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중앙정부에서 강남구를 특별자치구로 지정하라고 요청해 달라.”
2015년 10월 5일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통해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강남구 독립, 우리는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대다수 시민이 ‘어이없다’고 치부하지만, 간단히 무시해버릴 문제는 아닙니다.
“강남구 독립”이라는 발화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정치·경제의 모순과 점점 더 간극을 넓히며 분열하는 공동체 의식이 표면으로 드러난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슬로우뉴스는 ‘강남구 독립’으로 표출한 원인, 그 심연 속 ‘진짜 문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과 분석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box]
강남구가 ‘빈정’ 상한 게 박원순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돌이켜 보면 적어도 2002년 이명박 전 시장이 등장할 때부터 강남구는 사실 동네북 신세였다. 실제로 강남·북 격차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회자한 배경에는 강북지역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정책적 방향도 있었지만, 그 이면엔 강남 주민이라는 우월감이 자리했다.
강남, 피해의식과 우월의식 공존
우월감에 대한 반작용은 당연히 질투라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고 현재 신연희 구청장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즉, 못 가진 자들이 가진 자들을 시기해서 노력도 하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물건을 빼앗으려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도둑이 아무리 잘 먹고 잘산다고 그 삶을 동경하지는 않듯, 강남구가 질투 대상일지는 모르지만, 따라야 할 모범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현재 신연희 구청장의 발언은 좀 미묘하다. 신 구청장은 특별자치구로 강남구 독립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서울시로 하여금 중앙정부에 건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니까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데 어느 일방에게 당신이 법원에 가서 이혼서류를 받아오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마음 좋은 네티즌은 ‘협상의 전략’이네 뭐네 하면서 감싸 주는 모양이다. 협상 당사자에게 ‘아 몰라, 그러면 이거라도 해줘’하고 요구하는 협상 내용이 ‘독립 요구’라니, 그냥 투정일 뿐이다.
사실 ‘강남 독립’이라는 신 구청장의 발언은 신경 쓸 내용이 별로 없다. 아무리 제 아이가 버티고 운다고 100가지를 다 들어주는 어리석은 부모가 없듯이 제 노력으로 얻은 것도 아닌 것을 제 것이라 우기는 버릇은 철모르는 아이의 행동을 용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강남 독립’을 사회적 공론의 자료로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 부합하여 몇 가지 생각해볼 거리는 있다.
정치적인 지독하게 정치적인 ‘강남·북 격차’
7~80년대에도 ‘강남·북 격차’가 제목으로 들어가는 기사는 간헐적으로 존재했으나 대부분 인구구성에 대한 부분이거나 학군 등의 불평등에 대한 교육문제에 한정됐다.
1990년에 서울시는 강남·북 균형발전대책이라는 종합계획을 내놓았으나 그 내용은 강남지역에 건폐율(대지건물비율)이나 용적률을 더 얹어 주었던 특혜를 강북에도 주겠다는 것이거나 학원, 유흥업소 등의 강북 개설을 허가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소위 강남·북 격차를 둘러싼 말들의 프레임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나온다. 그것은 강남·북 격차의 완화 방법으로 ‘강북의 강남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 강남 독립과 같은 비상식이 상식으로 회자하는 구조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다. 강남 자체가 사실 중앙정부가 주도해서 거의 모든 자원을 탈법적으로 그 지역에 집중한 결과다. 즉, 기본적으로 강남 성장의 토대는 (중앙정부의) 차별적인 정책인 셈이다.
강북의 강남화?
강남 개발과 같은 성장 방식을 모든 지역에 공정한 방법으로는 적용하기는 힘들다. 다른 지역을 그렇게 하려면 강남은 눌러 놓고 강북지역에 특혜를 얹어 줘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특혜를 용기 있게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작해야 사립학교를 더 지어달라거나 정부 지원금을 더 달라는 게 고작이었다.
‘강북의 강남화’ 문제를 처음 꺼낸 사람이 이명박 전 시장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강남·북 격차를 강북의 강남화로 구체화하고, 사회 경제적 개발정책을 방법으로써 도입한 것은 이명박 전 시장이 처음이다. 뉴타운이라고 불리는 희대의 개발법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사실 강북의 강남화란 가능하지도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그간 강북의 강남화만이 유일한 정치적 해결책이라 강조한 탓에 따져볼 새도 없이 여·야할 것 없이 강북 재개발로 쏠렸다. 이명박 전 시장이 길음 등 3개 지역에 대해 뉴타운 시범사업을 시행해 집값이 폭등하자,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이 시장실 앞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희귀한 장면도 나왔다. 자기네 지역구도 빨리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청원하기 위해서였다.
뉴타운 개발로 부자된 사람들
실제로 양천구의 신정뉴타운 2-1구역은 주민 비대위가 조합 해산을 위해 조합원 명부를 가지고 해산 동의서를 직접 받았던 지역이다. 주민 비대위 분석에 따르면, 뉴타운 지역의 해산은 사실상 부재지주와의 싸움으로 사업시행 인가에서부터 실시계획인가 시기에 2~30%의 구역 내 지주들이 부재지주로 바뀌고, 관리처분 인가를 앞두고는 근 40% 가까이가 부재지주로 채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부재지주의 주소지는 대개 강남지역이라고 한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은 사실상 비강남지역의 숙주화였던 것이고, 강북의 강남화가 이명박 손에 의해 실시되었음에도 강남 기득권과 계급적으로 상충되지 않았던 원인이기도 했다. 뉴타운 재개발은 원래 시범사업의 결과를 보고 추가 사업지를 확충하고, 강북 개발사업이었던 만큼 강남권은 지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지만, 이 원칙은 처음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2002년 은평, 길음, 왕십리 지역에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뉴타운은 뒤이어 12개 구역이 2차 뉴타운으로, 11개 구역이 3차 뉴타운으로 지정되었다.
사실상 서울 곳곳이 부동산 투기 현장이 되었다. 2차 뉴타운 지역부터는 강남권역도 지정됨에 따라 사실상 강남·북 균형발전은 비강남지역 개발사업으로 확장했다. 당시 지정된 뉴타운 규모는 23.5㎢로 서울시 전체 면적 605㎢의 4%에 달하는 규모이며 여의도(2.9㎢)의 8.1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리고 각각의 지역은 뉴타운 딱지가 붙자마자 2~30% 이상 땅값과 집값이 올랐다.
강남·북 격차는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덕에 삼성, 현대, 대우 등 대기업 건설사들은 주택건설 부문에서 막대한 수익을 가져갔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주택가격의 변동률이 평균 11%를 웃돌았다. 그리고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진행과 더불어 외지인의 비율은 늘었다. 이는 뉴타운 개발로 인해 강북 지역이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강북에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세훈의 재산세 공동과세 도입
온갖 개발사업으로 서울을 도배해놓은 이명박 전 시장에 이어 등장한 오세훈 전 시장은 강남·북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별다른 수단이 없었을 것이다. 2002년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뉴타운 지역은 원주민 정착률이 절망적인 정도로 낮았다. 사실상 강북주민 물갈이 사업이라는 냉소가 나왔다.
오죽하면 2008년 총선 직후에는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오세훈 전 시장으로부터 뉴타운 사업 지정 약속을 받았다고 말한 탓에 사전선거운동으로 인한 고발(현경병, 유정현, 신지호, 안형환) 및 허위사실유포(정몽준)로 고발당해 조사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허위사실유포 혐의였던 정몽준은 오세훈 시장이 동작구 사당 지역 등에 뉴타운을 지정하자는 자기 뜻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고 진술해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이런 상황에서 오세훈 시장이 선택한 것은 수평적 재정조정제도의 도입이다.
[box type=”info” head=”수평적/수직적 재정조정제도란?”]
좀 교과서적인 개념이지만, 각 정부 간 재정격차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조건, 특히 세입원의 불균형적 배치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이다. 솔직히 시군구청장이나 시도지사가 산이나 강을 만들 수도 없고, 모든 지역에 발전소나 공장을 세울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국가의 모든 지역이 동등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국민이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할 정책이 필요하다.
교부금이나 조정금이라고 불리는 것은 중앙정부가 광역정부나 기초정부에 대해 이런저런 기준을 내세워 지급하는 재정보조의 수단이다. 그런데 이 방향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특징이 있어 ‘수직적 재정조정’이라고 한다. 필요한 제도지만 돈을 주는 곳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한계가 있다. 돈을 주면서 지금의 중앙정부와 같이 이런 조건을 내걸어서 ‘안 지키면 안 줄 거야’라고 억지를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탓이다.
즉, 이와 같은 재정조정제도가 지방자치의 원칙이나 재정 자율의 가치를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유지되고 있는 재정 조기지출 강요다. 관급공사 계약만으로도 미리 공사비를 지출하도록 하는 이 제도는 잘 하면 특별교부금까지 줘가며 포상했다. 그래서 사업부실은 고스란히 지방정부의 몫이 되었다.
[/box]
2006년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자신이 내건 강남·북 격차 완화를 위한 수단으로 (수평적) 재정조정을 내걸었다. 현재 조세 구조상 재산세는 기초세로 서울시가 아니라 각 자치구의 세수입으로 활용된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 각 지역 간 세수 차이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었는데, 2007년 당시 서울시 최고자치구와 최저자치구의 세입차이가 14.7배에 달할 정도였다. 이는 당연히 재정여건에 영향을 미쳐서 2006년 기준으로 강남구와 종로구의 교육경비 보조금의 차이가 10배에 달할 정도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자치구가 거둬들이는 재산세 중 50%를 공동과세로 하여 이를 25개 자치구에 정액으로 분배한다는 방안이 도입되었다. 다만 강남구와 송파구, 서초구 등의 부담을 고려해서 부담비율을 40%, 45%, 50%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한다는 경과 규정을 두었다. 최종 조정이 완료된 2011년만 놓고 보면 기존 15배 정도 났던 재산세 격차가 4배 정도로 좁혀지는 성과를 보였다.
강북의 강남화라는 이명박 전 시장의 방식이 사실상 강북의 강남 식민지화로 귀결되었던 뉴타운 사업과 달리, 실질적으로 재정의 재조정을 통해서 강북의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특면에서 상당히 진일보한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 개정안이 2007년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통과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강남구 등의 ‘몽니’ 거부한 헌법재판소(2010)
그런데 이런 재산세 공동과세가 자치구의 조세 자율권을 해친다는 주장이 나왔다. 왜 우리 지역에서 걷힌 세금을 다른 곳에서 나눠 쓰느냐는 논리인 셈이다. 전형적인 주장인 동시에, 개인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고전경제학에서도 번번이 등장하는 이기적인 주체로서 경제인의 태도이기도 하다. 여기에 강남구, 서초구, 중구 등 세 개 구는 재산세 공동과세가 자치구의 자치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낸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9명 재판관의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린다.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판결했다.
“어떤 종류의 조세를 어떤 기관에 귀속시킬 것인지는 과세근거, 징수 효율성, 재정상태 등을 고려해 국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재산세를 반드시 기초자치단체에 귀속시켜야 할 헌법적 근거나 당위성은 없다.“
실제로 재산세 공동과세가 이뤄지고 난 후 강남구, 서초구, 중구의 줄어든 재산세 수입이 각각 12.7%, 11.5%, 3.9%에 불과하고 재정 충족도가 100%를 넘어서는 상황을 고려하면 공동과세의 타당성도 부인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다. 사실상 ‘우리 지역에서 나온 것은 내 것’이라는 강남구 등의 ‘몽니'(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심술을 부리는 성질)를 헌법이 부정한 것이다.
특히 지방세법 개정안이 처리될 당시에는 강남구의회가 주도하여 12만 명이 넘는 강남구민들의 공동과세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구의원 6명은 국회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벌금형에 처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강남구의 독특한 집단행동은 사실 오세훈 전 시장의 재산제 공동과세부터 기인한 것이다.
역차별 정서: ‘강남 스타일’의 탄생
이런 상황에서 강남구에는 독특한 정서가 싹튼다. 이를테면 역차별 논리가 그렇다. 사실 강남·북 격차논리는 여야를 막론하고 사용되었던 정치적 의제였다. 무엇보다 이명박,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본격적으로 거론해 정치적인 이익을 본 의제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박원순 시장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강남구 특유의 정치적 편향성을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재산세 공동과세는 오세훈 전 시장의 작품이고, 지방세법 개정안 당시 열린우리당은 세목 교환을 통한 세수 조정을, 한나라당은 재산세 공동과세를 통한 수평적 재정조정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강남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역차별을 보고 있다는 사고방식의 근원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러나 특유의 정치적 편향 덕에 억압되었던 잠재적인 갈등 요소가 박원순 시장이라는 정치적 타자가 등장하자 분출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남·북 격차 문제를 감정적인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당시 여야 공통이었다. 실제로 2012년부터 진행된 서울시 주민참여 예산제에서는, 250명의 참여 주민을 통한 예산 배분에서 강남구를 제외했다. 상대적으로 재정여건이 좋다고 해서 각종 예산배분의 과정과 참여의 결과에서도 배제하는 것은, 현명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며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타당하다고도 할 수 없다.
강남 인프라를 강남구와 강남주민이 만들었나?
사실 한전부지 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강남구청이 개발 이익을 강남구에 환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근거도 없다. 무엇보다 현재 강남구가 향유하는 인프라는 강남구 주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다. 강남개발에 든 예산, 이를 위해 집중되어 관리된 학군체계, 용적률과 건폐율이라는 측면에서의 특권 등 현재 강남을 이루는데 지역주민 혹은 강남구청(지방정부)의 기능은 아주 미미했다.
한전부지만 해도 그렇다. 한전이 삼성동으로 이전한 건 1986년이다. 1980년 한국전력공사법이 제정됨에 따라 공사로 전환된 한전이 기존 청담동 사옥에서 새롭게 신축하여 이전한 곳이 삼성동이었다. 이 과정에서 강남구청의 역할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05년 6월 참여정부는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을 발표하고, 한전은 나주로의 이전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서울 사옥은 매각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도 강남구청의 역할은 없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강남구나 강남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는 정책과정의 결과로 파생된 일이다.
상식의 퇴화: ‘금 넘어온 것은 다 내 것’
당장 쟁점이 되는 1조 7,030억 원의 공공기여금 사용처를 둘러싼 논란을 보자. 강남구는 해당 공공기여금이 강남구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전체 해당 구역 내에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2005년 한전의 지방이전 계획에 호응하여 서울시가 수립한 ‘종합무역센터 주변지구 단위계획’에서 그 범위를 기존의 삼성동, 대치동 일대로 한정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이 이를 변경하면서 자치구가 다른 송파구의 잠실운동장까지 계획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조금, 웃음이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 그러면 삼성동이나 대치동 주민들은 탄천을 지나 잠실운동장 쪽으로는 산책도 안 하느냐고 뭐라 해봤자 소용이 없다. 또 1970년대 강남 개발을 위해 막대한 지원을 했고, 1975년까지는 아예 지도에서 강남구라는 곳이 없었다고 주장해도 이들에게 진지하게 먹힐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 일련의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 강남구청장이나 구의회, 그리고 서울시청사로 국회 앞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강남주민들의 머릿속에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감정이 팽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공공기여금이 대치동과 삼성동으로 한정되어 사용된다고 한들 아예 강남구의 남부 쪽이나 구룡마을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 지역에 재정을 사용할 것도 아니다. 더구나 해당 도시개발은 규모나 필요한 인허가 절차상 구청장의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내용도 못 된다. 당장 교통 계획만 하더라도 강남구청에서 말할 내용이 아니다.
그럼에도 공공기여금을 두고 구청장이 의제를 촉발할 때 강남구민이 서명운동 등으로 기꺼이 동원되는 이유는 기득권이 훼손되고 있다는 특유의 감정적 반감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들이 움직이면 가능하다는 집단적 의식이 있다. 실제로 강남구의 웬만한 재건축 단지 조합장은 소위 엘리트들이 즐비하다. 이번 신연희 구청장의 ‘해프닝’은 강남구의 상대적 우월감과 더불어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그 바탕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심리를 이용한 강남구청장의 못된 ‘정치쇼’가 존재하는 것이다.
신연희 구청장이 정치쇼를 벌이는 이유
1975년 성동구로부터 분구하고 주변의 자치구로부터 동을 떼와 형성된 강남구는 사실상 자연 발생적인 지역이라기보다는 억지로 성형된 인공적 지역에 가깝다. 지역적 정체성이라고 해봤자 내생적인 특징보다는 외부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졌다.
- 신세대의 발원지 압구정동과 청담동
- 사교육의 메카로 불리는 대치동
- 최대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강남역 일대 등
강남구는 소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모방과 추종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강남·북 격차가 정치적 문제로 확산하고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등장하면서 입장이 바뀐다. 특히 박원순 시장의 등장은 마을 공동체 만들기니 사회적 경제니 하는 전형적인 ‘비강남적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게다가 지정된 지 20년 가까이 되도록 재건축사업을 시작도 못 하고 슬럼화된 단지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사실상 강남구는 겉보기만 화려한 상황에 처해있다.
여기서 잠깐 신연희 구청장의 약력을 살펴보자.
- 1973년부터 서울시 공무원 생활
- 여성으로서 최초로 서울시 예산국장
- 이명박 전 시장 시절에 행정국장 역임
평생을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광역정부와 기초정부의 (역)관계를 잘 알고 있을 신연희 구청장이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걸까. 신 구청장이 서울시에 대해 계속 각을 세우는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필요를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자율·자치? 중앙정치 종속된 ‘박원순 저격’ 정치쇼
6기에 이르기까지 강남구청장은 대부분 새누리당의 내부 투쟁을 통해서 결정되었다. 실제로 1기에서 3기 동안 구청장을 했던 권문용 씨는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에 출마하려고 구청장직을 사퇴한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이는 오세훈 전 시장이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지방선거에서 강남구청장 공천장을 내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다음 구청장이었던 맹정주 구청장은 임기 시작부터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되면서 구설에 올랐다.
2010년 구청장으로 나선 이가 현재 구청장인 신연희 씨다. 당시에도 2014년에도 권문용 씨와 맹정주 씨 등 전임구청장은 새누리당에 공천신청을 한다. 사실상 강남구의 정치는 궁정전투와 다름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가 타당 국회의원인 김종훈 의원으로부터 국회의원 표창을 받는 곳이다. 구의회는 말할 것도 없겠다.
사실 재정적인 원칙에서 보면, 신연희 강남구청이 주장하는 말들은 전혀 귀담아 들을 만한 주장은 없다. 그저 궤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강남 독립 이면에 있는 흐름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지방자치와 자율이라는 내용에 대해 역설하는 강남구의 지방자치는 사실상 궁정 정치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에서 비상식의 정치쇼가 버젓이 횡행한다.
강남구를 분리 독립시켜달라는 말이 “답답해서 나온 말”이라고 신연희 구청장은 뒤늦게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그럼에도 최대한 오랫동안 이와 같은 정치쇼를 벌일 공산은 크다. 나름대로 박원순 저격수로서의 위상만이 강남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수단인 셈이고, 역차별이라는 망상에 빠져있는 강남구 주민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시 그런 비상식에 맞서는 방법이고, 여기에서 역시 정치의 힘을 고민하게 된다. 유행가처럼 흘러간 그런 ‘강남 좌파’ 류의 강퍅한 흐름이 아니라 강남구를 25개 자치구 중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공통 감각을 일깨우는 흐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