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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아시안 퍼스펙티브] 가깝도고 먼 ‘동남아시아’를 통해 한국을 바라보고 아시아 시대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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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정치 이슈로 스트레스 받을 때면 유튜브에서 용혜인 의원 영상을 찾아 본다. 자연스레 마음이 가라앉는다. “옳지, 저거지! 나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구나.” 이 분은 언제나 차가운 표정으로 똑 부러지게 주장하고, 배경 논리도 정연하다 못해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 누가 써준 글이 아닐텐데, 그 방대한 시사 이슈와 말이 안되는 음해성 공격까지 하루하루, 매일매일 모조리 섭렵하여 반박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샘솟는다.

‘역시,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용 의원은 1990년생이다. 아저씨 세대인 탓에 청년 정치에 고운 시선이 가지 않았다. 별 경험 없는 젊은 후보자들이 ‘청년’이란 모호한 장점을 무기로, 감당할 수 없는 큰 감투를 쓰는 게 몹시 불편했다. 그런데 용혜인 의원의 지난 3년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정상적인 보통의 정치’가 중요하구나. 저런 정치인이 더 많아졌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자리에 복귀를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끝끝내 회피한 이상민 장관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소한 다음 번에는’더 잘 지킬 것이다’라고 어떤 국민이 기대하겠습니까. 어떤 국민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집권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치는 인간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면수심 집권 여당의 행태, 이상민 장관의 웃으면서 오늘 출근하는 그 모습, “오송에 갔다 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었다”는 충북도지사의 말과 대통령실의 대응, 참사를 대하는 무책임한 태도가 이상민 장관뿐만 아니라 이 윤석열 정권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책임이 있다는 그 분명하고 명확하고 단순한 사회적 합의조차 무너져 버린 암담한 날에 유가족 분들에게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과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용혜인 의원, 2023년 7월 25일 논평

2023 선거혁명… 기득권 반동으로 연기된 정치 개혁


엊그제 동남아와 한류에 관한 작은 강연을 했다. 한 학생이 이렇게 묻는다.

“케이팝도 조만간 기세가 꺾일 텐데, 태국과 비엣남 팝 컬처가 케이팝 수준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좋은 질문이라고 칭찬해줬다. 맞는 얘기다. 현재 K-팝이나 K-드라마가 아시아에서 인기인 건 맞다. 그렇지만 그 인기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태국과 비엣남(Viet Nam; 베트남의 옳은 표기, 현지 발음도 영어식 발음도 ‘비엣남’이다)의 연예계의 잠재력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결정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 부연했다.

“문제는 정치가 아닐까요? 중산층 정치 없이 동남아 대중문화는 혁신이 어렵습니다. 만약에 피타 림짜른낫이 이번에 총리가 됐다면, 저는 태국에 가서 장기 거주할 생각도 잠깐 해봤습니다. “

지난 5월 14일 총선에서 ‘깜짝 반전(反轉)’을 넘어 역사적 승리의 주역이 된 전진당(까우끌라이). 하원 500석 가운데 152석(지역구 113/비례대표 39)을 차지해 세상을 깜짝 놀래켰다. 특히 중산층이 밀집한 방콕에서 기적적인 선거 결과를 가져왔는데, 방콕의 선거구가 33개 가운데 무려 32석을 획득한 것이다.

태국 정치의 희망으로 떠오른 피타 림짜른랏. Supanut Arunoprayote 제공. CC BY 4.0

이러한 개혁을 이끄는 인물은 1980년생 피타 림짜르낫(pita limjaroenrat, 43)이다. 공무원이자 사업가 집안이기 때문에 유복한 상류층 출신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이른바 ‘강남 좌파’라고 해야 할는지. 실제로 그는 탐마삿 대학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까지 다녀온 유학파로 모빌리티 서비스 그랩(Grab)의 임원을 거쳐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정치에 데뷔한 게 4년 전 30대 후반 때 일이고, 당지도자가 된 지는 3년이다. 전진당은 한마디로 젊은 정당이다.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잘 사는 집 아이들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정말이지 오랜만에 태국 정치권에 ‘보통의 언어’를 구사하는 젊은이들로 채워졌다. 이들이 대거 총선에 출마하여 2019년(당시엔 미래당, 전진당의 전신)과 2023년 두 번에 걸쳐 동남아 정치권에 거대한 충격을 던진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무려 제1당으로 승리하여 총리에 등극할 것으로 예측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군부 출신으로 채워진 상원(上院)이 똘똘 뭉쳐 피타의 총리 등극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렇게 피타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의원 자격이 정지됐고, 총리 등극도 사실상 무산됐다. 태국의 정치 개혁은 또다시 무기한 연기가 된 것이다.

정치인의 ‘저 세상 논리’… 그 뿌리는 특권 계급 정치


“일정 수준의 교육과 기본적인 경제 역량이 있어야만, 자유가 뭔지 알게 되고 왜 자유가 필요한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합니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2021. 12. 22. 전북대 ‘타운홀 미팅’ 중에서

“나(윤석열)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어떤 일이 절대 불가능하다거나 100년 전 우리 역사 때문에 그들(일본인)이 (용서를 구하며)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2023. 4. 24.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중에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윤석열(대통령) 2023년 4월 19일.

대다수 국민은 여의도 바깥에서 뉴스로 한국 정치를 접할 수밖에 없다. 정치 혐오증이 생기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들이 전혀 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말을 내뱉는다.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모든 문제는 상대당에 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식이다. 제정신을 갖고 정치권의 말을 경청하다보면 혼란을 뛰어 넘어 정신병이 생기기 십상이다.

기자의 고충도 이해가 된다. 우리 정치권의 말은 제대로 분석이 어렵다.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사실과 역사에 반하는 ‘거짓말’이 횡행한다. 현장 기자는 그래서 말을 분석하는 걸 포기하고, 그냥 “따옴표”로 전달하는 게 관행이 되었다. 의미 분석은 그냥 데스크와 편집 기자에게 맡기는 것도 중요한 언론 문화가 되었다. 적당히 ‘주제’를 잡으면 편집 데스크에서 확실하게 ‘포인트’를 잡아 확대해주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정치권 ‘말’의 품격과 진실성이 떨어졌는지 그 원인을 따지고 들면, 분석하는 이에 따라 여러 원인을 거론하겠지만, 결국은 각자의 세계관이 다르고, 비좁고, 편향되었기 때문이다. 특정 계급과 계층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은 보편성을 상실하고, 엘리트 계급정치를 펼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사용하는 어휘나, 정서, 태도가 동남아 정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권층 정치다.

‘평범한’ 피타 림짜른낫


피타 림짜른낫의 장점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태국 정치는 군부 정당과 야당인 푸어타이당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지난 20년간 ‘왕실’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다. 한때 국민이 푸어타이당에 희망을 걸어보기도 하고, 방콕 중산층은 쁘라찻티빳(민주)당에 기대도 해봤지만, 결국 양당 모두가 평범한 시민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쯤 30대 중후반 청년으로 구성된 미래당(오늘의 전진당)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대개 잘사는 집 자제들로 해외 유학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혁신’을 꿈꾸는 젊은이들이었다. 당연히 100년도 더 된 낡은 주제를 놓고 미래 세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군부’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이 내세운 얘기는 너무도 간명하고, 논리적이었다. “왕실과 군부 국가의 위엄”도 좋지만, 이제는 보통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자고 말이다.

피타와 전진당은 태국의 낡은 보수정치를 겨냥한 쉬운 표현으로 대중에게 명료한 메지시를 전달해 큰 호평을 받았다. 전진당의 선거 결과에 의심이 높을 때도 “우리는 승리한다”라고 말하거나 총리 등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도 “나는 분명히 총리가 될 것이다”고 말하는 용기도 태국 시민을 감동시킨 어록에 포함될 것이다.

태국 짜그리 왕조의 라마 9세(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1927.12.5. ~ 2016.10.13., 왼쪽 사진)는 70년 동안 재위하면서 국민의 절대적 추앙을 받았다. 반면 라마 10세(마하 와치랄롱꼰; 1952년~ 현재)는 문란한 사생활과 기행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재위 기간은 2016년 10월 13일 ~ 현재. 라마 10세로 인해 ‘왕실 모독법’은 더 커다란 논란을 불러온다.

과거 태국 정치인에게는 볼 수 없었던 매력이다. 정치는 사실상 메시지다. 그는 모든 정치인이 두려워하는 이슈를 정면에서 겨냥했다. “왕실 모독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태국의 국가보안법으로 불리는 ‘형법 112조’ 개정은 태국 정치인이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피타의 목소리는 사상 처음으로 간명하고 명쾌했다. 아시아 현대 사회와 중세 사회의 차이는 탈권위와 탈중앙화로 요약된다. 보통 시민은 정치에서 소외되었는데, 이를 설명하지 않고 궤변과 코미디로 무마하기 마련이다. 피타의 전진당은, 위대한 태국을 지키는 왕실의 명예와 이를 호위하는 군부의 권위 정도는 충분히 존중해주면서도 나라를 혁신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결국, 세금을 내는 것은 평범하게 현장에서 일하는 대다수 국민이 아닌가.

방콩 도심에서 연설하는 피타 림짜른랏. 2023년 4월 22일.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4.0

이밖에도 쿠데타 방지와 군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국방정책-징병제 폐지, 군 규모 축소, 장군 수 감소-의 개선안을 간명하고 직설적으로 제시했다. 이밖에도 징병제폐지, 동성결혼합법화, 토지개혁, 부채재조정 등 시민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정치 현안의 개혁을 약속했다.

정당의 슬로건이 “모든 태국인의 미래, 새로운 미래를 향한 전진, 동등한 발전”이다. 나아가 “변화만이 태국의 살길”이라는 캠페인도 열광적인 공감대를 끌어냈다. 간결한 미디어 캠페인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당연히 피타와 전진당의 노선은 보통의 시민들의 환호를, 보수파 정치가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만다.

‘더 평범한’ 용혜인


용혜인 의원이 훌륭한 점은 아주 평범한, 보통의 논리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용감하다. 용 의원의 이력은 하버드나 고시 출세로 무장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말과 논리, 용기로 무장하고 있다. 사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정의당에도 용혜인 정도의 젊은 국회의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말들은 심하게 오염되었다. 과거 자신이 일한 업계 이익이나, 특정 성별이나 소속 정당의 분파가 지향하는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때론 맞는 얘길 하지만, 어떤 때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저 세상’ 논리를 앞세운다.

아이를 안고 거리에서 시민과 대화하는 용혜인 의원. 출처는 용혜인 페이스북 페이지.

국회기자실 단상에서 정치인이 등장해 하는 말은 대개 굉장히 정치적이거나 허황된 얘기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자들도 기자실에 찾아와서 발표하는 내용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모두가 듣는 얘기는 기사거리도 안될 뿐만 아니라, 논리도 부족하고, 자기 입장을 옹호하는 주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 의원이 등장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지켜보는 이들로로부터 찬사가 나올 정도다. 말 하나하나 틀린 말이 없다. 우리가 잃었던 보편성을 돌려받는 느낌이다. 우리 언론이나 논설실 위원들께서도 용혜인 정도의 진지함과 보편성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자연스레 용 의원의 말에 진정성과 힘이 느껴진다. 세상을 똑바로 보고 있는 게 용 의원 하나 뿐인 것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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