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트위터에서는 ’50대 남성 고독사 행정 지원 정책’에 대한 조롱이 쏟아졌다. 그 분노의 회오리가 어제는 내 타임라인에도 닿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트위터에서 영향력 있는 몇몇이 ’50대 남성 고독사 많다고 해서 뉴스 봤더니 밥해주고 씻겨주자는 우쭈쭈더라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후 내 트위터 타임라인은 가부장제에서 단물을 빠는 덜 떨어진 남성에 대한 분노 3분의 1, 그런 남성을 돌봐준답시고 선심행정을 펼친 기관에 대한 분노 3분의 1, 그 전에 여성부터 먼저 좀 ‘케어’하라는 하소연 3분의 1의 성향을 보였다.
나도 호기심이 생겨 해당 정책을 살펴보니, 김수영 양천구청장(이하 ‘김 구청장’)이 내놓은 ’50대 남성 고독사 방지대책’이 맞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트위터에서 조롱하고 비난하는 방향과 사뭇 달랐다.
김 구청장은 내가 흔히 인식하는 상급 행정가, 선심성 화제성 정책을 일관성 없이 아래로부터 주워받아 잘되면 본인의 치적인냥 기침 한 번 하고, 잘 안되면 아래 탓으로 돌리는 그런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왜 통계상 50대 남성의 고독사 사례가 많이 집계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그 의문의 끝에서 자신이 그간 표방해온 복지정책의 범위 중 해당 계층이 사각으로 빗겨나있음을 통찰한 것이다.
김 구청장의 지난 행적을 돌아볼수록 무척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양천구청장이 된 이후 대놓고 ‘여성친화도시’ 라는 캐치프레이즈와 자신이 목표하는 ‘여성친화도시’가 얼마나 좋은 사회인지를 모든 연령대의 남성에게까지 반발심은커녕 공감력 있게 설득해왔고, 실제 관련 정책들로 양천구 주민의 지지를 받아온 당대의 페미니스트 행정가였다.
그의 그런 정책은 이전에 해당 분야에서 고민하고 연구해온 그의 논문들에서부터 일관성을 엿볼 수 있었는데 ‘빈곤여성의 역경 극복과정’(2012), ‘한국여성정치인의 여성리더쉽 유효성에 관한 연구’(2005) 등 제목만으로도 그의 관심 분야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펼친 정책은 허울뿐인 선심공약이거나 사회적 편견과 박자를 맞추는 정책이 아닌 ‘의외다’ 싶은 부분들에 맞닿아 있었다. 여성 자가운전자를 위한 ‘여성운전자 자동차 정비교실’ 등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여성 운전 사고가 많아지면 사회적인 편견의 목소리들은 그래서 여성이 운전을 하면 안된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버리거나 끽해봤자 여성 운전 교육을 강화해야한다는 식의 서투른 행정으로나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운전을 잘해도 운전사고가 일어난다면 답은 다른데 있기 마련, 여성 운전자가 호기심을 즐거움으로 풀어가는 모습이 드러난 자동차 정비 서비스의 모습을 보면서 남성들마저 흐뭇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한다.
그가 내놓은 ’50대 남성 고독사 방지책’도 그런 통찰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50대 남성의 단절된 혹은 손상된 네트워크에 관심을 기울였고 사회적인 연결고리를 강화해야한다는 시선으로 올해 초에 ‘나비남’ 이란 이름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나비남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뜻의 캐치프레이즈다.
나는 이런 류의 줄임말 유행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인칭명사처럼 줄여진 지칭어는 약간의 허세나 집단화에 영향을 줘서 그 대상이 아닌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반발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뉴스의 제목만 보고 클릭조차 하지 않은채 그 뉴스의 제목을 접한 것만으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었다고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어, 나도 그 뉴스 봤어!’
가부장제 남성의 폐해에 대해 진절머리를 내는 트위터의 네임드들도 그런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 이번 이슈의 원인 중 하나였을까?
게다가 ‘나비남’이라는 이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집단 반발을 일으키기도 좋아서 구청장의 좋은 정책에 관해서는 그 내용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채 조롱의 포화를 맞아버린 것이 내가 맞닥뜨린 트위터 풍경이었다. 그 조롱의 포화에는 ‘고독사’ 에 대한 각자의 통일되지 않은 인상과 정의도 한몫 했을 것이다.
내가 표한 몇 마디의 의문이 트위터에서 이슈가 된 덕에 뒤늦게 해당 구청장의 정책과 구청장의 행적이 재조명된 어제 저녁 정도에 이르러서는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로 ‘그러니까 그것도 좋은데 여성도 좀 챙겨주세요’라든지 ‘정책의 취지는 좋은데 여성들 돌봄 서비스로 내몰아 도시락 만드는 저 풍경은 좀’ 등의 목소리가 남았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위와 같은 목소리와 함께 제시된 사진은 사실 구청장이 해당 정책을 홍보하려 직접 장갑을 끼고 자원봉사자들과 도시락 만들기 행사를 가진 이벤트 사진이었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그 목소리들 또한 해당 구청장의 다른 정책들을 발견하며 ‘진작 이럴 것이지’ 라는 앞뒤 순서가 다른 칭찬을 한다든지, 나비남 프로젝트의 골자인 네트워크 복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역시 ‘진작 이렇게 할 것이지’ 라는 박수를 보낼 수도 있겠다(이미 그런 풍경이 보이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 있는 몇몇이 해당 정책을 오해해서 조롱하고 비난한 끝에 자신들이 억지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기사에 보고 그랬을 뿐이라고 한발을 빼거나 위와 같은 논점일탈식 연대의 호응으로 자세만 바꾸고 마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어디까지나 그 분노의 원인은 오랫동안 쌓여온 가부장제 남성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서 왔음을 지나치지 않는 것도 좋겠다.
그의, 나의 미래는 고독사가 아닐까…
나는 이런 저런 소동을 보며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소동 속에서도 여성의 분노 어린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인, 평소부터 정의롭고 소수 약자를 걱정하며 여성 앞에서 자신이 여성혐오하게 살아와서 미안함을 표하는 페친이자 트친이 눈에 밟혔다. 그는 홀로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 두마리와 나름의 보금자리를 꾸며가며 남을 도울 수 있으면 도왔지 혼자서 해내지 못할 것은 없는 사람이다. 몇번 선보인 그의 음식 사진으로 보건대 아마 조리도 잘할 것이다.
틀림없이 그는 트위터에서 조롱받은 ‘잘나갈때 여성들을 종처럼 부리면서 지내다 늙그막에 혼자서 밥도 못해먹어서 죽는 50대 남성’에는 속하지 않을 거고, 적어도 그 비난의 범위에서는 애시당초 거리가 먼 사람일 게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자신의 끝자락을 걱정한다. 무척 낯을 가리는 그는 자신의 미래가 고독사가 아닐까 조금은 서글픈 예감을 하며 ‘집고양이 분짜의 1년’ 같은 만화를 보면서 자신의 일처럼 여겨 눈물을 흘리고 마는 젊은이다.
고독사는 개인의 성향에 따른 결과일 수 도 있고, 사회적인 현상일 수 도 있다. 그를 보며 느끼는 나의 감정은 생각보다 젊은 30대도 어쩌면 고독사라는 기로에 놓여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약한 끈인지, 그리고 그것이 이미 끊어져있거나 끊어질 위험에 처한 이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비혼라이프를 걷고 있는 나도 고독사가 내 생의 마감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리 슬프지는 않고 민폐를 덜끼치길 바랄 뿐이지만, 그 결과가 타의로 이뤄지는 다른이의 삶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러니 고독사 문제는 조금 더 신중하고 웃음기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접근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김수영 양천구청장의 이번 50대 남성 고독사 방지 정책을 보면서 응원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