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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검찰청을 폐지하고 중수청·공소청을 신설하는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행정기관의 존폐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검찰청 폐지로 검찰개혁이 완수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1년 동안 검찰개혁이라는 목표 아래 형사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형사사법체계의 개혁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검찰권 오남용을 확인한 판결이나, 형사사법체계 개혁의 화두를 던지는 판결을 선정해 ‘형사사법체계 개혁 특집 판결비평’을 진행합니다.

  1. 별건의 유혹: 범죄 혐의자에게 무죄 안겨준 수사기관의 무차별 압수수색
  2. 진료는 의사, 약은 약사에게: 검찰의 직접수사 관행에 제동 건 대법원
  3. 정신장애 피의자 ‘홀로’ 압수수색, 배심원단 ‘만장일치’ 무죄 뒤집기는 정당한가? (이 글)

정신장애 피의자를 혼자 두고 압수수색을 집행한 수사기관,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항소심에서 뒤집은 법원. 2024년 하반기 대법원은 이 두 사건에서, 형식적으로만 지켜지던 형사절차를 ‘실질적 권리 보장’의 기준으로 다시 세우는 중요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압수수색 참여권은 단순히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며, 국민참여재판의 무죄 평결은 항소심이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한상훈 교수가 이 두 판결이 보여준 ‘형식에서 실질로의 전환, 절차적 정당성과 사법 민주성의 강화’의 흐름을 짚고 수사·재판 단계 모두에서 인권과 민주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안합니다. 

피의자·피고인 권리의 진짜 의미를 돌아본 판결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적법절차의 원리와 영장주의는 단지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억제하는 소극적 기능을 넘어,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형사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적극적 원리이다. 최근 대법원은 2024년 하반기에 선고된 두 건의 중요한 판결을 통해, 수사 단계에서의 피의자 참여권 보장과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평결 존중이라는 두 가지 사항에 관하여 판시하였다.

이 글에서는 압수·수색 절차에서 정신적 장애가 있는 피의자의 참여능력을 새롭게 조명한 대법원 판결1(2020도11223)과,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무죄 평결에 대한 항소심의 증거조사 및 사실인정의 한계를 명확히 한 대법원 판결2(2020도7802)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우리 대법원이 지향하는 형사재판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와 사법의 민주성 제고의 경향을 살펴보고, 간단한 입법적 개선을 제안하고자 한다.

판결1.

참여능력이 없는 피의자만 참여한 압수·수색은 적법한가

대법원 판결(2024.10.08. 선고 2020도11223)의 사실관계는 수사기관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피의자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당시 피의자는 지적장애와 양극성 정동장애를 앓고 있어 의사소통 및 상황 판단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피의자만을 참여시킨 채 압수·수색을 집행하였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주거주 등의 참여권은 단순한 물리적 입회를 넘어 압수·수색 절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참여능력을 전제로 한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피의자가 주거주로서 참여하더라도 정신적 장애로 인해 이러한 참여능력이 결여된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형사소송법 규정(제123조 제3항)과 장애인차별금지법(제26조 제6항)에 따라 이웃 사람이나 지방공공단체의 직원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참여능력이 없는 피의자만 참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압수·수색은 위법하며, 이를 통해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을 파기하였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중 마약사범 유한양(일명 ‘헤롱이’, 연기자는 이규형).

형식적 절차 넘어 실질적 인권 보호해야

이 판결은 압수·수색 절차에서 참여권의 법적 성격을 재확인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형사사법적 배려를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갖는다. 

첫째, 참여권의 실질화이다. 기존 실무에서는 영장 집행 시 주거주가 현장에 있다면 그의 정신적 능력 유무를 불문하고 참여의 요건이 충족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참여의 주체가 절차의 의미를 이해하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어야 함을 명시함으로써, 참여권이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니라 적법절차와 영장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임을 천명하였다. 

둘째, 장애인차별금지법과의 체계적 해석을 통한 절차적 정의의 실현이다. 대법원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장애 여부를 확인하고 적절한 조력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형사소송법의 해석에 있어 헌법상 평등권과 관련 특별법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수사 편의주의를 배격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긍정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셋째,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엄격한 적용이다. 참여능력이 결여된 자만을 참여시킨 압수·수색을 위법한 강제처분으로 규정하고 그 결과물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함으로써,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향후 영장 집행 과정에서 피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보충적 참여인을 확보하도록 강제하는 규범적 효력을 발생시켰다.

판결2.

배심원단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항소심이 뒤집을 수 있는가

본 대법원 판결(2024.07.25. 선고 2020도7802)의 사실관계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사건으로, 제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다.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고, 제1심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검사의 항소로 진행된 2심(항소심) 법원은 추가 증인신문을 통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유죄로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의 입법 취지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원칙에 비추어,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하고 제1심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경우, 항소심에서의 사실인정 변경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특히 항소심에서의 새로운 증거조사는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며, 제1심의 판단을 뒤집을 만한 명백하고 현저한 사정이 없는 한 배심원의 평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하고 원심을 파기하였다.

국민참여재판·공판중심주의 원칙 지켜야

이 판결은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근간을 보호하고 항소심의 무분별한 파기 자판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이다. 국민참여재판은 직업 법관이 독점하던 사법 권력에 일반 시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여 사법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배심원들이 공판 과정 전반을 지켜보고 숙의하여 내린 만장일치 평결은 민주주의의 사법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평결의 무게를 항소심 법관이 기록 검토나 지엽적인 추가 증거만으로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의 사법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민주주의적 요청에 부합한다. 

둘째,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와 공판중심주의의 구현이다. 대법원은 제1심 법정에서 생생하게 이루어진 증거조사와 심증 형성을 존중해야 하며, 항소심이 단순히 기록에 의존하거나 불필요한 증인 재신문을 통해 1심의 판단을 번복하는 것은 직접심리주의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이는 사실심, 특히 1심의 충실화라는 사법개혁의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셋째, 피고인의 지위 안정과 이중위험의 방지 효과이다. 1심에서 배심원의 만장일치 무죄를 받은 피고인이 항소심의 자의적인 심리로 유죄로 뒤바뀌는 것은 피고인의 법적 안정성을 위협한다. 대상판결은 항소심의 심리 범위를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피고인이 겪을 수 있는 절차적 불안정을 해소하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공고히 하였다.

형식에서 실질로: 두 판결이 밝힌 사법 개혁의 방향

이 두 대법원 판결은 각각 수사 단계와 공판 단계에서 형사사법의 이념을 구체화한 중요한 판례이다. 두 판결을 관통하는 핵심은 ‘형식에서 실질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판결들은 국가형벌권의 행사 과정에서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사법 절차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강화하여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사법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1심의 무죄판결에 대하여 검사의 항소를 제한할 것인지가 논의되고 있다. 중대한 사건이라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하여 검사의 항소를 전면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워보인다. 특히 재심절차가 피고인에게 이익이 될 경우에만 허용되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헌법 제13조 제1항, 형사소송법 제420조 참조).

하지만 비교적 경미한 사건의 경우는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평결이 있고 법원이 이를 수용한 때에는 검사의 무분별한 항소를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개혁은 국민참여재판을 더욱 활성화하고, 나아가 1심재판에서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며 1심을 중심으로 재판이 운영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광장에 나온 판결: 298번째 이야기

⚖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의 전원일치 무죄 평결을 받아들여 무죄가 선고됐다면, 항소심에서 추가 혹은 새로운 증거조사 할 경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고 결론을 바꿀 때도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담긴 파기환송 판결
⚖ 대법원 신숙희(재판장), 이동원, 김상환(주심) 대법관  2024.07.25. 선고 2020도7802 판결 [판결문 보기]

⚖ 압수수색에 지적장애인만 참여한 것은 위법이라는 판단이 담긴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 대법원 박영재(재판장), 김상환, 권영준, 오경미(주심) 대법관 2024.10.08. 선고 2020도11223 판결 [판결문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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