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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 [국정농단 특집]

촛불의 힘으로 이끌어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갑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책임자들에 대한 법원의 선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법원의 판단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판결비평]의 모토는 ‘광장에 나온 판결’입니다. 국정농단의 주범들에 대한 재판은 광장에 나온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런만큼 국정농단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당연히 광장에 나와 자유로운 토론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국정농단에 대한 주요 판결의 법리를 시민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국정농단 특집]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그 첫 번째 검토 대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국정농단의 핵심이었던 최순실에 대한 1심 판결입니다.

¶. 이 글 필자는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입니다.

  1. 뇌물죄 회피 ‘꼼수’ 알려준 최순실 1심 재판부 (김남근)
  2. 이재용은 정경유착의 공범인가, 권력의 희생자인가 (노종화)
  3. 박근혜의 세 가지 죄 (임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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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은 대통령과 공모하여 대기업으로 하여금 자신이 경영하는 광고회사나 스포츠 컨설팅 회사에 광고를 몰아주거나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전경련을 통하여 자신이 설립하는 재단에 수백억 원의 재단금 출연을 요구하였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청년 시기부터 재산과 일상생활 관리를 맡아 왔던 최순실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하여 거액의 사적이익을 챙기려 한 사건이 알려지자 우리 국민은 경악하였다.

이와 같이 헌정질서가 무너지는데도 검찰과 언론과 사법부가 침묵하자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나 대통령을 탄핵하고 무도한 대통령과 그 집사인 최순실을 법정에 세웠다. 이제 사법부가 준엄한 법의 정의를 들어 심판할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사법부가 법의 정의의 이념에 충실하게 심판하였는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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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고합 1202(검찰), 2017고합 184, 185(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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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 최순실이 2017년 1월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던 중 소리를 치며 특검 수사를 규탄하는 모습.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17378.html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 최순실이 2017년 1월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던 중 소리를 치며 특검 수사를 규탄하는 모습. (제공: 민중의소리)

검찰: 직권남용 프레임의 한계

박근혜 정권 하의 검찰은 위 국정농단 사건을 ‘직권남용’의 틀(프레임)에 가두어 수사했다. 이런 틀에서 보면, 재벌들은 박 전대통령과 최순실의 겁박에 못이겨 재단에 거액의 돈을 출연하게 된 피해자일 뿐이었다.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의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이니 비난은 받겠지만, 처벌 수준에서 박 전대통령도 나쁠 건 없었다. 전경련과 재벌들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였고, 심지어 사실상 해외 도피중인 최순실도 입국하여 수사를 받았다.

촛불혁명으로 헌정질서를 유리한 정권을 무너뜨린 국민들이 이러한 검찰의 얄팍한 봐주기 수사를 모를 리 없었고, 국민들의 분노로 국회는 특검을 출범시키게 되었다.

'이명박근혜'로 총칭되는 역사적 반동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겪었지만, 그래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거대한 흐름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사진: 민노씨)
‘이명박근혜’로 총칭되는 역사적 반동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겪었지만, 그래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거대한 흐름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사진: 민노씨)

특검: 뇌물범죄를 수사하다

각 재벌들마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현안들이 있었다. 롯데는 100층이 넘는 월드타워를 건립했지만, 면세점 특허를 취소당해 면세점 특허가 절실하였고, SK는 총수의 사면을 바라는 입장이었다.

이재용 삼성부회장은 그룹의 주력기업인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주식은 거의 가지고 있지 못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자 경영권 승계의 속도를 내기 위해 자신이 주식을 많이 가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절실한데, 삼성물산 주총결의를 위해서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지원이 절실하였다.

박 전대통령은 재벌들의 이러한 현안을 파악하고 자신이 퇴임후 지배력을 행사할 재단설립에 거액의 출연을 요구하였다. 특검은 이러한 정경유착의 부패범죄 프레임에서 재벌의 재단 출연금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였고, 삼성은 최순실을 직접 만나 승마 지원 명목으로 70억 원이 넘는 뇌물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내었다.

이재용 판결 문제점은 극복했지만… 

정치권력과 재벌이 유착한 부패범죄는 은밀한 거래로 이루어져 내부의 고발이나 내부에서 작성된 문서가 결정적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서도 박전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대화를 메모한 안종범 수첩이 중요한 증거로 제출되었다.

수첩에 기재된 두 사람의 대화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능력은 없어도, 뒤의 후속조치 이행을 위해 대통령의 지시나 대화 내용을 가감 없이 기재하였다는 안종범의 증언과 결합하여 간접증거는 될 수 있다.

종전 판례나 다른 공범들에 대한 재판은 이러한 법리를 적용하였는데,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의 간접증거로서의 증거능력도 부인하였다. 최순실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안종범 수첩에 대한 증거능력에 대한 법리를 바로잡아 부패범죄의 증거 범위를 다시 넓히는 판결을 하였다.

또한, 이재용 항소심 판결은 승마지원에 대해 말의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만을 넘긴 것이고 사용권의 경제적 가치를 산정할 수 없다며 말 구입대금 36억 원을 뇌물과 횡령 액수에서 제외하였다. 5년 이상,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횡령죄 적용을 피하고자 한 의도로 보인다.  최순실 1심 재판부는 종전 판례대로 배타적 사용권을 넘긴 것을 소유권을 넘긴 것과 동일한 보아 말 구입대금과 보험료 36억 원을 뇌물액수에 포함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4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4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이 사건 판결은 검찰이 기소한 박 전대통령과 최순실의 직권남용 범죄에 대해서는 대부분 유죄를 선고하였다. 그리고 롯데의 70억 재단 출연과 SK에 대한 30억 재단 출연 요구에 대해서는 뇌물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뇌물죄에 대한 판단은 반으로 기계적인 판결 나누기를 시도한다.

절반의 심판: 뇌물죄 피할 ‘꼼수’ 알려준 재판부

최순실 사건을 판결한 재판부는 같은 뇌물이어도 승마 지원과 재단 출연은 적용 법리가 다르니 처벌도 달라진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재판부는 삼성에 관해서는 최순실이 직접 요구하여 지원한 코어스포츠에 송금한 36억 원의 용역대금과 말 구입대금과 보험료 36억 원 등 72억 원에 대해서는 포괄적 뇌물죄의 법리를 적용하여 뇌물죄를 인정하였다.

하지만 영재센터, 미르, K-sports센터 등 재단출연에 대해서는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하면서 부정한 청탁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지원이나 포괄적인 경영권승계 지원 등의 부정한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뇌물죄를 인정하지 않고, 직권남용죄만 인정하였다.

승마지원 72억이나 재단출연 270억은 둘다 같은 삼성그룹의 현안에 대한 지원을 묵시적으로 청탁하며 제공한 것인데, 같은 현안에 대한 청탁을 놓고 연속적으로 이어진 뇌물 제공에서 어떤 법리가 적용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는 것은 일반인의 법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다.

하나의 연속적 뇌물 제공 행위라도 개인이 받으면 뇌물이고, 재단 통해 받으면 아니다?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법리를 기계적인 이분법으로 적용한 최순실 1심 재판부.
동일한 범죄 의도로 연속해서 진행된 뇌물수수 행위라도 개인이 받으면 뇌물이고, 재단 통해 받으면 뇌물죄가 아니다?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기계적 이분법으로 적용한 최순실 1심 재판부.

제3자 뇌물죄에서 그 제3자는 공무원이 경제적 지원을 해 주고 싶은 지인이거나 평소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나 사찰 등이어서 단순뇌물죄와 달리 부정한 청탁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영재센터, 미르, K-Sports 센터 등은 뇌물을 수령하기 위한 수단으로 급조한 것인데, 이렇게 뇌물을 받는 도구로 재단을 설립하는 경우에도 제3자 뇌물죄의 법리가 적용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재단출연을 거래하듯이 하였다는 것은 롯데는 70억원을 출연하였다가 자신들의 민원이 해결되지 못하자 돈을 돌려받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재벌들이 일방적으로 겁박당하여 거액을 출연하였다는 것은 정경유착의 한 측면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국 뇌물 수단으로 재단을 이용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꼼수’를 가르쳐 준 셈이다.

재벌은 가깝고, 사법개혁은 머나 멀고…

대의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국민을 대표한 대통령이 국익을 위하여 대통령을 행사할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특정한 사인을 위하여 권한을 행사하였다. 국민주권의 원리상 대통령이 국민을 위하여 헌신할 것으로 믿었지만 대통령은 특정한 사인의 이익을 챙겨주기 바빴다.

우리 헌법은 정경유착의 폐습을 척결하고,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하여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국가의 책무를 다할 것을 천명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특정 경제주체인 재벌들이 요구하는 민원을 해결해 주며 뒷돈을 거래하였다.

이러한 망국적인 정경유착의 폐습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부패범죄를 엄단하려는 사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재벌에 대한 처벌에만 유독 약해지는 사법부의 모습을 보면서, 부패를 척결하고 맑고 투명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 회의하게 된다. 사법개혁의 절실함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판결이다.

Dan4th Nicholas, "Justice sends mixed messages", CC BY https://flic.kr/p/8PEYEW
Dan4th Nicholas, “Justice sends mixed messages”,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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