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에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 조각상이 세워졌다가 부서졌다. 홍대 학생들은 그 조각상에 분노했으며, 홍대 총학생회와 미술대 학생회를 비롯한 학생회단은 작가에게 해당 조각상의 작품 의도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하고, 교수진에게도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결국, ‘랩퍼 성큰’에 의해 조각상은 파괴됐다.
홍대 학생들이 일베 조각상에 분노한 이유는 그 손가락 조각이 일베라는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를테면 ‘앗, 저것은 일베들이 쓰는 로고잖아!’ → ‘우리 학교 앞에 그걸 세우다니?’ → ‘학교의 명예(일베가 아닌 보통 학생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홍기하 씨)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 작업의 의도가 일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데 있지 않고 일베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작품의 제목도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라고 달았다.
“일베를 옹호하려는 것이냐, 비판하려는 것이냐 논란이 있는데 그런 단편적이고 이분법적 해석을 위한 작품은 아니다. 일베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현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실재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일베라는 건 실재하지만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가상의 공동체 같은 것인데 그걸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홍기하)
그렇다면 작업의 요체는 일베를 대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이라는 ‘현상’을 ‘유도’하는 과정이다. 즉 순수한 기념비로서의 전통적 조각 형상이 아니라, 각종 반응을 촉발하는 방아쇠로서의 제시물인 것이다.
“작품에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했었다. 계란을 던질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어나는 걸 보고 놀랐다. 일베를 상징하기 때문에 계란을 던지거나 부숴야 한다는 말 등에는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홍기하)
작가는 심지어 계란을 던지는 것 같은 부정적 반응이 나올 것을 미리 예상하면서도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각종 반응’의 범주에 직접적 파손이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뭔가? 훌륭하게든 흉하게든, 전략적으로든 우연적으로든, 작업의 의도 자체는 몹시도 충실하게 구현되는 중인 것인데.
작가가 제작 이후의 모든 현상을 작업의 과정으로 수렴시키지 않고 재물손괴의 죄를 물어 법적 대응하는 태도는 자신의 작업을 기념비 조각으로 상정해버리는 행동이 된다. 그렇게 되면 홍대 학생들의 과격한 분노가 별로 틀릴 것도 없게 돼버린다. 아이러니.
나는 일베 조각 따위 때려부수길 잘했다는 의미에서 랩퍼 성큰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술 작품은 무엇이든 존중받고 파괴되지 않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표면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해서 어떤 설명도 가능하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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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는 ‘일베’ 상징 조형물 설치와 파손에 관한 다양한 의견과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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