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대 일베 조각상 사건도 그렇고, 조영남 대작 사건도 그랬다. 현대 미술이라는 것이 왜 이리 불편하고 사건이 많은 건가?
- 홍대 앞 일베상에 관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회의 입장 (서희강)
- 일베 조각상, ‘재물손괴’의 아이러니 (줄라이러브)
홍대 일베 조형물은 ‘교육과정의 일부’
이 작품은 작가의 전시가 아니라 홍대 과제전이다. 대학에서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실시한다. 그런데 미술대학에서는 일부 이론에 대해서 시험을 치르지만, 실기의 경우 전시실을 빌려서 전시하거나 규모가 작을 땐 미술관이나 대학 내에서 열린 공간에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이번 조각상도 그런 수업 일부라고 알고 있다. 1주일 정도 전시하고 교수로부터 평가받고 끝나는 과제전이었다. 그래서 아마 작품 소재나 의도 등이 수업시간에 이야기되었을 것이고, 이를 작가이자 학생인 홍기하(22) 씨 본인도 직접 언급했다(교수가 A 학점을 줄지 F 학점을 줄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홍대에서 뭔가 작정을 하고 일베 동상을 세운 게 아니라는 말이다. 홍익대에서 왜 저런 걸 세우게 놔두냐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홍익대에서 논의할만한 이슈가 아니다. 미술 작가를 위한 교과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과잉’ 해석
동상은 주로 존경과 숭배, 추모의 의미를 지닌다. 이순신 장군 동상도 그렇고. 단군상이나 예수상도 그렇고 위안부상도 그렇다.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홍익대 정문에 서 있는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 조형물은 그래서 더욱 불편하다. 그러나 이것은 동상이 아니라 작품 설치물이다. 존경과 숭배, 추모의 상징을 지닌 동상으로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해석이다.
왜 하필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 조각품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그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의도이다. 작가가 밝힌 의도는 작품명’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와 같이 매우 분명하다.
“‘사회 소통 부재나 얼굴 없는 온라인의 폭력성을 알리고 싶었다. 관람자의 분노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도 작품 일부로 판단해 이용자 문제점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싶었다.” (작가 홍기하)
작가가 일베일지도 모르고, 홍익대와 소속 학생들을 농락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작가보다 더 넘치는 상상력이 아닌가 싶다. 홍대 내에 이런 조각이 가설되었다고 해서 홍익대생들을 모욕했다는 것도 근거가 빈약하다.
이하의 패러디와 마네의 올랭피아
아래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 있다. 팝아티스트 이하 씨 작품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희화화한 풍자 전단이다. 이 작품은 표현력이 있고, 풍자와 유머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든 남한이든 작품 주제는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만한 작품이 아니다. 특별히 더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작가나 작품이 국정원법으로 구속되거나 공격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씨는 지난해(2012년) 6월 말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백설공주 옷차림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사과를 들고 누워있는 모습을 그린 포스터를 부산 시내 광고판에 붙였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원심·항소심에서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실 미술품에 대한 공격은 꾸준하게 이어져 왔었다. 미술사에서 알몸의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스 시대에도 누드가 있지 않았냐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화 속의 모습이나 이상화된 모습이다. 화가가 실제 인간의 알몸을 그리게 된 최초의 그림은 아래의 마네의 ‘올랭피아’ 일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 별로 파격적인 느낌을 받지 않겠지만,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동양에 비하면 서양 미술사에 누드는 많이 나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신이나 요정으로 그린다/본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림이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그림 속 여자가 거만하게 날 노려다 본다는 것이다. 근데 이게 또 후대 학자들에게 큰 평가를 받는 요인이 된다. 왜냐면 이는 연극성을 제거한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 연일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먹질하고 지팡이로 후려쳐서, 그림 앞에 경호원 3명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되는데 화가 난 시민들이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작품보다 높게 걸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 작품을 보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여전히 있을지 모르지만, 분노하거나 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미술에 대한 인식이 세련되어졌기 때문이다.
광장 vs. 전시장
공개된 장소가 아닌 전시장에서 일베 조형물을 전시했다면 이렇게 대범하고 쉽게 용감하게 파괴를 했을까? 사실 전시장에서 작품이 전시되는 경우 미술 작품은 검증된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 옷을 입는다. 이로 인해 뭔지 모르지만,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 미술은 오히려 이것보다는 대중과 소통을 더욱 중시하기 위해 노출되었고, 그래서 더 공격하기 쉬운 상대가 되고 있다. 미술품에 대해 욕하고 불편해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파괴하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대통령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은 본질에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편한 걸 참아야 하나?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 작가에게 ‘너의 의도가 뭐냐’고 물어보고 때에 따라서 비판해야 한다. 더 불편하다면 나아가 철거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정말 손쉽게 자기주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를 직접 때리거나 상처를 입히는 만큼이나 나쁜 짓이다. 몇 달간 작품을 구상하고 다듬고 만들었을 작가 입장에서는 작품의 파괴를 정말 괴로운 일일 것이다. 직접 작품을 제작해 본 나로서는 단순히 일베의 우상을 가져다 놓고 시시덕거렸다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비용과 수고와 노력이 지나치고 눈물겹다. 한 학기 수업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작품의 파괴까지 작가의 계획 속에 넣기에는 매우 무리였을 것이다.
사실상 이번 사건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성공한 전시다. 나는 계란 세례를 받더라고 작품이 파괴되지 않고 전시되었으면 싶었다. 오히려 이번 작품이 그대로 며칠간 전시가 되고 조용하게 아무 일 없이 끝났다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건이 커지면서 처음 작업에 계획 했던 일들(일베에 대한 반응)을 끌어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의 파괴까지는 생각지 못한 거 같다. 홍익대는 미대의 전시가 부담스러워졌고, 작품은 파괴되었다.
결론적으로 일베에 관한 일반인의 반감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았고, 일베의 상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다. 그리고 미술품의 공격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했다. 이제 한국 최고(?)의 미술인을 배출시킨 홍대 과제전은 대중이 없는 엄숙한 전시실에서만 진행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작품은 죄가 없다. 용감하게 공격해야 할 것은 석고 조형물 따위가 아니라 일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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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과 ‘예술가의 똥’
그리고 조영남 씨의 대작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하고 싶다. 조영남 씨가 좋아했을 앤디 워홀이 이야기했다는 명언이 하나 있는데 (사실 앤디 워홀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일단 유명해져라. 똥을 싸도 박수받을 것이다.”
조영남 씨는 가수로 유명해졌고, 그림이라는 똥을 싸고 박수를 받았는데, 이제 사람들이 그게 진짜 똥인 줄 알게 되었다! 그에게 아래 ‘예술가의 똥’을 선물하고 싶다. 1961년도 작품이라는 게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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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밀라노의 예술가 피에로 만조니는 1961년 ‘예술가의 똥’이라는 라벨이 붙은 캔 90개의 작품을 만들어 같은 무게의 금값을 받고 팔았다.
“‘예술가의 똥’은 왜 ‘예술가의 똥’이라고 불릴까요? 왜냐하면 ,바로 약사의 똥도 아니고, 비평가의 똥도 아니고 변호사의 똥도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비평가가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거예요.”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가 2003년 5만 2,000달러를 주고 4번 넘버가 매겨진 캔을 사들였고, 2007년에는 18번 캔이 밀라노 소더비 경매에서 12만4000유로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이듬해 밀라노와 런던에서 57번 캔과 83번 캔이 8만 4,750유로와 9만 7,250파운드에 거래되었다.”
-세계일보,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25·끝> 예술가의 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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