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지난 6월 21일 조선일보는 범죄 기사를 게재하면서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조국 전 장관의 가족 이미지 삽화를 게재했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악의적 보도와 실수에 의한 오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정보학회는 문제의 본질과 원인, 법·윤리적 책임 등을 짚어보기 위해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 악의적 보도와 실수 사이: 언론 윤리 회복을 위한 긴급 토론회 (동영상 링크)
- 7월 22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토론회는 세 개의 발제와 네 개의 토론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이 중에서 세 개의 발제를 정리해 독자와 공유합니다. 발제 부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보수 언론의 적대 문화와 격분 산업
-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악의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
-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실수와 신화(Myth): 조선일보의 실수(Mistake)의 의미
이 글은 정미정 위원의 발제를 발췌하고 정리한 글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최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한 언론중재법안을 논의 소재로 삼고 있는 바, 해당 법안에 관한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라봅니다. (편집자)
- 찬성: 정미정, 악의에 대처하는 방법 (ft. 수치를 모르는 뻔뻔한 언론)
- 반대: 오픈넷,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을 반대하는 7가지 이유
- 조건부 찬성: 언론인권센터,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 찬성하지만 보완이 필요하다
[/box]
조선일보의 부적절한 삽화의 사용으로 촉발된 논의는 그에 대한 보도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확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세 차례에 걸쳐 사과했고, 그밖에 연구자와 시민단체, 언론소비자가 이 사안에 관해 토론을 이어가며 이미 많은 분석과 입장을 제출했다는 점에서 이 글은 반복된 논의는 일부 제외했음을 미리 밝힌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이나 조국 전 장관과 같은 특정한 권력자에 대한 악의가 의심되는 실수를 반복적으로 행해왔다. 그런 실수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최근의 한 사례,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사망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사례들: 드러난 악의
한강공원에서 실종되었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사망사건에 대한 수많은 보도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인용될 것이다. 정확한 상황을 알기 힘들고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점, 수사기관과 언론에 대한 불신은 대량의 음모론을 낳았으며, 이는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아무런 정보도 담고 있지 않은 내용, 확인되지 않은 허위의 정보, 한 가족을, 한 젊은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는 정보들이 뉴스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쏟아졌다. 인권침해, 인권유린이 우리 사회의 언론에 의해 매일매일 자행되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그 어떠한 방편도 우리는 갖고 있지 못했다.
언론은 모든 것이 가능했다. 무슨 말을 해도, 말도 안되는 억측을, 허위정보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도해도 괜찮았다. 너무 익숙해졌지만 사실 이러면 안되는 것이다. 이토록 자연스럽고 당당하고 뻔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해서 돈을 벌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수많은 보도들에 누군가를 향한 ‘악의’가 있었을까? 아니, 그런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을 해하는 이런 보도들이 ‘악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기에 지나친, 이해할 수 없는 보도들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반복됐다. 수치심도 부끄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 사례(조국 전 장관 부녀 삽화 삽입 사건)에는 해당 매체의 사과가 있었다. 그것이 악의였는지, 실수였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알고 보니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삽화도 여러 차례 부적절하게 사용했던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서 실수보다는 악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받는다.
조선일보는 실수였고, 마땅히 했어야 할 일에 소홀했다고 사과했으며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길고 긴 세 번째 사과조차도 현실성이 없다면서 조선일보 노조에 의해 스스로 부정당했다. 세 번에 걸친 조선일보의 사과는 그 자체로 이슈가 되어 보도되었다. 조선일보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은 마치 남의 일을 다루듯이 이 사건을 다루면서 조국 전 장관이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만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대통령의 이미지와 조국 전 장관 부녀의 이미지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던 사건의 원인은 1) 온라인뉴스에 대한 데스킹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문제와 2) 신문사 혹은 기자 개인의 악의의 가능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사한 사례는 작년에도 있었다. 2020년 3월 31일 세계일보는 디지털성범죄사건(속칭 n번방사건)을 다루는 온라인 기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정경심 동양대교수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문제의 사진은 기사가 게재되고 1시간 후에 텔레그램 ‘박사방’운영자인 조주빈 씨 사진으로 교체되었고 세계일보는 이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이 사건은 데스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미처 들키지 않은 또 다른 사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와 세계일보의 사례가 모두 실수라고 하더라도 반복되는 실수가 계속되는 것은 실수를 바로잡지 않는 ‘의지’의 문제일 수 있다. 실수를 들켰을 때 사과하고, 들키지 않았을 사례들은 알았던 몰랐던 넘어가며, 재발의 가능성이 명백함에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현재 언론사들은 충분히 ‘악의적’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2020년 4월부터 네이버는 언론사에 대한 전재료 지급을 폐지하고 광고 수익을 지급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전재료 중심의 시장에서 품질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문제였다. 시장에서의 거래가 중심이 되지 않고 입증하기 힘든 매체력 등을 기준으로 각 언론사와 협상을 하는 것은 네이버에게 골치아픈 문제였음이 자명하다.
개별 언론사들과 전재료와 관련한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언론사들은 당연히 가격 인상을 요구한다. 문제가 되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때 포털은 문제를 정면으로 풀려고 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 문제에서도 같은 방식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box type=”info”]
참고: 호주의 ‘뉴스미디어협상법’
흥미로운 것은 구글은 고품질 콘텐츠를 제공하는 언론사를 선별해 전재료를 지불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 정부와 규제기관은 언론사에 전재료 지불을 요구해왔고 구글이 이에 호응했다고 볼 수 있다. 호주 언론사들은 뉴스미디어협상 법안 통과로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플랫폼사가 지불하는 뉴스 사용료를 받으면서 안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이미 일부 뉴스 언론사에 뉴스 콘텐츠와 관련해 돈을 지불하고 있었지만, 이 법안의 통과에 있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는데, 이는 다른 국가들을 의식한 것이다. 현재 페이스북과 구글은 캐나다, 영국, 프랑스와 같은 국가에서 뉴스 콘텐츠 사용료를 언론사에 지급하라는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 호주의 이번 선례는 향후 두 디지털 플랫폼사가 앉을 협상 테이블의 입지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원 확보가 얼마나 공익 저널리즘을 위한 방향으로 이어질지는 언론사들의 숙제로 남겨져 있다. 호주 정부는 1년 후 뉴스미디어협상법 실행 효과를 평가할 예정이라 밝혔다.
(출처: 2021.04.13. ‘세계 최초 뉴스미디어협상법 통과, 구글·페이스북에 뉴스 사용료 받을 수 있게 돼.’, 신문과방송.)
[/box]
네이버가 전재료를 폐지하고 광고를 기반으로 한 수익 배분 방식을 도입한 이후 언론사들의 기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경쟁이 품질 경쟁으로 이어졌다면 좋겠지만, 그런 모습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국 클릭이 되는 기사의 수가 직접적인 수익의 창출로 연결되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더욱 선정적인 제목 경쟁과 저질 기사의 양산으로 클릭 유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뉴스에 있어 뚜렷한 철학도 비전도 없는 포털사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꿀 때마다 언론사들은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었지만, 긍정적인 경쟁의 방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격화하는 경쟁 속에서 오직 클릭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물량 공세는 이어졌고, 온라인 공간에서 데스킹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결과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사례로 필연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1. 자율심의체제: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확대 및 강화
포털에 의한 뉴스유통과 소비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오게 되자 포털은 2015년 자율형 독립 심의기구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설립, 운영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5개 생산자 단체와 2개 언론전문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가 정책 및 제도를 결정하고, 여기에 8개의 전문가 단체 및 시민단체를 포함한 15개 단체가 2인의 위원을 추천해 30인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입점과 제재와 관련된 평가를 담당한다.
언론사의 기사 내용을 살펴 심의하는 행위를 정부나 법에 의해 강제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자율심의기구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바람직한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델 자체가 갖는 장점에 비해 그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포털뉴스생태계와 연관된 다양한 이슈를 주도적으로 논의하기 보다는 해마다 반복되는 입점심사와 재평가를 통한 제재와 퇴출이라는 좁은 영역에서의 역할을 수행할 뿐인 것이다. 이는 포털사업자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허울좋은 외부위원회를 꾸려놓은 데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게도 한다.
2021년 7월 7일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가 기업과 홍보대행사로부터 돈을 받고 기사를 쓴 내역이 드러났다. 이는 포털의 계약해지 사유에 해당하며 밝혀진 ‘기사형 광고’는 무려 2천여 건이라고 한다. 제휴평가위원회는 해당 사실을 보도되기 전까지 인지하지 못했고 보도된 이후 위원회의 안건으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규정을 가지고 이를 위반할 시 제재를 하고 퇴출을 결정하는 것이 주요한 업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사안을 인지조차 못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아울러, 이후에 제휴평가위원회가 이 사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 제휴평가위원회의 제재는 큰 언론사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대한 제휴평가위원회의 결정은 제휴평가위원회의 역할을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공분을 사고 있는 조선일보의 부적절한 삽화 문제는 제휴평가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안을 논의하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장인데도 불구하고 기계적으로 입점심사와 재평가를 수행할 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제휴평가위원회의 운영위원회가 정책과 제도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호하고 심의위원회 역시 입점과 퇴출, 제재 사례 일부를 제외하면 그 역할이 충분히 수행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포털과 언론사, 이용자와 전문가가 모두 참여하는 자율심의 모델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언론사 소속 위원의 참여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평가에 영향을 준다는 점, 이용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가 없다는 점, 전문가의 비중이 적고 전문성 역시 떨어진다는 점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례를 보면 포털에서 수행하는 모니터링도 현재 유통되는 뉴스를 충실하게 모니터링하기에는 역량이나 규모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포털이 뉴스 유통과 관련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미 구성한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확대, 재편성하여 그 역할을 강화하고 각 주체들이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이용자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용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 역시 만들 필요가 있겠다. 이용자위원회의 의무적인 구성은 입법을 통해 강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2.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언론사 스스로가 정한 윤리규범, 가이드라인, 보도준칙 등은 매번 무시당해왔다. 수없이 반복되는 실수는 언론의 자유보다는 규제의 정당성에 더 무게를 두게 만들고 있다. 반성도 노력도 없는 언론사와 기자들의 모습이야말로 언론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언론사에 대한 배액배상제 입법안은 법안 통과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언론사에 대한 규제 필요성에 주저하던 언론 연구자들조차도 조심스럽게 또는 강경하게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벌어지는 보도의 폐해가 이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데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divide style=”2″]
언론학 연구자로서 나는 항상 주저해왔던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에 이제 반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법안이 실제로 ‘징벌적’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divide style=”2″]
그리고 이 법안의 마련이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큰 많은 사건을 방지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방법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으며 여전히 많은 우려를 하고 있지만 더 이상의 방법을 생각해낼 수가 없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희망한다.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언론사와 기자, 연구자들이 그 대안을 제출해 주기를.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해법을 제시해 주기를.
그렇지만.
이 대안들은 현실을 개선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자율심의 체제가 강화되고,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더라도 이러한 방안은 그저 최악의 나쁜 것을 걸러내는 장치로서 기능할 뿐 저널리즘의 품질을 개선하는 방법도, 언론의 윤리를 회복하는 방법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만이라도 가능하게 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논의가 저널리즘의 품질을 개선해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의 발전적 논의가 아니라 최악의 사고를 막아내기 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에 그 어떤 문제에도 단 기간에 쉽게 이룰 수 있는 해답 따위는 없다. 언론 소비자가 동의하고 정치권에서 제시하는 강력한 규제 방안들에는 당연히 위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언론사와 언론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생존과 정화 방안을 아직도, 아무것도 제출하지 못하면서 반대만 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언론 스스로 해답을 가져오지 못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