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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긴급조치 제1호 위헌 판결[footnote]2010.12.16.선고 2010도5986 판결[/footnote]은 1970년대 긴급조치 시대에 대한 첫 사법적 단죄였다. 긴급조치를 발동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 목적도 정당하지 않았으며,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권연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음을 30년 넘어 뒤늦게나마 확인한 것이다. 과거 긴급조치 정찰제 판결을 했던 사법부가 비로소 자기 판결로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몸부림을 한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과거 한국전쟁 전후 울산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기존 판례를 변경하면서 피고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한 뒤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를 인용하였다[footnote]대법원 2011.6.30.선고 2009다72599판결[/footnote].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긴급조치 사건, 재일동포 사건 등 많은 과거사 문제의 법률적 쟁점이었던 소멸시효, 법률의 위헌 여부, 입증 정도 등에 관한 대법원의 전향적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봄날은 너무도 짧았다.

희망 꽃 용기 바람 소망
대법원의 잇따른 전향적인 판결들, 하지만 봄은 너무 짧았다.

2011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출범 

울산보도연맹 사건 이후 법원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결정이 있는 때까지를 시효중단으로 보고 3년 시효를 적용하여 피고 대한민국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진도 민간인 학살 사건[footnote]2013.5.16. 선고 2012다02819 전원합의체[/footnote]에서 법적 근거도 없이 소멸시효를 6개월로 단축하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도 ‘진화위 결정 후 3년’으로 판시함으로써 퇴행의 전초를 마련하였다. 결국, 고문ㆍ폭행, 증거 조작에 의해 파출소장 딸을 강도ㆍ살인하였다는 누명을 쓴 채 15년을 산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단 한 푼의 국가배상조차 받을 수 없었다.

Pablo Fernández, CC BY https://flic.kr/p/5WwYyj
2011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출범 (출처: Pablo Fernández, CC BY)

그러더니, 이른바 1970년대 여성 노동조합운동의 상징이었던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footnote]2014.3.13.선고, 2012다45603판결[/footnote]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의 재판상 화해규정을 적용하여 기각하였다.

이후 원풍모방 노동자 사건[footnote]2014.4.30.선고, 2012다202192판결[/footnote], 문인 간첩단 사건[footnote]2015.1.22.선고,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footnote], 그리고 백기완 사건[footnote]2015.7.23.선고, 2015다212695판결[/footnote] 등 수많은 긴급조치 사건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현재까지 부인함으로써,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스톱 스탑 부인 노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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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간첩단 사건 (이하 ‘대상 판결’) 

  • 2015.1.22.선고,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 다수의견: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박보영, 조희대, 권순일, 김신.
  • 소수의견: 이상훈, 김용덕, 고영한(주심), 김창석,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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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대법원(2015.3.26.선고 2012다48824판결)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써,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에 따른 국가배상 책임마저 부인하였다.

박정희가 표상하는 이미지: 하면 된다, 경제발전 그리고 쿠데타와 독재
그 위헌성이 명백한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권 행사’를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보고, 국가배상 책임마저 부인한 대법원.

이로써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고도의 정치 행위라는 이유로,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화해 규정에 의해 이중 삼중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대부분 국가배상 청구를 부인당하고 있다. 말하자면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 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이 연출한 과거사 퇴행의 백미라 할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 민주화운동 피해자 등에 비수를 꽂다 

대상 판결의 다수 의견은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 결정에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위자료를 포함하여 그가 보상금 등을 지급받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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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다른 법률에 따른 보상 등과의 관계 등)

② 이 법에 따른 보상금 등의 지급 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경우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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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위원회가 결정한 보상금을 받았다면 그 이후에는 추가로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어떤 피해보상도 더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상금 지급 이후 원고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아 그 억울함이 밝혀졌더라도 말이다.

애초에 2010년 1월 12일 민주화보상법을 제정할 때, 5.18 보상법과 동일하게 진상규명과 실질적 보상을 전제로 재판상화해 규정을 두었던 것인데, 5.18보상법과 같은 실질적 보상은 되지 않고, 재판상화해 규정만 삭제되지 않은 채 유령처럼 남게 된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2013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 화해 주장을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피고 대한민국이 더욱 본격적으로 주장하고, 법원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사실 피해자는 민주화보상법에 의한 보상청구 당시 나중에 형사재심과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대법원을 박근혜 정권의 주구로 전락시켰다는 역사적 평가에 직면한 양승태 대법원장.
대법원을 박근혜 정권의 주구로 전락시켰다는 역사적 평가에 직면한 양승태 대법원장.

그러하기에 대상 판결의 소수 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피해자가 보상금 등을 받았을 때 나중에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 무죄가 선고되는 사정이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가 그 보상금 등 지급 결정에 동의하였더라도,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의한 복역 등으로 입은 정신적 손해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타당하다.

소수의견은 적어도 동의 이후 재심 무죄,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정까지 포함해서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므로 이후의 정신적 위자료 청구까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보상법에 의하면 변호사 등 전문직, 일정 직급 이상 공무원,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의 피해자들은 보상 등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곤궁하여 보상금 등을 받은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여유가 있는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역차별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재판상화해 규정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곤궁한 피해자들은 대한민국으로부터 ‘알량한’ 몇 푼 보상 등을 받고 국가배상청구권을 빼앗긴 것이다. 보상과 배상이 헌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다른 성격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대상 판결의 다수의견은 위헌적인 민주화보상법 재판상 화해규정을 형식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등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재판상화해, 헌법재판소에서 잠자다

그래도 용기 있는 판사는 있기 마련이다.

지난 2014.6.11. 서울중앙지방법원(2014카기50515 결정)은 ‘재판상 화해규정은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하게 재판 및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고, ‘실질적 보상 없이 생활지원금 5천만 원 한도에서 지급하면서 재판상화해까지 적용하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면서 헌법재판소에 재판상 화해규정에 대한 위헌심사를 제청하였다.

그런데 굳이 ‘용기’라고 하는 것은 2013년 이래 대법원의 위와 같은 퇴행적, 반역사적 판결에 대해 하급심의 침묵이 너무도 길기 때문이다. 손꼽을 몇 개의 판결을 제외하고 누구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대법원 판결에 대들지 않았다.

결국, 민주화보상법상 재판상화해 규정의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지게 될 것이다. ‘용기 있는’ 재판부가 위헌제청을 한 지 3년이 넘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헌법재판소의 ‘용기(?)있는’ 결정을 학수고대한다.

헌재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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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관해서는 여러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을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 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 기준은 바로 ‘판결’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로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써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장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1. 2009년 6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 교사들은 정말 유죄였나 (곽노현) 
  2. 문재인의 탈원전 ‘공론화’ vs. 제주 해군기지 ‘날치기’ (김필성) 
  3. ‘시효’ 뒤에 숨은 국가배상책임 (이상희)
  4. 신속하고 잔인하게 – 쌍용차 대법원 판결을 회고한다 (김태욱)
  5. 감기 보험 vs. 암 보험: 키코의 본질과 대법원의 오류 (박선종)
  6. 시대착오적인 ‘기성회비’ 판결 (2015) (임재홍)
  7. 대법원, 민주화운동 피해자 등에 비수를 꽂다 (조영선)

¶. 이번 칼럼의 필자는 조영선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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