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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신화 8: 남의 저작물을 많이 고칠수록 저작인격권이 심하게 침해된다

“이게 정말 불법이 아니라고요?”

저작권에 관한 잘못된 상식은 뜻밖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이용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마저 움츠리게 합니다.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잘못된 저작권법 상식, 그 신화를 하나씩 깨뜨려 보시죠. (편집자)

이런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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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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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숙  vs. 송파구청 사건: 원저작자 동의 없이 변형된 저작물

어떻게 된 일이냐고요? 송파구청은 2002년 월드컵을 맞아 기념 조형물을 공모했습니다. 신은숙 작가는 여기에 공모했고, 당선됐죠. 그래서 만든 게 첫 번째 사진의 조형물입니다. 그걸 송파구청 측에서 아래 사진처럼 변형했어요. 목적을 전광판을 설치하려면 원 조형물의 구조가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위 사진 속 해당 조형물을 만든 작가였다면 어떠셨을 것 같나요? 화가 났을까요? 안 났을까요? 저라면 몹시 화가 났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함부로 바꿔버렸으니까요. ‘작품’을 망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은숙 작가도 송파구청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했습니다. 피고인 송파구청 측에선 계약상 원 저작물을 변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항변했죠. 하지만 법원은 계약 내용상 그렇게 볼 수 없다고 신은숙 작가 손을 들어줍니다. 결국은 계약 조건 외에 1천만 원을 송파구청은 신은숙 작가에게 지급해야 했습니다.

송파구청

저작인격권 ≠ 저작재산권

‘신은숙 vs. 송파구청’ 사례는 저작인격권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요. 저작인격권은 저작재산권과는 전혀 다른 권리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편합니다. ‘신은숙 vs. 송파구청 사건’은 그래서 일종의 원저작자에 대한 ‘명예훼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떤 사람을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하는 것이 명예훼손입니다. 어떤 작가(원저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작품(원저작물)을 함부로 변형해서 그 작가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킨다면? 저작인격권 침해는 구조적으로 명예훼손과 거의 동일합니다. 즉, 저작인격권은 원저작물을 변형해서 그 작가의 명예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한상진 교수 vs. KBS, ’21세기 강좌 사건’ 

저작인격권과 관련해선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KBS 21세기 강좌’사건이라고 불리는 사례인데요. KBS가 한상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를 초빙해 강의를 맡깁니다. 한상진 교수는 1시간 남짓 강의를 녹화하죠. 그런데 KBS는 이 녹화분을 추려 40분 정도 분량으로 방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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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문제가 없어 보인다고요? 편집된 방송본이 한상진 교수의 의도와는 달리 정권에 친화적인 부분만 살리고, 정권에 비판적인 부분을 모두 ‘편집’했다면 어떨까요? 이에 한상진 교수는 KBS에 ‘사죄광고’을 요구했고, 법원은 저작인격권(동일성유지권) 침해를 인정해 사죄광고를 명령합니다.

방송출연계약에 따라 60분간 방송하기로 한 프로그램을 위해 63분에걸쳐 강연을 녹화하였으나 강연자가 연술한 내용 중 23분에 해당하는 중요부분의 내용을 방송사가 임의로 삭제수정하여 40분 간 방송하였다면 방송사는 강연자와의 그 출연계약을 적극적으로 침해함과 동시에 강연자의 저작인격권(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방송사는 그 고의에 의한 불완전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인하여 강연자가 입은 손해를 전보할 의무가 있다.

– 서울고법 1994년 9월 27일 선고, 92나35846, 제9민사부 판결: ‘사죄광고’ 확정

‘남의 저작물을 많이 고칠수록 저작인격권은 심하게 침해된다’라는 명제가 신화인 이유 

그러면 “남의 저작물을 많이 고칠수록 저작인격권이 심하게 침해된다.”는 명제는 왜 신화일까요? 맞는 말 같지 않나요? 앞서 살핀 심은숙 작가의 조형물도 송파구청 측에서 많이 고치니까 괴물처럼 흉칙해지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많이 고칠수록 저작인격권 침해가 심할텐데 왜 이 명제는 옳지 않은 걸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원저작물을 너무 많이 변형해서 그 작품이 누구의 작품인지를 알 수 없도록 변형하면, 즉 너무 심하게 고쳐버리면, 오히려 그 작품의 원저작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저작물의 창작행위로 보아야 합니다. (주의할 점! 저작인격권 침해가 아니라고 해서 곧바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작권은 다양한 권리들로 구성됩니다.)

저작인격권 자체에 관해 생각하는 분들이 아주 적은데요. 이처럼 저작인격권은 저작재산권과는 상당히 다른 성질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문장을 신화로 뽑아봤습니다. 즉, 아예 누가 원저작자인지 모를 정도로 원자작물을 바꿔버리면, 원저작자는 기분이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겠죠. 왜냐하면 자신이 봐도 이게 자신의 작품인 걸 모를테니까요.

Chris Potter, CC BY

Chris Potter, CC BY

대법원 판례 중심으로 본 저작인격권

1. 저작인격권에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이 있다.

① 공표권이란 저작자가 그의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아니할 것을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저작권법 제11조제1항).
② 성명표시권이란 저작자가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또는 저작물의 공표 매체에 그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할 권리를 말한다(저작권법 제12조제1항).
③ 동일성유지권이란 저작자가 그의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말한다(저작권법 제13조제1항).

2. 저작인격권은 저작자 일신에 전속한다

따라서 저작자의 사망 후에 그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저작자가 생존하였더라면 그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될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그 행위의 성질 및 정도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그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저작권법 제14조)

3. 복제권 침해를 인정할 수 있는 복제 범위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원저작자 이름으로 무단 복제하면 복제권 침해가 된다. 이 경우 저작물을 원형 그대로 복제하지 아니하고, 다소의 수정증감이나 변경을 가하더라도 원저작물의 재제 또는 동일성이 인식되거나 감지되는 정도이면 복제로 보아야할 것이다. 원저작물의 일부분을 재제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원저작물의 본질적인 부분의 재제라면 역시 복제에 해당한다.

4. 저작인격권 침해 유형

타인의 저작물로 공표되게 되면 원저작자의 성명표시권의 침해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원저작물을 복제함에 있어 함부로 그저작물의내용, 형식, 제호에 변경을 가한 경우에는 원저작자의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한 경우에 해당한다.

5. 침해 구제 방법받을 수 있는 방법

저작자는 고의 또는 과실로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6. 정신적 피해 인정

저작인격권이 침해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자는 그의 명예와 감정에 손상을 입는 정신적고통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경험법칙에 합치된다.

7. 저작인격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소설을 수정한 경우)

수정한 내용이 주로 해방후 맞춤법 표기법이 바뀜에 따라 오기를 고치거나 일본식 표현을 우리말 표현으로 고친 것으로서, 망인 스스로 또는 그 작품의 출판권을 가진 출판사에서 원작을 수정한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다면 그 수정행위의 성질 및 정도로 보아 사회통념상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저작자 사망후의 저작인격권(저작물의 동일성유지권) 침해가 되지 아니한다.

8. 저작인격권은 양도하거나 이전할 수 없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재산권과는 달리 일신전속적인 권리로서 이를 양도하거나 이전할 수 없는 것이므로, 비록 그 권한행사에 있어서는 이를 대리하거나 위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저작인격권의 본질을 해하지 아니 하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고, 저작인격권 자체는 저작권자에게 여전히 귀속되어 있다.

9. 공동저작물에 대한 저작인격권 침해

공동저작물에 대한 저작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 공동저작자 각자가 단독으로 자신의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저작인격권이나 저작재산권을 이루는 개별적인 권리들은 저작인격권이나 저작재산권이라는 동일한 권리의 한 내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각 독립적인 권리로 파악하여야 하므로, 위 각 권리에 기한 청구는 별개의 소송물이 된다.

참고.

대법원 1989. 10. 24. 선고 89다카12824 판결【위자료】
대법원 1999. 5. 25. 선고 98다41216 판결 【손해배상(지)】
대법원 1994. 9. 30. 선고 94다7980 판결【손해배상(지)】
대법원 1995. 10. 2. 자 94마2217 결정【서적출판.인쇄.발매및배포금지가처분】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13다22775 판결【저작권침해금지등】

저작권 신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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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경신
초대필자, 오픈넷 이사

오픈넷 이사.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진실유포죄], [호모 레지스탕스] 등 저자.

작성 기사 수 : 3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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