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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가만히 있으라": 용혜인을 위한 탄원서

“가만히 있으라”가 법정에 섭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가만히 있으라’ 침묵 시위를 제안하고, 이끌어 온 용혜인 씨가 내일(2014년 11월 26일) 법정에 섭니다. 이에 청년좌파 김성일 대표가 용혜인 씨를 위한 탄원서를 보내왔습니다.

우리가 또 다시 익숙한 망각의 터널 속에서 세월호를 조금씩 지워버린 지도 한참입니다. 긴 글이지만, 한 줄 한 줄이 우리 시대의 무게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의 무게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재판장님,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귀 재판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건의 피고인 용혜인 씨를 위한 탄원서입니다.

용혜인,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

용혜인,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

탄원서

저는 피고인이 기소된 이유 중 핵심적 사건인 5월 18일 사건과 6월 10일 사건 당시 함께 연행되었던 바 있습니다. 5월 18일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6월 10일에 대해서는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위와 같은 사실로 인해 재판장님에게 편견 없는 신뢰를 얻기는 쉽지 않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실이 제가 이 사건에 대해 충분히 자세하게 알고 있다는 증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용혜인 씨의 평소 성격이 어떠하였는지, 그의 신상과 기타 사정을 보아 선처가 필요한지 어떠한지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이 탄원서를 쓰는 이유는, 재판장님께 공정하고 면밀한 관찰과 정의로운 판결을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이 글이 일반적으로 탄원서라고 불리는 것들과 형식상 상이하더라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첫째로 공정하고 면밀한 관찰을 부탁드리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찰이 언론에 공개한 공소장 내용과 이후 그들이 언론을 보인 태도 때문입니다. 저는 공소장의 내용이 검찰의 고의성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장님의 잘못된 예단을 유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후 검찰이 언론을 통해 보인 태도로 보아, 그와 같은 태도는 법정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둘째로 정의로운 판결을 부탁드리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재판장님이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라는 가치에 걸맞는 판결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정의란 2천년 전 로마대법전에서 규정한 바와 같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항상적이고 영속적인 의지”입니다. 법률은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의지를 통해 진화해왔고, 또 발전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의 지난 판례에 따르면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검찰 혹은 그 외의 어떠한 공권력이 매우 중대하고 비종교적인 사유 없이 사람들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외면하려 할 때, 혹은 명백하게 위협적인 행동을 할 때, 그로부터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만이 정의로운 판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부탁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제가 이해하고 있는, 그리고 겪은 사건의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찰이 언론에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용혜인 씨는 현재 세 가지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 첫째는 5월 18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중 경찰이 해산명령을 했음에도 불응한 건
  • 둘째는 6월 10일 국무총리공관인근 지점에서 시위를 하고 해산명령에 불응한 건. 6월 28일 민주노총 주최의 집회에서 행진선두가 경로를 이탈해 행진하자 약 3천명과 공모하여 차로를 점거한 건입니다.
  • 세 번째 건인 6월 28일의 사건에 대해서는 굳이 상세한 이야기가 필요없을 것입니다. 공소장의 내용만으로도 피고인이 이 집회의 단순참가자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고, 행진선두가 경로를 이탈하는 우발적 상황에서 단순참가자인 피고인이 현장에 있던 무려 3천명과 공모하여 적극적으로 도로를 점거했다는 검찰의 표현은 우주선이 달나라로 가는 시대에 갑론을박하기 매우 부끄러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으로 설명드릴 내용은 세 번째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두 사건 중, 5월 18일의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이라 불리는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유독 자세히 설명드리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로 피고인이 명확하게 주최자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인 관계로 이 재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둘째로 법치주의와 정의로운 판결이라는 지점에서 고민할 부분이 가장 많으며, 셋째로 공소장의 내용에서 가장 많은 오류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사건의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문서와 정황을 담은 사진, 영상 등은 인터넷으로 누구나 언제든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2014년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탑승자 476명 중 생존자를 제외한 사망자와 실종자가 304명에 이르렀습니다. 재판장님도 아시다시피, 이 사건은 그 당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사고 당일부터 4월말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국민들은 집단적 우울증 상태에 빠졌습니다.

피고인은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안산에서 대학 입학 전까지 살았습니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일어난 대형참사의 충격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친구나 선생님들의 실종 소식을 접하면서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4월 2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하나의 글을 게재했습니다.

국화와 마스크, “가만히 있으라”라고 써진 종이를 들고 4월 30일에 거리를 걷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글이 화제가 되자 청와대 홈페이지 관리자는 곧 외부링크를 끊었습니다만, 다음날 언론 등에 인용되었고 피고인의 페이스북에도 동일한 글을 올려두었기 때문에, 전문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4월 30일 모임 공지

가만히 있으라, 4월 30일 모임 공지

검찰은 물론 사건의 시작을 파악할 수 있는 이 중요한 증거를 충분히 숙독했을 것입니다.

(전략)“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들었던 세월호 승객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참사
를 생각합니다. 모두가 말하듯이, 이 나라는 지금 침몰하는 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역시, 가만히 있기는 너무 꺼림칙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지 사람들에
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꺼림칙한 청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오는 4월 30일, 우리는 도심에서 추모의 국화와 “
가만히 있으라”는 세상의 명령이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를 누빌 예정입니다.(후략)

출처: 청와대 자유게시판 – [정말 우리들은 “가만히 있어도” 되는걸까요?] 가만히 있기엔 꺼림칙한 사람들, 4월 30일에 모여요 ! (현재 글은 삭제된 상황)

우선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설명을 드려야겠습니다.

첫째로, 세월호를 추모하는데 왜 거리로 나가냐는 질문은 이제는 아둔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구도 이제는 세월호 참사를 해프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진보적인, 혹은 음모론에 열광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여당까지도 이제는 이 사건을 이윤을 생명보다 중시해온 역사의 적폐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회적 다수론이 된,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피고인이 남들보다 며칠 혹은 몇 달 일찍 주장했다하여 그것을 이제와 특이한 주장이라거나 불순한 선동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이 글을 통해 피고인이 제안했던 행동의 내용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피고인이 제안했던 것은 추모를 의미하는 국화와 침묵을 의미하는 마스크,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라는 화두를 들고 “침묵하는” 행진이었습니다. 이 행진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성격이 추모 행진이라는 점은 굳이 더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 성격은 퍼포먼스를 통한 일종의 캠페인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문구를 들고 “가만히” 걷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세월호 침몰 당시 선내 방송에서 흘러나와 이 말을 믿고 따른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바로 그 한마디”라며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우리가 이런 말을 늘 들어오면서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제안글과 인터뷰 내용, 그리고 침묵행진의 성격을 볼 때 이에 대한 오독의 여지는 전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용혜인 씨가 제안한 4월 30일은 평일 낮 시간임에도 5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여러 단체들이 연합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 등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숫자지만,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로 모여든 것 치고는 상당한 숫자였습니다. 청소년에서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특별한 설명 없이도 한 손에는 국화를, 한 손에는 “가만히 있으라”를 들었습니다. 침묵행진 경로는 홍대입구역, 명동, 시청역이었는데 명동으로 가기 전 행진은 80여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행진 대열을 따라가는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행진에는 누적 약 250명의 사람들이 참가했고, 이날 모인 사람들은 다시 침묵행진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날의 행진은 주로 인터넷과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세월호와 관련된 행사에서 “가만히 있으라” 혹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가 슬로건이 되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도 침묵 행진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5월 2일에는 대전에서, 5일에는 구미에서, 6일에는 전주에서, 9일에는 인천에서, 10일에는 대구와 부산, 제주에서도 침묵행진이 열렸습니다. 팽목항의 자원봉사자들이나, 청소년들이 각각 침묵행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침묵행진을 했습니다. 제가 그 모든 행진에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시민의 불편”이라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침묵행렬을 만나는 사람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예를 표했고, 때로는 묵념을 하거나 국화를 나누어받고 따라오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자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은 행렬의 존재가 마음에 안들었던 사람들은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그런 것들까지 “시민의 불편”이라는 항목 안에 넣어버린다면 우리는 이후로 그 누구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방문 밖을 나서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시민의 불편”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5월 18일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은 5월 10일까지 별도의 집회신고 없이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5월 10일 이전까지 이 행진이 경찰에게 가로막히거나 해산명령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경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보과 형사와 사복 경찰들은 언제나 그 행진을 함께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피고인은 이 행진의 성격이 추모행진으로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5조에 의거하여 신고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경찰 역시 그러한 판단에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첫 체포가 이루어졌던 5월 18일은 그때까지와 다르게 집회신고를 하고 진행된 행진이었습니다만, 이날의 집회신고는 “이제부터는 집회로 성격을 규정해야지”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침묵행진 동안 경찰 측이 “추모행진인 건 알지만 집회신고를 하지 않으면 우리가 면이 서지 않는다”며 집회신고를 종용해왔기 때문입니다. 피고인은 신고대상이 아닌 추모행진을 집회로 신고하고 행진경로를 조정하라는 요구는 부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만, 사실상 행진의 방해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경찰의 “협조요청”을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반시민의 불편”이란 말은 이 날 나타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경찰의 입에서가 아니라 집회신고자의 입에서 먼저 나왔지만 말입니다. 당시의 집회신고 코스는 검찰의 조서에 적혀있듯이, 을지로 입구를 경유하는 행진 코스였습니다. 을지로 입구 근방은 인도가 좁고 상가와 노점이 많은 반면, 차도는 한산한 편에 듭니다. 피고인 측은 이를 고려하여 인도에서 행진을 하면 혼잡으로 행진 자체가 어려울 뿐더러 시민들의 불편이 예상되니 1개 차로를 열어줄 것을 요구했고, 경찰 측에서는 “내부적인 기준”이 있다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경찰은 이 시점에서 을지로의 혼잡하고 좁은 인도를 통행하는데엔 시민들의 불편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점입니다.

오류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전략)19:17경 동화면세점 인근까지 행진한 후 집회를 종료하지 않고 그 때까지 남아있던 약 150명의 집회참가자들을 선동하여 광화문 방면으로 차도 진출을 시도하는 한편, 광화문역 6번 출구 앞 교통섬 및 횡단보도를 점거하여 일반시민들의 통행과 차량의 소통에 불편을 야기하여 19:25경 서울종로경찰서 경비계장으로부터 집회종결선언을 요청받았음에도 이에 불응하다가, 21:00경 도로를 횡단하여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을 점거하고 22:00경까지 연좌시위를 지속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집회/시위 주최자로서 신고한 일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이날에 대한 제 기억은 매우 다릅니다. 첫째로 추모행진의 종료시각이 다릅니다. 이 날 침묵행진은 7시 이전에 “종결” 선언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오후 6시 40분 경 청계광장 소라기둥 앞에서 피고인은 침묵행진의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고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더불어 그 시각 경복궁역 즈음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다가 경찰에 의해 고립된 시민들이 있음을 밝히고, 자신은 행진을 끝내고 그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경찰이 모든 발언내용을 받아적어 보고하고 있었으니, 이에 대한 기록은 아마 검찰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후 일부는 경복궁 방향으로, 일부는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료선언을 구두로 하였다고는 하나, 국화와 피켓을 소지한 채로 여전히 침묵하며 걸었기 때문에 종료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종료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추모의 의미로 가져온 국화와 피켓을 쓰레기통에 구겨서 버리고, 침묵을 중단하기 위해 일부러 떠들면서 걸었어야 한다는 그러한 판단이 존중할만한 의견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둘째로 참가인원수가 맞지 않습니다. 청계광장에서 종료선언을 한 이후, 광화문 방향으로 따라온 사람 수는 50여명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검찰이 공소장에서 “점거”를 주장한 광화문역 6번 출구 앞 교통섬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150여명이라는 숫자는 터무니 없는 숫자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당시 교통섬에서 경찰에 포위당해 있는 상황이 찍힌 사진입니다. 전체의 숫자를 가늠할 수 있는 사진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만, 사진에 나온 봉쇄형태와 사람들이 둘러앉은 형태를 볼 때, 150명이라는 숫자는 사실이기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남아있던 150명”은 100명에 가까운 숫자를 한 자리에서 체포했던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호하기 위한 허위사실입니다.(물론, 실제로 150명 중 100명을 연행하였다 하더라도 과잉진압이긴 마찬가지입니다만.) 경찰이 사실상 진압을 시작한 (검찰이 “동화면세점 인근”이라고 얼버무리고 있는)일민미술관 앞에서부터 교통섬에 고립될 때까지의 일정한 시간 동안, 실제 행렬은 50여명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의 수가 늘어난 것은 한참 후입니다.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진압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과 주변을 지나던 시민들이 항의하기 시작하면서 말입니다. 시점상 이후에 등장한 사람들의 숫자를 처음부터 남아있었던 숫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표현상의 차이로 보기 어렵습니다.

셋째로 경찰의 진압시점과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 사실” 사이에 모순이 있을뿐더러, 차도 점거 시도 주장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우선, 검찰은 피고인이 “차도 진출을 시도했다”는 말 앞에 아주 중대한 사실을 누락시켰습니다. 바로 그 차도에는 횡단보도가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래 사진은 광화문 광장의 모습입니다.

가만히 있으라 탄원서

위 지도는 제가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국내 포털싸이트의 스카이뷰를 캡쳐한 것입니다. 사진의 횡단보도들은 최근에 갑자기 생긴 것들이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일민미술관 인도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간다면, 싫어도 횡단보도를 건널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경찰이 저지한 것은 차도 진출이 아니라 횡단보도 진출이었습니다. 물론 검찰은 거기가 횡단보도던 아니던 차도인 것은 사실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차도로 진출한다는 말의 의미와 횡단보도로 진출한다는 말의 의미는 엄연히 다릅니다.

더구나 “150명의 집회참가자들을 선동하여 광화문 방면으로 차도 진출을 시도”했다는 말에서 그려지는 광경과 “침묵한 채로 횡단보도 앞에서 경찰에 의해 막힌” 광경은 지나치게 차이가 납니다. “광화문역 6번 출구 앞 교통섬 및 횡단보도를 점거하여 일반시민들의 통행과 차량의 소통에 불편을 야기”했다는 내용 역시 정확하지 않습니다. 피고인 등은 광화문 6번 출구 앞 횡단보도를 “점거”한 것이 아니라, 건너려했기 때문입니다. 횡단보도 중간을 “점거”하고 일반시민들의 통행과 차량의 소통에 불편을 야기한 것은 분명 경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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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50여명의 국화꽃을 든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심각하게 공공의 이익을 저해할 우려가 있었다 하더라도, 횡단보도의 점거를 실행한 것이 경찰이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오류들에서, 재판장님으로 하여금 잘못된 예단을 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 이외에 어떠한 의도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후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은 100여명의 시민들을 “해산명령 불응”을 이유로 무차별 검거했습니다. 그 “해산명령 불응”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광장 언저리에서 경찰의 진압과정을 구경하던 시민들도 체포되었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시민들도 “해산명령 불응”으로 체포되었습니다. 한 외신 사진기자는 신분을 확인하고도 체포되었고, 다른 국내언론사 사진기자는 경찰에 의해 폭행당하는 장면이 사진기자들에게 찍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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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을 남성 경찰관들이 마구잡이로 강제 연행했고, 해산명령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경찰관에게 구두로 밝히고 경찰의 용인을 받아 포위망 밖으로 나간 사람이 한참 후에야 ‘마음이 변한’ 경찰관에 의해 다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날 체포된 시민들의 상당수가 최근에서야 속속 “혐의 없음” 통보를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체포는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세월호추모청년모임”

검찰의 공소장 중 서두인 “범죄전력 등”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전략)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는 명목으로 자칭 ‘세월호 추모 청년모임’을 제안, 결성하였다.

피고인의 배경을 설명한 이 적시는 얼핏 보면 큰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검찰의 완벽한 창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검찰이 아직까지도, 근거도 출처도 없지만 엄연히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 부분은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의 제안문을 비롯한 모든 기록들은 인터넷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그 기록들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은 5월 18일 시민들의 연행과 함께 경찰의 체포통지서와 언론기사들에서 일제히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저런 단체명이 언론지상은 물론 웹상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1. 지면과 인터넷기사를 막론하고 국내 대부분의 언론기사는 국내포털싸이트, 예를 들어 네이버나 다음 등에 등재되어 있으며, 모든 기사는 “오래된 순”으로 검색이 가능합니다.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5월 18일 저녁 부터입니다.
  2. 만약 그 이전에 언론, 인터넷 등에 그러한 기록이 존재했다면, 누가 그 증거를 인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국내는 물론 해외의 포탈싸이트에서도 그런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18~19일 이틀간 언론이 일제히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을 언급한 것은, 경찰의 요구, 혹은 위조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당시 언론은 시민들이 연행되는 장면을 당장 보도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더불어 해당 장소에는 어떤 단체의 이름을 알리는 표식 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추론 가능한 정황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이전까지 언론에서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고 소스도 존재하지 않는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이라는 단체의 이름을 사건당사자의 도움 없이 알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2. 이 과정에서 사건당사자라 함은 연행되는 자와 연행하는 자, 둘 뿐입니다. 연행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당신은 혹시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당연하게도 그와 같은 취재를 당하거나 목격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12개의 매체가 동시에 같은 단체명을 보도한 것은 1)취재원이 경찰이거나, 2)12개 매체의 기자들이 공모하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3.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을 최초로 쓴 뉴스1의 기사를 비롯해 다수의 당일 기사들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세월호 추모 청년모임 소속 대학생 등 시민 200여명(경찰 추산)은”. “경찰 추산”이라는 표현 외에는 그 어디에도, 출처를 암시하는 내용이 존재하지 않았음으로 미루어 출처는 경찰 외에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이라는 이름을 피고인 등이 최초로 접한 것도 이 날이며, 그것은 경찰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은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의 회원으로서”로 시작되는 이른바 “범행사실”을 인정할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이 당시 받아쓰기로 만든 언론기사가 검찰 공소장의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의 유일한 근거입니다. 검찰은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이 날조라는 피고인 등의 항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이에 대해 밝히면서 실제로 유일한 근거가 해당 언론기사와 경찰 보고서 뿐임을 인정했습니다.

검찰은 “‘세월호추모 청년모임’이라는 단체명은 침묵행진 당시 언론 기사를 통해 이미 수차례 보도됐다”며 “공문서인 경찰의 정보상황 보고서에도 이 단체명이 적혀 있고, 이는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에 검찰이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습니다.(11월 4일 경향신문) 해당 기사들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기자 여러분들이 열심히 취재해 쓴거죠?”라는 해괴한 반문을 하기도 했습니다.(11월 5일자 헤럴드 경제 기사)

재판장님, 저는 더 나아가 검찰이 언론의 오보에 “속아서” 오해를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의심이 많은 음모론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 수많은 언론기사들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은, 오직 이 세상에서 그 공소장에만 존재하는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의 결성과정 때문입니다. 다시 상기시켜드리자면 공소장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는 명목으로 자칭 ‘세월호 추모 청년모임’을 제안, 결성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내용은 어떤 언론기사에도 없고 어떤 인터넷 페이지에도 없으며 심지어 피고인과 이른바 “세월호추모청년모임 회원”들의 기억에도 없습니다. 애당초 피고인이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명목으로” 세월호추모청년모임을 “자칭”했다는 말 자체가 이미 모순입니다. “명목”과 “자칭”이란 말로 검찰은 그의 주장 혹은 선언을 인용한 듯이 말하고 있는데,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이 주장하는 “세월호추모청년모임”에 대해 일관적으로 부정해왔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부정하는 “명목”이 어디에 있으며, 본인이 부정하는 “자칭”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오류와 악의

재판장님, 이러한 오류들은 피고인의 혐의에 있어 어쩌면 사소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법정에서 충분히 걸러질 내용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 오류들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무분별하게 다른 사람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분명 악의를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허위일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검찰입니다. 피고인은 분명한 악의가 -그것이 지배적이지 않더라도- 도사리고 있는 법정에서 심판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검찰의 그러한 악의가 때때로 법정에서 너무도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현실에서 배웠습니다.

재판장님은 혹시 지난날 트위터에서 북한을 소재로 농담을 했다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던 박정근 씨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CNN에서 “한국에서는 농담 잘못하면 감옥간다”는 보도가 나가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3년을 끈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에서야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건 당시 박정근 씨의 친구였고, 사건 발생 이후 그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증거인멸도, 도주우려도 없었던 이 사건에서 검찰은 “피의자가 국가보안법으로 수사중임을 알면서도 “뉴타운간첩파티”라는 국가보안법 반대 행사를 개최하고, 이에 대한 홍보 스티커를 시가지에 붙이는 등 재범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그 구속영장은 받아들여졌습니다.

뉴타운간첩파티

뉴타운간첩파티

그 “뉴타운간첩파티”라는 행사가 제목 이외에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박정근 씨가 그 행사를 개최했다는 근거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검찰의 그 주장은 명백한 허위였습니다. 제가 이를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뉴타운간첩파티”라는 것을 개최한 사람이 다름아닌 저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모금을 해서 비용을 마련하고, 제 발로 경찰서에 가서 집회신고를 했으며, 제가 그 행사의 주최자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숨기지 않았기에 어떤 오해의 소지도 없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으나, 그 사건의 재판에서 저는 수많은 악의들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그 악의의 원천을 발견한 것은 검사의 심문에서였습니다. “나는 주말마다 가족들과 현충원에 다녀오는데 피고인은 현충원에 가본적 있느냐”, “북한사람들이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을 비판해본적이 있느냐” 등의 부적절한 심문을 눈앞에서 보면서, 저는 그 악의가 검찰의 정치적 신념으로부터 나왔음을 이해했습니다. 그가 상상하는 “모범적 국민”과, 당시 피고인 박정근의 모습은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검찰의 그와 같은 심문에 방청객들 중 일부가 실소를 터뜨리자, 당시 재판장은 방청석에 주의를 주며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에 대해 비웃어선 안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날 그 재판장이 한 말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이들의 정치적 신념은 고유한 것이고, 그들의 특수한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기 위한 행동의 권리는 공공에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대통령에서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수감 중인 죄수에 이르기까지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타인의 운명을 상대로, 법에 의한 심판을 하려할 때는 아닙니다. 경찰이 시민을 상대로 공무를 집행하려 할 때는 아닙니다. 법치는 인치가 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던 판사의 그 말은, 그날 피고인 박정근을 옹호하기 위해서 주어져야 했습니다.

제가 이미 지나간 다른 재판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번 사건 역시 체포에서 공소에 이르기까지 기만과 악의, 그리고 신념의 폭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자의적 진압과 무작위 체포, 검찰의 기만적 공소만큼이나 이 과정에서 혐오스러웠던 점은 그들의 조사과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집회 현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 유명 시민단체의 대표자들이나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유명인들, 심지어는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에 이미 감옥으로 간 사람에 대해서도 피의자들에게 심문하였습니다.

“당신은 모 단체의 모 씨를 아십니까? 그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가 이 집회를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한가요?

피의자들의 대답은 뻔하게도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였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싫어한다는 것 외에 아무 연관관계도 찾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해 질문해야 할 공적인 정당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면 검찰의 사적인 호불호와 정치적 신념, 그리고 “이 사건에 이 사람도 엮였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악의 뿐입니다.

법치

재판장님, 저는 앞서 법치주의 가치에 걸맞는 판결을 요청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이들에게, 특히 경찰과 검찰을 위시한 공권력 수행집단에게 끊임없이 오용되고 있는 “법치주의”란, 국가권력의 자의적 지배에 대립되는 이념임을 재판장님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을 되풀이하자면, 검찰 혹은 그 외의 어떠한 공권력이 매우 중대하고 비종교적인 사유 없이 사람들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외면하려 할 때, 혹은 명백하게 위협적인 행동을 할 때, 그로부터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실질적 법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헌법재판소에서는 지난 1992년 이러한 법치주의가 법정에서만이 아니라 행정과 공권력 전반에서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재판장님, 피고인 등의 체포에서 조사, 기소에 이르기까지 법치는 완벽하게 실종되었습니다. 법은 공권력의 행정편의와 시민에 대한 자의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적용되었습니다. 법이 때때로 그러한 수단으로 여의치 않을 때, 그들은 그 법률이 정하는 바를 매우 너그럽게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이 미신고 집회 및 금지장소 집회로 기소한 6월 10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날은 집회가 금지된 날이었습니다.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찰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날, 경찰은 청운동/삼청동 일대에 제기된 시민들의 집회신고를 명확한 근거 없이 61번이나 금지통고했습니다.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61번의 우연을 믿지 않습니다.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너희들의 집회를 무조건 금지하겠다는, 경찰의 분명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만약, 설사 그 결정이 잘못되었더라도 경찰이 그렇게 결정한 이상, 미신고 집회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저는 그것은 이 나라가 법치가 아니라 인치를 통치원리로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법치라는 말이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바는, 우리의 삶과 갈등의 조정을 법에게 맡길 것인지,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인격에게 맡길 것인지 입니다. 인간을 위해서라는 이유 없이 법이 사용되고, 그것이 실존하는 인간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이를 법치라고 부르는 것은 서툰 말장난에 불과할 것입니다.

용혜인,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

법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법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법과 그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게는 국민 각자가 천부적인 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권은 국가가 국민에게 선물하거나 허용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문명사회의 그 어디에도 개인의 권리가 정부나 법원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법전은 천부의 인권을 보호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검찰이, 법원이 개인에게 권리를 준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권은 허가제가 아닙니다. 검찰의 권위나 행정편의가 국민의 인권에 우선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고, 특정계층에 대하여 완전하고 평등한 권리의 향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헌법은 “자유를 허용하기 위해”가 아니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국가권력을 집행하는 자는 누군가의 정치적 자유를 빼앗기 위해서 그 법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가 타인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며, 타인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줄 때, 그의 자유와 안전을 옹호하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합니다. 검찰이나 경찰의 상상속에 살아가는 “모범적 국민”이 아니라, 만질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실존하는 인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검찰은 “자유는 중요하지만 무한정의 것은 아니다”라고 준엄하게 꾸짖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판장님, 자신의 인간성을 옹호할 권리도, 정치적 시민으로서 행동할 자유도 원천적으로 빼앗긴, 오로지 “진술을 거부할 권리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만을 부여받은 이들에게 자유의 한계를 논하는 것은 완전한 조롱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감정을 심사당해야 하고, 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 사회의 지배를 받는 것이 대체 어떠한 자유입니까? 경찰과 검찰의 변덕에 따른 체포와 공소가 마구잡이로 이루어지는 조건 하에서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단 말입니까? 허가로부터 나오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라 부여된 대행일 뿐입니다. 시민의 자유는 사라지고 완전히 타인의, 사법기관 혹은 공권력의 자비에 맡겨진 운명이 될 뿐입니다.

추모재판

재판장님, 저는 이 탄원서에서 검찰과 경찰의 공권력 행사 절차나 사후처리 등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주장은, 이 조치들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잘못은 경찰이 추모행진 참가자들을 막고, 그 행진의 성격을 “집회”로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종결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실행한 것입니다. 두 번째 잘못은, 현존하는 위험이 없음에도 신고한 내용 외의 행동을 했다는 판단만으로 무력으로 그들을 제압하려 한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그것이 50명이 아니라 5만명이라 하더라도, 국화꽃을 든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에서 어떠한 위협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첫 번째 조치에 대해 그 자리에서 항의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불법집회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검경의 오만임을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첫 번째 조치의 온당함과 부당함을 가리기 위해 이 법정에서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은, 바로 피고인 등의 침묵행진이 정확하게 집시법에서 규정하는 집회인지 추모행사인지에 대한 판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진에서 어떻게 추모인가 아닌가, 집회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 정치적 구호입니까? 추측할 수 있는 의도입니까? 그 눈빛의 모습입니까? 그 말의 색과 음의 높고 낮음입니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의 보유 유무입니까? 생각의 다름입니까? 경찰이 선포하면 되는 것입니까? 어느 검사의 정치적 신념과 다르면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저것은 추모행사가 아니라 집회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까? 추모행사가 신고대상이 아님을 엄격히 구분한다면, 추모행사가 아닌 집회를 할 의사였다고 판결하기 위해 우리가 밝혀야 할 것은 “집회를 할 의사가 있었다”가 아니라, “추모를 할 의사가 없었다”일 것입니다. 결국 지금 법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저 눈물이 가짜인가”를 심판하는 일입니다. 재판장님, 저는 여기서 피고인의 눈물이 진짜였다고 호소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그 누가 눈물의 진정성을 심판할 것인가에 대해 물을 뿐입니다.

수많은 사회적 상황과 각각의 마음가짐, 그리고 검찰의 신념 등 무형의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그리고 공소장에서 날조된 내용까지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일어난 일은 매우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국화를 들고 공공의 거리를 걸었을 뿐입니다. 이를 금지하고 부당한 명령을 하며, 48시간 동안 유치장에 가둔 공권력이 분명한 제재를 받지 않고, 법원이 이 사람들을 또 벌하려 한다면 그것은 무형의 것, 인간성을 벌하는 것에 다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흰 국화꽃에, “가만히 있으라”라는 단 여섯 글자에, 침묵행진에 법원이 집회 성립을 판단한다면, 법원이 신과 같은 시점에서 판결할 수 있다고 자임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피고인 한 사람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판결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한 결정은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표현의 내용은 물론이고 표현의 방식에서 생기는 미세한 차이로, 혹은 법관의 차이로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잃게 되는 것들을, 법원은 결코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보상해줄 수 없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은 고통과 공감을 터뜨리는 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추모의 공간을 열어준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요?”라는 물음에 공명하는 이들의 만남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가 위로였고, 해결이었습니다. 법은 이런 일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법원으로 달려가서 슬픔과 고통을 고소하고 그것들을 없애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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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

사법정의가 권리를 옹호해야 할 모든 사람, 이 법원에서는 국민이 될 그들은 어떠한 규정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개별자들입니다. 검찰과 경찰은 피고인이 “일반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했다고 주장하지만, 5월 18일에도 6월 10일에도 피고인 등으로 인해 불편한 일반시민은 최소한 실질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국화꽃은 그 어떤 탁월한 격투가의 손에 들려도 무기가 될 수 없고, 광대한 광화문 광장을 50여명으로 불편하게 만들 대단한 책사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삼청동의 밤은 한산했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그토록 권리를 옹호하고자 했던 “불편한 일반시민”은, 그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모범적 국민들이었습니다. 실존하지 않는 시민의 불편은, 실존하지 않는 불편입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모범적인 인간은, 그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만을 대변할 뿐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이 사건에서 완전히 불의에 입각해있었습니다. 모든 권리는 표상의 산물인 모범적 국민에게만 있고 모든 잘못은 실제로 눈앞에 있는 모든 국민에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공소가 정당한 것이 된다면, 법이 본래 지켜야 할, 법의 토대인 모든 국민이 누려야할 개인의 자유는 변덕스러운 인치의 손에 맡겨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법은 어떤 결정이 국민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모호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모범적인 국민이 아니라, 구체적인 모든 국민입니다. 법의 진정한 역할은 국민의 손발을 묶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법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가치에 대립하는 것을 제 1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피고인 등이 체포되던 날 손에 들었던 문구는 “가만히 있으라”였습니다. 피고인은 제안문에서 이것이 “질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질문은 이제 최종적으로 이 법정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허가 없는 눈물을 멈추라는 명령이 될 수도 있고, 공권력이 부당한 명령을 할 때 이에 언제나 복종해야 한다는 명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재판장님은 이제 이에 대한 판결을 해야 합니다.

법이 태양을 멈추라고 말할 수 없듯이, 눈물을 멈추라고 명령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법의 상위에 존재하며, 법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옳은 것이 언제나 승리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옳은 것이 언젠가 승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재판장님의 옳은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재판부 귀중

2014년 11월 24일

청년좌파 대표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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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슷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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