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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일하다 아파도 왜 책임은 노동자 몫인가. 기업의 무책임, 정부의 외면 속 병든 노동자는 늘어간다. (전수경/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6분)

지난 6월 19일, 서울 중구 한화오션 본사 앞 30미터 철탑에서 97일 동안 농성하며 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현실을 알리고자 했던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땅으로 내려왔다. 시민들의 연대가 지속되고, 정당과 노동·사회단체의 압력도 커지면서 한화오션도 더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는 여전히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씨가, 경북 구미에서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 씨가 공장 옥상에서 농성 중이다. 세종호텔의 20년 차 일식집 주방장이던 고진수 씨가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인 지 150일이 지났고, 화재로 타버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노동자들을 해고하자 박정혜 씨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인 지는 550일이 지났다.

목숨건 고공농성

내가 속한 노동건강연대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함께 지난 6월 19일,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건강 위기에 대해 긴급 입장을 발표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위험한 철탑 구조물에 갇혀 있던 김형수 노동자는 건강이 위험해져 병원에 실려 갈 정도가 되자, 비로소 땅으로 내려왔다.

김형수 노동자가 농성하던 도로 위 구조물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린다. 박정혜 노동자가 농성 중인 공장 옥상은 바닥 온도 40도에 이른다. 신체 건강은 물론, 외떨어진 공간에서 홀로 버티는 고립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신 건강에도 치명적 위협으로 작용한다.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는 고용주와, 대화, 갈등 조정의 의지와 능력조차 없는 정부로 인해 농성이 장기화되고, 이로 인해 건강이 위협받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가 적지 않다.

건강불평등과 ‘산재자살’과 같은 노동자 건강문제를 연구해 온 예방의학 의사이자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인 김명희는 개인이 아닌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의 건강을 짚어 온 전문가다. 지난해 12월 그가 펴낸 ‘가장 평범한 아픔’에는 빈민, 이주민, 여성, 어린이, 돌봄 노동자, 산재 노동자, 건강보험 체납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의료적 편견이 어떻게 건강을 해치는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서 김형수 지회장 고공농성 해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제공

열악한 노동자일수록 더 아프다

노동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 않으면 ‘자기관리에 게으른 몸’이라는 이유로 밀려나고, 산재로 다치거나 아프면 산재보험제도 앞에서 검열과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이 땅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나는 이를 지켜봐 온 활동가로서 ‘가장 평범한 아픔’이라는 책 제목이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건강정책을 결정하는 정부 관료와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 기업은 비용 핑계를 내세워 노동자들의 건강을 외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열악한 노동자일수록 더 많이 아프다. 국가는 이들을 보호하는 데 무관심하고 무능하다.

인터뷰나 실태조사로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간병, 청소, 급식 조리 같은 고강도 육체노동을 하는 중장년은 물론 방송영상업계 종사자,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같은 20~30대 청년들도 근골격계 질환을 안고 산다. 이들은 아픔을 견디면서 일을 한다. 일을 쉬면 소득이 끊기니, 퇴근길에 병원에 들러 침, 도수치료, 물리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등 갖가지 치료를 받는다.

이러한 질환은 일로 인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비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가입되어 있어도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이유로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는 건강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다. 일하다가 병이 들고, 치료비를 벌기 위해 다시 일해야 하는 악순환이다. 충분한 휴식도 누리지 못하다보니 병은 더 깊어진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만난 한 여성 노동자는 화장품 용기 조립 공장에서 20년을 일하다가 어깨 통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알고 보니 조립라인마다 어깨 수술을 받은 이들이 여럿이었다. 자신을 수술한 정형외과 의사는 “설거지를 많이 해서 어깨가 아픈 것 같다”고 말했단다. 수술받은 다른 여성 노동자들도 병원에서 ‘집안일’, ‘오십견’ 때문에 질병이 생긴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공장 관리자들은 “아줌마들 일하게 해준 고마운 회사인데 산재 신청해서 배신 때리면 안 된다”고 사전에 경고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선제적으로 산재가 아니라 집안일 때문이라고 ‘불안 요소’를 정리했다. 조립 경력 20년의 노동자들은 어깨에 병이 나 수술까지 했지만 산재보험은커녕 수백만 원의 의료비를 개인이 감당하고 또 무급휴가까지 써야 했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일로 인해 발생한 질병의 의료비까지도 결국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노동자의 건강 미끼로 이윤 추구하는 의료체계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노동건강연대에서 활동하는 예방의학 의사 임준은 저서 ‘오늘도 무사히’에서 산재보험과 산업안전보건체계가 보편적인 의료보장제도와 유리된 채로 설계되고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노동자의 건강을 미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공급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즉, 일하다가 아프거나 다치는 일이 점점 개인의 책임, 즉 자기관리의 영역으로 여겨지면서 노동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매우 커지고 있다. 또한 산재보험은 보험료 지출 관리를 명분으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건강 문제에 눈을 감고 있다. 물리적인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산업안전보건은 노동자의 안전을 공학적·기술적인 문제로 치환하여 노동자를 컨설팅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등 값비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여성 노동자 중에는 젊은 시절 임금노동자로 일하다가 나이가 들어 전통적인 고용구조 밖에서 일을 찾은 중장년 여성이 많다. 하지만 출발부터 임금이나 고용이 불안정한 청년들도 적지 않다. 기업이 제공하는 복지에 기댈 수 없는 소규모 사업장,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사람들, 사업장 개념 자체가 부재한 프리랜서들은 전통적인 임노동 고용을 전제로 한 산재보험과 산업안전보건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이들의 질병은 산재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집계하는 산재 발생률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 결과 수많은 불안정 노동이 배제된, 부실한 산재율을 기준으로 산업재해 정책이 수립되고 있다.

정부에 발표에 따르면 해마다 2,000여 명이 일하다가 죽음을 맞고(이마저도 배달라이더 같은 플랫폼 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의 산재 사망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해마다 13만여 명의 노동자가 다친다. 하지만 임준 교수는 실제로는 10배가 넘는다고 말한다.

신청주의, 입증책임, 사업주의 거부감 같은 장벽과 싸우느라 노동자의 수급권이 침해당해 온 역사를 바꾸기 위해 임준 교수는 건강보험 시스템처럼 진료실의 의사가 요양급여 신청을 하고 이를 산재 신고로 대체하는 방안을 2000년대 초부터 제안했다. 의학적·법률적 서비스를 구매해야만 신청이라도 할 수 있는 벽을 허물고, 진료실을 방문한 노동자라면 산재보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 운동은 산재보험 개혁을 핵심 의제로 내세우기 어렵고, 당사자인 취약한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 아픈 노동자를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으로 상정해 설계한 제도 속에서 사회안전망의 성긴 그물은 정작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들을 놓친다. 이로 인해 소득 불평등은 건강 불평등으로 번진다. 새 정부는 이전 정부들처럼 산재 감소 목표 수치를 정해놓고 숫자 맞추기식으로 노동자 건강권을 다루지 않기를 바란다.

공공의료 부재 속 악화되는 건강불평등

올해는 메탄올 실명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해다.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 인천과 경기도 부천의 공단에서 20~30대 노동자 6명이 메탄올 급성 중독으로 시력을 잃었다. 일감이 많을 때 공장에서 일하던 시간제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공장 알바는 카페나 편의점처럼 최저시급을 주는 건 같지만, 야간·주말 등 압도적인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서 목돈을 모으려는 청년들이 많이 왔다. 새 스마트폰 출시를 앞두고 부품을 찍어내느라 공장은 밤새 돌아갔다. 부품 세척제로 쓰는 메탄올 용액은 신경계를 손상하고 실명을 일으켰지만, 공장에는 환기장치 조차 없었다.

아르바이트생 중에는 출근 5일째의 대학생도, 군대를 막 제대한 이들도 있었다. 출근 후 며칠이 지나자 감기가 온 듯 몸이 안 좋았던 노동자들은 약국에서 감기몸살약을 사 먹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밤샘 작업을 했다. 그러다 실명해 쓰러진 자식을 데리고 병원에 간 어머니가 의사에게 “공장에서 쓴 약품 때문 아닐까요?”라고 물었을 때, 의사는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가 불법 파견노동자라는 것을 정작 쓰러진 당사자들은 몰랐지만, 정부는 알고 있었다. 불법 파견 현장은 무정부 상태였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작업 환경을 감시·감독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은 멈춰 있었다. 공공보건의료는 부재했고, 공장노동자의 건강을 살펴야 하는 이른바 산업보건은 수익사업을 하는 민간위탁이었다. 약을 지어 먹고 공장으로 돌아가는 노동자에게 약사는 말을 걸지 않았고, 의사는 위험물질을 의심하지 않았다.

메탄올 실명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2016년 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중소기업을 돕자며 파견 노동 확대를 내세웠다. 한국경총, 중소기업중앙회 등 기업단체들은 제조업 공정의 파견 노동 허용이 글로벌 트렌드라며 거들었다. 노동자 건강을 의료의 영역을 넘어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노동하다가 아프고, 노동하다가 죽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국가에서는 노동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아프고 죽게 될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이를 이익 모델로 삼는 의료상업화를 놔둔채 공공의료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평범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논의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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