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국민건강보험은 어느 동성 배우자에게 사실혼 배우자로서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건강보험은 갑자기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시키고, 해당 기간의 보험료도 납부하라고 고지했죠. 이에 피부양자 자격 발탈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1심: 기각 판결
- 2심: 원심 뒤집고 피부양자 자격 박탈 처분 취소 판결!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광장에 나온 판결’ 232번째 이야기입니다. 1심과 2심의 재판관과 사건번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동성 배우자에게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한 2심
- 1심 : 서울행정법원 제6부 이주영(재판장), 김종신, 윤민수 판사 2022. 1. 7 선고. 2021구합55456 [판결문 보기]
- 2심 : 서울고등법원 제1-3행정부 이승한(재판장), 심준보, 김종호 판사 2023. 2. 21 선고. 2022누32797 [판결문 보기]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자의적 차별에 제동을 건 2심 판결에 대해 정명화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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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이 선고된 날, 나는 서로 다른 변호사에게 같은 연락을 받았다.
“판결문 봤어?”
그렇다고 하면, 상대방들은 잠시 숨을 고른 뒤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판결문을 보고 가슴이 뛴 게 얼마 만인지 몰라.”
그건 우리가 법에 기대하는 것이었고, 너무 오래 잊고 있던 법의 모습이었다. 정의와 평등의 서늘한 잣대로 이 비뚠 세상을 교정하는, 푸른 칼날 같은 당위의 언어가 그 안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어느 평범한 커플, 단 혼인신고 못한 동성일 뿐
원고는 가족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가 있었다. 원고와 배우자는 동성, 즉 성별이 같았다. 그 이유로 인해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지는 못했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사실은 혼인신고를 마친 이성 부부와 비슷했다.
어느 날 원고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되었다. 반면 원고의 배우자는 여전히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채였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은 법률혼만이 아닌 사실혼 배우자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고는 배우자의 피부양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원고의 배우자는 국민건강보험에 ‘사실혼 관계 인우 보증서’를 첨부하여 원고를 본인의 피부양자(사실혼 배우자)로 자격취득 신고를 하였는데, 국민건강보험은 이를 그대로 수리하였다. 그때부터 원고는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으로 보험급여를 받아 왔다.
원고는 이러한 사례가 확산되기를 바라며 위와 같은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그러자 국민건강보험은 갑자기 원고에 대한 피부양자 자격을 소급하여 상실시켰다. 그러면서 원고에게 그동안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인정되어 납부하지 않았던, 8개월 분의 건강보험료 및 장기요양보험료를 납입할 것을 고지하여왔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함).
법적 가족는 피부양자제도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한계점으로 남아선 안 된다
원고는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하여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심 판결은 이를 기각하였다.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해석만으로 곧바로 혼인의 의미를 동성 간 결합에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이하 ‘대상 판결’이라 함)은 달랐다. 대상 판결은 이성 간 ‘사실혼 배우자’와 원고와 같은 ‘동성결합 상대방’은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에 대한 논의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고 보았다(대상판결은 ‘동성혼’이 아닌 ‘동성결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기에 이를 그대로 인용함).
둘은 각자가 ‘성적 지향’에 따라 선택한 생활공동체의 상대방인 직장가입자가 그들과 이성(異姓)인지 동성(同性)인지만 달리할 뿐, 법률적인 의미의 가족관계나 부양의무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상판결은 건강보험제도란 사회보장의 일종으로 기능하고자 하는 취지가 있기 때문에, 법률적 의미의 가족과 부양의무는 피부양자 제도의 출발점은 될 수 있어도 그 한계점으로 남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이를 종합하여 대상판결은 원고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이 사건 처분은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자의적 차별로서 위법하므로 취소하여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다.
아쉬운 점, 여전히 사실혼 요건은 ‘남녀 결합’이어야 한다고 판단
한편 대상 판결은 현행법령의 해석론으로는 동성 배우자 간 사실혼 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외견상 우리 사회 내에서 혼인 관계에 있는 자들의 공동생활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聖)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민법 역시 양성의 구별과 그 결합을 전제로 혼인한 당사자를 부부(夫婦) 혹은 부(夫) 또는 처(妻), 남편과 아내 라는 용어로(민법 제826조, 제827조, 제847조, 제848조, 제850조, 제851조 등) 지칭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사실혼의 성립요건인 ‘혼인’ 역시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결합’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러한 판단은 법이 제정될 당시의 사회적 합의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기 때문에, 법에 기재된 언어도 그에 맞추어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대상 판결에 대하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상고하여,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3심에서도 국민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좋은 판단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대상 판결의 일부를 인용하며 본 원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추가로 어떠한 차별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간략하게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차별이 존재해왔음은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 감정, 지능, 능력, 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라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남아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전형적인 평등권 침해 차별행위 유형 중 하나로 열거하는 등 사법적 관계에서조차도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므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