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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중동의 불길이 바꾼 네가지 우리 현실. 이란 공습 후 달라진 패권…한국이 받은 청구서는? (김영근/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 (⌚6분)

중동의 불길은 더 이상 지역 분쟁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3월 말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 이란의 역내 보복,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압박이 맞물리며 이번 위기는 에너지 수송로와 동맹체계, 금융시장과 공급망을 동시에 흔드는 복합 위기로 전개 중이다.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과 군사 인프라를 겨냥한 합동 공습을 개시한 이후, 이란은 걸프 일대의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을 향해 보복 미사일로 응수하며 전선을 걸프 전역으로 넓혔다.

미국이 지난 3월 27일 이란 에너지 부문에 대한 추가 타격을 열흘 유예했지만, 그 기한이 임박한 지금은 긴장의 해소가 아니라 군사적 확전과 정치적 협상 압박이 병행되는 유동적 국면 그 자체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누가 전략적 요충을 통제하고, 누가 질서의 비용을 타국에 이전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세계 정치의 재시험이다.

샤자레 타예베 여자 초등학교 구조 작업. 2026년 3월1일 현지시각 기준 사망자는 165명으로 늘었다. Mehr News Agency. CC BY. 위키미디어공용.

미국 개입 방식의 변화와 중국의 딜레마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전쟁의 강도보다 미국의 개입 방식 변화에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처럼 수십만 병력을 투입해 점령하고 재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밀타격·정보자산·방공 지원을 통해 이스라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후방에서 전략적 보증을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2026년 1월 공개된 미국 국방전략(NDS)은 이 선택의 배경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이 문서는 중국을 유일한 포괄적 전략 경쟁자로 규정하고, 미 군사력을 본토 방어와 인도태평양 중국 억제에 집중하는 방향을 천명하면서, 다른 전구에서는 동맹과 파트너의 책임 확대를 분명히 했다. 오늘의 중동은 미국 패권의 쇠퇴를 증명하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된 비용으로 패권을 유지하는 방식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지난 1월 23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새 국가방위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 NDS)을 공개했다. NDS는 미국 국방부가 4년마다 발표하는 문서로, 상위 문서인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을 토대로 국방 우선순위와 실행 방향을 구체화한다. ©국회도서관 국가전략포털

중동 갈등의 중재자를 자임하던 중국은 이번 전쟁에서 소극적 방관자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핵심 에너지 공급처인 이란이 전략적으로 약화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중동 거점 전략에도 균열이 불가피하다. 동시에 미국이 중동에 군사력을 집중하는 사이 중국이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전략적 여지를 계산하는 역설도 존재한다.

미국은 이 틈을 걸프 국가들과 AI 기술·안보 협력을 연계하며 중동의 오일머니를 달러 중심 경제·기술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에너지·금융·기술이 맞물린 이 구도는 미국의 달러 패권을 재강화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UAE·사우디아라비아가 미·중 양강 구도에 균열을 낼 ‘제3의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저항의 축 해체와 중동 질서 재편

이번 전쟁이 흔드는 것은 이란의 군사력만이 아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이 구축해 온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 즉 헤즈볼라·하마스·후티·이라크 민병대를 아우르는 반미·반이스라엘 연대의 구심력이 이번 전쟁을 거치며 크게 약화되고 있다. 이 연대는 이란이 중동에서 전략적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미국의 압박을 우회하는 핵심 기제였다. 그 중심축이 흔들리는 지금, 중동의 안보 지형은 새로운 구도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군사적 우위를 재확인했고, 사우디아라비아·UAE 등 걸프 국가들은 이란 위협이 약화된 공백을 틈타 적극적인 안보 역량 확충에 나서고 있다. 국립외교원의 『2026 국제정세전망』이 올해 중동을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구조”로 전망한 것은 이번 전쟁으로 현실이 됐다. 중동은 이제 미국이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하는 단극 질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사 우위·미국의 후방 보증·걸프의 재무장이 층위를 이루는 복합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급을 받은 뒤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유가 충격과 물가 압박, 무역수지 악화로 직결된다.

중동의 불길은 한국에도 청구서를 보냈다

서울에서 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생계·존엄을 지탱하는 지속가능한 ‘인간의 안전보장’ 체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공급의 불안, 인도주의 질서의 붕괴, 동맹 구조의 재편이 동시에 밀려오는 이 복합 충격 앞에서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기 대응이 아니라, 충격을 학습과 구조 전환의 계기로 삼는 전환적 회복력(Transformational Resilience)이다. 그 출발점은 네 가지 현실을 직시하는 데 있다.

첫째는 에너지다. 2025년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은 하루 195만 배럴 수준이었고, 전체 원유 수입에서 중동이 차지한 비중은 69.9%였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이 수치가 보여주듯 유가 충격과 물가 압박, 무역수지 악화로 직결된다. 3월 들어 한국은 유가 급등에 대응해 UAE산 원유 600만 배럴을 긴급 추가 도입했고, 정부는 유류세 인하와 가격 상한 조치를 병행했다. 중동 위기가 더 이상 외교 뉴스가 아니라 국민 생활과 산업비용, 무역수지에 직결되는 경제안보 사안임이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둘째는 충격의 전파 속도다. S&P 글로벌은 이번 중동 전쟁이 한국 정유업계의 단기 수익성을 높일 수 있지만, 원유 공급 차질이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정유사들이 본격적인 신용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유시설의 상당 부분이 고유황 중동산 원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어 단기간 대체가 어렵다는 점이 구조적 약점이다.

화학 원료 가격도 요동친다. S&P에 따르면 동남아 메탄올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3월 20일까지 72% 급등해 2023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중동발 충격은 원유뿐 아니라 석유화학·물류·제조 원가 전반으로 번지는 다층적 위기로 심화되고 있다.

셋째는 안보다. 미국의 2026 국방전략은 동맹에 대해 더 제한적인 직접 지원과 더 큰 자구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는 여전히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삼아야 하지만, 그 동맹이 모든 공백을 메워 줄 것이라는 사고는 점점 더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미국의 전략 자산과 정책적 관심이 중동 전선으로 집중되는 국면이 길어질수록, 한국이 작전 지속 능력과 자주적 억제력, 공급망 방어 역량을 더 빠르게 확충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진다.

넷째는 인도주의 질서의 붕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3월 초 긴급 업데이트를 통해, 최근 중동·서남아의 적대 행위로 33만 명 이상이 새로 강제 이주했으며, 이 지역에는 이미 2,460만 명의 강제이주민과 귀환민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유엔 브리핑에 따르면 3월 12일 기준 아프가니스탄·이란·레바논·파키스탄에서 410만 명 이상이 국내 실향 상태에 놓였고 약 11만 7천 명이 국경을 넘었다.

전쟁은 언제나 미사일보다 먼저 사회의 약한 연결고리를 끊어 놓는다. 중동의 불안정은 이미 취약했던 난민·이주 질서 위에 새로운 균열을 덧씌우고 있으며, 이 인도주의적 충격은 지역을 넘어 국제 질서 전반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중동의 불길은 더 이상 지역 분쟁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에너지 수송로와 동맹체계, 금융시장과 공급망을 동시에 흔드는 복합위기로 전개 중이다.

관전자로 머물 시간이 없다

한국의 선택은 단순한 찬반이나 거리두기가 아니다. 중동 분쟁에 직접 연루되지 않으면서도 에너지 안보·해상교통로 안정·공급망 방어·동맹 조정이라는 네 개의 과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중동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중동발 충격을 관리하는 국가전략이다.

그 전략은 세 방향을 포함해야 한다. 중동산 원유 의존의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조달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 운용을 정교화해야 하고, 해상 교통로 위기 시 민간경제 충격을 최소화할 비상 공급 계획을 상시화해야 하며, 동맹의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한국군의 독자적 대응 능력을 병행 강화해야 한다.

방산 수출 확대를 외교적 영향력 확대와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무기를 파는 것과 지역 질서 설계에 참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방산 수출을 외교·안보 전략과 연결해 한국이 단순한 무기 공급자가 아니라 신뢰 가능한 안보 파트너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이 한국의 기름값과 정유산업, 해상물류, 동맹 구조, 한반도 억지력의 문제로 한꺼번에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외교와 안보를 따로 설계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21세기의 패권은 더 이상 영토 점령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에너지의 길목을 관리하고, 동맹의 비용을 분담시키며, 지역 전쟁의 충격을 금융과 물류, 난민과 공급망의 형태로 세계 전체에 분산시키는 능력이 곧 새로운 패권이 되고 있다. 호르무즈에서 시작된 긴장이 한반도의 전략 계산법을 바꾸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패권 재편의 파고는 이미 동아시아를 향해 밀려오고 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에너지 안보·방산 경쟁력·동맹 조정·전략적 자율성을 한 묶음으로 설계하는, 냉정하고 능동적인 국방 외교의 재건이다. 중동의 불길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서울의 물가와 산업, 안보와 외교의 문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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