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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 내외부적으로 숨어 있던 많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야깃거리야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신천지 문제가 가장 신경이 쓰였고, 여러모로 궁금한 지점이 많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2010)를 읽었다.

하루키는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사건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 (2010)를 출간한 뒤, 그에 상응하는 의미에서 옴진리교에 한때 몸을 담았거나 혹은 여전히 몸을 담고 있는 8명의 신도를 인터뷰하여 책을 펴냈다.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은 “가해자에게도 할 말이 있다” 혹은 “그들도 불쌍한 사람이다”는 식으로 해당 사건의 가해자들을 옹호하거나 혹은 옴진리교 신도들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더그라운드 하루키

그보다는 대체 그들이 어떻게 하다가 옴진리교에 투신을 하게 되었는지, 그들이 바라본 교주는 어떤 존재였는지, 교단 안의 규칙과 질서는 어떠했는지, 부당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등등을 구체적으로 상세히 들어봄으로써 ‘컬트 종교’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니까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대체 왜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저 지경이 되었을까’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다.

사실은 나 역시 오래전부터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신천지 사태’를 일어나게 한 이만희라는 사람을 봐도 그렇고, 옴진리교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 역시 그렇고, 그 밖에도 기독교 내부의 ‘일부’ 목사들을 보면, 그 외모부터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볼 수가 없다. 공중부양이니, 생명책이니, 프리메이슨이니 딱 보거나 들어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도 목사님, 교주님, 하나님 하면서 열광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요가 한번 해보면 어때?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의문이 단번에 해소가 되었다. 누구나 자기혐오불안, 고독감 등 인간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리고, 그 감정이 당연히 불쾌하니 그것을 없애기 위한 이런저런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것이 옴진리교나 신천지 혹은 이른바 사이비 종교였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달리 ‘이상한’ 사람이 빠져들었다기보다는 정서적으로 남보다 취약한 사람이 재수 없게 걸려든 경우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 '멀쩡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걸까? 어쩌면 '평범'이라는 딱지는 그저 다수의 무관심이나 외면은 아니었을까?
왜 ‘멀쩡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걸까. 하지만 누구나 그 평범함 속에 불안, 고독, 자기혐오를 숨긴 채 사는 건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잘 와 닿지 않을 텐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작업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아주 가끔이지만 굉장히 외롭고,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다정한 말도 해주고, 뭔가 친근감을 표시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런 상황이 일정기간 이상 지속되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그 사람에게 일종의 우정 혹은 호감을 갖게 된다. 그렇게 점점 사이가 가까워지고, 절친이 되면서 일종의 신뢰 관계를 쌓게 되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이 권유한다.

“‘요가’ 한번 해보면 어때? 이거 하고 나서 난 자존감도 많이 높아졌고, 마음도 안정됐어.” 

결국, 신뢰하는 사람의 조언에 힘입어 당신은 자연스레 요가에 입문하게 되는데, 확실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만족스럽다. 예전보다 두려움과 불안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당신은 자연스레 요가를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가까이서 지켜본 그 사람은 평소에 보던 것보다 더 굉장하게 느껴진다. 신기한 동작도 하고, 뭔가 엄청난 고수 같다.

어느덧 당신 역시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러나 좀처럼 요가의 실력은 늘지를 않고, 자연스레 마음도 초조해지고 뭔가 요가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 정신이 산만하고 번민이 늘어난 것만 같다. 이런 고민을 상담하면 그 사람은 말한다.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 그래. 돈과 시간을 더 많이 들이면 괜찮아.”

결국 당신은 돈과 시간을 더 많이 들이게 되고, 어느덧 요가에 깊숙이 중독되고 빠져들게 된다. 요가 자체에도 심취하고, 함께 요가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도 완벽히 녹아든다. 더는 요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처음에는 아주 가볍게 시작된다. "요가 한번 해보면 어때?"
그 시작은 가볍고, 사소하다. “요가 한번 해보면 어때?”

사이비 종교도 다르지 않다

사이비 종교 이야기하다 말고 ‘웬 요가?’ 싶겠지만, 사실은 사이비 종교의 맥락 역시 다르지 않다. 매커니즘이 완벽히 똑같다. 여기서 ‘요가’는 그 무엇으로든 대체될 수 있다. 요가를 예시로 들어 미안하지만, 요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결핍을 해소하려는 어떤 종류의 활동이든 그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신천지가 될 수도 있고, 옴진리교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기독교도 될 수 있고, 막시즘도 될 수 있고, 박정희도 될 수 있고, 환단고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옴진리교의 경우 저런 식으로 ‘마음의 안정’을 위해 요가를 시작하고, 그 안에서 아사하라 쇼코와 옴진리교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일단 발을 들인 후 주변인들은 계급이 높아져야 본질에 닿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리고 계급이 높아지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렇게 교단에서 지정한 책을 수십 권 읽히고, 교단의 만트라 같은 것을 외게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세뇌가 된다.

한편 계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지위가 높아지고 교주와의 관계도 돈독해지므로 레벨이 높은 사람들은 상대적 우월감을, 레벨이 낮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동시에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그렇게 모두가 ‘레벨업’에 신경을 쓰고, 그 과정에서 교주는 점차 신격화되고, 사람들은 무엇이 본래 목표였는지 자체를 잊어버리고 내부의 규율은 점차 망가진다. 결국, 나중에는 독방에 갇히거나 이상한 비디오를 강제로 시청하거나 고문 수준의 처벌을 받더라도 ‘아, 이건 전부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사고가 망가져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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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친구들과도 그런 얘기를 자주 나눴죠. 저런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도 최종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결국 나의 더러움 때문’이라거나 ‘카르마다’라고 납득하고, 거기서 얘기가 끝나버렸죠. 그래서 어떤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라도 잘못은 모두 자기 자신의 더러움 때문인 거예요. 또 반대로 좋은 일이 있으면, ‘이건 모두 구루 덕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그런 것이 결국 우리가 자아를 없애가는 과정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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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을 향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세뇌'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린다.
‘레벨업’을 향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세뇌’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린다.

그냥 운이 나쁘면 누구나 

결국, ‘멍청’하거나, ‘바보’ 거나, ‘이상한’ 사람이라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운이 나쁘면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것이 사이비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에이 설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아닐 거야, 하는 사람들도 결코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 세상에 대해 의문을 품은, 이른바 철학적인 사람들이 더 이렇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게으른 사람들은 오히려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내키는 대로 살아버릴 가능성이 있지만,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품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시도도 해보고, 수행도 해보고, 성찰도 하는 과정에서 자칫 저런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신도들을 인터뷰하다가 여러 번 섬찟함을 느꼈다고 밝히는데, ‘내면의 자아’를 알기 위해 소설을 쓰는 자신의 욕구와 옴진리교에 입문하게 된 그들의 욕구가 어느 정도 맞닿아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아성찰’ 혹은 ‘내면 탐구’의 욕구가 강할수록,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일수록 저런 종교에 한 번 발을 담그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인데,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더 선량하고 정의로울수록 더욱 악의 길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원래 이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원래 멍청하거나 이상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선량하고 더 정의로울수록 길을 잃고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는 아이러니.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인간이 결국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 같다. 불안한 인간은 자신의 불안한 상태를 견딜 수 없고, 그걸 어떤 식으로든 해소하고, ‘진리’와 ‘정답’을 알고 싶어 하는데 세상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늘 누군가 답을 알려주기를 원하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도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 하고, 기대 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악한’ 무언가와 만나게 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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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의 책을 읽고 가장 기분이 좋았던 점은, ‘이 세계는 나쁜 세계다’라고 분명하게 써놓았다는 겁니다. 저는 그것을 읽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렇게 심하게 불평등한 사회는 멸망해버리는 게 낫다고 줄곧 생각해왔는데, 그 말을 확실하게 해주니까요.”

(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p.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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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는 나 자신을 ‘종교적’인 사람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여겨본 적이 없었던 터라, 이런 이야기는 거의 강 건너 불구경 수준으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들과 나 사이에 실제로는 종이 한 장 정도의 거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모로 섬뜩해졌다. 나 역시 언제든 잘못된 길로 갈 수 있고, 정신줄을 놓아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무섭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한국은 여러모로 변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천지를 비롯하여 저렇게 ‘불안한’ 개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를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신천지는 무엇으로든 대체될 수 있고, 결국 신천지를 강제 해산시키거나 그 사람들을 싹 없애버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다른 무엇보다 결핍과 불안함을 견뎌내는 개개인의 내면의 힘,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견디는 균형 감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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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오: 직접 범죄에 관련되었다면 몰라도, 이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전혀 몰랐으니까요. 그러니 후회하지도 않고, 또한 계속하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무라카미 씨가 지적한 대로, 그 사람들에게 그만두라고 하려면 그 대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대책이 있어야겠죠.

이건 시너 중독에 걸린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시너를 흡입하는 아이에게, 그건 안 좋은 일이니 그만두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흡입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거야 당사자도 분명히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시너를 그만두고, 그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한, 완벽하게 손떼게 할 수는 없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그렇겠죠. 술을 끊는 게 좋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그 세계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술을 계속 마시는 겁니다. 그러니 옴진리교에서 나온 사람도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딱하죠.

(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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