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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는 문제로 2007년 이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제주 해군기지 사건’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사건에 대한 다양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본질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노무현 정부가 설치를 결정했고(’07년 5년 강정마을 우선협상 대상지로 선정),
  • 이명박 정권 공사를 강행했으며(’11년 공사 착수),
  • 이에 항의하는 국민을 처벌했다 점.

문재인의 선택, 시민이 결정하는 ‘탈원전’ 

이질적이고, 상반된 성격을 가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관해선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사실상 계승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보인 노무현 정부의 우를 다시 범해선 안 된다. 그러니 나는 근심한다. 문재인 정부는 환경과 직결하는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어떤 태도와 철학 그리고 방법론을 보여줄까.

'11년 9월 29일 '해군기지' 문제로 강우일 주교를 만난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출처: 제주의소리)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05008
’11년 9월 29일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천주교 제주교구청을 방문, 강우일 주교를 만난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당시 문 이사장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의 말씀을 저에게 전하셨다”며 “주교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출처: 제주의소리, 이승록 기자)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정부가 옳은 방향을 잡고 있음을 최근 우리는 확인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인 ‘탈원전’ 정책을 진행 중이다. 그 방식과 절차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참신하고, 고무적이다(참조: 한겨레, ‘신고리 5·6호기 운명, 시민들이 결정한다’, ’17. 6. 27).

  1. 우선 울산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 일시 중단.
  2. 총리실, 공론화위원회 구성 (10인 이내): 공론 조사방식 설계(3개월 이내)
  3. 시민 배심원단의 공론조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공사 여부를 결정.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 시민의 판단으로 ‘최종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큰 방향을 잡았다. 이런 시기에 ‘환경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제주 해군기지 사건을 돌아보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잘못된 행정 일방주의의 적폐를 다시 한번 찬찬히 검토하는 아픈 반성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시민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공론화의 과정과 절차를 거쳐 ‘협치’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 얼마나 옳고, 바람직한 방향인지를 확인하는 희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문재인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출처: 청와대)
문재인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출처: 청와대)

재판 쟁점은 ‘절차적 하자’  

제주 해군기지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1. 해군기지 설치 처분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가.
  2. 해군기지 설치 처분 자체에 하자가 있는가.

이 중 첫 번째 쟁점은 환경영향평가의 완료 시점에 관한 문제다. 법적으로는 상당히 중요한 주제로 볼 수 있지만, 실제 소송 과정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진 문제는 설치 처분 자체의 하자에 관한 것, 즉, 환경보호나 반전과 같은 법정 바깥의 실체적 내용에 관한 논쟁과는 달리, 주로 절차적 하자가 실제 재판의 쟁점이었다.

두 번의 처분 모두에 공통된 것이기는 하지만, 특히 실제 제주 해군기지 설치의 근거가 된 두 번째 처분과 관련된 절차적 하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강정마을 내부에서 기지 설치 동의 결의 과정상의 절차적 하자 문제
  2. 제주도 의회 결의의 절차적 하자 문제

이 두 가지 절차적 하자 중 제주도 의회 결의의 하자 부분은 재판 전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진 매우 중대한 쟁점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제주도의회의 ‘날치기’ 

강정마을에 대한 해군기지 설치 처분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강정마을에 대한 1등급 절대 보전지역 지정을 먼저 해제해야 하는데, 1등급 절대 보전지역 해제를 위해서는 제주도지사가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강정마을의 1등급 절대 보전지역 해제를 위한 제주도의회의 의결에는 심각한 하자가 있었다. 제주도의회에 이 안건이 상정될 무렵에는 이미 제주 해군기지 설치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주도 의회 내에서도 이를 격렬히 반대하는 의원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제주도의회 의장은 이 안건을 본의회에 상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는데, 당시 제주도의회 부의장직을 맡고 있던 아무개 의원이 몇몇 의원의 지원을 업고 이 안건을 독단적으로 상정한 후 날치기로 통과를 시켰던 것이다.

국회 날치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하다. 위 사진은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 한미FTA 기습처리하자 2011년 11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항의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451872.html
대한민국 정치의 익숙한 모습 ‘날.치.기’. 사진은 ’11년 11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하고, 한미FTA 기습처리하자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항의하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날치기 통과 과정이 제주도의회의 공식 의사록에 속기록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으로 그대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의사록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당시 표결에 출석한 의원들의 숫자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표결이 강행되었으며, 실제 찬성한 의원들의 숫자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공문서인 제주도의회의 공식 의사록으로, 당시 표결에 심각한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대로 입증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1심 소송이 마무리될 무렵 알게 되었다. 그래서 2심에서는 이 부분에 관해 치열하게 다투었고, 국방부는 변론 과정에서 공문서로 입증된 제주도 의회의 날치기 사실에 대해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2심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졌던 이 부분 쟁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축해버린 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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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 제19, 20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이 사건 절대보전지역 변경을 위한 제주도의회의 2009. 12. 17.자 동의안 의결 절차에 원고 주장과 같은 안건심의규정위반·표결방법위배·일사부재의의 원칙 위배의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제주도지사가 제주도의회의 위 의결에 터잡아 한 이 사건 고시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이 사건 고시가 무효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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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법원은 아예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조차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추상적으로만 설시하여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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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2012. 7. 5. 선고, 2011두19239 전원합의체
  •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박일환, 김능환, 전수안, 안대희,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주심),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절대 보전지역의 지정 및 변경은 도지사의 재량행위라고 판단한 후, 이 사건 절대보전지역변경(축소)결정은 강정마을 내의 절대보전지역 중 이 사건 사업부지에 속한 105,295㎡를 해제하여 절대보전지역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므로 주민의견 청취절차가 필요 없고, 도지사가 관계 법령의 범위 내에서 도의회의 동의를 얻어 정책상의 전문적·기술적 판단을 기초로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행한 적법한 처분으로 봄이 상당하고, 거기에 사실 오인, 비례·평등의 원칙 위반, 당해 행위의 목적 위반이나 동기의 부정 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위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 이유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절대 보전지역의 지정 및 변경 행위의 성격, 주민 의견 청취 절차의 필요성 및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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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민주주의

행정소송에서 절차적 하자를 중점적으로 다투는 것은 일종의 소송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대다수 행정행위는 행정청에 어떤 방식으로든 재량권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행정청의 행위가 재량권을 벗어난 위법한 행위라고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법적 절차는 행정청에 재량이 인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위법성을 입증하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제주 해군기지 사건 소송에서 절차적 문제가 주된 쟁점이었던 이유는 단순한 소송 기법상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럼비 바위를 깨는 공사 모습 ('11. 9. 7. 사진: 고승민)
구럼비 바위를 깨는 공사 모습 (’11. 9. 7. 사진: 고승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주 해군기지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한 가치는 환경보호, 반전 등이었다. 이러한 가치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안보 등의 가치도 중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환경, 반전 등의 가치보다 안보라는 가치가 우선할 수도 있다. 이에 관해선 기지 설치를 반대하는 이들도 부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안마다 이렇게 서로 경쟁하는 가치 중 어떤 가치가 우선해야 하는지, 사회 내에서 충분히 논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 해군기지 설치 여부가 문제라면, 제주 해군기지를 설치하려는 쪽에서는 왜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설치해야 하는지, 제주도에 설치한다면 왜 제주도 내에서도 가장 청정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경청해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왜 국방부가 제주 강정마을에 제주 해군기지를 설치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충분히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이 공정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 사회 전체가 합의점을 찾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원리가 문제 해결 절차에서 관철되어야 하는 것이다.

pudmaker, '제주 해군기지 반대 미사, 2011년 10월 20일, CC BY SA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Jejunavalbase2.JPG
pudmaker, ‘제주 해군기지 반대 미사’, 2011년 10월 20일, CC BY SA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 설치 과정에서, 이러한 민주주의 원리가 지켜지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는 해군기지 설치 필요성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을 한 일이 없으며, 오히려 강정마을에 설치를 결정하고, 이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과거 군사정권과 다를 바 없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나는 이 부분이 제주 해군기지 설치 처분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라고 판단하였고, 이러한 문제점이 극적으로 드러난 지점이 제주도 의회의 날치기 사건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 부분을 소송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설정하고 재판을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한 원고의 주장을 일축함으로써, 이 부분에 대한 판단 자체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나는 결국, 법원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책임을 내팽개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제주 해군기지 사건이야말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끌었던 사법부의 특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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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관해서는 여러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을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 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 기준은 바로 ‘판결’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로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써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장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1. 2009년 6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 교사들은 정말 유죄였나 (곽노현) 
  2. 문재인의 탈원전 ‘공론화’ vs. 제주 해군기지 ‘날치기’ (김필성) 
  3. ‘시효’ 뒤에 숨은 국가배상책임 (이상희)

¶ 이번 칼럼의 필자는 김필성 변호사(법무법인 양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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