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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칼럼] 강남 주변 그린벨트 해제와 택지 개발 등 고밀화로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주택은 빵이 아니다! (⌚6분)

주택은 빵이 아니다. 빨리 찍어낼 수 없어서만이 아니다. 빵은 포장지나 냅킨만 있으면 된다. 먹고 소화시키고 나면 끝이다. 주택은 도로, 상하수도, 송배전, 쓰레기 처리 및 운송시스템 등등이 있어야 한다. 현대 도시에서 주택은 나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그랬다가는 큰일 난다), 자리를 차지한다. 주택은 도시체계의 한 구성요소다.

강남에 빵이 부족하면 빵을 더 보내면 된다. 냅킨도 물론 더 필요해지겠지만 별로 문제될 일이 아니다. 냅킨이 충분하다고 그 빵의 가치가 더 올라가지도 않는다. 포장지든 빵이든 남으면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 집은 다르다.

강남권 주택의 양을 늘리는 것 자체가 그 주장의 궁극적 목적은 아닐 것이다. 강남에 집을 더 짓자는 주장의 목표는 대개 강남 집값이 너무 비싸니 양을 늘려 ‘가격을 잡자’는 것이다. 그런데 강남 주변의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택지로 개발하거나 기존 주거지를 더 고밀화하는 것으로 집을 늘리면, 과연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공급 자체가 목표인가, 가격 안정이 목표인가?

그냥 강남권 주택의 양을 늘리자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당연히 강남과 주변에 집을 더 지으면 된다. 그러나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게 목표라면, 그렇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10년 뒤에 몇 가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강남 근처에 입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30년 뒤 강남 집값은 더 비싸질 것이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건 경제학의 기본인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앞서 말했듯, 주택은 도시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이기에 그렇다.

강남 주변에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강남에 더 많은 지하철, 도로, 상하수도, 전기 송배전, 쓰레기 처리 등의 기반 시설 용량을 추가해야 한다. 공공투자를 더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설마 그린벨트 해제한 땅에 도로도 상하수도도 연결하지 않고 주택단지만 짓겠다는 말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런데 외곽에 덩그러니 택지만 마련해 놓고 사람들을 그리로 보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집을 지은 것도 아니고 필지만 그려주고 말았다. 대중교통도 없었다. 난리가 났다. 1971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훗날 ‘광주대단지사건’으로 불렸고, ‘8.10 성남민권운동’으로 명명한 조례가 제정되기도 했다. 사진 출처는 성남시.

공항을 이전하든, 그린벨트를 풀든, ‘1급지’ 주변에 ‘1.5급지’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기반 시설에 투자해야 한다. 안 그러면 폭동이 난다. 실제로 그랬다(위 사진 참고). 그런데 그렇게 투자하고 나면, 그 사이에 1급지는 특급지가 될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현재의 강남이 1급지가 된 이유는 학군도 있지만, 기반 시설에 대한 공공투자가 계속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결과 강남은 사거리 2개마다 역세권이다(아래 지도 참고).

격자형 가로 체계에 빼곡한 강남 지하철역들. 카카오맵 갈무리.

강남에 이렇게 지하철 노선이 많이 놓인 것은 단순히 강남 주민을 위해서, 혹은 강남에 사는 힘 있는 분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판교, 분당 등 서울 동남권이 발전했고, 한강 이남의 동-서간 교통량이 증가했는데, 그 길목에 강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남 ‘주변’에 대체지를 아무리 만들어봤자, 그 길목에 강남을 두는 한, 강남은 더 발전하는 것이다. ‘강남까지 00분!’이라는 플래카드가 수도권 택지개발지에 나붙을수록, 강남의 집값은 더 비싸질 것이다.

강남 성장인가, 균형 발전인가

강남 주변에 더 투자하자고? 강남을 더 성장시켜야 하면 그렇게 하자. 그런데 강남 집값이 비싸서 그 좋은 주거 환경을 모두가 못 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된다. 그럴 돈이 있으면 다른 곳을 강남처럼 살기 좋게 해주어야 한다. 균형 발전이 답이다.

‘산자락의 신도시에 새로 택지를 만들고, 이를 위해 고속화도로와 전철과 송전로를 만들 돈’, 그러나 결국은 1급지를 특급지로 만들 돈이 있다면, 서울 내에는 강남권 외에도 서남권, 서북권, 동북권에도 양질의 고용, 교육, 돌봄의 환경을 조성하여 ‘극’을 만들어내거나, 경기도의 역세권, 또는 전국적으로 추진하는 ‘5극 3특’을 발전시켜야 한다. 강남 주변에 기를 쓰고 주택을 더 지어봤자, 위에 언급한 모든 지역에 사는 사람을 받아들이기엔 태부족이다.

물론 균형 발전엔 시간이 걸린다. 성공 여부도 미지수다. 하지만 18년 걸리는 재건축 재개발 절차를 기를 쓰고 단축하여 12년 걸리도록 줄인 것이 서울시장이 내세우는 치적이 되는 마당이다. 실제 12년 만에 될지도 (균형 발전만큼이나) 불확실하다. 균형 발전 중에서 조금 이른 성과가 나는 분야에 대해서는 20년 정도의 시야를 가지고 추구하면 된다. 몇 년 차이 안 난다.

*신통기획*과 같은 10년~20년 정도의 시간지평이라면, 차라리 어느 분의 제안대로 KBS 이전 부지에 주택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국회도 이전할 경우 서여의도에는 상당한 면적의 택지 확보가 가능하다. 서울 내에 다른 극을 형성하는 차원에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국토 차원에서는 균형발전에 부합한다.

📌 신통기획

‘신속통합기획’의 줄임말. 서울시가 재개발 사업 초기 단계부터 정비계획 수립을 지원하고 절차를 간소화하여 사업 기간을 단축하는 제도.

이런 기관 이전의 경우는 교통이나 상하수도 인프라에는 별로 추가 투자를 안 해도 된다. 이미 그런 인프라는 다 갖춘 곳이다. 그러니 어쩌면 공급 속도도 정비사업이나 그린벨트 해제보다 기관 이전 쪽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게다가 일자리가 지역으로 가는 거니 주거 수요를 줄이는 측면도 있어서, 공급 효과는 몇 배가 된다.

이에 비해 정비사업은 철거 때문에 공급 효과가 (단기적으로는) 마이너스 2배에 가깝다. 예컨대 1300호 공급을 위해 1000호를 철거하면 1000가구의 이주민이 발생하여, 당장 공급과 수요의 차이는 마이너스 2000호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정비사업을 안 하면 20년 뒤의 집값이나 주거 환경이 문제가 된다. 동시다발로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라면 정비사업은 순환정비 방식으로 차분히 순차적으로 진행하면서, 20년 사이에 균형발전을 통한 수요 분산의 성과를 내야 한다.

정비사업 등으로 서울에서 사라진 주택 수는 2017년에 정점을 찍었다. 금리까지 낮아졌으니 이때 직후로 집값이 안 오르는 게 신기할 일이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의 원인은 (주로 수도권 빌라를 사들인) 임대사업자 때문도, (주로 중소형 주택을 찾은) 1인가구의 증가 때문도 아닌, 흔히들 ‘주택 공급’이라 오해했던 정비사업 때문이 아닐까? 자료 출처: e나라지표.

물론 강남의 일부 노는 땅에 주택 짓는 일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기반 시설에 대한 대규모 추가 투자가 필요 없거나, 대규모 철거도 없는 그런 미시적 개발도 모두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하여 정 강남권 주변에 지으려면, 그린벨트를 해제하기보다는 차라리 터미널을 외곽으로, 또는 대법원과 검찰청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짓자.

그것도 부족하다면, 한강다리 옆으로 ‘교량연도형 주택’을 짓자. 적어도 교통 인프라는 이미 확보된 곳이다. 강북 등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의 파급효과 차원에서도,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강남의 동남권을 키우는 방식보다는 차라리 한강다리 위를 개발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기관 이전이 힘들다면, 그린벨트보다는 차라리 한강다리를!

보통 다리 위에 집을 짓는다고 하면 수상가옥이나 열악한 조건의 집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 예컨대 건축가 파로우의 제안은 나무에 철제를 보강한 새로운 재료 공법을 활용하여 거주, 위락, 업무, 상업 기능을 담는 ‘살아있는 다리’를 만들자는 것이다(아래 그림 참고).

다리 위에도 멋진 집이 들어설 수 있다? 건축가 타이 패로우(Tye Farrow)가 토론토에 제안한 ‘교량주택’의 경우 외에도 이런 제안은 자주 있다. 그림 출처: 토론토 대학교 존 H. 다니엘스 건축·조경·디자인 학부.
출처는 위와 같음.

‘강남권 주택 공급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는 것은 ‘이미 보존 가치를 상실한 지역의 나무 몇 그루를 아끼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기반 시설 인프라가 전혀 없는 서울 산자락에 새로 도로와 상하수도 깔고 주변에 쓰레기와 전기 의존하는 주거단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탄소중립과 균형 발전에 역행한다.

무엇보다 그런 댓가를 치루고 공공재원도 투입해서 1.5급지 몇 개 더 만드는 것이 결국 ‘기존의 1급지를 특급지로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 된다면 투자효율성이나 근본 취지 차원에서도 허무할 따름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한강다리 옆에 집을 짓는 것이 낫겠다는 이야기다. 정말 지으려면 바람이나 차량 통행에서 생기는 진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텐데, 서울에서라면 토지 비용 절감의 유익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디에 짓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만 한강다리 위든 남산을 밀고 짓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앞으로 우리가 더 짓는 집은 용도 변경이 쉬울 형태로 지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 주택이 모자란다고 난리인데, 신통기획이니 9.7대책의 공공복합사업이니 3기 신도시니 해서 공급되는 집들이 완공되고 난 10~20년 뒤엔, 집이 남아돌아서 문제가 될 것 같다.

지금도 이미 비인기 지역에서는 미분양이 문제인데, 앞으로는 세부 유형에 따라, 또 입지에 따라 그 편차가 심해질 것이다. (게다가 주식도 활황이고 한류도 열풍이고 한국경제가 발전할수록, 부동산으로 (돌아)올 구매력은 커질 것이다. 그럴수록 ‘특급지’ 주택으로 돈이 몰릴테니, 흔한 수요-공급론과 달리 ‘집이 남아돌수록 강남불패는, 자산 불평등은 더 심해질 것’이라 봐야 한다. 그러니 더더욱, 강남이 아니어도 살만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 일이다.)

그리하여 당장 부족한 것 같다고, 당장 특정 유형이 인기라고 무작정 크고 높이 지어 놓을 일이 아니다. 빵은 몇 개 먹고 소화시키고 화장실 한번 가면 끝이다. 급히 만들었다가 이 동네에서 안 팔리겠다 싶으면 다른 동네로 보낼 수 있다. 그래도 남으면 빵은 1주일 뒤엔 비료로 쓸 수라도 있지만, 집은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다.

건축물의 수명은 현재도 40년은 간다. 사회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앞으로는 건축물 수명이 100년은 가게 지어야 하는 참이다. 육중하게 초고층으로 고밀 개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미래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재택근무 등이 용이하게 평면 형태를 쉽게 바꾸든, 아예 주택이 아니라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쓰든, 건물은 물론이요 주거 단지 차원에서도 그 전환의 용이성을 염두에 두고 지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부디, 6개월이나 1년이 아닌 10년이나 20년 앞을 걱정하는 정책이 논의 되기를 바란다. 주택은 빵이 아니다.

과자로 만든 집에서 마녀를 만나는 헨젤과 그레텔. Arthur Rackham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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