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위한 상상력 ‘상편’] 헌법이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헌법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12분)
🌱 개헌을 위한 상상력: 한상희∙행인 인터뷰 (총 2편)
- 그들의 헌법, 우리의 헌법: 통치구조? 삶의 변화가 먼저다 (상편) ⇦ 이 글
- 개헌을 위한 상상력: ’58년 개띠 여성’에서 ‘퇴근 후 카톡 금지’까지 (하편)
프롤로그: 그들의 헌법, 당신의 헌법, 우리의 헌법
헌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헌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 법은 힘없는 이들에겐 저 높이 구름 뒤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지만, 힘 있는 사람에게는 그들의 주머니 속 열쇠 같다. 그들은 아무 때나 그 법이라는 장난감을 꺼내 어떤 문이든 열거나 닫아버린다. 그들의 ‘특권’은 마치 판타지 속 마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론은 그런 자들을 ‘법기술자’ 혹은 ‘법꾸라지’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실은 그들과 대개는 한통속이다.
헌법은 다를까. 언론이 윤석열 일당에게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무너뜨릴 뻔했다고 비판할 때, 그때 무너지는 질서는 누구의 질서인가. 윤석열 일당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물고 있다고 비판할 때 그 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몇 년에 한 번씩 행사하는 참정권인가, 아니면 제왕적 대통령직인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인가… 그 모두가 헌정 질서의 일부겠지만, 한 시인의 표현처럼,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다(이성복).
헌법은 무엇인가. 부족한 상식을 불러오면, 헌법은 법 중의 법이다. 헌법은 국가를 구성하는 권력 구조에 관한 기본 사항을 규율한다(입법∙사법∙행정의 통치구조). 동시에 헌법은 그 국가 주권의 원천을 규정한다. 그 권력의 원천은 국민에게 존재한다(주권재민). 그리고 헌법은 모든 권력의 근원이자 원천인 주권자, 즉 국민의 의무과 권리(기본권)를 규정한다. 즉, 헌법은 국가 공동체의 골격이자 뿌리이며 그 바탕이 되는 약속이다.

그래서 그 헌법을 바꿔야 한다면, 권력구조를 어떻게 변경할 것인가.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확장하거나 또 때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조정하고, 그 의무를 어떻게 변경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다. 권력구조(통치구조)와 기본권으로 크게 구별했지만, 그 양자는 본질에서 불가분이다. 왜냐하면 권력구조라는 것 역시 국민에게 빌려오는 형식(위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시니컬하게 ‘그들'(극소수 위정자)과 ‘우리'(대다수 국민)를 구별했지만, 헌법에서 그들과 우리는 제로섬 게임의 ‘이해당사자’라기보다는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국가 안의 운명은 계층과 계급으로 갈라졌다.
그렇게 기본권의 세목으로 들어가면, 노동자의 이해가 다르고, 자본가의 이해가 다르다. 국민은 하나지만, 국민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물적 토대는 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 물적 토대에 따라 상징적 권력체계(법도 그 일부다)가 구성된다. 그래서 헌법은 이중적이다. 운명 공동체로서 우리는 하나의 유기적인 법적 생명체(국가)지만, 계층(계급)화된 국민으로서 우리는 한 국가 안에서 완전히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갈등은 필연적이고, 그 갈등을 조율해야 하는 정치적 권력의 충돌과 조율을 통해 헌법은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자신의 혈관으로 흘러보낸다.
그렇게 가장 최근에 바뀐 헌법을 우리는 87년 헌법으로 부르고, 우리는 여전히 87년 체제의 국가라는 헌법 체계 위에서 살아간다. 무려 38년 전이다. ’97년 IMF’로 우리 사회의 가치 체계는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쳤고,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으로 사회의 성격은 또 한 번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제 AI 혁명의 한복판을 우리는 통과하고 있으며, 어느새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다시 질문한다. 우리에게 헌법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헌법이라는 게 막연하고 추상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평범한 국민의 소망을 담은 조금 더 구체적인 것일 수도 있을까? 무엇이 국가, 공화국, 국민, 민주주의의 본질인 것일까? 그런 막연한 호기심과 갈증으로 한상희 교수와 윤현식 박사(행인)을 만났다.

인터뷰이 두 분을 짧게 소개하면 이렇다.
한상희 교수는 오랫동안 강당(건국대)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헌법적 이론과 실천의 조화로운 화해를 투쟁적으로 모색했다(참여연대). 그동안의 언론 활동이나 사회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이름일 것으로 생각한다.
나에게는 블로거 ‘행인’으로 더 익숙한 윤현식 박사는 헌법을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몸소 실천했고, 여러 번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민들레당’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된 지역정당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한상희 교수와 윤현식 박사를 만난 건 지난 4월이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개헌 논의는 한풀 꺾여버렸다. 하지만 개헌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공약이 아니더라도 38년 된 국가의 설계도를 이제는 고쳐 쓸 시기라는 걸 대다수가 긍정한다. 이제 그 설계도를 볼 수 있는 힘, 그 설계도를 바꿀 힘이 필요하다. 지난 대면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서면으로 추가 질문을 부탁드렸고, 이를 반영해 최대한 발행 시점에 맞춰 인터뷰를 보완했다.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한상희: 공화국 구별은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합의한 기준이 없다. 즉, 공화국은 정치권력이 정해 놓은 ‘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제7공화국의 의미를 어떻게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87년 헌법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헌법은 직접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민발안이나 시민의회는 물론이고, 지방자치제 수준의 권력 소재 이동이 아니라 지역 ‘분권’을 염두에 둔 개헌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의 개헌 논의는 이런 시대정신과 상관없이 권력구조 변경에 관한 정치권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를 중계하는 정도에 머문다. 개헌에 관한 논의의 밀도가 낮아지고, 혼란이 가중하는 이유다.

행인(윤현식): 고 노회찬 의원이 2007년 연말 대선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에서 제7공화국 논의를 제기한 바 있다. 나는 그때 제7공화국이라는 구호에 반대했다. 제7공화국이라는 ‘수사(레토릭)’가 너무 강렬해서 개헌의 본질을 희석할 것으로 봤다. 민주노동당의 가치를 추구하는 ‘평등’ 공화국, 이런 타이틀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제7공화국이라고 명명은 필요하지 않다고 봤다.
나는 지방분권을 강조하고, 지역정당을 강조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개헌안은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국가를 만들자는 안이었다. 문재인 개헌안은 헌법 전문에 자치 분권의 강화를 집어넣고, 헌법 1조 3항에 지방분권국가 지향을 규정하였다. 개헌은 불발되었지만, 지방자치법이 전면개정된 건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방정부의 기관 구성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 집중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지방정부 구성권을 지방정부에 준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을 조례가 아닌 법으로 하라고 한다거나, 주민자치회를 피해 가는 등의 한계가 그것이다.
누가, 무엇을 위해 개헌할 것인가
한상희: 헌법을 부정한 세력에게 헌법 개정에서 일정한 역할과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다만, 그렇다면 ‘민주당은 자격이 충분한가’라고 물어볼 수 있다. 87년 체제가 문제라고 했을 때, 그 핵심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형식적 민주주의로 흘러갔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너무 대의제에 바탕했고,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위임했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놓은 게 문제다. 현재 상황이 이렇다면, 새로운 헌법에서는 국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직접적 요소’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가 어떻게 개헌 논의를 이끌어야 하는가. 개헌에 관한 첫 번째 질문이다. 최소한 아래 두 부류의 국회의원은 개헌 논의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 계엄 해제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
- 계엄 해제에 참여하려는 의원을 막은 사람들
행인: 윤석열 정부는 독특하게 임기 중에 개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헌재에서 탄핵 심판을 받던 중에 자신을 복귀시켜 주면 개헌하겠다는 소리를 하긴 했지만, 탄핵 정국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번 국회에서조차 논의가 없다. 과거 모든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가동했다. 하지만 국회 개헌특위는 실제로는 국민에게 문을 닫고 있는 방이다. 국회의원들끼리만 이야기했다. 가장 중요한 주권자인 국민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국민에게 열어주지 않았다. 한국 정치의 한계다.

이재명 정부의 주요 개헌 의제
1. 4년 연임제 (이재명, 5.18 공약)
행인: 먼저 이야기할 것은, 사회의 변화를 담보하는 헌법의 재구성 없이 통치구조의 변경을 우선하는 개헌은 하나 마나 하다는 점이다. 아닌 말로, 만일 4년 연임제 체제에서 대통령이 윤석열인데 임기 중에 내란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었는데도 재수가 좋아 연임하게 된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나? 그럴 바에야 차라리 5년 하고 끝내는 게 훨씬 좋지 않은가?
기실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이냐 4년 연임이냐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하고 튼실한 헌정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관건은 아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내각제 개헌 역시 마찬가지다. 내각제 일본이 한국 대통령제보다 더욱 건강한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나? 바람직한 통치구조를 논의하는 과정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건 바람직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또는 5년 단임이냐 4년 연임이냐 같은 의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어선 안 되고, 오히려 일정하게 개헌에 대한 숙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아예 통치구조를 개헌 의제에서 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한다.

2. 결선투표제 (이재명 5.18 공약)
한상희: 실질적인 대통령제를 선택한다면 의당 결선투표제는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제대로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양당 지배체제가 강고히 구축되어 있는 이 경색된 정치구조를 깨치고 다양성과 다층성에 기반한 민주적인 통치체제를 구성하기 위해서라도 결선투표제는 도입되어야 한다.
혹자는 이 결선투표제가 개헌 사항이라고 하지만, 그 규범적 근거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현행 헌법은 이를 정치적 결단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결선투표제가 시행되면 대통령의 권력은 그만큼 강화되기 마련이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그 문제는 시민사회나 국회의 힘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영역 속에서 해결하는 것이 옳다.
행인: 결선투표제는 기본적으로 개헌 사항이 아니다. 이건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헌법 제67조 제2항 규정 때문에 마치 결선투표가 헌법사항인 것처럼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당 조항은 달 분화구 위에서 우주인을 발견할 확률만큼 일어나기 힘든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꼬고 있다. 당장 선거에서 승리가 눈에 보이는 쪽에서는 결선투표 같은 귀찮은 절차를 거치고 싶지 않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탄핵정국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에는 결선투표를 법률사항이라고 했다가 정작 탄핵 국면에 참여하기 시작한 후에 입장을 바꿔 헌법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이건 국민의힘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물론 국민의힘 계열의 정당에서 그동안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바는 없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보수 양당이 권력을 주고받는 양당 체제에 있다. 87년 헌법이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당선되었던 모든 대통령은 전부 ‘파란당'(더불어민주당) 아니면 ‘빨간당'(국민의힘)이었다. 결선투표는 이러한 양당 체제 속에서 제3세력이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는 제도다.
그러니 보수 양당의 입장에서는 괜실히 잘 구축되어 있는 현재의 양당 구조에 행여나 파열을 낼지도 모를 결선투표 같은 걸 할 의지가 없는 거다. 개헌은 매우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어차피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굳이 법률 제∙개정에 비해 극악하게 어려운 개헌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이건 정치권의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국정과제 선정 작업에서 ‘후순위’로 밀린 개헌
🔖 배경 설명: 국정위(조승래 대변인)가 지난 7월 초(2025.07.07) “국민통합을 위한 개헌 제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도 “개헌TF 혹은 개헌특위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편집자)
한상희: 개헌 대상을 대통령 임기 여하에만 한정하다 보니 그것이 권력을 잡은 새 정부의 국정 과제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만약 개헌 의제를 현 87년 헌법 체제의 한계를 돌파하여 더 강한 민주주의, 더 나은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맞추게 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다. 국민의 정치 참여를 더 실질화하고, 복지와 사회권 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평화와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집권 정부에 자리하고 있다면 말이다.
실제 개헌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헌법의 자구만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개헌 과정을 통해, 시민이 헌법적으로 각성하고 민주적으로 활성화되는 매우 유의미한 기회를 확보하고 그에 상응하는 역량을 구축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개헌의 핵심적 내용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개헌은 2026년 지방선거를 넘겨 2028년 총선으로까지 확장되어도 좋다.
정치권이 개헌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선언하고 개헌의 일정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잡아 나간다면, 그것으로 우리 국민은 충분히 개헌을 위한 숙의의 장에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이 자신의 권리인지, 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해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언제나 창대한 정치적 성취를 일구어낸 사람들이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행인: 새 정부가 당장 개헌을 화두로 내세울 때 감수해야 할 부담이 굉장히 클 것이다. 기껏 현행 헌정 체제 안에서 정권을 획득했는데, 구태여 자기 정권의 기반까지 패로 내놓고 개헌을 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건 기한도 촉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개헌 꺼냈다가 지방선거 준비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따라서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개헌은 순위 밖으로 놓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개헌은 언제든 정부의 카드가 될 수 있다. 국정 현안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라든지, 야당과의 갈등이 고조된다든지 하는 시기에 개헌 카드는 매우 좋은 현안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개헌 논의는 언제나 블랙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다른 이슈가 다 빨려 들어가 버리고 ‘개헌’이라는 말만 남게 된다.
다만, 개헌이 국정 우선 과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꼭 그래야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국정 과제라는 것 자체가 집권 세력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것인데, 체제의 변화에 대한 요구는 집권 세력으로부터 결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헌을 우선적인 국정 과제로 만들어내는 힘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관건이다. 개헌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집권 기반이 흔들린다는 위기의식이 형성되지 않는 한 집권 세력은 결코 개헌을 국정 과제의 앞 순번에 놓지 않을 것이다.
민생 우선? 민주주의 밥? 차별 금지야말로 민생이고 민주주의!
한상희: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차별금지법을 두고 “민생 경제가 우선”이라고 답하였다. 그러면서 그 민생 경제의 목표는 무엇인지는 답하지 않았다. 제헌헌법은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균형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을 경제질서의 기초로 삼았다. 차별금지법과 민생 경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해 나갈 것인지는 답하지 않았다. 요컨대, 이재명 정부가 그리는 큰 그림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주식이 오르고 강남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두고 실용이라 한다면, 그 실용은 우리 대다수 서민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겠는가?

행인: 취임 30일 기자회견의 전반적인 기조는 ‘헌정 질서의 복구’ 선언이었다. 즉, 무도한 구정권의 헌정 질서 파괴로부터 민주 한국이 귀환했고, 따라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보다는 현시점에서 안정적인 질서 회복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의지가 명확하게 보였던 기자회견이었다. 더구나 안정적 질서 회복을 위한 노력의 중심이 주주자본주의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경제성장에 맞춰져 있다는 건, 소위 ‘빛의 광장’에서 분출했던 다른 모든 변화를 향한 열망이 폐기되거나 ‘나중에’ 따질 문제로 밀렸다는 걸 의미한다.
결국 이러한 사고의 구조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향이나 의지가 수반되지 않는 것이기에 이러한 의미에서의 개헌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정부에서 통치구조에 대한 개헌 논의는 언제든 이슈화될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정권의 폐단으로 인해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우려는 일정하게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이 틈에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비롯해 기성 정치권이 원해왔던 일련의 사항들을 개헌 논의로 이어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그러한 논의가 실제 개헌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새 정부의 수장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민생 우선을 내세우며 당장은 어렵다는 입장을 후보시절부터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독교 교리 및 개신교의 이해를 앞에 내놓으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눙치는 총리를 임명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주요 정부 각료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지는 건 결국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염없이 미루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이재명 대통령의 태도는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13일 세계정치학회 세계대회 개막식에서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는 사실을 증명해내야 한다”며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핵심은 평등이다. 평등은 차별이나 혐오를 배격한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의 말은 ‘차별금지법이 밥 먹여 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한 입으로는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준다고 하면서 다른 입으로는 차별금지법은 밥과 상관 없다고 이야기하는 모순을 저지른다.

지난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정의로운 통합을 위한 내란세력 척결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란의 근원에 무엇이 있었나? 바로 혐오와 차별이라는 극우세력의 인큐베이터가 있었다. 차별금지법이 이야기된 게 벌써 18년 전이다. 2007년 17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그대로다. 만일 차별금지법이 18년 전에 제정되었더라면, 과연 윤석열의 내란을 만들어낼 정도의 극우의 발흥이 가능했을까? 이게 민생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민생인지 묻고 싶다. (하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