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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자꾸 ‘당선인’이라고 한다. 언론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관행은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당선인’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선인 vs. 당선자, 어느 쪽이 옳은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당시 인수위 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당선자’ 명칭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선관위에서‘당선인’이 맞다는 해석을 내렸는데, 이는 공직선거법과 국회법, 대통령직인수위원회법 등 법률에서 ‘당선인’(當選人)”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08년 1월 10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당선자’(當選者)로 쓰는 것이 맞다고 발표를 하면서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당시 헌재의 김복기 공보관은 헌법이 최상위 법이므로 설사 다른 법률에 당선인이라는 표현이 있더라도 헌법에서 규정하는 표현인 ‘당선자’를 써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인수위의 이동관 대변인은 바로 다음날인 11일 헌재의 결정을 일축하고 ‘당선인’을 계속 사용할 것이며 언론이 이를 따라 줄 것을 요구했다. 한시적인 기구인 인수위가 국가 법체계의 최종심판관인 헌재의 의사를 무시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을까? 법률의 용어가 헌법과 맞지 않을 때는 헌법을 기준으로 헌법의 하위 규정인 법률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 법률가의 상식이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최상위 법인 헌법을 무시하고 헌법의 하위 법률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당선인’으로 불러달라고 하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인수위에서 ‘당선인’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근거로 들고 있는 법률들은 헌법 67조 5항의 명시적 위임에 의거하여 설치된 헌법의 하위법률들이다. 그러므로 헌법에 나온 ‘당선자’를 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겠다.

헌법에 명백한 근거가 있다면 하위법률들은 헌법을 기준으로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다.

당선’놈’이라서? ‘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왜 인수위는 이토록 고집스럽게 ‘당선인’이라는 표현에 집착했을까? 이는 ‘당선자’ 안에 있는 ‘놈 자’(者)가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 불경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신 격이 높아 보이는 ‘사람 인’(人) 자를 써야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도 틀렸다. 이것은 ‘-자’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에 기반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만일 ‘-자’(者)가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면 ‘성자’(聖者)라는 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승리자’, ‘합격자’, ‘수상자’ 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들은 각각 승리하고 합격하고 상을 받은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들인가? 결코 아니다. 다른 한편 ‘-자’가 ‘패배자’와 ‘수감자’, ‘도망자’ 등과 같이 나쁜 행위를 한 사람을 일컬을 때도 쓰임을 볼 때, 이는 특별히 긍정적이지도 특별히 부정적이지도 않은, 단지 사람을 중립적으로 일컫는 접미사일 뿐이다. 요컨대 ‘-자’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자’를 회피하려는 심리가 있는데 이는 어이없게도 ‘-자’가 아니라 이의 훈(뜻풀이)에 해당하는 ‘놈’이 가진 폄하적 뉘앙스 때문이다. 그러니까 번지 수가 완전히 틀렸고, 범인을 잘못 특정한 것이다. 결국 원인 규명을 잘못하고는 처방도 잘못 내린 것이다. 요컨대 ‘당선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놈’이라는 뜻풀이로 인해 엉뚱하게 유탄을 맞은 것이다.

중세 국어 ‘놈’ = (그냥) ‘사람’  

그렇다면 결국 오해의 원천이 ‘놈’이라는 훈인데, 그럼 왜 하필 ‘자’의 뜻을 ‘놈’이라고 풀이했을까? ‘놈’은 타인(他人)을 뜻하는 ‘남’과 동일한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중세 국어에서 ‘놈’은 보통 단지 사람을 뜻하였으며 현대 국어에서와 같이 낮춤이나 폄하의 의미는 없었다. 예를 들어 ‘훈민정음 언해본’에 보면 ‘제 뜨들 시러 펴디 할노미 하니라’(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도 ‘놈’이 일반적인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 것이다. 그 때문에 한자어 자(者)의 뜻을 ‘놈’으로 적은 것이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비칭(卑稱), 즉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로 바뀌었는데, 이로 인해 ‘자’의 뜻풀이가 ‘놈’이라는 이유로 이를 곧바로 폄하적인 말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기고 만 것이다.

중세 국어에서 ‘놈’이 평칭이었기 때문에, ‘놈’으로 해석한 한자어 ‘자’(者)도 당연히 평칭이었다. 그러다 그 훈인 ‘놈’이 비칭으로 바뀌니 한자어 ‘자’도 비칭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 버렸다. 본인도 억울할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손가락질 받는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되자 법조계에서는 ‘~한 자(者)’라는 표현을 가급적 ‘~한 사람’으로 바꾸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우리말에서 ‘자’(者)는 아무런 멸시의 의미가 없는 말이다. 그것의 뜻풀이에 동원된 ‘놈’의 뉘앙스가 바뀐 것 뿐인데 억울하게 본 글자인 ‘자’가 누명을 쓰고 퇴출되려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은 ‘자’를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제공한 ‘놈’을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자'(者)를 ‘놈 자’라고 하지 않고 ‘사람 자’라고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자’에 대해서는 괜한 혐의를 두지 않기를 바란다.

해법은 ‘자’를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자의 뜻풀이(훈)를 ‘놈’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선인’이 오히려 문제다 

‘당선자’, 아무 문제 없다. 오히려 ‘당선인’이 문제가 있다. ‘당선인’처럼 우리말에서 일시적인 상태나 일시적인 역할을 하게 된 사람을 뜻할 때는 접미사로 ‘-자’를 쓰되 ‘-인’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의 예들은 모두 우리말에는 일시적인 행위를 일으키거나 일시적인 사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지칭할 때는 반드시 ‘자’를 쓰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승리자’, ‘패배자’, ‘참석자’, ‘합격자’, ‘피해자’, ‘가해자’, ‘수상자’, ‘후보자’, ’자원봉사자’, ‘생산자’, ‘소비자’, ‘도망자’ 등. 이들 명사의 ‘-자’를 ‘-인’으로 교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승리인’, ‘패배인’, ‘참석인’, ‘합격인’, ‘피해인’, ’가해인‘, ‘수상인’, ‘후보인’, ’자원봉사인’, ‘생산인’, ‘소비인’, ‘도망인’ 등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법률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옳지 않은 논리에 근거하여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헌법 ‘-자’에는 폄하의 뜻이 있고, ‘-인’에는 고귀한 뜻이 있다고 오해하면서 인수위와 언론이 추구한 것은 새로운 권력에 대한 아부였다. 후보자 시절에는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는 머슴이 되겠다고 했는데도 인수위는 머슴을 오히려 존엄한 존재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여실히 자기모순이 드러난다. 어제까지 자신의 신분이었던 ‘후보자’는 ‘놈 자’로 남겨두니 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논리의 비겁함이다. 투표장에 가서 자신을 뽑아 준 ‘유권자’도 ‘유권인’을 만들어 주지 않고 본인만 ‘사람 인’으로 승격(?)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밤잠을 설쳐가며 개표 방송을 TV로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도 ‘시청인’으로 남겨 두어서야 되겠는가?

당의 공천을 받은 ‘공천자’가 선거에 입후보하면 ‘후보자’가 되고 투표에서 당선이 되면 ‘당선자’가 되는, 일련의 일시적 사건의 대상인 사람이 겪는 자연스러운 흐름의 어법을 굳이 깨면서 ‘당선인’을 만들어서 무엇을 초래하였는가? 여전히 법률을 헌법에 맞게 제대로 정비하지도 않고, 여전히 어법에도 맞지 않는 말을 쓰고 있지 않은가?

언제쯤 ‘유권자’들은 헌법과 어법에 맞는 ‘당선자’를 볼 수 있을까?

대통령, 국민을 위한 봉사자입니까? 아니면 군림하는 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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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실련이 기획한 CCEJ – 전문가 칼럼으로 필자는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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