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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GS칼텍스의 기업 이미지 광고다. 훌륭한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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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센터 상담 노동자는 고객으로부터 온갖 욕설을 들으며 감정노동에 시달린다(참조: 매일노동뉴스, 토요경제).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화가 나는 일이고, 모욕감이 장난이 아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GS칼텍스는 상담 노동자의 ‘가족 목소리’를 안내 멘트로 내보냈다.

예컨대, 귀여운 아이의 실제 목소리로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저희 엄마가 상담해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대기 시간에 내보냈다. 그랬더니 욕설이 크게 줄고, 고객이 더 친절하고 상냥해졌다.

행동경제학에 근거한 ‘넛지'(Nudge) 기법을 감정노동의 해법으로 활용한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제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왜 내가 욕을 듣고 있어야 하지?
왜 내가 이런 욕을 듣고 있어야 하지? 나도 아버지의 “소중한 딸”이고, 어린 딸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라는 걸 고객에게 ‘넌지시'(넛지!) 알리면 어떨까? (출처: GS칼텍스, ‘마음이음 연결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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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nudge)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팔꿈치로 살짝) 쿡 찌르다’는 뜻이다. 행동경제학의 용어로 쓰일 때는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는 원인을 당근(인센티브)와 채찍(벌칙)으로 보고, 행위자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행위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법을 의미한다. 아래 화장지 보관함을 사례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넛지 기법을 활용한 사례. 화장실 휴지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은연 중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한다.
넛지 기법을 활용한 사례. 화장실 휴지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은연 중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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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의 ‘넛지’ & 현대카드의 ‘엔딩 폴리시’

상담 노동자의 감정노동과 관련해선 2012년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트윗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이름하여 ‘엔딩 폴리시'(Ending Policy; 전화 끊기 정책) 매뉴얼이다. 고객의 욕설 수위에 맞춰 상담원이 1단계-2단계-3단계 경고 조치를 취하고, 그래도 욕설하는 고객에게는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보고서[footnote]한국노동연구원, ‘상품판매원·전화상담원의 감정노동 실태’, 박찬임·신현구·강병식, 2013년 9월호, 통권 제102호.

감정노동 전화상담 콜센터

[/footnote]에 따르면 전화상담원 중 고객의 폭언과 욕설을 경험한 비율은 65%, 성희롱을 당한 비율은 32%에 이른다고 한다.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은 ‘엔딩 폴리시’ 매뉴얼을 추진하며, 욕설 고객 전화를 종료해도 인사 및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했다. 심지어 욕설 고객(=엔딩 폴리시 고객)에게 심한 욕설을 당한 직후에는 약 30분간 휴식을 취하도록 조치했다(참조: 서울신문, ’17. 4. 14).

정태영 트위터
정태영 당시 현대카드 사장의 트위터 게시물 (2012년 1월 25일, 관련 기사 참조: 이투데이)

GS칼텍스식 해법이 행동경제학의 넛지 기법을 활용한 미국적인 방식이라면, 현대카드식 해법은 정태영 부회장이 회사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기업 수뇌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매우 한국적인 방식이다.

GS칼텍스 해법과 더불어 현대카드 해법을 접하면서, 그동안 노동조합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 운동이 ‘감정노동’의 해결을 위해 뭐를 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엔딩 폴리시 전면 도입 필요, ‘표준’ 바꿔야 

나는 19대 국회(2012년~2016년)에서 금융 부문을 다루는 정무위 국회 보좌관으로 일했었다. 그래서 2014년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터졌을 때 TM(텔러마케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한 적 있다. 그때 경험에 의하면, 보험 산업에 종사하는 텔레마케터(TM) 노동자만 약 10만 명이다.

전체 감정노동자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다. 한 조사에 따르면, 감정 노동에 연루된 근로 시간을 기준으로 감정노동자의 규모를 추정하면, 그 수가 약 740만 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 전체의 41.8%에 해당한다고 한다.[footnote]  김인아 외. 2014. 『감정노동 근로자의 건강관리방안 연구』, 안전보건공단.

감정노동자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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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면, 노동조합이 주도해서 현대카드 해법의 전국화, 즉 엔딩 폴리시(Ending Policy) 매뉴얼을 ‘단체협상의 요구 사항’으로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GS칼텍스의 ‘넛지식 안내’와 현대카드가 하는 ‘엔딩 폴리시 매뉴얼’을 결합하는 것이다. 욕설 고객의 비율도 줄이고, 그래도 욕설을 하는 고객의 경우 강제 종료를 하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그간 노동계의 해법은 ‘감정노동 수당’을 추가로 더 받는 것 정도였다. 감정노동 수당을 신설하는 해법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실효성이 의심되는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노동자의 인격권 보장’을 주요한 정책 목표로, 현대카드 해법의 전국화 즉, 엔딩 폴리시 매뉴얼의 전면 도입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콜센터
상담 노동자의 ‘인권격 보장’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서 기업간 경쟁은

  1. ‘더 잘하기 위한’ 경쟁도 있지만,
  2. 남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쟁도 있다.

1번이 ‘선택되기 위한’ 경쟁이라면 2번은 ‘낙오되지 않기 위한’ 경쟁이다. 상담 회사 차원에서 볼 때, 욕설 고객의 언어폭력에도 속수무책 무방비 상태였던 것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주도해서 ‘전체 게임의 규칙’을 바꿔주면, 기업 경영자도 욕설 고객의 인격 모독적인 욕설을 옹호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진다. 물론, 상담 회사가 하청-용역 회사인 경우 작동원리가 달라진다. 그래서 더더욱 ‘상담 산업의 표준’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 그리고 서비스노조, 통신사 노조 등이 조직적으로 나서면 사회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Bryce Johnson, Call Centre, CC BY https://flic.kr/p/4YqBFa
Bryce Johnson, “Call Centre”,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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