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미국은 기후를 외면하는 반면 중국은 녹색 혁신을 통해 기후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인공지능을 성장시키려 한다. 과연 누가 이길까?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4분)
“Build, Baby, Build!”
지난 7월 24일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인공지능(AI) 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미국의 인공지능(AI) 행동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28쪽짜리 보고서는 형식상으로는 미국의 혁신 가속화,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 국제 외교와 안보 선도 등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각각에 대해 구체적 행동계획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보고서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Build, Baby, Build!”다. 지난해 대선 공약에서 화석연료로의 역행을 상징했던 “Drill, Baby, Drill!”의 인공지능 버전 수준에 불과하다

내용을 살펴보자.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의 인공지능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인공지능이 막대한 전력 소모를 통해 기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과학계의 우려를 노골적으로 외면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방대한 인공지능 인프라와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를 공급받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여기에 방해가 되는 ‘급진적인 기후 도그마’를 계속 거부겠다고 밝혔다. 반대로 재생에너지나 태양광, 풍력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또한 인공지능을 지원하는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요구되는데, 미국의 환경 규제가 걸림돌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인공지능 지배력 유지를 위해 미국의 전통적인 세 가지 환경 보호법인 청정대기법(대기오염 방지), 청정수질법(수질 오염 방지), 환경복원법(일명 Superfund로서 유해물질로 오염된 토지와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조성된 정부 기금)을 완화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기후 외면한 AI 발전 가능할까?
한술 더 떠 트럼프 정부는 인공지능을 안전하고 책임 있게 활용하기 위해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가 해 온 거짓정보 관리, 다양성, 포용성, 기후 변화 같은 내용들을 정책 논의에서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기후 변화를 포함해 인공지능이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해 논리를 세우고 추론하면서, 가짜 뉴스 생성, 알고리즘 편향 등의 문제가 나타난 부분에 대해서도 정부가 ‘공적인’ 관리를 안 하겠다는 의미다. 가히 충격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보고서에서 공언한 대로 인공지능 개발을 밀어부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인공지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축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 센터는 100MW 용량의 전력을 요구한다. 이 정도 규모면 대략 10만 가구가 사용하는 전력량에 맞먹는다. 하지만 최근에 건설중인 데이터 센터는 20배 이상, 즉 무려 200만 가구가 쓸 전력량을 요구할 정도로 대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인디애나주에 아마존이 짓고 있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현재 규모만 해도 2.8기가와트(GW), 2030년까지는 7기가와트로 확장될 예정이다. 이같은 엄청난 팽창은 해당 지역의 전력망에 심각한 부담을 줄 뿐 아니라 탄소중립 계획을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다.

실제 전 세계의 핵심 인공지능 기업들의 데이터 센터가 몰려 있어, 5GW 이상을 데이터센터에 할당하는 북버지니아 지역은 기후 대응계획이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다. 버지니아주 합동입법감사및검토위원회(JLARC)가 2024년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터 센터 증설 요구에 조건 없이 부응하려면 앞으로 이 지역에서 2년마다 1.5GW 규모의 신규 발전소가 세워져야 한다. 이는 사실상 버지니아 2050 탄소중립을 명시한 ‘버지니아청정경제법’을 폐지해야 가능하다.
녹색 혁신의 지원받는 중국 AI
탄소중립을 포기하면서까지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외국 국가도 우리를 이기도록 허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여기서 외국 국가란 정확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관점에서는 중국과의 인공지능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다양성이나 형평성은 물론 기후 대응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막상 경쟁 상대인 중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태양광, 풍력터빈, 배터리, 전기차 등 녹색산업에서 이미 압도적인 글로벌 지배력을 확보한 중국은 미국과 정반대로 오히려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인공지능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올해도 인공지능 전력 수요를 감안해, 역대 최대 규모인 500기가와트(140GW는 풍력, 380GW는 태양광)의 재생에너지를 추가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중국은 2024년 ‘데이터센터 녹색발전에 관한 실행계획’을 발표해, 데이터 센터의 재생에너지 이용률을 매년 10% 이상씩 늘리는 한편, 전력 사용 효율(PUE)도 올해부터 1.25 이하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더욱이 올해 1월부터 새로운 에너지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인민공화국에너지법’을 입법 발효해, 데이터 센터를 포함한 재생에너지 이용 의무를 더욱 확대했다.
계획대로 시행된다면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인공지능 개발과 기후 대응이 큰 충돌 없이 공진화할 수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후를 희생시켜 인공지능을 성장시키려는 미국과, 재생에너지를 매개로 기후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인공지능을 성장시킬 구상을 가지고 있는 중국 가운데 누가 게임의 승자가 될까?
‘녹색 없는 AI’는 경쟁력도 지속성도 없다.
일단 기후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포기한 채 인공지능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은 머지않아 다중적 도전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는 데이터 센터가 미국 전체 전력수요의 3~4%에 그치고 있지만, 2030년까지 11~12%로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가스 발전 등 화석연료로 대응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 감축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적나라하게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태양광과 풍력, 배터리, 전기차, 수소 등 녹색 부문의 수요 약화로 인해 자본투자와 기술혁신이 중국에 견줘 현저히 뒤처져, 녹색산업에 대한 중국 의존은 향후 더욱 심화될 것이다.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정반대로 가는 셈이다.

중국 문제에 정통한 미국 경제학자 스테판 로치(Stephen Roach)는 트럼프의 ‘인공지능 행동계획’ 발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장기적으로 기술 패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미국의 기후 정책, 즉 기후 정책이 인공지능 기술 투자의 발목을 잡아서가 아니라, 공적인 기초연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스튜어드십”이라며 “상업적 수익이 동기 부여로 작용하는 민간 행위자들과 달리, 공공의 지원은 과학자와 다른 연구자들에게 추상적으로 보이는 지식의 경계를 넓힐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경쟁을 핑계로 기후 대응을 포기하고 정부 예산 삭감에 매달릴 게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녹색 투자에 나서 인공지능의 녹색 기반을 다지고 인공지능 관련 공적 연구개발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트럼프 정부는 스테판 로치의 지적을 좀 더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인공지능 정책에 속도를 내는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