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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가해사
- SBS ‘찐빵소녀’ 조작 사건 (2008)
- 아동 납치 성폭행범 고종석과 언론발 2차 가해 사건 (2012)
- 한경닷컴, 도깨비쿠폰 사건 (2011)
- KBS ‘보험사기 병원’ 오인 유도 사건 (2013)
- ‘그알’ 땅콩회항 승무원 마녀사냥 사건 (2015)
- 친동생 살해 누명 사건 (2003), 칼부림 목사 누명 사건 (2015)
- 웬만하면 ‘먹거리 X파일’을 이길 수 없다 (2014, 2015, 2017)
- 블루투데이, 여성·평화운동가 ‘종북’ 낙인 사건 (2017)
- 동아·TV조선, 국정원 간첩 조작 편승 사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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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MBC [불만제로UP]과 KBS [소비자 고발] 등을 시작으로 이른바 ‘예능형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이 잇따라 등장하며 상품 평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던 시청자 수요를 충족시키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들 프로그램은 실제로 소비자 권익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요. 반면 ‘황토팩 사건’처럼 사실을 과장하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접근으로 멀쩡한 업체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했습니다.
채널A [먹거리 X파일]은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중에서 많은 논란을 남긴 방송입니다. 특히, 벌집 아이스크림 사건이나 대왕 카스텔라 사건은 방송 한 번에 업종 자체가 무너질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대왕 카스텔라 사건은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과 근세의 가정이 몰락한 원인으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먹거리 X파일]은 프로그램에 뒤따른 논란만큼이나 많은 소송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비판받은 강도에 비해 실제 소송에서 패소한 적은 많지 않습니다. 방송으로 큰 피해를 입은 업주들은 왜 소송에서 [먹거리 X파일]을 이길 수 없었을까요? 법원은 어떤 사법적 판단을 내렸을까요? ‘벌집 아이스크림’, ‘정육식당’, ‘대왕 카스텔라’ 등 세 사건의 판결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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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영돈 PD와 ‘황토팩’ 사건

참고로, 엉터리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피해자로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고 김영애 씨를 많이 떠올립니다. 허위사실을 방송해 김영애 씨의 황토팩 사업에 막대한 타격을 준 방송은 KBS 1TV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로, 해당 방송은 2007년 10월 5일, ‘충격! 황토팩에서 중금속 검출’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습니다.
이영돈 PD는 2011년 채널A로 이직한 후, 2012년 2월 10일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첫방송부터 2015년 5월 30일까지 진행을 맡고, (이영돈 PD는 2014년 채널A 퇴사) 2014년 6월 6일부터는 김진 채널A 기자가 [먹거리 X파일]로 타이틀을 바꿔 진행하다가 2017년 6월 23일 종영됐습니다. KBS의 ‘소비자 고발’은 2014년 5월 4일 첫방송됐고, 2013년 4월 5일 종영됐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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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집 아이스크림 사건 (2014)
→ 원고(벌집 아이스크림 가맹점주) 패소, 즉 채널A 승소
2014년 5월 채널A [먹거리 X파일]은 “벌집 아이스크림에 올려 먹는 벌집 원료가 양초에 쓰이는 파라핀”이라고 방송했습니다. 마치 대부분 업체들이 ‘양초에 쓰이는 파라핀’을 사용하는 것처럼 방송했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 무엇보다 그런 업체는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 해당 파라핀이 식용인지 공업용인지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 식용 파라핀의 유해성 여부 등에 관한 정보는 방송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방송 후 업주들은 “일부 업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라면서 반박했지만, 논란은 사그라 들지 않았고, 많은 벌집 아이스크림 업체가 폐업했습니다. 채널A는 2017년 타사 보도에 대해 제작진 입장문을 내놓는 과정에서 벌집 아이스크림 일부 가맹점주와의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벌집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가맹점주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공익성이 있고 적절하고 충분한 조사를 다했다”는 이유로 채널A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해당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채널A, 뉴스핌 기사에서 재인용, 2017)
참고로, 해당 판결문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판결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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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육식당 사건 (2015)
→ 정육식당의 재산 손해(3억5천 주장) 불인정, 다만 위자료(3천만) 인정
2015년 4월 [먹거리 X파일]은 ‘정육식당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쇠고기를 판다’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예고편에는 방송과 관계 없는 다른 식당을 내보내 업주에게 큰 피해를 줬습니다. 본방송 내용은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 X파일: 식당에 진열된 소고기 일련번호를 검색해 ‘정육식당이 유통기한이 지난 소고기를 판다’고 전했습니다.
→ 사실: [먹거리 X파일]이 검색한 건 다른 소고기의 일련번호였습니다. - X파일: ‘정육식당이 축산물판매업 영업 신고를 하지 않고 식당을 운영한다고’고 보도했습니다.
→ 사실: 정육식당이 식당으로만 운영하고 있다면 애초 영업신고는 필요 없었습니다.
법원도 먹거리 X파일로 인해 시청자들이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통의 주의를 가지 일반 시청자들로서는 위와 같은 이 사건 방송보도 내용의 전체적인 흐름과 구성방식의 영향으로 원고가 영업신고를 하지 아니한 채 축산물판매업을 하고 있고, 이 사건 식당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소고기를 판매하고도 별다른 근거 없이 이를 부인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6. 15. 선고 2017가합556776 판결)

제작진은 취재 과정에서 경찰도 동행시켰는데요. 당시 경찰은 사건을 무혐의로 끝냈습니다. 사실 [먹거리 X파일]은 취재부터 방송까지 한 달가량 시간 여유가 있었음에도 경찰을 추가 취재하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채널A 제작진이 문제의 소고리 포장 상자에서 확인한 소고기 유통기한은 아직 지나지 않은 상태였으며, 결정적으로 제작진과 동행했던 경찰이 조사 결과 유통기한이 지난 소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고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에는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취재일로부터 방송일까지 한 달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사실 검증은 부족했다.” (미디어오늘, 2019. 8. 17.)

방송 이후, 정육식당을 폐업한 식당 주인은 약 3억 5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보도 직후 매출액 차이가 거의 없었따면서 재산 손해를 인정하지 않았고, 위자료 3천만 원만 인정했습니다.
“방송보도 전 10일간 매출액에 비하여 1일 평균 85,264원 감소한데 불과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원고의 재산상 손해배상청구는 이유 없다. (…)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보면,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할 위자료를 30,000,000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6. 15. 선고 2017가합55677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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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만식 대왕 카스텔라 (2017)
→ ‘사실적 표현’ 아닌 ‘의견 표명’이라며 원고 패소
2017년 3월 [먹거리 X파일은]은 ‘대만식 대왕 카스텔라가 허위광고를 하고, 식용유를 과다 사용한다’고 방송했습니다. 물론 일부 대왕 카스텔라 업체들이 건강식 등으로 카스텔라를 홍보한 것은 과장됐지만, 대왕 카스텔라는 원래 식용유로 만드는 방식이라서 식용유 사용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이자 서울대학교 푸드 비즈니스 랩 소장인 문정훈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
“대만에서 건너온 대왕 카스테라에 대해 먹거리 X파일이 한 건 터뜨렸나보다. 핵심은 ‘세상에 빵을 만드는데 식용유를 넣다니!’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빵을 만들 때 많은 경우 유지가 들어가고 주로 쓰이는 유지에는 버터, 마아가린, 쇼트닝, 식용유 등이 있다. 버터에 비해 식용유가 들어가면 풍미는 떨어지지만 반죽의 탄력이 올라가는 장점이 있어서 식용유를 쓴다. 그리고 아마 식용유보다는 쇼트닝을 더 많이 쓸 텐데, 쇼트닝을 쓰는 건 괜찮고, 식용유를 쓰는 건 안된단 말인가? 이상하다.” (문정훈, ‘공포 조장으로 먹고 사는 먹거리 X파일’ 중에서)

방송 이후 많은 대왕 카스텔라 업체는 직격탄을 맞았고, 지금까지도 대만식 카스텔라 전문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 대왕 카스텔라 업체는 방송 내용 중 다음 다섯 가지가 허위라며 3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버터 대신 식용유를 사용하는 것은 원가절감을 위한 것으로 비정상적이다.
- 대만식 카스텔라 제조에 사용된 식용유 양이 과다하다.
- 대신식 카스텔라가 지방을 과도하게 함유하고 있다.
- 액상계란 성분상 위생상 문제가 있다.
- 대만식 카스텔라 제조에 사용된 유화제 등 화학첨가제가 유해하다.
하지만 법원은 다섯 가지 모두 ‘사실적 표현’이 아닌 ‘의견 표명’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습니다.
- ‘원가 절감을 위해 식용유를 넣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의견 표명
- ‘식용유 양이 과다하다’는 표현은 사실이 아닌 의견 표명
- ‘지방을 과도하게 함유했다’는 표현은 사실이 아닌 의견 표명
- 문제가 있다는 근거가 방송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의견 표명
- ‘유화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표현은 사실이 아닌 의견 표명

[먹거리 X파일]은 법정에서는 거의 지지 않았지만, 대왕 카스텔라 방송 이후 수많은 비판 속에 종영됐습니다. 그렇게 [먹거리 X파일]은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의 흑역사로 남았습니다.
법원에서 언론보도의 ‘허위사실’ 여부에 관하여 원고 측에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에서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구체적인) 피해자들의 손해가 무시된 판결은 이대로 좋은 걸까요? 이미 발생한 피해자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제대로 된 언론피해 구제방안, 그래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