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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창용(한국은행 총재)의 “방향 전환” 발언에 채권시장이 요동쳤다. 그의 발언이 ‘금리 인하 사이클’에 종지부를 찍고, ‘금리 인상’으로 방향타를 트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으면서다.

한은 수장 발언이 시장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권은 “경솔한 말 한마디로 국내 채권, 주식, 외환시장이 모두 난리가 났다”고 이창용을 비난했다. 한은 총재 입이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은 미 워싱턴 D.C. 출장 중이던 지난달 16일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토마스 번과 한국 경제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사진=한국은행 유튜브 화면 갈무리.

무슨 일이 있었나.

  • 이창용은 지난 12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은행의 공식적 통화 정책 경로는 인하 사이클이다. 그러나 금리 인하 폭이나 시기, 심지어 ‘방향 전환’(change of direction)도 새로운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 그간의 발언 뉘앙스와는 달랐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했을 땐 “금리 인하 사이클에는 있지만 금융 안정에 좀 더 무게를 두면서 인하의 폭과 시기가 조정된 것”이라고 했다. 지난 7·8월에 이은 세 번째 연속 동결이었지만 ‘인하 사이클에 있음’을 확인해주던 그가 돌연 인하 사이클 종료, 나아가 인상 암시 발언을 하자 시장이 화들짝 놀란 것이다.
  • 문제의 발언이 있던 12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장중 3.3%를 찍은 후 3.282%로 마감하며 연고점을 뚫었고, 3년물도 2.923%로 마감해 연고점을 경신했다. 14일 기준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3.317%, 3년물은 2.944%로 연중 최고치다.

“통화정책, 단기간에 바뀔 수 없다” 해명했지만…

  • 국고채 금리 상승은 기준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기준금리가 상승하면 이미 발행한 국채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아져 인기가 떨어진다. 돈은 높은 금리(수익률)를 좇는다. 채권 수요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금리는 상승한다.
  • 채권 금리 상승은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국고채 금리 상승으로 인해 그 영향을 받는 은행채 금리도 급등했고, 은행채 금리 및 코픽스(COFIX)*와 같은 시장금리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대출금리도 상승하고 있다. 은행 대출금리는 2년 만에 6%대까지 치솟았다.
  • 논란이 커지자 박종우(한은 부총재보)는 “통화정책 방향이 그렇게 단기간에 바뀔 수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런 표현을 계속 유지할지, 전망 수치에 따라 고민하겠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코픽스:

Cost of Funds Index 약자.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을 반영한 지수. 국내 8개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기업, SC제일, 한국씨티)이 예·적금이나 은행채 등으로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 대출금리의 기준이 된다.

증권시장 반응: “금리 인상은 아니고 동결 전망.”

  • 증권시장 전문가들은 오는 27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 전망했다.
  • 임재균(KB증권 연구원)은 “신한은행이 1조 원 규모의 은행채를 발행해 시장이 물량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한은 총재의 매파적 발언까지 겹치며 (채권) 금리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분석한 뒤 “물가, 환율, 부동산 가격 우려 등을 고려하면 한은이 추가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필요성은 낮다”고 했다.
  • 그러면서도 금리 인상 가능성은 낮게 봤다. “아웃 풋 갭(Output Gap)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한은이 인상을 고려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다.
  • 아웃 풋 갭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잠재 성장률 간 차이를 뜻한다. 이 수치가 마이너스면, 경기가 침체됐다는 의미다. 경기 침체 때문에 한은이 금리 인상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한은 총재의 방향 전환은 금리 ‘인상’이 아닌 ‘동결’로 받아들이는게 적절하다”는 게 임재균 주장이다.
  • 강승원(NH투자증권 연구원)도 한국은행이 반도체 빅 사이클이던 2017년 금리 인하에서 인상 기조로 전환했던 때와 비교하며 “대내외 경기, 통화정책 여건이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인상 사이클로의 전환 우려는 과도하다”고 전망했다.
민주당 최고위원 이언주. 사진=이언주 페이스북.

“과격 발언하면서 시장 출렁거릴 줄 몰랐나.”

  • 여당은 불만이다. 국채를 발행해 재정을 충당하는 이재명 정부 입장에서 국채 금리 인상은 채무 이자 부담과 조달 비용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 이언주(민주당 최고위원)는 16일 “안 그래도 대미 투자 등으로 인해 국채 물량 증가 전망까지 있던 차에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며 “외국인들의 국채 매도로 환율은 급등했고 주가도 폭락했다. 한은 총재의 경솔한 말 한마디로 지난 주말 국내 채권, 주식, 외환시장이 모두 난리가 났다”고 비판했다.
  • “그렇게 직설적으로 과격한 발언을 하면 시장이 출렁거릴 거란 걸 정말 몰랐던 걸까? 자기 할 일은 경솔하게 하면서 왜 자꾸 엉뚱한 이슈에 관심 갖고 집중하는 걸까? 그럴 거면 한은 총재를 그만두고 사회정책 연구에 집중하시던가.” 부동산 양극화, 수도권 집중, 강남 쏠림 교육 등 각종 사회·정책 이슈에 소신을 밝혀온 이창용에 대한 불만이다.
  • 이언주는 지난 6월에도 ‘은행권의 안정적 가계 부채 관리’를 강조한 이창용을 겨냥해 “정치하는 것 아닌가. 한은 총재의 한마디 한마디는 시장 개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 언론도 이창용에게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유소연(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는 익명의 채권 전문가를 인용해 “금융 안정에 힘써야 할 중앙은행 수장이 채권 시장 불안을 일으킨 장본인이 됐다”고 썼다. “‘너무 조용해 절간 같다’는 뜻에서 붙은 ‘한은사(寺)’라는 별칭은 이 총재 재임 기간 중 쏙 들어갔다. ‘시끄러운 한은을 만들겠다’던 이 총재의 포부는 충분히 이룬 듯하다. 그러나 직설 화법으로 전임 총재들보다 시장 파급력이 강해진 이 총재의 입이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상한 총재’라 비판하는데… 우리의 책무.”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구윤철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주재했다. 왼쪽부터 금감원장 이찬진, 한은 총재 이창용, 부총리 구윤철, 금융위원장 이억원. 사진=기재부 제공.

선제적 지침,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중앙은행 수장이 선제적 지침(Forward guidance)이나 암시로 시장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2021년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제롬 파월도 “이제 인플레가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버릴 때”라며 긴축 정책을 시사했다. 시장 불안과 변동성이 뒤따랐다. 전설적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도 1996년 “비이성적 과열”이란 표현으로 ‘닷컴 버블’을 경고했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조정 등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뿐 아니라 선제적 지침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중앙은행의 언어적 소통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 한국은행의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금융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이번 사례는 시장 변동성도 증폭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날의 검’ 직설적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통위의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이어지는 기자간담회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한은 보고서를 보면, 이성태(2006년 4월 1일~2010년 3월 31일)·이주열(2014년 4월 1일~2022년 3월 31일)·이창용(2022년 4월 21일~현재) 총재 재임 기간 중에는 기자간담회 도중 나타나는 채권시장 변동성이 평상시 대비 7~15배 이상 확대된 반면, 김중수(2010년 4월 1일~2014년 3월 31일) 총재 재임 기간에는 약 4.2배 수준에 그쳤다.
  • 보고서는 이창용의 기자간담회 어조가 채권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뚜렷하게 확인된다면서 “이전 총재들과 달리 명확하고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시장의 민감한 반응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 총장의 커뮤니케이션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양날의 검’이 되어 불확실성을 높이는 것은 아닌지 성찰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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