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지난 6월 21일 조선일보는 범죄 기사를 게재하면서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조국 전 장관의 가족 이미지 삽화를 게재했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악의적 보도와 실수에 의한 오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정보학회는 문제의 본질과 원인, 법·윤리적 책임 등을 짚어보기 위해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 악의적 보도와 실수 사이: 언론 윤리 회복을 위한 긴급 토론회 (동영상 링크)
- 7월 22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토론회는 세 개의 발제와 네 개의 토론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이 중에서 세 개의 발제를 정리해 독자와 공유합니다. 발제 부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보수 언론의 적대 문화와 격분 산업
-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악의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
-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실수와 신화(Myth): 조선일보의 실수(Mistake)의 의미
이 글은 채영길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의 발제를 정리한 글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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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정도 지속된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보수 일간지, 특히 조선일보의 가학적 보도의 연장선에서, 더 넓게는 민주화 이후 지난 35년의 시간 동안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 일간지들이 진보 진영을 상대로 표출해 온 적대 의식, 증오와 분노, 모욕과 조롱의 근원을 살펴보고 현재의 언론 지형과 문화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적대 문화와 공격 저널리즘
언론의 적대 문화(adversary culture)를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미국의 정치가이자 사회학자였던 다니엘 모이니한(Daniel P. Moynihan)이었다. 그에 따르면 언론의 영향력이 커지고 언론인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기자는 엘리트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됐다. 특히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한 진보적 엘리트들이 유력 신문과 방송을 지배하는 언론인이 됐는데, 그들은 미국적 가치와 질서를 부정하는 적대 문화에 젖어있다고 봤다.[footnote]Altschull, H & Altschull, A. (1990). From Milton to Mcluhan the Ideas Behind American Journalism. New York : Longman (1990)[/footnote]
모이니한이 전쟁까지 선포한 언론의 적대 문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언론을 지배하는 가치관이나 정서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이니한이 적대자(adversary)로 본 언론은 한편으로 비판자(critic)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 엘리트가 중심이 된 자유주의적 언론에서 기성 질서를 비판하는 급진적 가치관이 자라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고, 이는 ‘감시견’(watchdog)으로서의 언론의 권력 비판 기능과 연관돼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이니한이 말하는 적대 문화는 체제 부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감시와 비판이라는 언론의 일반적 기능과 결정적 차이가 있다. 소수 엘리트가 영향력 있는 미디어를 활용해 대중 여론을 좌우하면서 미국적 가치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이 언론의 적대 문화에 대한 모이니한의 핵심적 비판이었던 것이다.
핼린(D. Hallin)[footnote]Hallin, D. (1989). The Uncensored War: The Media and Vietnam.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y: CA.[/footnote]이 구분한 담론의 세 영역, 합의 영역(sphere of consensus), 정당한 논쟁의 영역(sphere of legitimate controversy), 그리고 일탈 영역(sphere of deviance)으로 보자면, 적대 문화는 합의 영역과 일탈 영역에 속한 사안을 논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갈등과 분열의 문화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핼린의 지적처럼, 논쟁 영역이 확장될수록 언론의 영향력은 커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보수 일간지의 적대 문화는 모이니한이 적대 문화의 내용으로 규정한 급진성보다는 과거 회귀적인 보수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특성이 있다.[footnote]모이니한에 따르면 적대 문화는 진보, 급진 언론의 속성이다. 정치가인 모이니한이 불편하게 느꼈다고 해도 미국 언론의 적대 문화는 기성 질서에 대한 부정이었지 변화의 거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공격 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footnote] 우리나라 언론의 이념은 자유주의와 발전주의, 권위주의 등이 혼재, 경합하고 있다가 1970년대를 경과하면서 유신체제에 완전히 포섭돼 발전주의라는 권위주의 체제의 국가 이념을 그대로 수용한다.[footnote]김남석 (2020). 1960년대 한국사회와 언론 이념의 성격. 한국언론정보학보, 99, 7-39.[/footnote] 언론의 이념이 새롭게 정립되고 또 분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다.
권위주의 질서가 붕괴된 후 재편된 체제에서 보수 일간지들은 보수 진영에 편입돼 한 분파를 형성했으며[footnote]박승관·장경섭 (2000). 한국의 정치변동과 언론권력. 한국방송학보, 14(3), 81-113.[/footnote] 민주화 이후 새롭게 합의된 헌정 질서를 비판하거나 부정하고 권위주의 체제 대한 향수와 회귀를 지향하는 적대 문화를 유지해왔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제기, 일제 강점기에 대한 재해석 등 뉴라이트적 관점을 부각시키고, 경제민주화를 부정하며,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조하는 행태는 1987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질서와 사회적 의식에 대한 부정이라는 점에서 적대 문화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 정치 과정이 활성화 됐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이 의회와 정당의 틀에 한정되지 않고 여론전의 양상을 띠게 되면서 언론의 영향력은 점점 증대된 조건에서, 보수 일간지의 적대 문화는 민주화 이후 싹튼 새로운 질서를 전면화하려는 정치 세력에 대한 공격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3김의 퇴장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진보 진영의 주축으로 등장한 386세대에게 보수 언론은 기득권 질서의 일부로서 해체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기 형성되기 시작한 보수 일간지의 적대 문화는 노무현 정부 시기 386세대가 전면에 등장하자 적대적 의식과 정서를 표출할 대상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386’ 혐오 담론은 노무현 정부 시기 보수 일간지에서 만들어져 보수 정권 시기 에는 잠복해 있다가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다시 폭발했다.[footnote]신진욱 (2020). 세대불평등 담론의 정치적 계보와 의미론: ‘386’ 담론의 구조와 변화에 대한 비판적 담론분석, 1990~2019년. 경제와사회, 407-442.[/footnote] 시대착오적 종북 담론이 노무현 정부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재생산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footnote]주재원 (2017). 민주화 이후 한국 언론의 반공 담론 연대기. 언론과 사회, 25(3), 158-220[/footnote]
나는 노무현 정부 시기 노골화된, 변화된 질서에 대한 부정과 상대에 대한 혐오와 증오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적대 문화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을 지배하고 있으며, 민주화 이후 35년에 걸친 취재와 보도의 바탕에 자리 잡은 정서라고 판단한다. 또한, 이번 삽화 사고와는 무관하게, 조선일보 구성원들이 지난 날 적대 문화의 조선일보를 이끌었던 사주와 주요 언론인의 인식 체계와 정서를 공유한다고 본다.
적대 문화의 표출 방식으로서 격분
적대 문화가 표출되는 방식은 편향성과 관련돼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 포커스]가 1980년부터 2007년 1월까지 게재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대통령 관련 사설 1,183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설의 비중은 각각 98%와 87%,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설 비중은 각각 89%와 93%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결과는 정파적 편향이 아니라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언론 자유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적대 문화는 편향성뿐만 아니라 분노나 증오 등에서 유래하는 무례함(incivility)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이 진보 진영의 정당,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와 그 구성원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특정 프레임과 담론의 바탕에는 편향성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정서와 무례함이 자리 잡고 있다.
‘격분’(outrage)은 그 무례함의 극단적 속성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무례함이 시선을 회피하거나 한숨을 쉬는 등 상대와의 소통 과정에서 보여주는 존중의 부족을 의미한다면 격분은 모욕이나 조롱, 무시, 인격 비하 등 상대를 도발하는 담론의 양식과 그에 유발되는 정서 상태라는 차이점이 있다.[footnote]Berry, J. & Sobieraj, S. (2014). The Outrage Industry.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UK.[/footnote] 구체적으로 격분 담론의 유형은 아래와 같이 분류할 수 있다.[footnote]Berry, J. & Sobieraj, S. (2014). 위의 책.[/footnote]
- 모욕(insulting)
- 욕하기(name-calling)
- 말다툼(verbal fighting/sparring)
- 인격 살해(character assassination)
- 허의 과장(misrepresentative exaggeration)
- 조롱(mockery)
- 충돌(conflagration)
- 이념적 극단화(ideological extremizing)
- 폄하(belittling) 등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 일간지의 격분 담론이 표출되기 시작한 때도 368 혐오나 종북 담론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 시기였다. [미디어 포커스]의 사설 분석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편향성뿐만 아니라 격분 담론도 잘 드러나 있다. 사설에는 모욕과 증오, 비하, 극단의 언어가 동원됐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사이비좌파”
- “사이버테러리스트”
- “교육쿠데타”
- “세금폭탄”
- “세금테러”
- “가렴주구”
- “건달”
- “홍위병”
- “노이동풍”
- “자주놀음”
- “약탈정부”
- “도둑정치”
- “파장정권” 등등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관련해 2009년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조명된 보수 일간지의 사설과 칼럼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는 역대의 어느 정권보다 후임 정권에 약을 올린 대통령이었다 … 어쩌면 노씨와 그의 사람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정도는 노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2009년 3월 3일자 조선일보)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집권 세력이라는 그들의 도덕성이나 의식 세계가 딱 길거리 건달 수준이다”(2009년 4월 16일자 조선일보)
“만지지 말아야 할 돈을 만지면 그것이 똥이 되는 것이다. 그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처바르고 온몸 전체에 뒤집어쓴 사람들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그 부인이었으며 아들이었고 활개 치며 내로라하는 얼굴들이었다니…”(2009년 4월 11일자 중앙일보)
하지만 적대 문화가 반드시 격분 담론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1955년, 1975년, 그리고 2009년 미국 신문에 게재된 칼럼의 격분 수준을 7점 척도로 측정해 비교한 결과, 각각 0.06, 0.10, 그리고 5.76으로 나타났다.[footnote] Berry, J. & Sobieraj, S. (2014). 위의 책.[/footnote] 언론의 적대 문화는 새롭지 않으나, 격분의 형태로 적대 문화가 표출되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격분 산업의 성장
정치적 의견의 표출에서 격분 담론이 급증하게 된 것은 언론 지형이나 생태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의 경우를 보면, 격분 담론은 주류 언론에서 소외된 정치 이념이나 의견이 표출되는 양식이다. 대표적으로 보수 성향의 중하층 백인 중년 남성의 이념 성향이나 정치적 가치는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적인 언론에서 대변되지 못해왔었다. 토크 라디오나 블로그,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그들의 이념 성향이 실체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 미디어를 통해 표출되는 격분 담론에는 기본적으로 워싱턴 정치와 주류 언론에 대한 적대 문화가 내재돼 있다. ‘반응적’(reactive)이라는 격분 담론의 장르적 속성도 이러한 사정과 연관되어 있다. 취재와 보도 역량이 취약한 소형 1인 미디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류 언론이 보도한 정치 사안에 대해 해설이나 의견을 덧붙이는, 반응적 성격을 띠게 된다.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는데, 이념에 따른 선택과 집중, 상대에 대한 과도한 모욕과 비방, 공포와 분노의 유발 등 격분의 표출은 경쟁 전략인 것이다.
한편 격분 담론이 산업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높은 시청취율과 그에 따른 수익성 때문이다. 격분 담론에 의해 해소된 분노와 불만, 격분 담론이 유발한 새로운 격분은 해당 미디어의 인지도를 상승시키고 시청취자와 독자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런 순환구조를 통해 1990년대 이후 격분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6년 기준으로 토크 라디오 진행자의 대명사인 러쉬 림보(Rush Limbaugh)의 프로그램은 2016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청취자 수가 18%, 광고 수익은 20%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footnote]Bond, P. (August 2, 2016). “Rush Limbaugh Extends Radio Contract for Four More Years”. The Hollywood Reporter.[/footnote] 러쉬 림보의 개인 수입도 어마어마했는데, 2000년대 이후 연평균 3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2018년에는 총 수입이 8천 4백만 달러를 넘어섰다.[footnote]Cuccinello, H.(November 15, 2019.) “The World’s Highest-Paid Radio Hosts of 2018”. Forbes.[/footnote]
이러한 수익성 때문에 분노 산업은 이념 성향으로는 보수에서 진보로, 그리고 미디어로 보자면 토크 라디오나 블로그에서 신문이나 방송 같은 주류 미디어로까지 확산되면서 전체 산업의 규모도 더더욱 거대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 격분 산업의 성장 과정은 미국과 비교하면 정반대에 가깝다. 격분 담론은 민주화 이후 보수 일간지가 적대 문화를 표출하는 양식이었다. 원산지가 시장 보수 일간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 언론의 우위는 확고하다. 우리나라의 격분 담론은 소외나 배제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언론 지형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던 보수 일간지가 새로운 질서를 거부하고 진보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사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격분 담론은 진보 성향의 정치 웹진 [서프라이즈]나 인터넷 정치 커뮤니티인 [아고라]로 확산됐으며 보수 정권 하에서 진보 성향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념 성향으로 보면 보수에서 진보로 확산됐지만, 미디어로 보자면 주류 미디어인 일간지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이나 팟캐스트 등 비주류 미디어로 퍼져나간 것이다. 종합편성채널과 유튜브의 등장은 분노 산업의 판도를 다시 한 번 바꾼 계기가 됐다. 종편 시사프로그램은 출연진의 이념 성향과 정파성 측면에서도 편향적이었지만,[footnote]이영주 (2016). 종합편성채널 저널리즘의 비판적 재조명. 한국언론정보학보, 36-72.[/footnote] 출연자의 발언을 통해 진보 성향의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격분이 여과 없이 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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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분 담론의 언어
“정신질환”, “노예”, “썩은 고기”, “하이에나”, “새정치 오물”, “탈레반”, “닭”, “얼굴마담”, “불임대표”, “흉악한 지역주의자”, “불륜”, “천 년 묵은 구렁이”, “도깨비 형상”, “사이코패스”, “마약 중독자”, “섹스 중독자”, “잡놈 새끼” 등
출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제재에 나타난 종편 시사·보도 방송언어 문제점 분석](2015), 이정훈·이상기 (2016). 민주주의의 위기와 언론의 선정적 정파성의 관계에 대한 시론. 한국언론정보학보, 9-35.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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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시사프로그램의 중점적 편성은 종편 개국 이후 한동안 지속된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한편 보수 성향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 비중이 많은 노년층 사이에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보수 성향의 유튜브 채널들은 열성적인 시청자들의 정치적 지지와 재정적 후원을 기반으로 분노 산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정리하자면,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 일간지의 적대 문화에서 유래한 격분 담론은 정치적 지지를 동원해 내기 위한 목적이 일차적이었지만, 수익 모델과 결합하면서 팟캐스트와 종편, 유튜브로 확산됐다. 시간과 이념 성향의 차원에서 보면 보수 일간지에서 유래해 진보 성향의 웹진과 팟캐스트로 확산된 후, 다시 보수 성향의 종편과 유튜브로 퍼져나간 것이다.
현재는 신문, 지상파 방송, 종편, 보도 전문 채널, 라디오, 유튜브, 팟캐스트 등등의 경쟁이 치열한 조건에서 정치적 지지와 수익을 위한 경쟁 전략으로 격분 담론이 전면적으로 활용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격분 담론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격분 담론이 초래하는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는 매우 친밀한 사이 외에는 정치적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큰 해악을 끼친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경험했으며 지금도 악화일로에 있다.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격분 담론이 주류 보수 언론의 적대 문화에서 왔고 지금도 그들에 의해 계속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격분 담론에 저항해야 할 언론의 윤리 규범이 형해화됐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격분 담론이 제어된 차분하고 합리적인 공론장이 무기력해진 것이다. 반면 격분 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고, 그에 따라 거의 모든 미디어로 격분 담론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공적 규제나 윤리 규범의 사각지대에 있는 유튜브 등에서의 격분 산업의 성장은 폭발적이다. 더더군다나 격분 담론이 신문, 종편, 유튜브, 페이스북 등 다양한 미디어를 넘나들며 상호 연관된 거대 텍스트를 형성해 가고 있다. 텍스트의 연관,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은 격분 담론의 속성이기도 하다.[footnote]Berry, J. & Sobieraj, S. (2014). 위의 책.[/footnote]
적대 문화를 대표하는 조선일보는 격분 담론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하락 추세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발표된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조사 대상 언론사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신뢰도는 영향력의 선행지수임을 고려할 때, 영향력과 수익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격분 담론에는 반작용이 있고, 보수 언론의 적대 문화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적대 문화가 격분 담론으로 표출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주류 언론과 전통적 미디어의 경우 격분 담론이 지속가능한 전략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한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확립해 분노 담론의 산업화를 억제할 수도 있겠지만, ‘언론 자유’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 어떤 비판도 격분 담론과 격분 산업을 위축시키지 못한다. 강력한 이념적, 정치적 동기가 있고 수익성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 있는 유권자, 수용자들의 확증편향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모욕과 비방, 조롱의 ‘의견’이 아니라 건전한 ‘정보’가 소통되는 영역을 지키고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 미디어 바우처 제도처럼 수용자 평가를 활성화, 현실화하고 이를 언론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