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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 [뉴스 9] 웹사이트.)
(사진: JTBC [뉴스 9] 웹사이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결국 종편 JTBC [뉴스 9]에 중징계를 내렸다.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태와 관련한 보도가 불공정했다는 것이다. 방심위 홈페이지에 게재된 결정 사항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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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을 간추리면 1) 한쪽 의견만 장시간 보여주었으며 2) 여론조사 결과를 잘못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징계 이유가 합리적이고 공정한가를 간단히 살펴보자.

미 연방통신위원회가 공정성 원칙을 폐기한 이유

[dropcap font=”arial” fontsize=”33″]첫째[/dropcap] 이슈. 논쟁적 사안에 대한 뉴스 보도의 공정성을 단순한 수치로 따지는 방식이 문제가 크다는 점은 이미 2004년 탄핵 정국 때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방송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한국언론학회가 작성한 보고서는 노무현이 탄핵당한 직후 나온 TV 방송을 분석한 뒤, 탄핵에 비판적인 내용을 더 많이 보도했으므로 불공정하다고 결론 내렸던 것. 이런 양적(量的) 동등 의무나 모든 주장 보도 의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은 미국에서도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 유명무실화 등으로 일찌감치 공식화된 일이다.

이 원칙의 골자는 방심위 결정문에 나타난 주장과 흡사하다. 방송이 논쟁 사안을 보도할 때 정직하고 공정하며 균형 잡힌 태도로 ‘양쪽 주장을 모두 내보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 원칙은 1987년부터 유명무실화했고 2011년에 공식 폐기되었다. 그 이유가 중요하다. 1987년 당시 연방통신위원회는 “이 원칙을 강요함으로써 정부가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에 간섭하는 일은 방송의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밝혔다. 2011년에 공식 폐기할 때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 줄리어스 제너카우스키는 “공정성 원칙은 표현의 자유 및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유통을 억제할 위험을 안고 있으며, 따라서 지난 20년 동안 실질적으로 무효화되어 왔던 것은 올바른 일이다”라고 말했다. (단, 특수한 상황인 선거 관련 보도에서 후보자들을 동등한 시간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조항(equal time rule)은 여전히 유효하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사실인 양 보도하고 왜곡과 조작을 일삼는 일이 아닌 한, 방송이 민감한 정치적 쟁점을 어떤 시각과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는 방송사의 뉴스 가치 판단에 따라야 옳다. 되도록 다양한 의견을 보여주고 반론권을 철저히 보장하는 것이 언론 윤리상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이런 태도를 정부 기관이 나서서 강제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방송 보도의 자율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방송이 불공정하다면 시청자가 비판을 보내고 외면하거나 이해 당사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하는 편이 국가가 개입하는 것보다 안전하다. 언론의 공정성보다 언론의 자유가 더 선차적인 문제이며, 후자가 보장되지 않으면 전자는 무의미하다.

불공정하게 적용되는 공정성 원칙

신문, 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에 대해서는 이러한 원칙을 국가가 강제하지 않는다. 또 인터넷 매체나 개인 블로그가 한쪽 정파의 주장만을 열렬히 써 올린다 하더라도 정부 기관이 나서서 이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왜 방송에 대해서만 이런 원칙이 있을까. 방송 전파는 제한된 공공의 자산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며, 정부가 그 사업을 허가하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이미 가진 사람은 사회에서 나오는 여러 목소리를 최대한 다양하게 내보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케이블 채널 등의 형태로 방송사가 늘어나고 전파 활용이 광범위해지거나, 지금처럼 매체 간 융합이 활발하게 벌어져서 예컨대 방송과 온라인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상황이 되면, 방송의 국가 규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근본적으로 약해진다.

설령 한국에서는 방심위가 주장하는 대로 이런 원칙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쳐 보자. 그렇더라도 이를 적용할 때 방송사나 보도 내용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한다든가, 맥락을 살펴보지 않고 일부만을 드러내어 적용한다면 아무런 설득력이 없게 된다. 방심위가 공정한 언론을 바라는 높은 사명감으로 [뉴스 9]를 징계하기로 했다면, 일방적 주장만 넘칠 뿐 다른 쪽 주장은 전혀 들을 수 없는 타 방송들은 물론이고, 방심위가 이렇게 애지중지 지키려고 하는 중대한 사회적 쟁점 사안들을 전혀 보도조차 하지 않는 방송사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편단심을 적용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방심위 주장과는 달리 [뉴스 9]는 반대쪽 의견, 즉 정부가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다른 뉴스에서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기사에 따르면, 방심위의 심의 회의에서 한 심의위원이 ‘정당 해산에 부정적인 반응만 내보내어 불균형’이라고 했을 때, JTBC 관계자는 “정부의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다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뉴스 한 순서에만 돋보기를 들이댄 채 불공정하다고 억지 판단을 했다.

이런 식이라면, 예컨대 문제의 방송이 나간 다음 날, 정당 해산을 청구한 법무부 관계자를 불러내 대담하며 방송을 내보냈더라도 여전히 문제를 삼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징계 대상이 두 개로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눈에 걸리고 귀에 걸리는 대로 아무 뉴스나 일부분만 뜯어와서 따지자면, 방심위는 뉴스 징계 처리를 하느라 다른 심의 사무를 볼 수 없을 지경일 것이다. 미국에서 공정성 원칙을 폐기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원칙을 폐기하면 부작용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렇게 국가가 언론 자유를 자의적으로 침해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보다는 낫다는 게 그 뒤에 깔린 생각이다.

여론조사 ‘꼬투리 잡기’ 설득력 없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33″]두 번째[/dropcap]로 문제 삼은 여론조사 결과 보도 문제. 진행자가 그 결과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지 않아 시청자를 혼동’하게 하였다는 주장은, 그 이례적으로 세심한 꼬투리 잡기는 차치하고라도, 설득력이 없다. 방심위가 문제 삼은 부분을 보면, 진행자가 반대 의견(자유/민주주의 침해)과 유보 의견(재판 결과 뒤 판단)을 합쳐 ‘반대’라고 뭉뚱그려 말한 것처럼 판단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단순히 ‘이번 조치가 적절하다’를 선택하지 않은 의견들을 합쳐서 그렇게 말한 것이며, 이것은 조사 결과를 정확히 반영한 언급이다. 보도 시점에서 해산 청구 조처가 적절하다고 찬성하는 의견과 아닌 의견을 구분하자면 그렇게 쪼갤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를 놓고 방심위는 ‘시청자를 혼동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는데, 선택지 항목을 이미 풀어놓았는데도 그렇게 혼동하는 사람은 딴지를 건 일부 밥통심의위원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숱하게 나온 여론조사 오류, 왜곡 방송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추상같이 칼을 들지 않았는지?

[뉴스 9]를 징계한 법규 근거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관장하는 행정 규칙인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이다. 구체적으로 첫 번째 이슈는 제9조(공정성) 제2항으로, 두 번째 이슈는 제14조(객관성)로 걸었다. 각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9조 ②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여야 한다.

제14조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된다.

이런 조항이 [뉴스 9] 징계의 근거로 합당한지는 이미 충분히 밝혀졌으리라 믿는다.

‘5.18 북한군 개입’ 보도만큼이나 잘못?

이번에 내린 ‘해당 방송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가 적절한 조처인지 따져 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방심위는 지난 6월 13일에도 똑같은 징계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이때 대상이 된 프로그램은 역시 종편 방송인 TV조선의 [장성민의 시사탱크]와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이다. 이유는 ‘5.18 광주 항쟁 때 북한군이 대거 개입했다’는 낭설을 우렁차게 내보낸 것 때문이다. 해당 방송들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자, 방심위는 이번과 똑같은 징계 결정을 내렸다.

말하자면, JTBC가 정부의 정당 해산 청구 조처에 대해 해당 정당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 또 여론조사 결과 수치 하나를 이른바 ‘혼동할 우려’가 있게 말한 것이, ‘5.18 때 북한군 1개 대대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고 이들이 전남도청을 점령했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줄기차게 내놓아 그렇게 믿는 인간들을 대거 생산해 낸 것과 동일한 정도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당시 권혁부 방심위 부위원장은 북한군 개입 방송에 대해 “(우리는 그 말을 믿진 않지만) 저널리즘이 작동해 5.18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단서가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합리적 의심’을 추구한 저널리즘이었다”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근거 없는 낭설 보도가 저널리즘이 작동한 결과로 보이는 방심위 눈에, 이번 JTBC 보도는 다르게 보인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이들의 관심이 실은 방송 공정성이 아니라는 ‘합리적 의심’을 자연스레 추구하게 된다.

기자 경력이 곧 공정성이라는 심의위원

[뉴스 9]를 징계하기 위해 열린 방심위 회의 내용을 전한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엄(광석) 심의위원은 자신의 ‘30년 기자 경력’을 내세워 제이티비시의 보도가 공정성에서 어긋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김상우 부국장이 공정성 문제 제기에 대해 반박을 하자 사안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언론사 근무 기간’을 따졌다. 엄광석 심의위원은 “(보도국에서) 몇 년을 근무했느냐”고 물었다. 김 부국장은 24년 차 경력의 기자로 “1989년부터 일했다”고 답했다. 이에 엄 심의위원은 “저는 30년 동안 근무했는데, 내 판단 근거에 의하면 공정성에 어긋난 것이라고 보인다. 인정하지 못하느냐?”고 몰아세웠다.

윤창중도 기자 밥 먹은 경력은 그 정도 된다. 밥만 오래 퍼먹었다고 다 어른 되는 것 아니다. 해당 심의위원은 30년 기자도 했지만, 물론 한나라당 지역구 조직위원장도 했고, 한나라당/새누리당 공천도 열심히 신청했으며, 박근혜-이명박 경합 때 박근혜 인천경선대책위원회 대변인도 했고, 그러다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심의위원으로 그냥 눌러앉았다.

마지막에 링크한 기사에 따르면, 그가 현직 심의위원으로 있으면서 박근혜를 위해 불법 선거 운동을 하다 적발되었을 때, 그를 두둔하던 박만 위원장조차 이렇게 말했다: “우리 위원들이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있어서 우리가 정치적 중립에 대해 손상을 가져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누가 누구한테 공정성 운운하는거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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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어찌나 히스테릭한지… 공정성, 청렴성 등을 가장 부도덕한 집단이 핏대 세워가며 주장하는 모습은 항상 역겨워요. 한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쓰레기처럼 굴리고 싶을까, 정말.

  2. 정통성이 결여된, (일단은)고작 5년짜리 정부에서 일하는 이들이 한오백년 왕조의 기틀이라도 마련할 듯이 “이 구역의 미친X은 나”라고 벌거벗고 발정난 개들처럼 들이대는데 이거 어디 선거날에나 사람대접받는 사람들은 정말 “많이 당황한 고객”님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3. 공정성을 따지고 싶으면 타방송사 뉴스 좀 보지 그래요. 거기 공정성이라고 말아먹은 어용 방송이 얼마나 많은데 그 방송은 다 멀쩡하게 두고 드물게 공정하려고 애쓰는 뉴스를 물고 넘어지다니. 참 뭐라 할말이 없죠. 결국 역으로 너무 공정해서 공정하지 못해야 공정해보이는 이상한 색안경을 쓴 이들에게 공격당하는 듯. 애초에 품질을 재는 사람쪽 도량기가 불량이라 물건을 제대로 만들면 오히려 품질불량 판정을 만든달까. 다 비리 하는데 한 명이 비리를 안 하면 오히려 비리를 안 하는 사람이 공격당하고 모함당하는 게 인간세상이죠. 그나마 그 경우엔 자기들이 떳떳하지 못 한 걸 아니 뒤에서 숨어서 모략질로 괴롭히는데 방통위는 아예 세상에 내놓고 저러니 무식함과 무대뽀정신도 그 정도면 용감하다고 칭찬해주어야 할지.

    참 어수선한 시대에 그래도 용감한 손석희 뉴스팀을 응원하고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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