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나온 판결. 296화] 형사사법체계 개혁 특집 판결비평 ① 별건의 유혹이 아무리 달콤해도, 그 열매는 법정에서 썩는다. (⏳5분)
지난 9월,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검찰청을 폐지하고 중수청·공소청을 신설하기로 하는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행정기관의 존폐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검찰청 폐지로 검찰개혁이 완수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1년 동안 검찰개혁이라는 목표 아래 형사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형사사법체계의 개혁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검찰권 오남용을 확인한 판결이나, 형사사법체계 개혁의 화두를 던지는 판결을 선정해 “형사사법체계 개혁 특집 판결비평”을 진행합니다.
범죄 혐의를 찾기 위해서라면 무제한으로 압수수색 해도 될까요? 수사기관의 무차별적 압수수색은 범죄 혐의가 있는 자에게 무죄를 안겨주게 됐습니다. 2018년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수사를 진행하던 특별수사단은, 참고인 A 중령의 휴대전화를 압수했습니다. 그런데 수사관은 압수한 휴대전화의 모든 정보를 엑셀 파일로 바꿔 군검사에게 제공했고, 이를 살피던 군검사는 ‘별건 혐의’를 발견해 기소했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A 중령에게 유죄를 선고한 하급심을 뒤집고,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에 반한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별건의 유혹’에 빠진 결과입니다.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인 ‘영장주의’를 져버림으로써 오히려 진실과 멀어져 버린 이번 판결,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장진환 부연구위원이 비평했습니다.
참고인 휴대전화 하나가 드러낸 수사의 민낯
2025년 8월 14일 대법원은 군기누설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A 중령 사건(2020도10908)에서, 하급심의 유죄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핵심은 명확했다. 수사기관이 압수한 휴대전화 복제본 전체를 엑셀 파일로 일괄 추출하여 별건 수사의 단서로 활용한 행위는 영장주의에 반하는 위법한 압수라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수사였다. 참고인 신분이던 A 중령의 휴대전화가 제1영장에 의해 압수되었는데, 수사관은 범죄 혐의와 관련된 정보만 선별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에 저장된 모든 데이터를 엑셀 형태로 변환해 군검사에게 제공했다.
이후 검찰은 이 엑셀 파일을 탐색하던 중, 계엄령 문건과 전혀 무관한 다른 혐의(군기누설, 직권남용 등)를 발견하고 추가 영장을 받아 기소에 이르렀다. 하급심은 “엑셀 출력은 단순한 준비절차에 불과하다”라며 유죄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단호했다.

수사의 편의가 헌법을 넘을 수는 없다
대법원은 “엑셀 일괄추출은 작성일 제한이나 검색어 필터 없이 전체 데이터를 열람·탐색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영장은 혐의사실과 관련된 정보만을 압수하도록 허가하는 제한적 수단이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은 이를 마치 포괄적 수색허가장처럼 오용해 왔다.
휴대전화는 이제 개인의 일상, 관계, 신념까지 담긴 디지털 인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째로 복제해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사람 자체를 압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판결은 수사기관이 오래도록 당연시해 온 일단 복제하고 나중에 선별하자는 편의주의적 포렌식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수사기관의 ‘시간이 없었다’, ‘효율을 위해 일괄추출했다’는 주장은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다.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는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이기 때문이다.
‘별건의 유혹’이 사법을 병들게 한다
이번 사건은 단지 하나의 수사 실수를 넘어서, 우리 수사 현실의 고질적 병폐를 드러낸다. 수사기관은 한 번 손에 넣은 전자정보를 놓지 않으려 한다. ‘별건’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혐의를 찾아내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시 영장을 발부받는 식이다.
하지만 처음의 위법이 정당한 출발점이 될 수는 없다. 대법원이 언급한 것처럼, 엑셀 일괄추출은 ‘독이 든 나무(毒樹)’였고, 그 나무에서 딴 모든 열매는 ‘독이 든 열매(毒果)’다. 이 단순한 법리조차 되새겨야 할 만큼, 우리는 오랫동안 성과를 위한 수사라는 이름 아래에서 법치를 희생시켜 왔다.

참여권 포기는 ‘무제한 수사’ 동의가 아니다
하급심이 특히 간과한 부분이 있다. A 중령은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참관 의사를 철회했다. 이를 두고 원심은 “스스로 참여를 포기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른 관점을 제시하였다. 참여권 포기는 수사기관이 혐의와 무관한 모든 정보를 탐색하는 데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라, 수사가 영장 범위 내에서 적법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신뢰를 전제로 진행된 것이라는 점이다.
즉, 피압수자의 참여권은 단순히 절차적 요식이 아니라 수사의 적법성을 실질적으로 감시하는 권리이며, 이는 형사사법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핵심 장치임을 대법원은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절차를 지켜야 진실이 드러난다
이번 판결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별건의 유혹이 아무리 달콤해도, 그 열매는 법정에서 썩는다. 수사기관이 일단 복제하고 나중에 선별하자는 관행은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적법절차를 무너뜨리는 지름길이다. 이번 판결은 수사기관이 잊고 있던 근본을 일깨운다.
형사절차는 유죄를 입증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압수수색의 범위는 편의에 따라 확장될 수 없고, 별건 수사는 성실한 수사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 사건은 단순히 한 군인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기관이 적법절차의 경계를 넘는 순간, 그것은 정의를 위한 수사가 아니라 권력을 위한 수사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공은 수사기관에 넘어갔다. 그들이 진실을 밝히는 만큼, 법의 절차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 막으려면
이번 판결은 단지 한 사건의 위법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전자정보 수사 전반에 대한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압수·수색영장은 거의 자동적으로 발부되고, 법원의 심사는 형식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렇게 인신구속 못지않은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법원의 사전심리와 대면통제 강화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영장 발부 전 수사기관을 직접 심문하여 필요성과 범위를 확인하는 절차가 마련될 때 비로소 영장주의는 실질적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수사기관이 압수한 전자정보를 통째로 복제·보관하거나, 별건 수사의 단서로 활용하는 관행도 근본적으로 차단되어야 한다. 영장 집행 시에는 검색어·기간·대상정보를 구체적으로 특정한 집행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무관정보는 즉시 폐기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수사팀과 분리된 독립적 포렌식 조직 또는 필터팀이 압수물 선별을 담당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번 판결은 ‘절차를 지키는 것이 곧 정의를 지키는 길’임을 절실히 보여준다. 편의와 효율이 법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제 입법부가 응답해야 한다. 별건의 유혹을 제도적으로 끊어내지 않는 한,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사는 언제든 권력의 이름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장에 나온 판결 : 296번째 이야기
⚖ 압수수색한 휴대전화 복제본 전체 정보를 제공 받아 별건으로 확보한 전자정보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
⚖ 대법원 이숙연(재판장), 이흥구, 오석준(주심), 노경필 대법관 2025.8.14. 선고 2020도10908 [판결문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