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인터뷰] 무분별한 대출과 보증, 부실한 임대 사업자 관리∙감독이 결합한 ‘사회적 재난’ 전세 사기. 이철빈(전세사기 전국대책위원장)에게 듣는 전세사기의 문제와 해법. (⏰15분)

전세 사기는 개인 부주의나 단순 채무 불이행 문제가 아니다. 허술한 임대차 제도와 등기 시스템, 무분별한 전세 대출과 보증, 부실한 임대 사업자 관리·감독이 빚은 사회적 재난이다.
국가는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전세 대출(2008년), 보증 보험(2013년), 임대 사업자 등록 활성화 제도(2017년)를 선의로 내놨지만 범죄 조직은 이를 장난감 다루듯 갖고 놀며 임차인 보증금을 먹고 튀었다.
국가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빌라왕 사건’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 건축주가 건물을 짓고 집을 분양하면서 분양가와 동일하거나 혹은 더 비싸게(무갭전세; ‘무자본 갭투자’ 전세) 전세 매물을 내놓는다.
- 전세 보증금이 과다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세입자가 건축주와 전세 계약을 하면 건축주는 전세 보증금을 받음과 동시에 빌라왕으로 집주인을 변경한다. 빌라왕은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집을 매입하게 된다.
- 이 과정에서 중개업소와 빌라왕 등은 건축주로부터 집 분양가의 약 10%를 리베이트로 받는다.
- 중개업소는 이 돈으로 세입자에게 전세 대출 이자와 이사비를 지원해 준다며 미끼를 던진다.
대표적으로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보유했던 ‘빌라왕’ 고(故) 김대성은 2017년부터 수도권 등지에서 무자본 갭투자로 전세 사기를 벌였다. 무려 1244명이 230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3년이 흘렀지만 전세 사기는 여전히 우리 현실이다. 지금도 매달 평균 1200건의 전세 사기 피해자 신청이 접수되고 있다. 올 초에도 대전에서 40억 원 규모의 전세 사기 사건이 터졌다.
- 2년 한시법인 전세 사기 특별법이 오는 5월 말 종료된다. 6월 이후 접수하는 피해자는 특별법 대상에서 제외된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철빈(32)은 지난달 27일 슬로우뉴스 인터뷰에서 “5월이 지나면 새롭게 전세 사기 피해를 인지한대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특별법 효력이 유지되고 있는 지금도 법이 보장한 지원 대책을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법이 만료된다면 어떻겠느냐”고 우려했다.
- 이철빈은 부동산 IT 스타트업에서 주택 임대 관리 업무를 담당했을 정도로 부동산에 밝았지만 그도 2021년 빌라왕 김대성이 쳐 놓은 사기 그물은 피하지 못했다. 자기 자본과 은행 대출로 마련한 그의 전세 보증금 2억1000만 원도 회수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철빈과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전세 뻥튀기’ 정책이 만든 파국
— 전세 사기는 왜 벌어지는가?
“그동안 부동산 정책은 전세가를 계속 뻥튀기하는 방향으로 펼쳐졌다. 무분별한 전세 대출과 보증 보험 남발이 전세가 가속 원동력이다. 정부가 전세 대출을 1억 원까지 해준다고 하자. 그러면 집주인은 ‘전세 대출이 1억 원까지 나오니 전세가를 1억 원 이상 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전세 정책 발표로 전세가가 한 차례 뛰는 것이다.
보증 보험 역시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여도 가입시켜주는 등 안일하게 운영됐다. 집값이 2억 원인데 전세가가 2억 5000만 원이어도 보증 보험 가입이 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이상한 거래가 계속 발생하고, 결국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같은 보증 기관이 손해 보거나 임차인이 피해를 입는 구조다.”
— 임차인은 임대인 변경, 즉 건축주에서 빌라왕으로 바뀐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다수다.
“집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길 때 소유권 변경 사실을 세입자에게 알릴 의무가 없다. 그렇다 보니 변제 능력이 전혀 없는 바지 임대인들한테 소유권을 넘겨도 임차인은 알지 못한다. 임차인이 전세 보증 보험에 정상적으로 가입했대도 임대인 사이의 매매 계약서를 확보하지 못하면 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보증금을 지켜낼 방안이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은 임대인 연락처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
— 임대 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은 어떻게 평가하나?
“전세 사업자 관리 감독이 너무 미흡하다. 전세 사기 일당 중 국가가 공인한 임대 사업자들이 진짜 많다. 이 사람들은 원래 전세 보증 보험 가입 의무가 있다. 임대료도 상한까지만 올려야 하는 등 법적 규제가 있지만 지자체는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 임대인이 ‘보증 보험을 나중에 가입하겠다’고 하거나 대충 서류를 꾸며 제출해도 유야무야 넘어간다. 이들은 임대 사업자로서 세제 혜택을 받고 건실한 임대 사업자로 가장하지만 실제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범죄 일당과 결탁한 거대한 판에 세입자는 내몰린 상태다. 세입자가 임대인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전세 사기 직감하는 세 번의 순간
— 이건 전세 사기다, 직감하는 순간이 있을까?
“천차만별이지만 몇 가지 포인트는 있다. 첫째 임대차 계약을 할 때, 전세 잔금을 다 넣고 전입 신고한 그날 임대인이 바로 소유권을 다른 임대인에게 넘기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해도 소유권 매매 계약이 임대차 계약 효력보다 우선한다. 집주인이 바뀌어도 임차인은 손을 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전세 계약을 쓰고 잔금도 다 넣었는데, 바로 옆에서 임대인끼리 내 전세집을 놓고 매매 계약서를 쓰고 있는 사례도 있다. 상환 능력이 없는 바지 임대인에게 이런 식으로 소유권을 넘기고 원래 임대인은 임차인 보증금을 갖고 튀는 거다.
애초에 보증금을 갚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노숙인, 사회 초년생, 치매 환자 등을 바지 임대인으로 섭외하고 명의를 빌려 먹튀 범죄를 저지른다. 내 사건(빌라왕 김대성)만 봐도 이런 식으로 바지 임대인을 세워 3000억 원 이상의 피해를 일으켰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해도 불법이 아니었다. 민법상 채무 권리 관계가 새 집주인에게 이전한 것뿐이니까. 임대인이 고의를 갖고 튄 건지 아니면 정상적 부동산 거래 과정인지 경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내지 않는 한 임차인이 이를 입증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형사적으로 사기죄 혐의이긴 하나 2022년 전세 사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에는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 사기 직감하는 또 다른 순간은?
“또 하나는 계약을 다 체결하고 전세 보증 보험 가입 신청을 넣을 때 임대인이 바뀌어 있는 경우다. 보증 보험 때문에 다시 등본을 떼어 보니 소유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는 경우다. 그때부터 부랴부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이사를 나갈 때다. 이사하려고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연락을 안 받거나 다른 사람한테 알아보라 한다. 새 집주인 연락처를 받으면 다행인데, 연락처도 못 구하는 경우가 다수다. 전세 계약이 종료되기 6개월 전부터는 계약 해지 의사를 통보할 수 있다. 나는 다음 집으로 이사 가야 하는데 원래 집주인은 연락이 안 되고, 새 집주인은 누군지도 모르겠고…. 이러면 정말 큰일 나는 거다.”
— 규모가 빌라왕급이 아닐 뿐 이런 수법이 전세 시장에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거대한 빌라왕 범죄뿐 아니다. 암암리에 다 이렇게 하고 있다. 사기인지, 사고인지, 불의의 어떤 실수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정보 접근과 권한 비대칭이 큰 문제다. 세입자가 계약 단계나 임차 기간 중 이를 인지했대도 손 쓸 방법이 별로 없다.”
— 아파트보다 다가구, 다세대, 빌라가 전세 사기 표적이다.
“아파트는 그래도 정보가 투명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비교할 만한 사례가 주변에 많다. 매매가는 어느 정도고, 전세가는 어느 수준이라는 정보가 많다. 인근 아파트 실거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계약하려는 전세가가 적정한지 판단 가능하다. 그러나 소규모 주택, 비(非)아파트 시장은 거래와 가격 정보가 투명하지 않다. 빌라는 이 집과 바로 옆 집 상태가 너무 다르기도 하다. 신축 빌라의 경우 거래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건축주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엔 이 집은 아닌 것 같아도 전세가가 2억 원이라고 하면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아파트는 그래도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있는 편이다.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고액이다. 그렇다 보니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큰 편이다. 대략 40~60% 차이가 있는데 소형 주택은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매매가의 80~90% 수준에서 전세가가 형성돼 있다. 진짜 안 좋을 때는 100%를 넘기도 했다. 전세금만 갖고 집을 매매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즉, 경기 변동에 매우 취약하다.
아파트는 경기 변동으로 집값이 내려가도 갭이 있으니 임대인이 집을 팔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런데 비아파트의 경우 갭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경기 변동에 휘청이며 집값이 반토막 나기도 하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도 한다. 경매가 몇 차례 유찰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요즘은 아파트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공공임대’ 대신 ‘금융 해법’을 택한 결과
— 피해자 중 청년이 많다.
“청년 피해자가 진짜 많다. 이번 주에도 동작구 청년분들이 피해자 대책위를 꾸린다고 하셔서 조언을 드리고 왔다. 국토부 통계 자료를 봐도 40세 미만 청년이 피해자의 74% 정도 된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여 1~2년 모은 자기 자본이나 전세 대출금을 날리는 것이다. 또 아파트 청약을 꿈꾸며 잠시 빌라에 들어온 신혼부부가 사기를 당한 뒤 내 집 장만의 꿈을 포기하는 일도 적지 않다.
대학생도 많다. 지금 대학가 월세가 살인적으로 비싸다. 이화여대 이런 곳은 학교 인근 월세가 100만 원을 넘지 않나. 생돈을 월세로 내기 아까우니까 전세 대출 받아 이자 내고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뿐인데, 전세금을 날리게 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 상경한 학생이라면 부모님이 목돈을 대주시니까 전세로 사는 경우가 많다.”

— 2020년 이후 전세 사기가 과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전세는 태생적으로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있다. 1970년대나 2000년대 다 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지지 않았던 이유는 피해자들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시스템 구조가 아닌 실제 채무 관계에서 비롯한 문제들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는 201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는 흐름이다. 이때부터 국가가 전세 계약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전세 대출이나 보증 보험이 활성화한 건 얼마되지 않는다. 전세 대출은 2008년 처음 광범위하게 시작됐다. 보증 보험도 도입한다고 발표한 게 고작 2013년 일이다. 그 이후에도 활성화가 안 되다가 규제를 풀고 더 풀고 하면서 2017년부터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삼았다. 전·월세가가 치솟았다.”
— 정부 선택지는 전세 대출 규제 완화뿐이었나?
“국가 입장에서 공공 임대 주택을 확 늘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 대신 민간 금융을 이용해 부동산 시장을 지탱해보자 생각했다. 공공 임대 주택이라는 어려운 길보다 쉽지만 부작용이 있는 금융 완화 해법을 선택한 것이다. 어렵지만 확실한 공공 임대 주택 정책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배제한 채 부동산 시장을 유지해온 것이다.
전세 사기 사건이 터진 후 전세 대출과 보증 보험을 미세하게 관리하려는 흐름은 있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금융을 통한 해법뿐 아니라 세입자 권익을 확실히 보호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임대 주택을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 것인가’에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 특별법은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할까?
“크게 피해자 구제 대책, 전세 사기 예방, 전세 사기 가해자 처벌 등 세 가지 차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먼저 피해자 인정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 지금 들리는 이야기로는 임대인의 전세 사기 의도가 확실해서 검찰에 송치돼야만 피해자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수사가 이뤄져도 검찰 송치까지는 수개월, 길면 1년 이상 걸린다.
피해자로 인정 받지 못하면 주거 안정, 금융 지원,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다. 피해자 인정 요건을 더 완화해야 한다. 가해자의 사기성을 입증할 수 있는 피해자뿐 아니라 보증금 미반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까지 포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예를 들면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 이상 보증금 반환 의무를 위반하고 있는 경우’ 이렇게 규정해서 피해자를 빠르게 인정하고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나.”
국토부 반박
이와 관련 국토부 전세사기피해지원단 피해지원총괄과장 박진홍은 “전세 사기 수사가 개시되지 않아도 피해자로 인정한 케이스가 있다”며 반박한다. “임대인의 사기·기망 의도가 어느 정도 확인되면 피해자 지원을 인정하는 것이지, 수사 개시 및 사건의 검찰 송치가 피해자 인정 요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진홍은 특별법 개정 후 피해자 인정 가결 건수 비율이 떨어진 데 대해 “지난해 4월부터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피해 접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지원 센터를 직접 찾아 접수할 때보다 아무래도 가결 비율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피해 신청 문턱이 낮아진 만큼 서류 미비 등 보완이 필요한 접수가 많아진 데 따른 현상이라는 것.

— 전세 사기를 예방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전세 사기 예방을 위해선 뻥튀기 되어 있는 전세가를 점진적으로 낮춰야 한다. 전세 보증 보험 한도를 축소하거나 전세 대출을 규제하든지, 전세가를 장기적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 또 지자체의 주택 임대차 행정은 임대 현황 파악도 못할 만큼 엉망이다. 좀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임대 목적으로 주택 사업을 할 거라면, 모두 지자체에 등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모든 민간 임대 주택을 다 등록하고, 정해진 사업자 요건에 맞게 사업자 등록도 의무화하는 것이다.
주택 임대차 계약 신고제(전월세 신고제)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현재 지자체 별로 주택 관리 인력 편차가 너무 크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제도처럼 국토교통부도 주거 감독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 밖에도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권한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임차권 등기를 의무화하고, 임대차에 관한 사항이 등기부등본에 모두 기록되도록 개선해야 한다. 만약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임차인이 바로 주택을 경매에 넘길 수 있도록 해보자. 이 정도까지는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다.”
— 임대 사업자들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되는데?
“엄청 반발할 거다. 전세 사기를 예방하고 부동산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 대안은 꽤 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은 항상 정치적 논리에 따라 후퇴한다. 임대차 3법도 전월세 상한제, 계약 갱신 청구권 두 개는 시행되고 있지만 전월세 신고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계속 계도 기간 상태였다가 이제는 신고 의무를 위반해도 과태료를 안 물리겠다면서 사실상 무력화했다. 국토부가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 청구권마저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우리가 답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다.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한 문제라 못했던 것이다. 임대인과 건설사, 금융, 공인중개사들의 이익이 워낙 강하게 대변되다 보니 이 문제를 못 풀고 있는 것이다.”
꼭 피 봐야 하는 전세는 사양길로
— 가해자 처벌 수준은 어떠한가?
“전세 사기 구제 방안에 이견을 갖고 있는 분들도 가해자 처벌이 약하다는 말에는 다 공감한다. 피해자는 20~30년 빚 갚고 해야 피해를 회복할까 말까인데 어떻게 가해자는 수백 명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서 고작 15년인가. 그나마 2심 가면 감경되지 않나. 특히 공범들은 무더기로 감경을 받고 집행유예로 나온다.
- 참고: 대법원, 건축왕 전세사기 무더기 무죄·감형 확정 (2025.01.31.)

임차인이 보증 보험에서 돈을 돌려받거나 피해 주택 경매를 신청해서 돈을 돌려받으면, 판사들이 이 돈을 임대인의 부당 이득금에서 제외해준다. 임대인의 변제 의사와 상관없이 임차인이 노력해서 돌려받은 금액을 왜 임대인 양형의 감경 사유로 고려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임대인은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고 반성 의지도 없고 변제 의사도 없는데 왜 임차인 노력의 결과를 감경 사유로 보는지 불만이다.
내가 노력할수록 나한테 사기 친 저 사람은 감경 받는다는 건 부당하다. 초범이라는 점, 재판부에 반성문을 매주 냈다는 점도 감경 사유가 되는데 이해할 수 없다. 미국처럼 몇 백 년 이렇게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당 이득이나 범죄 수익도 국가에서 환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어려운 일인가. 사법부가 너무 안일하다.”
— 정부 여당 관심은 어떠한가?
“정부·여당은 2년 전부터 전세 사기 문제에 무관심했다. 정부 관계자야 국회 토론회를 통해 만나지만, 국민의힘은 면담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국민의힘과는 그동안 활동하며 딱 한 번 만났다. 정부안이 마련된 다음에야 만난 건데, 전세 사기 해결 의지가 없는 것 같다.”
— 정부는 사고냐 사기냐, 이를 구분하여 전세 사기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는 다르다는 것이다.
“통상 전세가가 뻥튀기되어 집값과 차이 나지 않는 주택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받지 못했을 때 ‘깡통 전세’라고 부른다. 정부는 일관되게 사기 범죄로 피해를 본 사람만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부와 여당은 범죄를 다루는 관점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우리는 세입자 누구라도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고, 범죄자에 의해 전세 사기를 당했든 임대 사업자의 무리한 사업으로 인해 보증금을 못 받았든 세입자에게는 동일한 피해라는 것이다.
이를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 국가 정책 실패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을 사기다, 사고다, 이렇게 걸러내는 게 중요한가. 어떻게 하면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지 예방책을 세우고 허술한 제도를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정부의 기조는 세입자의 보편적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이 아닌 것이다. ‘정부는 정말 불쌍하고 피해를 보는 사람만 살펴야 한다’는 이념에 갇힌 것 같다. 달리 보면, 정말 돈 쓰기 싫어한달까. 그런데 정부는 건설사나 금융기관이 어렵다고 하면 돈을 뭉텅이로 막 뿌린다. 우리가 필요한 돈이 그 정도 규모는 아니지 않나”

—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전세가 예전처럼 높은 비중으로 거래되는 시대는 아니다. 임대인도 좋고 임차인도 좋고, 모두가 리스크 없는 그런 전세 계약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피를 봐야 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임차인들이 피를 봐왔다. 구조적으로 이렇게 문제가 터지니 전세 세입자뿐 아니라 월세 세입자, 임대인, 건설사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이제는 대타협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출과 보증으로 전세를 지탱해 온 구조는 한계에 봉착했다.
전세 사기가 벌어진 후 사람들은 전세를 기피한다. 임대인들도 높은 전세는 더 이상 받기 어려우니 월세를 놓는다. 임차인 입장에서 월세 대신 전세를 살면, 월 고정비 부담을 줄이면서 좋은 집에 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선택을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월 주거비가 어느 정도 오르더라도 좀더 안전한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부나 정치권은 전세에서 월세 시대로 가고 있는 흐름에 맞춰 지원과 규제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모든 것의 근원은 국가가 국민 주거권을 위해 직접 나서지 않았던 해태에 있다. 공공 임대 주택도 더 확충해야 한다.”
— 공공 임대 주택이 해결책인가?
“공공 임대 주택만으로 커버하지 못하는 수요가 민간 시장에 있다. 예를 들면 돌봄 문제나 커뮤니티 활성화, 기후 위기 대응 등은 공공 임대 주택 공급을 통해서도 풀 수 없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 ‘선량한 임대인’을 어떻게 육성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이 반영된 대표적 사례가 사회 주택, 공동체 주택 등 공익적 비영리 성격을 갖는 민간 사업자일 것이다. 이들을 법제화하고 유인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시민이 발주하는 ‘전세 사기 연구’
— 연구 모임을 구성했다고 들었다.
“연구 플랫폼 나이오트, 비영리 민간 연구소 랩(LAB)2050과 함께 전세 사기 정책 연구 시민 펠로우십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동안 정책 연구는 시민 삶과 분리된 채 소수 연구 기관과 연구자끼리 소통하며 이뤄졌다. 전세 사기와 같은, 정말 시민에게 필요한 주제에 관해 시민이 연구를 발주하고, 연구팀들이 관련 연구 계획서를 공개했을 때 시민들의 클라우드 펀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전세 사기 문제는 굉장히 어렵다. 법, 부동산, 금융, 행정, 세금도 알아야 한다.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진득하게 파고들 필요성이 있다. 현행 구조를 바꾸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 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총 5개 연구팀을 선발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3월에는 연구팀을 모집해 한 달 정도 연구 계획하는 시간을 갖고, 4월부터 8월까지 연구를 수행한 뒤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결과물을 바탕으로 정치인 혹은 정부 관료와 함께 올 하반기 정책 연구를 수행, 제시된 대안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여 전세 사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 이렇게까지 최전선에 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피해자 분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걸 지켜봤다. 작년 5월에도 피해자 한 분이 돌아가셨다. 피해자들의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 정말 너무 힘들다. 거기서 오는 부채 의식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했다면 죽음 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더는 이런 슬픔을 보고 싶지 않아 대책위 활동을 놓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바뀌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세 보증 문턱 높이는 정부
- 지난달 27일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주최한 전세 사기 정책 토론회가 있었다. 주요 정부 부처 및 기관 관계자도 참석했다.
- 국토부 전세사기피해지원단 피해지원총괄과장 박진홍은 특별법이 만료되면 전세사기피해지원단 등 조직이 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법이 종료되더라도 국토부 전세사기피해지원단은 추가 1년 동안 유지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며 “조직은 유지될 것이다. 그에 맞춰 앞으로도 피해자 지원 업무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자체에 협조 공문을 전했다”고 했다.
- 박진홍은 임대인과 임차인간 정보 비대칭 문제에 관해 “현재 임대인 동의 없이도 임대인 정보를 임차인에게 제공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계류 중”이라며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임대인 정보가 동의 없이도 제공된다”고 밝혔다.

- 작년 10월 민주당 의원 윤종군은 임차인이 보증 사고 이력, 보증 가입 금지 대상 여부 등 임대인의 보증 정보를 요청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임대인 동의 없이도 정보를 제공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 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보증팀장 이현석은 “임대인이 집을 내놓을 때 본인 정보를 공개해야만 공인 중개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최소한 ‘HUG 보증에 가입이 안 되는 임대인이다’, ‘세금을 체납하고 있다’ 정도의 정보만이라도 임차인에게 제공되면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금융위원회도 무분별한 전세 자금 대출 보증과 관련 올 하반기부터 전세 대출 문턱을 높이기로 했다. 전세 보증 보험의 보증 비율을 100%에서 90%로 일원화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 보증 시 임차인의 소득 심사를 강화한다.
- 금융위 금융정책국 사무관 이송이는 한국신용정보원을 통한 인프라 구축도 강조했다: “임대인이 전세금 반환 보증 채권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관련 기록을 남겨 악성 임대인에겐 보증이나 대출이 나가지 않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