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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미달 꼬마, 복싱 레전드 되다: 이옥성 인터뷰

 

1980년과 1990년 초기에 복싱은 국내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였다. 언제부턴가 그 인기는 거짓말처럼 시들었고, 대중들은 복싱을 그저 고되고, 힘든 운동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운명처럼 찾아 걷기 마련이다. 바로 이옥성 선수가 그랬다. 이옥성 선수는 복싱을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약’이라고 표현한다.

이옥선 코치. 2019년 도쿄 올림픽 최종선발전 경기 해설위원으로 참가 당시 모습.

이옥성 코치. 2019년 도쿄 올림픽 최종선발전 경기 해설위원으로 참가했다.

몸무게 미달이었던 레전드

2000년대 이옥성 선수는 한 시대의 전설로 존재했다고 설명해도 무방하다. 그의 첫 복싱 입문은 TV를 통해서였다. 그의 어린 시절 또한 TV를 켤 때마다 복싱이 나오는 시대였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복싱을 동경했던 그는 아버지에게 매달려 조르고 졸라 결국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복싱을 시작했던 11세 당시 몸무게가 20kg 미만으로 유달리 왜소했던 그이기에 엘리트 선수(체육특기생)의 길을 걷고자 하는 소망을 내비쳤을 때 이옥성 선수의 아버지는 많은 반대를 했다. 중학교 입학할 당시 체중도 24kg였고 34kg이 복싱경기 출전 가능한 최소 몸무게였기에 그는 체중 미달로 경기에 출전도 불가했다. 심지어 당시 감독님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자’라고까지 했었다. 이옥성 선수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최소몸무게 42kg이 넘어 전국대회에 첫 출전을 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합출전이 가능했다. 운동경력은 또래의 누구보다 오래되었지만, 경기경험이 부족하여 2위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던 그였기에 대학도 인서울이 아닌 충북 청주의 서원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홍기호 코치를 만나며 복싱 기량이 쑥쑥 올라갔다. 그러나 학부 4년간 한 번도 국내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실업팀에 입단하게 되었고 2003년 처음으로 국가대표 후보선수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였다. 그곳에서 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코치를 처음 만났다. 그를 통해 복싱의 새로움을 다시 배웠다. 2004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국제복싱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옥성 선수는 천적이었던 김기석 선수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끝나고 2005년 국가대표선발전을 포기하면서 그해 처음 정식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었다.

국가대표로서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우승 및 우수 선수상을 받았던 2004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국제복싱대회 당시.

국가대표로서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우승 및 우수 선수상을 받았던 2004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국제복싱대회 당시.

2005년 이후 출전하는 국제대회마다 1위를 하며 승승장구하였고, 마침내 19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순간에 복싱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는 ‘고통은 순간이지만 영광은 영원하다’라는 신조를 지니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말한다.

 

“지금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라는 천운을 가지고 타고 났다’라며 주변 사람들은 말하지만, 제게는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복싱을 선택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하며, 과거의 제 선택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인생을 바꿔놓은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의 축제라면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로 설명된다. 세계선수권대회는 그 종목의 모든 인원의 축제이다. 그러나 그 종목 체육인들은 수많은 국제대회 중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를 더 높이 인정한다. 스포츠 선수들의 그랜드슬램에 세계선수권대회를 포함 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하기 전 개최되었던 전국체전 당시 이옥성 선수는 결승에서 천적이었던 라이벌 김기석 선수에게 패했다. 그해 아시아선수권을 비롯한 국제대회 금메달을 획득했던 이옥성 선수였기에 국내 대회 우승을 놓친다는 것에 대한 절망과 좌절감은 표현할 수가 없었다.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그는 소속팀 감독님을 포함한 관계자들에게 은퇴 의사를 밝혔다. 그에겐 더 이상의 국제대회 우승이 의미가 없었던 것이, 김기석 선수라는 산을 넘어야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출전이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김기석 선수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면서 이옥성 선수가 그동안 11번을 만나 상대전적 11전 1승 10패의 기록을 지닌 친구이자 숙명의 라이벌이였다.

 

“저의 짧은 생각에는 국내 우승도 못 하면서 어떻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출전을 할 수 있겠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더는 복싱이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김기석 선수에게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권유했으나, 김기석 선수는 “출전 못하겠다”고 밝혔고, 그래서 저 또한 출전을 포기하고 은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기 위해 전화를 드렸는데, 아버지께서 “그래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너에게 있으니 마지막으로 다녀와서 그만둬라”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이옥성 선수의 아버지는 당시 겨우 스물네 살이었던 이옥성 선수가 선수 생활을 돌아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마지막 대회로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하고 은퇴하기를 추천하셨다. 그리고 이 아버지의 한 마디는 이옥성 선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과 참가의 의의를 두고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러나 막상 링에 오르자 예상과는 양상이 다르게 흘러갔다.

출전 선수들은 그동안 그와 숱하게 대결했던 선수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고, 무난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이옥성 선수는 당당하게 준결승까지 올라갔고 동메달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당시 ‘천재 복서’라고 불렸던 미국 선수와 맞붙게 되었고 모든 이들이 이옥성 선수의 승률은 0%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이옥성 선수는 비장의 묘책으로 맞섰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이 끝나고 결승전까지 이겼다는 기쁨, 그리고 우승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설렘, 오만가지 잡생각이 들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승전까지 30시간이 남아있었지만 단 한숨도 못 자고 결승경기에 나섰다. 복싱 강국인 쿠바 선수와 만나게 되었고, 수면 부족에 많은 경기로 지쳐있던 상황이었으나 끝내 이겼다. 대한민국에서 19년 만의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국내 복싱계의 이옥성이라는 이름이 길이 남겨질 역사가 다시 쓰이는 순간이었고, 이옥성 선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으며, 이옥성의 ‘현재’를 만든 순간이기도 했다.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후 입국 당시 공항에서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후 입국 당시 공항에서

이옥성 선수는 그해 가장 유명하고 인기 높았던 장미란 선수, 박태환 선수 등을 제치고 모든 종목을 포함해 국내 최고로 권위 있는 제52회 대한민국 체육상 대상, 제44회 대한체육회 체육대상, 제11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등을 수상했다. 복싱계의 새로운 신화였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의미를 붙일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기어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정말 다시 오지 않을 제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016년 대한체육회 행사 당시

2016년 대한체육회 행사 당시

국가대표 병역 혜택에 대한 형평성

현재 국가대표가 병역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올림픽 메달 획득을 하거나, 아시안게임 금메달획득을 하는 것이다. 야구의 경우 WBC 우승을 비롯해 축구의 경우 과거 월드컵 4강 진출 당시 이례적으로 군 면제 혜택을 부여했으나 매년 개최되는 세계선수권대회는 군 면제 혜택의 해당 대회가 아니다. 그러나 위에 설명했듯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만큼 위상과 권위를 지닌 국제대회이다.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비롯해 국제대회에서 5회 연속 우승을 하는 등 그는 2000년대 한국 복싱의 간판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 와중에 2008년 WBC 준우승을 차지한 국가대표 야구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자’라는 여론이 피어오르자 이옥성 선수는 당시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 박용성 前 회장 앞으로 ‘병역 혜택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국가대표에 대한 병역 혜택의 형평성 문제는 아직도 ‘현재형’이다.

이옥성 선수가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 남긴 글 전문

존경하는 박용성 회장님께

 

안녕하십니까?
베이징 올림픽 복싱국가 대표 선수로 출전한 이옥성이라고 합니다.
우선 갑작스러운 무례에 넓은 아량으로 이해 주실 거라 믿고 몇 자 올립니다.
현재 WBC 야구국가대표팀이 너무도 자랑스럽게 결승에 진출해 같은 체육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 면제라는 특혜가 주어진다는 말을 접해 들었습니다. 지난 1회 대회에서도 4강 진출에 군 면제를 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 면제 특혜가 없어진 거로 아는데 다시금 2차 대회에서 또 군대 면제라는 특혜가 주어진다는 것을 접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몇 자 적어 올립니다. 또 마찬가지로 축구도 월드컵 16강 진출에 군 면제 특혜를 주셨고요. 저는 같은 체육인으로서 군대 면제는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인기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군대 면제는 형평성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100개국이 넘는 국가가 출전한 2003년도 제13회 세계 복싱선수권대회에서 19년 만에 대한민국 사상 두 번째로 금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하지만 군대 면제는 비인기 종목은 해당조차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인기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군대 면제 특혜는 형평성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인기종목은 16강 4강만으로도 군대 면제가 되는 시점에, 100개가 넘는 국가가 출전한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저희 비인기 종목선수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 전 종목 남·여 선수 모두 합한 숫자가 축구, 야구선수들의 숫자보다 적은 몇 되지도 않는 소수의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비인기 종목의 선수로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여 20년가량을 복싱에만 전념하며 현재까지 하고 있다는 게 너무도 초라할 따름입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자부심을 가지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인기종목 선수들은 부와 명예가 있지만, 저희 비인기 종목선수들은 한가정 꾸려 가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나이 제한으로 인해 다른 종목선수들처럼 오래도록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30세가 되기도 전에 95%가 넘는 선수들이 은퇴합니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몇 명 되지도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인기종목과 비인기 종목은 똑같이 국위 선양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특혜의 혜택은 체육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형평성은 맞게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열심히 꿈을 키우고 있는 미래의 비인기 종목선수들이 세계 대회 금메달획득에도 중간에 입대라는 크나큰 벽에 사로 막혀 꿈을 접는 일이 없도록 꼭 저희에게도 혜택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작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7위라는 위상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저희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31개라는 메달을 획득하여 세계 7위라는 크나큰 위업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29세라는 나이에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해 한해 미루고 미룬 것이 지금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저의 불찰도 있지만 꿈을 위해서 잠깐 미룬 것입니다.

군대에 가게 되면 이제는 운동을 은퇴해야 합니다 더이상 연기도 되지 않습니다.
현재는 육아로 인해 연기해야 했지만, 내년엔 무엇으로 연기를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 있을 2010년 아시안게임과 20012년 올림픽에 꼭 한번 다시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박용성 회장님 현명한 판단으로 모든 스포츠인이 하나 되어 웃을 수 있게 해주시는 그날까지 목놓아 기다리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싱 국가대표선수 이옥성 올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이후 그는 자연스럽게 은퇴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처했다. 그 사이,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당시 겪었던 시기에 대해 말을 아꼈다.

 

“2005년 저의 우승이 15년이 지났지만,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선수권대회 또한 아시안게임 금메달 및 올림픽 메달 수상자와 똑같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선수권대회의 수상 과정 역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경기 만큼 정말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술계에서는 국내 대회 우승을 하여도 군 면제 혜택이 주어집니다. 국제 콩쿠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체육계에만 국한되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옥성 선수는 종목에 따라 상황이 다르더라도, 그 ‘기준’과 ‘제도’가 공정히 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선되어야 할 현역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환경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병역에 대한 형평성은 각 종목에 따라 전문가를 통해 세부적인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있는 조사를 통해 적용해줬으면 합니다. 또한, 현재 복싱선수들의 처우가 과거와 비교해 많이 나아졌지만, 복싱선수의 현역 생활이 다른 종목에 비교해 짧아 어린 나이에 은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현역 선수들의 처우를 비롯해 은퇴 선수들의 고용문제를 개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매년 기약 없는 다음 해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선수와 지도자들의 고용이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보장되어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너무나도 보고 싶고, 선수들의 꿈 또한 은퇴 후 지도자가 되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선수의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옥성 선수는 이옥성 코치가 되고

이옥성 선수는 은퇴 후 ‘선수’에서 어엿한 ‘지도자’가 되어 국가대표 지도자를 거쳐 현재 성남시체육회에서 지도자로서 후배이자 제자를 육성하고 있다. 그는 처음 지도자로서 발을 디뎠을 때는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해’라는 답답함이 많이 느껴졌다. 선수 개개인의 실력과 배움의 속도가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착오였다. 바로 ‘명선수는 명장이 될 수 없다’라는 문장이 왜 생겨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사설체육관을 운영하며 선수가 아닌 여러 다양한 일반인을 지도하며 지도자로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그 후, 국가대표 지도자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하게 되었을 땐 답답함을 느끼더라도 최대한 내려놓고, 잘하지 못하는 선수라도 성장 가능성을 깨우쳐주며, 다독여주고,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지도자로 변모해있었다.

2016년 루마니아 골든벨트컵 국제복싱대회. 국가대표 지도자로 직접 지도한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국제대회 출전하여 종합우승을 했다.

2016년 루마니아 골든벨트컵 국제복싱대회. 국가대표 지도자로 직접 지도한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국제대회 출전하여 종합우승을 했다.

 

“뛰어난 선수 경력을 가진 분들이 지도자 생활을 오래 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선수 은퇴를 하고 대부분 지도자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기다림 속에 선수들의 변화를 감지했고,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역할이 지도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옥성 ‘코치’는 20여 년간의 선수 생활을 하며 수많은 지도자를 거쳤다. 그리고 그는 ‘지도자 복이 많은 선수’로 자신을 소개한다. 중학교 은사인 왕수상 코치 선생님, 경남체육고 하선철 코치 선생님, 서원대 홍기호 코치 선생님, 그리고 국가대표 시절 박시헌 코치 선생님까지. 그는 이 네 명의 지도자를 지금도 평생의 스승이자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네 분의 공통점이 있다면 정직하시고, 인자한 성품과 지도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본인의 헌신을 통해 아버지와 같이 선수들을 품으시며 지도하셨습니다. 한없이 인자하셨지만, 때로는 냉철하게 선수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들입니다. 선수로서 기본인 인성을 먼저 배웠고, 인성이 올바른 선수가 되어야 큰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영감을 주셨습니다. 저의 롤모델로 삼고 최대한 이분들의 뒤를 조금이나마 따라가고자 선수들에게 인성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만, 따라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저 또한 많은 것을 배우는 중입니다.”

 

이옥성 코치는 지도하는 선수들에게 ‘운동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중시한다. 어느 순간에 어느 곳에 설지 모르는 선수들이기에 인성만큼은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선수 중 가끔 스트레스를 받거나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선수의 시간을 충분히 들이고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면서 제가 선수 시절 겪은 경험과 이야기도 해주고, 선수에 처한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지도자는 인자한 아버지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형, 오빠처럼 서로 의지하며 소통할 수 있는 부드러움 속에서 강인한 결단력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2018년 두드림 스포츠에서는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스포츠 경험의 기회를 주고자 청소년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이옥성 코치는 복싱을 전파했다.

2018년 두드림 스포츠에서는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스포츠 경험의 기회를 주고자 청소년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이옥성 코치는 복싱을 전파했다.

스포츠 행정가 이옥성의 삶

이옥성 코치는 현재 성남시체육회 지도자 외에도 두드림 스포츠의 이사, 한국체육회지도자 연맹의 이사, 그리고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스포츠 행정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 생활을 하며 팬들과 관계자들에게 지지와 지원을 받아온 만큼 이제는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각 분야의 뜻이 맞는 전문가들이 모인 단체에서 발전된 체육계의 미래를 도모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비인기 종목의 선수와 지도자의 삶은 쉽지 않다. 그 역시 같은 길을 걸었고, 지금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앞으로의 제도가 하루아침에 변화되지 않는 한 지속될 현실이기에 그는 미래의 선수와 지도자들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다른 걱정 없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지도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지도자와 스포츠 행정가로서 여러 직책을 함께 맡고 있어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게 들릴 수 있지만, 평일에는 선수지도에 힘을 쓰며, 대부분 행정에 관한 것은 SNS를 비롯한 E-Mail 수신을 통해 소통이 이루어지고, 회의와 행사는 주말에 개최되며 다행히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서 시간적 제약은 없다.

2019년 한국체육지도자연맹의 첫 모임. 이사 자격으로 참가했다.

2019년 한국체육지도자연맹에서 주최한 첫 행사. 이사 자격으로 참가했다.

이옥성이 전망하는 2020 올림픽 복싱 대표팀

코로나19 때문에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지만 현 계획상으로는 오는 7월 2020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 예정이고, 우리나라 복싱 국가대표 선수들은 그 어떤 가능성에도 휘둘리지 않고 진천 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 중이다. 올림픽을 떠나 그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선수들이며 그들이 매년 출전하는 국내, 국제대회는 10개 이상의 대회가 넘는다. 이옥성 코치는 도쿄 올림픽 출전에서 메달 획득에 주목할 만한 선수로 여러 선수를 지목했다.

 

“유일하게 2016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함상명 선수,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리스트인 김인규 선수,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이자 헤비급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김형규 선수,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임현철 선수, 여자선수로는 아시아선수권대회 2연패, 아시안게임 금메달,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을 수상한 오연지 선수가 다가오는 도쿄 올림픽에서 지금처럼 꾸준히 잘해준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후배들의 성적은 조심스럽게 예상하면서, 이옥성 코치가 선수 시절 이루지 못했던 올림픽 메달 획득을 후배들이 이뤄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내비쳤다.

 

“남, 여 모든 체급이 금메달을 획득하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32년 만의 금메달은 꼭 나왔으면 합니다.”

 

스포츠 영웅들과 강릉에서 열린 2016/2017 ISU 쇼트트랙 월드컵 관전 당시. 사진 좌로부터 2004/208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복싱 김정주,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대한탁구협회 회장 겸 현 IOC 유승민 위원,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복싱 한순철,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복싱 이옥성, 올림픽 4회 출전 및 동아시아경기대회 은메달리스트 수영 남유선,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레슬링 정지현,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태권도 오혜리, 2008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역도 윤진희.

스포츠 영웅들과 강릉에서 열린 2016/2017 ISU 쇼트트랙 월드컵 관전 당시. 사진 좌로부터 2004/208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복싱 김정주,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대한탁구협회 회장 겸 현 IOC 유승민 위원,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복싱 한순철,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복싱 이옥성, 올림픽 4회 출전 및 동아시아경기대회 은메달리스트 수영 남유선,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레슬링 정지현,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태권도 오혜리, 2008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역도 윤진희.

이옥성 코치 꿈꾸는 내일 

현재 대한민국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황이다. 제일 먼저 2월 예정에 있었던 한국체육지도자연맹 출범식이 잠정 연기되어있으나, 4월 20일 충남 청양에서 개최되는 연맹회장기대회를 선두로 복싱선수들의 시합 시즌이 시작된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최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이옥성 코치는 포털사이트에 ‘이옥성’이라는 이름을 검색했을 때 연관검색어에 자신에 관한 내용보다는 ‘이옥성 제자 올림픽 금메달’ 또는 ‘이옥성 제자 세계선수권 금메달’이 뜨는 그 날을 기대하며,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들의 목표를 자신이 15년 전 가졌던 같은 곳에 놓고 바라보며 지도하고 있다.

 

“앞으로 저의 목표는 제가 지도한 선수와 함께 지도자로서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하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존경하는 지도자, 사랑받는 지도자, 정직한 지도자로서 먼 훗날, 모든 선수가 바라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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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글렌다 박
초대필자, 기자, 작가

[AVEC G] (www.avecg.net) 발행인. 'CALAMUS GLADIO FORTIOR(펜은 칼보다 강하다)'; 글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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