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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C(태터앤컴퍼니), TNF(태터앤프렌즈, 태터네트워크재단), 태터툴즈, 텍스트큐브…

이제 낯선 이름들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잊혀진 이름들이다. 사춘기 열병 같았던 블로그 시대가 그토록 허망하게 쇠락하면서 이 이름들도 함께 천천히, 하지만 너무도 쉽게 지워졌다. 이제 트위터와 페이스북, 모바일 메시징 서비스가 새로운 미디어의 총아로 떠올랐다.

블로그? 그게 뭐예요? 

다이내믹 대한민국에서 블로그는 이제 올드 패션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갑남을녀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출판할 수 있는 시대는 블로그 시대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블로그가 미디어 역사, 아니 인류 전체의 역사를 통틀어 차지하는 위상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억어린 후일담이고, 기약할 수 없는 바람이다. 좋은 시절은 갔다…

그래도 그는 꼭 만나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독립 설치형 블로그의 기념비이자 여전히 계속 쓰이고 있는 오픈소스의 역사, 텍스트큐브의 신정규다.

TNF 10년을 5일 앞둔 봄날,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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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4월 9일 오후
  • 성수동 인근 카페[/box]
신정규 혹은 인유어아이즈(inureyes)
신정규 혹은 인유어아이즈(inureyes)

신정규, 누구냐 넌? 

– 자기소개? 

신정규. 닉네임은 인유어아이즈(inureyes).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다.

– 뇌 연구 물리학자라고 하니까 되게 똑똑해 보인다. [빅뱅이론]도 떠오르고. 

[빅뱅이론]에서 묘사하는 유머코드는 아주 현실감 있다. 친구들(물리학자)하고 [빅뱅이론] 보면 드라마의 코드가 정말 현실에서도 통한다는 걸 느낀다. 물리학자에게 편견을 심어주는 의미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드라마지만, 그래도 저렇게나마 물리학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도 없으니까 반갑기도 하고 그렇다.

– 물리학자인데 왜 코딩을 하나. 

물리학자치고, 코딩할 수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계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걸 일일이 수작업으로 계산하기가 어렵다. 고체의 물성(성질)을 계산할 때라든지,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한 후 통계를 내야 한다든지 하는 일이 다반사라서 코딩은 자연스럽게 배울 수밖에 없다.

– 아, 그런가. 물리학과에서 코딩 배우나.

전산물리를 배우긴 배운다. 하지만 텍스트큐브와는 상관이 없다.

– 왜 물리학과를 선택했나.

재밌을 것 같아서. 사실은 반쯤 낚여서 선택했다.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전자과를 가고 싶었는데. 룸메(물리학과 선배)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면 물리학과에 가라고 하더라. 결국, 낚였다.

–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 

그때는 어려서. 대학 1년 다녔을 때라서.

– 지금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없나. 

그러려면 대기업을 만들어야지, 빌 게이츠나 잡스처럼.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위인이라는 기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위인이 된다. 내가 보기에 위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시대를 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 위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렇다. 가령,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우리 시대의 위인이다. 테크놀로지를 무기로 자수성가한 대자본가. 그런데 7,80년대를 생각해 봐라. 그때 출판된 위인전들은 무슨 군사 전략가, 무슨 위대한 장군 이런 사람들이 많다. 가령, 넬슨 제독이라던가. 그리고 아직 레드컴플렉스가 잔존하고는 있지만, 이제 누구도 이승복(“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조선일보의 조작 의혹이 있었다. – 편집자)을 읽지 않는다.

– 시대를 타지 않는 위인은? 가령 테레사 같은 사람인가? 

테레사 수녀라면 시대를 불문한 위인이라고 봐야지 않나 싶다. 테레사와 유사한 이미지로 헬렌 켈러가 떠오르는데, 헬렌 켈러 역시도 위대한 인간이긴 하지만, 사회주의자로서의 헬렌 켈러의 삶은 그 시대가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았나. (동감한다)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주의자로서의 헬렌 켈러는 시대(그 당대의 사회)가 ‘선택’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30살 이후의 헬렌 켈러를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 신정규라는 사람은 1) 머리 좋다. 2) 공부 많이 했다 3) 좋은 일 한다 4) 덕후일 것 같다. 이런 선입견이 있다. 어떻게 보나. 

그런 선입견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서 불만은 없다.

– 그런 일반화가 신정규라는 사람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 것 같나.

가장 많은 선입견은 ‘인터넷을 엄청 잘 할 것 같다’, ‘IT 트렌드도 잘 알 것 같다’는 거다. 사실은 전혀 모른다. 물론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잘 알지만. 그런데 ‘덕후’라고 하면 ‘텍스트큐브’가 일종의 덕후질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아직 살아 있다" 우리나라 오픈소스 블로그의 산 역사 텍스트큐브
“나 아직 살아 있다” 우리나라 오픈소스 블로그 프로젝트의 살아 있는 역사, 텍스트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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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F와 TNC 그리고 태터툴즈와 텍스트큐브

– 텍스트큐브(이하 ‘텍큐’)를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텍큐를 설명하면. 

블로그 소프트웨어다. 요즘 잘나가는 워드프레스 같은 거다. 예전엔 워드프레스를 텍스트큐브 같은 거라고 설명했는데, 이젠 거꾸로 됐네. (웃음) 텍큐는 개인이 설치해서 블로그나 홈페이지, 인터넷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비슷한 걸로 티스토리가 있다.

– 텍큐와 티스토리의 다른 점은 뭔가. 

정확히는 태터툴즈(텍스트큐뷰의 원형이자 전신)를 상용화한 서비스 중 하나가 티스토리다. 텍스트큐브를 개인이 가져가서 상용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다. 가령. 이즈로코(카이스트 학생 블로그 서비스), 예전 아름다운재단 사이트도 텍스트큐브로 만들었다.

– 널리 쓰였는데, 텍큐로 돈 좀 벌었나?

TNC가 구글에 인수될 때 약간의 운영자금 정도를 받았다. 그때 냉장고 바꿨다. (웃음)

– TNC와 TNF의 역사를 간단히 교통 정리하자. 

태터툴즈를 처음 만든 분은 JH 님이다. 처음에는 혼자 개인 프로젝트로 만들었다. 버전 0.90으로 출발해서 0.96까지. 그 뒤에 TNC가 설립됐다. 당시 설립자는 노정석 대표였고, 이고잉 님, 리체 님, 파파차 님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고 안다. JH 님은 창립 멤버에선 빠졌다.

– TNF는 어떻게 시작했나. 

TNF는 사용자 게시판에서 댓글 다는 걸로 시작했다. 메일링 리스트로 시작하고. 태터툴즈 1.0이 시작하면서 TNC에 항의 메일를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 적극적인 사용자 그룹으로 출발했다? 

그렇다. 그런 TNC에서 TNF에 서버 권한을 주면서 “니가 좀 도와주세요.”라고 한 거다. TNF의 자세한 역사는 기념 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TNF 10년 기념 사이트  http://needlworks.org/10yr-anniversary/
TNF 10년 기념 사이트

– TNC에는 후에 공식적으로 참여했나. 

나중에 전략기획고문으로 참여했다. 물론 돈 나오는 자리는 아니었다. (웃음)

– TNC와 TNF 초기 시절을 회상하면? 

당시는 메일링 리스트를 공유했던 시절이다. TNC에서는 TNF가 원하는 걸 대폭 수용했다. 시쳇말로 ‘다 해줬다’. 우리가 구글문서에 원하는 항목을 올리면, TNC는
“1억 원까지는 마음껏 요청하시라.”라고 할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굉장히 편한 오픈소스 활동이었다.

– TNC와 TNF의 관계를 간단히 정리한다면? 

TNC는 TNF의 운영에 도움을 주고, TNF는 TNC에 소스 수정을 포함한 브랜드 이미지, 개발을 협업했다.

– 슬로우뉴스에 비유하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슬로우뉴스 편집팀(TNC)의 서버 권한과 편집권을 필자(TNF)에게 줬다면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 티스토리는 누가 만들었나.

TNC가 만들었다. 하지만 티스토리는 태터툴즈를 기반으로 하고, 나는 태터툴즈의 코딩에 함께 참여했다.

– 텍스트큐브는 인어유어아이즈가 거의 다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아니다. 함께 만들었다. 내가 참여한 코딩의 부피가 가장 커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나는 역으로 코딩하면서 오픈소스에 참여한 다른 개발자들을 통해 많이 배웠다. 내가 한 일은 참여자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메인테이너’ 역할이었다. 오픈소스 그룹의 특성상 가장 많은 기여(코딩)를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는 데, 그래서 밖에선 그렇게 보였나보다.

– TNF는 한마디로? 

태터툴즈를 매개로 모인 코딩을 통해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

– 그러니까 오픈소스 그룹인가?

그렇다. 아무래도 GNU 프로젝트GPL 영향을 많이 받았다. (GPL은 ‘GNU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를 뜻하는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에서 만든 자유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다. – 편집자)

– 그럼 리차드 스톨먼을 존경했나?

당시(2006년 정도)에는 애런 스워츠를 더 좋아했다.

CCL(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저작물을 간편하게 널리 더불어 사용할 수 있는 방법론. – 편집자) 보급하는 운동을 했고, 실종 아동 찾기 서비스도 하고, 스팸막는 서비스도 하고. CCL 운동은 한국에선 최초로 했다고 안다.

텍스트큐브 공헌자 목록   http://needlworks.org/10yr-anniversary/textcube/
텍스트큐브 공헌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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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성장과 쇠락 

– 태터툴즈, 텍스트큐브가 한창 성장할 때를 회상하면?  

처음에는 유저들이 많아지면서 좋았다. 그런데 점점 더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욕먹고. (웃음) 특히 사업하자는 제안들이 많았는데, 거절하면 또 거절한다고 욕먹고… 그래서 관심이 좀 부담스러워진 측면이 있다.

– 사회 전체로 봐도 블로그가 한창 성장하던 시기였는데. 

처음에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려고 만들었는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오히려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들이 블로그를 잘 쓰더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블로그라는 도구를 통해 전체적인 힘의 균형을 찾아주고 싶은 것이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되지 않은 것 같다.

– 포털 영향력은 여전하고, 소위 SNS 시대가 오면서 정보 불균형, 독립은 더 어려운 문제가 됐다. 

그렇다. 정보 불균형에 균형을 찾아주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 블로그가 새로운 시대의 대안 미디어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전체적인 힘의 균형을 위해 기존 거대 플랫폼 바깥에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할 수 있길 바랐다.

사실 기존 전통 미디어들은 블로그로 인해 타격을 입었지만, 결국 그 힘은 포털이라는 새로운 ‘게이트키퍼’에게 돌아갔다. 메타 블로그가 쇠락하고, 파워블로거’지’ 현상이 생기고, 포털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를 회상하면, 겐도 님은 독립 블로그(설치형 블로그)는 인기를 얻더라도 그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으니, 결국 티스토리가 그 트래픽을 담당하는 역할을 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티스토리도 포털(에 종속된) 서비스고, 결국은 포털이 임시조치하면 자기가 쓴 글이 어느 순간 차단되는 시스템 아닌가.

그래서 그 거대한 플랫폼 바깥에 텍스트큐브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이버

– 지금 이 순간에도 플랫폼 독점은 점점 더 심화한다. 

언제나 플랫폼 독점은 문제를 가져온다. 항상 대안은 필요하다.

– 지금은 TNF는 어떤 상황인가. 

소수가 남아서 개발하고 있다. 지난주에 새로운 버전이 나왔다. 39번째 버전이다.

텍스트큐브 39번째 버전
텍스트큐브 39번째 버전

– 외롭지는 않나.

마음은 굉장히 편하다.

– 텍스트큐브 블로그는 몇 개가 남아 있나. 

4만 개 정도가 남아 있다. 대부분 휴면 상태에 가까울 것으로 본다.

– 텍스트큐브 블로그가 가장 많았을 때는 규모가 얼마나 됐나. 

8만 개에서 10만 개 정도.

– 티스토리는? 

700만 개 정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숫자는 700만 정도다.

– 블로그 시대는 쇠락했다고 보나. 

그렇게 생각한다. 태터캠프를 10번 열었는데, 마지막 주제가 “변화의 시대”였다. 커뮤니케이션이 거세당한 블로그는 무엇을 원동력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를 화두로 삼았다. 단편적인 글 단위로 소셜 서비스에서 유통이 일어나고, 블로그 운영자는 무엇을 동력으로 글을 쓸까. 어차피 원자화된 개별 글 단위로 소비되니까. ‘누가’ 쓰는지, 그 맥락은 점점 더 중요하지 않다.

블로그에는 어떤 사람의 컨텐츠가 시간의 역순으로 차곡차곡 쌓이면서 역사성이 축적된다.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 서비스에선 어지간해서는 블로그 시대에 블로거가 쌓아갔던 자기 역사성, 브랜드를 쌓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블로그를 다시 움직이게 할 원동력이 뭔지는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블로그, 안녕~!" 첫인사를 작별인사처럼 남기고 너무 빨리 쇠락한 블로그, 블로그 시대
“블로그, 안녕~!” 첫인사를 작별인사처럼 남기고 너무 빨리 쇠락한 블로그, 블로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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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등장, 소셜 네트워크 시대 

–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소셜 서비스의 차이점은 뭐라고 보나. 

블로그는 격렬한 사회적 담론이 충돌하는 공간을 제공했다. 소셜 네트워크에선 그게 어려워진다. 우선은 컨텐츠를 길게 쓰기 어렵거나 길게 쓰지 않고, 더불어 친한 사람들 끼리끼리만 읽으니까 싸움, 생산적인 토론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아진다.

– 지난 10년 동안의 블로고스피어(참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다. 쉽게 말해 ‘블로그계’)를 평가한다면.

개인 홈페이지에서 싸이월드,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그리고 메시징 서비스까지. 정말 숨 가쁘게 변화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공간을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라고 불렀던 시절은 블로거 스스로 공격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온라인에서 구축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상주의자들이 꿈꿨던 무엇이 있었지만, 그것을 성취하지는 못한 채로.

돌아보면 블로그는 온라인에서 개인 브랜드화의 첫 출발점이었다. 결국 살아남은 블로거들은 자기 브랜드를 구축한 블로거들이다. 가령, 레진, 허지웅, 민노씨 등…. 파워블로거(지)를 사회문제로 만들긴 했지만, 문성실이나 베비로즈 같은 블로거들도 어쨌든 브랜드화에 성공한 블로거들이라고 평가한다. 

– 트위터는 어떻게 보나. 인상적인 사례라든가. 

트위터의 최대 수혜자는 진중권이었던 것 같다. 진중권은 기존의 명망을 가져와서 트위터를 활용한 점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만, 특이하게도 이중적 자아랄까? 아니면 진중권 본래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일테면, ‘논객’ 진중권에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한다든지 하는 면에서 다른 유명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트위터를 활용했다고 본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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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이라는 관점에선 미디어는 진화했다 

– 블로그라는 미디어와 SNS라고 불리는 소셜 서비스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연결성이다.

물리학적으로 모든 생명을 가진 시스템(주로 생물)은 복잡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온라인상으로는 보면, 연결성이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블로그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은 소위 ‘글빨’ 되는 사람, 즉 소수였는데, 지금은 모든 계층에 대한 수요가 마련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미디어는 확실히 진화했다고 본다.

– 그 진화의 방향은 옳다고 보나. 

그 뱡항은 옳기도 하지만, 옳지 않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회는 뭐라고 해야할까, 쉽게 말해, 심각한 부분이 있어야 돌아간다. 우리가 지금 중세를 산다면 고민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대 이후, 천부인권을 인정한 그 시간 이후에는 ‘합의’라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그 사회를 지탱하는 합의라는 것. 쉽게 말해 사상이라는 것도 시대가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 방향은 말초적인 욕망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 극단이 20세기 초의 사상적 투쟁이라고 본다. 그 과정을 거쳐서 인류는 지금 여기까지 도달했다.

– 그런데? 

머리가 없는 생명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건 머리, 뇌 조직이다. 인간은 복잡한 생각을 한다. 연결성이 늘어나는 상태에서 그 연결을 담당하는 매체 혹은 심각성을 담당하는 매체는 뭘까. 그 질문을 던지면, 바로 그 사회적인 합의, 사회를 유지하는 사상을 담당하는 매체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 같다.

"머리 역할을 하는 미디어가 없다."
“머리 역할을 하는 미디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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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시대 혹은 진지함이 사라진 시대 

– 심각함과 진지함이 사라진 시대다?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한 이유는 좀 더 나은 답을 낼 수 있는 가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게 교육이 선행됐던 이유다. 공동체의 주체가 심각하게,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다른 체제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전제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심각함, 진지함이 점점 더 사라진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의 소통 속도는 너무 빠르다. 그 속도가 빠르면 빨라질수록 토론은 필요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같은 진영의 사람끼리 모여서 서로 자기 만족하면 그만이다.

– 블로그가 가졌던 차별성은 뭐였다고 보나. 

블로그는 지금의 소셜 매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끼리끼리를 조장한다. 내부적으로는 연결성을 강화하지만, 전체적인 사회적 공동체가 발전하는 토론이랄까, 정반합이랄까. 그런 것들이 사라진다.

– 아주 공감한다. 미디어의 속도가 존재의 속도를 압도한다. 

사람이 생각하는 속도보다 미디어가 컨텐츠를 생산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 속도 속에서 사람들은 끼리끼리 동질 집단화하는 속성을 강화한다. 그래서 심각한 이야기는 패가 순식간에 갈린다. 왜냐하면, 자기 편을 찾기는 쉽지만, 빠른 미디어의 속도 속에서 내용과 의견을 성찰하고 고민할 시간은 없으니까. 자기편만 찾으면 된다. 의견을 공들여  읽는 건 어렵지만, 자기편 찾는 건 쉽다.

Dark_ghetto28 (CCL : BY)
Dark_ghetto28 (CCL : BY)

– 이고잉(생활코딩)은 “트위터는 진영을 비즈니스화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블로그의 장점은 의견이 충돌할 때 빈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그건 댓글을 쓰는 공간일 수도 있고, 트랙백을 통해 마치 편지를 나누듯 떨어져서 나누는 대화의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옮겨 가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편 먹기를 수반해서 진화했다.

– 그런 맥락에서 블로그 시대를 한 번 더 회고한다면. 

처음으로 온라인이 대중화한 시대의 상징으로 나는 옥션을 꼽는다. 2002년 옥션이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비로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접점이 생기고, 온라인 상거래 시작됐다. 온라인 상거래가 시작됐다는 건 이제 사람들이 온라인을 믿기 시작한 첫 시대라는 의미다.

  • 옥션은 1998년 4월에 창립했다. 2002년 개편과 함께 온라인 마켓으로 사업모델을 바꾸고 ‘우리가 만드는 열린시장, 옥션’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 위키백과, ‘옥션(웹사이트)’ 중에서

블로그는 그 직후에 왔다. 우리는 인류상 최초로 온라인이 대중화한 시대를 봤고,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블로그가 그 진화를 거듭해 쇠락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블로그가 재밌었던 이유는 성향상 리버럴들이랄까, 그런 분들이 블로그를 많이 해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 페이스북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언제 망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망할지는 궁금하다. 사람들이 언제 지칠까. 나는 복잡계를 연구한다. 멸종은 한순간 온다. 확 망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소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뭘지가 궁금하다. 기존의 소셜 서비스들은 모두 한 번에 확 망했던 것 같다. 가령, 네이버 지식인이나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을 보라. (그러게. 왜 망했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확 망했다.

– 그 사소한 계기는 뭘까?

의외로 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시스템의 피로도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페이스북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피로도가 거기에 방문해서 얻는 효용보다 높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몰락할 것 같다. (끝) 

thierry ehrmann, CC BY https://www.flickr.com/photos/home_of_chaos/10022057243
thierry ehrmann,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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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신정규라는분 이메일 알수있나요? 물리학자를 꿈으로 두고있는데요
    어쭈어보고싶은게 있어서 그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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