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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4월 13~14일 각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 겸 전 대한승마협회 회장·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겸 전 대한승마협회 부회장 등 5명의 뇌물공여 등 혐의 공판을 진행했다. (이하 피고인 및 관계자 호칭 생략 혹은 ‘삼성 측’)

2회의 공판기일에서도 서류증거조사가 진행됐다. 피고인들 중에는 황성수·장충기·최지성의 검찰 및 특검 진술조서가 공개됐으며, 수십 명의 참고인들의 진술도 공개됐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최순실의 안하무인과 막무가내 ▲’안종범 수첩’ 속 이해 안 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업무 지시였다.

삼성에 대해서는

  1. 이재용이 그룹 총수가 맞는지
  2. 이재용이 ‘정유라 승마 지원’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지
  3. 최지성이 이재용을 위해 총대를 메고 있는 것인지
  4. 삼성의 핵심 조직 미래전략실은 어떤 조직인지를 놓고 특검과 삼성 측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4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44304.html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4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이재룡이 말 사준댔지, 언제 빌려준 댔냐” (4월 13일)

황성수는 박상진의 지시 하에 최순실과의 승마 지원 실무를 직접 맡았다. 황성수의 검찰 및 특검 진술 중 인상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다.

▲ 황성수에 따르면, 삼성 내부에서는 총수 일가를 일컬어 ‘로얄(Royal)’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재용의 매제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담당 사장은 ‘준(準) 로얄’이라고 한다.

▲ 황성수가 승마협회 부회장을 맡은 이유는, ‘준 로얄’의 지시 때문이었다. 삼성이 돈을 보낸 코레스포츠는, 최순실이 컨트롤하는 회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최순실이 처음부터 지정한 용역 회사였기 때문이다.

▲ 2015년 11월, 최순실과 삼성은 언쟁을 벌였다. 말 ‘살시도’의 소유권 문제 때문이었다. 박원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만, 황성수는 부인했다.

“최순실이 ‘이재룡이 VIP 만났을 때, 말을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느냐’면서 엄청 화를 내고 흥분했다.”

[box type=”info”]※ 참고로 최순실은 이재용을 ‘이재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최순실이 이재용을 ‘이재룡’으로 부른 사실은 공소장에도 명시됐다.[/box]

▲ 이날 공개된 안종범 수첩 속 ‘정유라 승마지원’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VIP: 말산업본부장(독일) → 경고” (2016. 1. 12.)
  • “VIP: 소년체전 대비 말 구입” (2016. 1. 12.)
  • “VIP: 삼성, 명마 관리비 임대” (2016. 9. 24.)

2016년 1월 12일, 박근혜는 안종범에게 최순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던 마사회 말산업본부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지시했고, “승마 유망주 육성을 위해 마사회가 말을 구입해 보급한다”는 사실을 통지했다.

9월 24일에는, “정유라 승마지원 은폐를 위해 삼성의 말 지원을 임대로 가장하기로 협의했다”는 최순실과 삼성 간 합의를 안종범에게 알려준 것이다.

특검은 이를 토대로, “최순실이 마사회 인사에 깊이 개입했다”며, “대통령에게 이야기하면, 대통령이 안종범에게 지시를 하는 일반적 패턴”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정책조정수석으로서, 대통령에게 ‘말(馬)’ 관련 지시를 받아야 했던 안종범의 고충이 느껴진다.

최순실과 공모해 대기업들에 거액 기부를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016년 12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04812.html
최순실과 공모해 대기업들에 거액 기부를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016년 12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 최순실은 박상진에게 “(명마로 이름난) 비타나V와 살시도가 생각보다 잘 안 나온다”면서, “다른 말을 달라”고 요구했다.

박상진은 이를 불쾌하게 들었던 것인지 “말에 대한 욕심은 그대로”라고 메모했다. 이어 “정유라가 자질이 부족한데 말을 바꾼다고 과연 성적이 잘 나오겠느냐”는 취지의 메모를 쓰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삼성은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 이를 안 최순실은 난리를 치면서 “지원금을 보내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황성수는 최순실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것으로 대응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 최순실이 2017년 1월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던 중 소리를 치며 특검 수사를 규탄하는 모습.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17378.html
최순실이 2017년 1월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사무실에 소환되던 중 소리를 치며 특검 수사를 규탄하는 모습. 이재용 공판에서도 최순실의 안하무인과 막무가내를 증언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공: 민중의소리)

“이재용은 삼성그룹 최정점이 아니다!” (4월 13일)

오후에 공개된 장충기의 진술조서에는 과연 미래전략실 차장다운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장충기는 특검이 주장한 내용을 완강히 부인했으며, 삼성 측도 부인했다.

▲ 특검에 따르면, 장충기는 국가정보원 기조실장과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장충기는 특정 후보자에 대해 “이 친구(사무총장 후보 물망에 오른 사람)가 사무총장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고, 감사위원 후보자도 추천했다. 장충기는 전직 감사원 국장에게 ‘정보 보고’를 받기도 했다.

▲ 장충기는 ‘정보통’으로부터 통신사 A의 편집국장에 대해 전해 듣는다.

“(삼성을) 밖에서 돕는 사람이 많다. 통신사 A의 편집국장 B도 있다. 기사 방향을 잡느라 자주 통화한다. 진심으로 열심히 한다. 나중에 아는 척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오늘 통화 중에는 ‘기사는 못 쓰지만 국민연금 관련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들어서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저는 D에게 ‘소액주주들을 긁어모으는 데에 도움 되는 기사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삼성 측은 “이재용은 그룹 최정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이재용의 사무실은 삼성 서초동 사옥 41층에 있고, 최지성의 사무실은 42층에 있다. 일반적으로 사무실 층수가 지위를 상징한다. 최지성이 더 높은 곳에 있고, 이건희 회장은 43층을 사무실로 썼다.”

이재용은 삼성 서초동 사옥의 41층을 썼기 때문에 최고위층이 아니라고 주장한 삼성 측.
삼성 서초동 사옥. 이재용의 사무실은 41층에 있고, 최지성의 사무실은 42층인데, 일반적으로 사무실 층수가 지위를 상징하므로 이재용은 그룹 최정점이 아니라고 주장한 삼성 측 변호인단. 실제로 이렇게 주장했다.

“미래전략실 지시로 출연” vs “왜 삼성만 뇌물공여인가”

특검은 삼성 계열사 임원들의 진술조서를 공개하면서 “삼성 계열사들은 미래전략실의 지시로 허술하게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했다”고 주장했다. 양 재단 출연이 미래전략실의 일방적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면, 이재용을 정점으로 한 수뇌부의 판단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음은 특검이 제시한, 삼성물산 임원의 진술과 삼성 측의 반박이다.

팔씨름 싸움

▲ 2015년 10월 하순, 미래전략실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 관련 사업에, 삼성물산이 15억 원을 출연할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했다. 미래전략실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재단이 있는데 삼성물산이 15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삼성 측: 양 재단 출연은 청와대를 내세운 전경련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써, 대가관계 없이 마지못해 한 것이다. 공익적 취지가 있는 국가적 사업이라고 들었고, 전경련의 요청이 있었으며, 다른 기업도 출연에 참여했기 때문에 출연한 것이다.

▲ 미르재단의 실상·VIP(대통령) 관심사항 등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삼성물산도 미르재단에 대해 자체적 검토는 하지 않았다.

삼성 측: 특검은 근거도 없이 “미래전략실이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전제를 한다. 그리고 그 전제를 바탕으로 “미래전략실이 계열사에 양 재단 출연을 지시했다”는 답변을 이끌어내려 한다.

▲ 미르재단 출연은 미래전략실의 요청을 받고 그대로 따른 것이다. 기부 목적에 대한 간략한 설명만 들었고, 사업계획서 검토도 하지 않았다.

삼성 측: “양 재단의 설립 추진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 재단의 설립 추진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이 뇌물죄 성립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다. 왜 삼성에만 다른 기준을 적용해 ‘대가관계 합의에 따른 뇌물 제공’ 인정을 요구하는가?

“최지성, 이재용 위해 총대 메기” vs “최지성은 이재용 멘토”

특검은 최지성의 진술조서를 공개하며, “최지성이 이재용을 위해 총대를 메고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래전략실을 주축으로 한 조직적 개입이 작용해, 다른 피고인들도 허위진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피고인들의 진술과는 반대로, 이재용이 각종 보고를 받은 정황이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2017년 2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는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의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23618.html
2017년 2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는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의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다음은 최지성의 검찰·특검 진술이다.

▲ 이건희 회장이 생존 중이라 이재용과의 관계는 조금 애매한 측면이 있고, 과도기적 단계이다. 이재용은 이건희의 후계자로서 그룹 경영에 점차적으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전반적 경영은 제(최지성)가 책임진다.

▲ 대통령이 요청한 승마 지원에 정유라가 관련돼 있는 사실은, 2015년 8월 독일에서 최순실을 만나고 온 박상진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알았다.

▲ 최순실 측 요청대로 승마 지원을 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이재용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고, 이재용은 책임을 지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다.

▲ 이재용에게 “승마 지원은 최순실·정유라 모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한 시점은 2016년 8월 이후다. 이재용은 못마땅해 했고,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 최순실·장시호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총 16억 2,800만 원을 후원한 사실도,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총 204억 원을 출연한 것도, 미래전략실장으로서 제(최지성)가 결정한 것이다.

한편,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이 얼마나 급하고 허술하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미래전략실의 지시가 계열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에피소드도 공개됐다.

이른바 ‘삼성전자 법인 인감 대여’ 사건이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다음과 같이 특검에 진술했다.

도장

▲ 미래전략실 임원은 갑자기 전화를 해서 “내일 법인 인감 날인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다음날 삼성전자 직원은 법인 인감을 들고 한 호텔로 갔다.

▲ 호텔에 있던 미르재단 관계자는 직원으로부터 법인 인감을 직접 받아갔다. 직원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법인 인감을 다시 받아 복귀했다. 법인 인감을 남 모르는 사람에게 넘긴 것이었다.

▲ 삼성전자 임원은 “미래전략실 임원에게 ‘삼성전자가 구멍가게도 아니고, 갑자기 다음날 오전에 법인 인감을 날인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재용 조서는 다음 주 공개될 듯…특검 “증인 20여 명 신청 예정”

3회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인 5명 중 4명의 조서가 공개됐다. 따라서 이번 주(4.17~)에는 이재용의 조서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특검은 “20여 명의 증인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면면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증언을 놓고 특검과 삼성은 재차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음 일정부터는 매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3일씩 공판이 진행된다. 현재까지 혹독하게 진행된 최순실·안종범 공판의 뒤를 이은 강행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기의 재판’은 이렇게 2회의 공판기일을 진행하며, 주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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