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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토론에서 한 후보가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하고 있다는 한 시민의 이야기를 했습니 다. 이후 후보가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었죠. 그 시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를 만나서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인터뷰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 인터뷰어: 이성윤 경실련 회원미디어국 간사
  • 일시, 장소: 2022년 3월 2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실
‘1조원의 사나이’ 박경석 전장연 대표. 1조원은 2017년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의 성과로 편성된 2018년 예산 규모(중앙정부 0.67조+지방정부)가 얼추 1조원이라 점에 착안해 동료 활동가가 붙여준 별명이다. (출처: 경실련)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2001년에 장애인이동권연대라는 곳이 있었어요. 여기가 ‘이동권’이라는 주제 하나만 가지고 활동했는데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러 의제, 차별에 대한 문제, 그리고 복지서비스와 관련된 의제들로 확장하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로 변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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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은 싸움꾼?! 

 

= 기존 장애인 단체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장애인 단체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제들을 알려왔습니다. 이에 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투쟁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상시적으로 연대 투쟁을 통해서 연합했고, 이런 정신과 방향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한 게 2007년도입니다.

= 대선을 앞두고 지하철 타기 캠페인을 진행하셨습니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요. 투쟁의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부딪히게 된 건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2001년 1월 22일에 오이도역에서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장애인이 떨어져 죽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도에 발산역에서 또 장애인이 떨어져 죽어요. 이런 참사가 두 개만 있었던 게 아니라, 장애인이 지하철 리프트를 타면서 죽고 다치는 일들이 반복됐어요. 결국은 대중교통 영역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문제였던 거죠.

2018년 3월 20일 자 한국일보 발행 기사 제목 “목숨 걸고 타는 지하철 휠체어리프트”는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 정부에서도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2001년도 오이도역 사고 이후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만든 법이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에요. 제3조에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라 국가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요. 그런데 정부가 법에 근거해서 만든 계획조차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 그렇군요… 

정부는 2005년에 만들어진 법의 권리조차도 17년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년(2021년) 12월 3일(세계 장애인의 날)부터 본격적으로 지하철 출근투쟁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22번을 탔습니다. 12월 6일부터 혜화역에서 지하철 출근선전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탈시설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장애인권리예산이 필요하다는 선전전을 오늘(2022년 3월 22일)로 72일째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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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향한 이유 / 윤석열 당선인 공약 평가  

 

= 그런 맥락에서 지하철로 향했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책임자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후 제도로 보장할 것을 약속하라고 하면서 싸우는 게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결국 기획재정부가 제대로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의지도 생각도 별로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저희는 지하철을 탔습니다.

비장애인에게는 지겹도록 평범한 일상의 공간 지하철,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싸워서 얻어야 하는 힘겨운 ‘투쟁의 공간’입니다.

= 대선이 끝났습니다. 우선 대선 후보들의 장애인 공약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선 후보들이 제대로 된 사회적 약자의 인권, 권리를 토론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말초적인 이야기들이 주류였음에도 그나마 이제 심상정 후보가 두 번째 토론회 때 언급하고, 마지막 토론 때 이재명 후보가 장애인에 대한 정책을 밝혔죠. 그런데 윤석열, 안철수 후보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기사화되기도 하고, 예전과는 다르게 좀 무게 있게 평가될 수 있는 기회는 가졌던 것 같습니다.

=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면 기존 장애인 정책들을 답습하는 수준이고 변화해야 할 미래상은 전혀 없고, 오히려 일부 매우 우려스러운 정책을 통해서 후퇴하는 정도의 공약밖에 보이지 않아요. 공약에 ‘실질적인 내용들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것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없어요.

= 지난 정부들과의 차이가 벌써부터 느껴진다는 말씀이신가요. 

윤석열 당선인 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를 다 살펴봐도 제대로 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시혜와 동정적 차원에서 일정 정도의 변화는 있었겠죠. 하지만 예를 들어서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기반을 만들었는데도 이걸 실현할 수 있는 의지나 예산은 담겨있지 않았던 거죠.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도 그런 기반들이 예산에 반영되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에는 장애인 정책을 위한 ‘의지와 예산’이 담겨 있지 않아 전향적인 장애인 정책은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박경석 대표는 평가했다. (사진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 현판식 모습, 2022년 3월 18일, 출처: 윤석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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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해야 할 문제들 

 

=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뭘까요. 

기본적으로 이동권 문제죠.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는 올해까지 100% 약속했는데 이행되지 않았어요. 서울은 조금 나은데 20년을 외쳐도 저상버스 도입이 0%인 지역도 있어요. 시외버스는 전국적으로 같이 이동할 수 있는 버스가 한 대도 없어요. 광역버스나 마을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속버스 겨우 8대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운영도 잘 안 해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이 있는데 이것도 2002년에 시작했는데 지역 간 편차가 굉장히 심해 요. 제대로 국비를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군구가 책임지기 때문에 자기 지역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아요. 다 끊겨 있고 다 찢어져 있고 그것을 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해주는 상황입니다.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에 관해 최근 아주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결과는 장애인에게는 절망적입니다.

= 이동권 외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대략 장애인 40%가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해요. 지역 사회에서 학교를 만들고 같이 통합 교육을 실현해야 하는데 이건 여전히 꿈같은 현실이죠. 이런 구체적인 문제들이 각자의 권리에 맞춰서 예산으로 보장돼야 해요. 그런데 예산은 여전히 터무니없는 시혜적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 ‘시혜적 수준’이요? 

장애인의 삶이 마이너스 100에서 마이너스 80, 70, 60으로 왔다고 나아진 게 아닙니다. 여전히 절대적으로 0이라는 숫자에서 마이너스의 삶으로 차별받고 있습니다. 0의 수준은 인간이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본권 문제예요.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죠. 그래서 ‘나는 100% 타고 다니는데 한 10% 정도는 타게 해줄게’ 이게 나아진 게 아니라는 겁니다. 10%를 태워준 것이 문제가 아니라, 90%를 여전히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그밖에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요. 

‘인식 제고’입니다. UN 장애인권리협약 제8조는 ‘인식 제고’를 규정합니다. 어떻게 되어야 하냐면 만나야겠죠. 접할 수 있는 게 많아야겠죠. 근데 저상버스를 도입했더니 장애인들이 안타고 다닌다는 것 때문에 도입 필요성이 있냐고 이야기해요. 거꾸로 ‘당신이 갈 수 있는 버스를 2~3시간에 한 번 태워줄게, 그리고 노선도 굉장히 제한적으로 할게, 근데 당신 그거 왜 안타고 다니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이건 굉장한 폭력이죠.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장애인이 저상버스를 얼마나 이용했느냐는 토론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환경의 문제니까요. 1984년에 김순석이라는 휠체어 타는 장애인이 그 당시 서울시장에게 ‘우리가 갈 수 있는 거리가 어딥니까, 우리가 갈 수 있는 식당이 어디입니까, 거리의 턱을 낮춰주세요’라면서 자살했어요.

거리의 턱은 물리적으로 보이는 거지만, 그 거리의 턱은 수많은 곳에 있어요. 교육에도 있고 정보 주권에도 있어요. 이처럼 접근조차도 안 되는 사회에서 당신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당신들이 많이 보여줘야지만 인식 변화가 된다고 할 게 아니라, 환경을 먼저 바꿔 놓고, 자주 만날 수 있어야 인식이 개선되는 겁니다. 인식 개선 후에 물리적인 환경을 바꾸겠다, 인식 개선 후에 이렇게 하겠다는 것은 인식 제고에 거꾸로 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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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4 작전’을 아십니까?  

 

= 앞으로 활동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T4 작전’이라고 들어보셨어요?

= T4 작전이요?

‘T4 작전’(독일어: Aktion T4, 영어: Action T4) 히틀러의 나치 정부가 우생학에 기반해 추진한 장애인 안락사 정책입니다. 본부 소재지가 베를린의 티어가르텐 4번지였기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T4 작전’으로 불렸죠. 1939년 9월 1일부터 개시돼 1941년에 중지됐지만, 안락사 정책 자체는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전으로 30만 명의 장애인이 살해당했고, 추가로 40만 명이 강제 불임수술을당했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애슐리 이킨, 2022, 14분, 넷플릭스)라는 단편영화가 바로 T4 작전을 소재로 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애슐리 이킨, 2022, 14분, 넷플릭스

= 그렇군요… 

영화가 시작하면 초등학교 정도 학생들이 앉아 있는 교실이 등장하고, 선생님이 어린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독일 가정의 하루 생활비가 5.5라이히스마르크인데, 유전병 환자 한 명의 하루 생활비와 치료비가 12라이히스마르크라면 독일 국민이 잃은 가치는 얼마가 될까?”

카를이라는 학생이 이렇게 되물어요:

“이런 사람들을 돌보는 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그랬더니 뒷 쪽에 앉은 (좀 더 나이도 많고, 덩치도 커보이는) 학생이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죽여야지.”

선생님도 당황하면서 말합니다.

“더 생산적이고 인도적인 해결책을 아는 사람?” 

영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첫 시퀀스의 마지막 장면. 칠판에 12마르크와 5.5마르크라고 적은 판서 내용이 보인다. 영화는 오프닝 크레딧 마지막에 본 회퍼의 문장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한다: “한 사회의 도덕성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알 수 있다.”

= (….) 

그 비용 계산 문제는 장애인의 삶을 위해서 왜 비장애인이 희생해야 되느냐는 논리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결국 나치 정부는 장애인에 대한 대대적인 안락사 작전(T4)를 진행하죠.

= 한국 사회의 인식이 나치의 T4와 닮았다는 말씀이신가요. 

‘비장애인들도 힘든데, 너희들이 먹고 살기 하기 위해서 우리가 치러야 될 대가가 얼만데’ 이런 이야기를 해요. 이제 질문 자체를 바꾸고, 관계 자체를 바꿔야 해요. 그리고 계산 방식을 달리해야 해요. 그것을 하기 위해서 저희는 지금 이동권 투쟁하고, 지하철 선전전을 합니다.

=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요즘은 SNS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저희 활동(전장연 페이스북)에 좋아요도 눌러주고 댓글도 남겨주고 이런 것들이 시민 운동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왜 그들이 이런 활동을 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적어도 최소한의 하나의 연결 고리를 찾고, 혐오 발언 같은 것들에 좀 맞서주면 좋겠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같은 국민, 같은 기본권입니다.

= 끝으로 앞으로 계획은. 

지금까지 20년을 기다려왔습니다. 이제는 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저희의 활동계획은 기다리지 않는 겁니다. 이제 검토하지 말고 결단하시라고 할 겁니다.

윤석열 당선인, 얼마나 빠르게 결정합니까.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한다고 할 때 그렇게 전광석화처럼 결정할 정도의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장애인 이동권 문제도 검토하고 국가 예산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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