스로 한계를 이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매 올림픽에 출전할 때마다 세계의 빠른 선수들과 시합하면서 좋은 기록을 내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올림픽을 준비하는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성취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네 번의 올림픽의 도전은 힘들었지만, 매 순간이 의미 있었습니다.”

선수 은퇴 이후 새로운 도전 1: 해설위원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해설위원으로 참가 당시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해설위원으로 참가 당시

남유선 선수는 2016년 리우 올림픽 이후 부상으로 인해 2017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그 아픔은 ‘해설위원’이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잊을 수 있었다. 국제무대 해설자로 중계를 위해 자료 준비를 하고, 경기 중계를 하면서 제3의 입장이 되어 선수로 사는 삶이 행복한지, 최선인지 가늠하고, 고민해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남유선 선수는 당시 훈련량과 비례해 나아지지 않는 경기력이 국가대표로서의 모습과 국가대표를 향한 도전에 더는 의미가 없다고 느꼈고, 기술적인 부분의 보완이 체력적인 부분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리고 그 한계의 종착점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미련없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택했다.

남유선 선수는 MBC의 해설위원으로 첫 해설을 맡은 건 2017년 헝가리세계수영선수권대회였다. 남유선 선수는 항상 경기에 참가하는 입장이었기에 실수도 잦았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당시엔 다시 선수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전문성 있는 해설을 하겠다는 의지와 준비가 부족했다.

그 후, 그녀는 2017년 세계주니어수영선수권대회,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그리고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경기 중계를 하였다.

“경기 중계를 하면서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는 김서영 선수가 나와 같은 종목인 개인혼영 2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기에 매우 즐거웠고, 대신 보상 받는 듯한 통쾌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자국에서 열린 만큼 우리나라 꿈나무 선수들이 참가하는 기회를 많이 얻어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대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해설위원은 누구보다 그 종목에 대한 애착과 전문성을 가지고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경기 내용을 전달해주는 ‘전달자’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남유선 선수. 무엇보다 해설위원이 종목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전문적인 정보와 자료를 상세하게 알고 있지 않고, 그렇기에 생생하게 전달하기 어렵다.

남유선 선수에게 좋은 해설이란 형식적인 설명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수들만이 느끼는 그 1%의 어떤 것까지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남유선 선수는 도쿄 올림픽이 열린다면 이번에도 MBC 해설위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선수 은퇴 이후 새로운 도전 2: 대학원 진학

‘공부하는 수영선수’의 아이콘이었던 남유선 선수는 서울대학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입학하였다. 현재는 운동생리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운동생리학은 선수 생활 당시 가장 관심 있었던 분야이다.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한 것은 경기지도자로서의 진로를 위해 도움이 되는 학과를 선택했고, 진로를 선택했다.

운동생리학을 공부함을 통해 무엇보다 경기지도자로서 더 전문성 있고, 실수하지 않는 훈련계획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선수들에게 더 많은 선택을 제시할 수 있고, 피드백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선수 은퇴 이후 새로운 도전 3: 경기지도자

직접 소통하는 선수 지도
직접 소통하는 선수 지도

남유선 선수는 인덕원중학교 전임 지도자를 거쳐 지난달 경기체육중학교 전임 지도자로 발탁되었다.

은퇴 후 해설위원, 대학원 진학 외 경기지도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현장에서의 수영이 아직 좋고 선수 시절 좋은 경기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10대~30대까지 어느덧 30년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개인이 쌓은 다양한 노하우들을 후배들과 열정을 가진 지도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제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 지도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한 발자국씩 뒤늦게 깨닫고, 성장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선순환 측면으로 수영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지도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남유선 코치가 훈련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맞는 수영기술과 체력이다. 수영은 개개인의 다 다른 몸을 사용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경기지도자는 정확한 분석력과 다양한 적용방법을 구사할 줄 알아야만 선수들에게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획일화된 지도를 통해 자신의 사고에만 갇혀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선수들과 공감하고, 한 박자 빠르게 내다보고 가르치는 능력이 있는 지도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남유선이 예상하는 2020 올림픽 수영 대표팀

국제수영연맹(FINA)은 ‘올림픽 자격기록(QQT[footnote]Olympic Qualifying Time[/footnote])’과 ‘FINA·올림픽선발기록(OST[footnote]Olympic Selection Time[/footnote])’을 허용해 A·B 기준기록을 나누어 종목별로 출전 국가가 최대 두 명까지 선수를 출전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기준 기록을 둔 것은 올림픽 경기를 위한 선수 정원을 추리기 위한 것으로, 세계신기록 및 아시아신기록에 기반을 둬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다음으로 규정이 바뀌어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는 한 종목에 최대 두 명의 선수가 출전하려면 두 선수 모두 상위 기준인 A 기록을 넘어야 한다. A 기준보다 하위인 B 기록을 넘는 선수가 아무리 많아도 A 기록을 통과하는 선수가 없다면 그 종목에는 단 한 명만 내보낼 수 있다. 또한, 출전 국가에 해당 종목의 B 기록을 넘는 선수가 없으면 선수를 출전시킬 수 없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경영은 개인종목 및 단체종목 등 35개의 종목이 열리며, 878명의 선수가 출전할 수 있다. 출전 선수는 2020년 3월 1일에서 6월 29일 사이에 국제수영연맹이 공인하는 대회에 출전해 대회 공인 기록을 근거로 올림픽 출전권을 받게 된다.

A 기준기록을 세운 선수는 자동 출전권을 얻으며, B 기준을 세운 선수는 878명의 정원 한도 내에서 6월 29일을 기준으로 국제수영연맹 랭킹 순으로 출전권을 얻게 된다.[footnote]참조 기사: 시사N라이프, [인터뷰] “여성으로 국내 최초” 전 올림픽수영 국가대표 박성원 감독, 글렌다 박, 2020, 2. 8. [/footnote]

수영은 기록경기이다 보니 동·하계 훈련, 경기 컨디션에 따라 변동이 심하므로 어떤 선수가 확정적이라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남유선 선수는 A 기록과 B 기록 보유 선수들을 근거로 2020년 도쿄 올림픽 유망주들을 꼽았다.

“A 기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개인혼영의 김서영 선수와 최근 한국 신기록을 세운 평영의 조성재 선수, 배영의 임다솔 선수, B 기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접영의 안세현 선수, 박수진 선수, 평영의 문재권 선수, 자유형의 정소은 선수, 접영의 양재훈 선수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그녀는 코로나19의 사태가 종식되기 이전이라 후배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제 대회 경기 감각을 키우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했다.

“항상 기회는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번 올림픽이 아시아에서 열리는 만큼 개개인의 능력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기를 바라고, 올림픽 메달과 결승선에 근접한 선수들은 아쉬움이 남지 않게 좋은 경기를 펼쳐주기를 응원합니다.”

앞으로의 ‘남유선 키즈’를 기대하며

제100회 전국체전에서 개인혼영 200m 마지막 레이스를 함께 펼쳤던 김서영 선수를 비롯해 어린 시절 남유선 선수를 동경하며 훈련해온 개인혼영 부분의 수많은 ‘남유선 키즈’인 후배들은 남유선 선수의 은퇴식에서 남유선 선수의 전무후무한 기록과, 30대에도 신기록을 수립해온 남유선 선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언제나 후회 없는 삶, 그리고 멀리 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남유선 선수. 그녀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수많은 ‘남유선 키즈’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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