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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증의 탄생

  1.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ft. 생각, 말, 글)
  2. 대화의 파토스와 에토스 vs. 글의 로고스
  3. 논증이냐 아니냐: 고등학교와 대학 글쓰기의 차이
  4. 왜 이것은 논증이고, 저것은 논증이 아닌가
  5. 논증의 다섯 가지 요소: 일상 대화에서 찾는 논증의 원리
  6. 냉소적인 방관자 ‘독자’ 설득하기: 실용 논증과 개념 논증
  7. 가치 있는 주장을 위한 세 가지 조건
  8. 인간이 가장 쉽게 빠지는 생각의 오류 (ft. 비판적 상상력)
  9. 우리가 원인을 잘못 판단하는 이유
  10. 정치적 인간, 정치적 언어: 전략과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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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들의 생각을 내가 원하는 편으로 몰아가기 위해 단어를 의도적으로 선별하여 사용한다. 예컨대 소득세 인하정책을 생각해보자.

  • 반대: 소득세 인하 정책은 우리 국부를 대부분 깔고 앉아 호화생활을 하는 특권층의 지갑만 두둑하게 불려줄 것입니다.
  • 찬성: 소득세 인하 정책은 하루하루 힘들게 일해서우리 월급에서 국세청이 빨아먹는 돈을 원래 주인인 우리 근로자에게 되돌려줄 것입니다.

이 두 글은 분명히 똑같은 상황을 묘사하지만, 전혀 다른 가치를 일깨운다. 이 말에 사용된 단어들을 자세히 뜯어보자.

논증의 탄생

물론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논증의 정신을 배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논증은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논리에 호소해야 한다. 위 문장을 감정을 비운 어휘들을 사용하여 표현해보자.

  • 소득세 인하 정책은 최상위 소득 계층의 재정적 여유를 증대시켜줄 것입니다.
  • 소득세 인하 정책은 모든 사람의 순소득을 올려줄 것입니다.

이 두 문장은 감정적인 언어를 모두 빼낸 중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표현들은 여전히 ‘냉정한 객관성’이라는 가치를 투사하고 있다. 가치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글도 가치 편향적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더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가치를 드러내는 어휘를 피하고 중립적인 것처럼 쓰여진 글도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적인 선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독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 또 얼마나 강렬하게 지지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또한,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독자는 글의 첫머리부터 저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민감하게 탐지한다. 물론 학술적인 글에서 독자는 글쓴이가 냉정하고 객관적인 에토스를 발산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것은 가치를 완전히 배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학 논문에서는 위 문장을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  소득세 인하 정책은 국가 자원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계층의 개인자산을 증대시켜준다.
  • 소득세 인하 정책은 근로 계층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을 다시 환급하는 효과가 있다.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을 뿐, 이들 문장에도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말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정치인의 언어

가치 판단 어휘의 문제는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논증 자체가 타당하다면, 독자의 감정을 어느 정도 자극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청중이나 독자의 감정을 자극할 목적으로 빈정대고 냉소하는 어휘를 마구 내뱉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그런 태도가 공론장에 스며드는 순간, 많은 이들의 이성적 사고는 마비되고 생산적인 논의는 멈추기 때문이다. 그런 언어가 공론장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유권자의 환심을 얻기 위해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이 이러한 표현들을 끊임없이 유포하고 다니며 정치 혐오증을 부추긴다.

  • 자신을 언급할 때는 ‘비전 있는’, ‘공정한’, ‘도덕적인’, ‘진실한’, ‘용기있는’, ‘원칙에 충실한’과 같은 표현을 쓰고, 상대방을 언급할 때는 ‘극단적인’, ‘급진적인’, ‘부패한’, ‘위선적인’, ‘위태로운’, ‘위험한’ 같은 수식어를 붙인다.
  • 자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국가’, ‘가족’, ‘상식’, ‘의무’라는 단어를 쓰고, 상대 후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탐욕’, ‘배신’, ‘독단’이라는 단어를 쓰며 비난한다.

이러한 전략은 ‘스스로 중립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착각)하는 유권자들의 체면의식을 자극함으로써,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투표하도록 독려하고 상대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움츠려들고 기권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들의 기만과 거짓 선동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합니다. 여기에 동의하는 모든 국민과 세력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어느 대선 후보의 출마선언문 중에서)
이들의 기만과 거짓 선동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합니다. 여기에 동의하는 모든 국민과 세력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어느 대선 후보의 출마선언문 중에서)

하지만 이러한 감정적 어휘 사용은 정치적인 선전이나 ‘수사학적 표현’을 넘어서, 민주적인 담화의 기초를 흔들고 결국 시민사회의 토대를 훼손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내용을 감정적인 호소로 대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담화 전체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내듯이, 자신의 이익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냉소적인 언어가 판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사려 깊은 논증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부정직한 언어를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강렬하고 자극적인 언어를 쓸수록 설득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언어가 나올 때마다 사려 깊은 독자들은 귀를 닫고 달아나버린다. 대중은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뉘앙스가 담긴 언어는, 독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편향된 사고를 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강렬한 언어를 쓰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자신을 멀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세 가지 선동 방법 

감정을 자극하여 사람들을 선동할 때 정치인들이 자주 활용하는 세 가지 방법를 살펴보자.

1. 흑백논리

‘친기업’에 동의하지 않으면 무조건 ‘반기업’이고, ‘반북’이 아니면 무조건 ‘친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흑백논리를 좀더 교묘하게 적용할 수도 있는데, 예컨대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 ‘진실한’ ‘정상적인’ ‘합리적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상대방의 관점을 ‘겉과 속이 다른’ ‘제정신이 아닌’ ‘비이성적인’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악당으로 몰아붙이는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는 감정을 자극하여 이성을 마비시킨다. 생산적인 토론은 사라지고 진흙탕 싸움만 남는다.

2. 주어를 바꾸기(관점 조작) 

  • A: 기자들은 시장을 끝까지 캐물어 결국 원하는 정보를 얻어냈다. 시장의 친구가 운영하는 기업은 시와 계약을 따낸 대가로 선거자금으로 1억 원이 넘는 돈을 제공했다.
  • B: 시장은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 못 이겨 결국 숨기려 하던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시장은 친구가 운영하는 기업으로부터 1억 원이 넘는 선거자금을 받고 시와 계약을 따낼 수 있게 해주었다.

윗 문장(A)은 기자와 기업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진술하는 반면, 아랫 문장(B)은 시장에 초점을 맞춰 진술한다. ‘무엇이 더 진실 같아 보이는가?’ 하지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가 진실이라면 다른 것도 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어야 하는 것은 ‘논증의 목적에 부합하는 진술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 “글쓴이는 어떤 행위자에게 책임의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가? 시장인가 언론인가?

우리는 주어 자리에 등장하는 행위자가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글 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문장의 주어를 조작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점을 통제한다. 독자들은 이러한 조작과 통제가 말과 글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한다. 그러한 관점을 갖게 된 이유도 깨닫지 못하기에, 자기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가령 위에 캡처한 조선일보 2008년 12월 5일 자 1면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의 구속되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실어 의도적인 대비하고 있다. 그 메시지는 감상적이고 상투적이지만, 아주 명확하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한다. 그러한 관점을 갖게 된 이유도 깨닫지 못하기에, 자기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신문 1면이 대표적이다. 가령 위에 캡처한 조선일보 2008년 12월 5일 자 1면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는 소식을 의도적으로 대비하면서 그 중앙에는 대기업과 은행의 호혜적인 이미지를 삽입한다. 그 메시지는 감상적이고 상투적이지만, 아주 명확하다. 친재벌, 친기업, 보수 친화적 이미지.

3. 비유적 시나리오를 대입하여 관점 조작하기

언어를 사용하여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극적인 방식은 비유적인 시나리오를 풀어내는 것이다. 비유는 단순히 추상적 개념을 구상화하는 것을 넘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꾸밈으로써 잘못된 이해로 이끄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경찰관들이 마약 단속 작전을 펼치다 엉뚱한 아파트에 들어가 무고한 시민을 총으로 쏘는 사고를 저질렀다. 다음날 경찰청 대변인이 이렇게 말했다.

  •  마약과 벌이는 전쟁소풍이 아닙니다. 전쟁에는 사상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고한 아이들을 공격하는 과 싸우는 것을 멈출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헤로인과 코카인이라는 독재자에 절대 굴복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실제 전쟁에서는 무장 군인들이 민간인을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경찰 업무를 군사 작전과 같다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처럼 대중의 생각을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하고 조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은유가 자주 사용된다. 거꾸로 은유는 화자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세월호는 교통사고"라고 발언한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현 국민의힘 의원, 친박신당 대표). 세월호가 교통사고라면 사고 당사자인 가해자-피해자의 민형사상 처벌과 책임만 남는다. 즉, 국가의 책임은 사라진다.
“세월호는 교통사고”라고 발언한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현 국민의힘 의원, 친박신당 대표). 세월호가 교통사고라면 사고 당사자인 가해자-피해자의 민형사상 처벌과 책임만 남는다. 즉, 국가(박근혜 정부)의 책임은 사라진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우리는 지금 가치 판단 어휘를 사용하거나 주어를 조작하거나 은유를 사용하여 감정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가치를 배제하고, 주어를 선택하지 않고, 은유를 이용하지 않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 말을 하든 어휘나 표현을 하나하나 민감하게 인식하고 선택하라는 것이다. 잘못된 어휘나 표현을 선택하는 것은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까지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프레임 전쟁: 자신에게 유리한 단어로 문제를 진술하라

논쟁적인 주장을 펼치고자 할 때는 문제의 틀을 짤 때부터 어떤 가치를 반영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예컨대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 문제를 놓고 맞붙은 찬반 양측이 ‘안락사’를 진술하는 방식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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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나 언론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한쪽은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고 다른 한쪽은 불리한 위치에 선다. ‘국가의 의무’를 선택한다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품위’를 져버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선택의 존엄성’을 선택한다면 ‘생명의 존엄성’은 무시한다고 비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뿌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서로 내세우는 가치가 모두 고상하고 자명한 경우, 문제를 정의하는 이름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프레임으로 문제를 진술하고 이를 채택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면 싸움은 사실상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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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와의 협의 하에 [논증의 탄생: 21세기 민주시민을 위한 비판적 사고, 토론, 글쓰기 매뉴얼] (조셉 윌리엄스)에서 발췌한 내용을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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