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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정 55화] 제도의 균형이 선의보다 강하다: 한국 헌정의 불안정과 권력구조 개헌의 과제 (안용흔/대구가톨릭대 교수) (⏳3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권력분립의 철학과 한국 정치의 구조적 불안정  

미국 건국의 지도자들이 헌법을 제정할 때 가장 깊이 고민한 문제는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속성이었다. 그들은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언제나 공익을 위해 행동하리라 믿지 않았다. 오히려 ‘선의를 지닌 지도자가 아니라 이기적이고 심지어 최악의 지도자가 등장하더라도 제도적 견제를 통해 독단적 지배로 치닫지 않게 해야 한다’라는 냉철한 인식을 헌법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미국 헌정질서는 ‘좋은 사람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의 균형’이 국가를 지탱하는 원리 위에 세워졌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 헌법에 서명하는 장면. 1787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에서 미국 헌법에 서명하는 제헌의회를 묘사한 그림이다.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 1940년 작.

그들은 입법·행정·사법의 권력을 단순히 분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입법부 내부의 구조까지도 정교하게 설계했다. 상원(6년)과 하원(2년)의 임기를 달리하고, 대통령의 4년 임기와 교차되도록 배치했다. 서로 다른 선출 기반과 선거 주기를 부여함으로써, 특정 정치세력이 의회와 행정부를 동시에 장악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 핵심이었다. 상원의원 1/3 교체제도는 특히 ‘대통령 후광효과(presidential coattail effect)’-대통령 후보와 같은 정당 후보들의 동시 승리 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대표적 장치였다.

이처럼 정교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건국 지도자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삼권의 균형이 특정 정치세력에 쏠리는 현실은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전개되고 있다. 2024년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이 행정부와 함께 상원과 하원 선거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행정부와 입법부 권력이 한 정당에 집중되게 되었다. 이 사례는 권력분립의 지속적 점검과 제도적 보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1987년 헌법의 구조적 한계와 권력 집중  

이에 비해 1987년 한국 헌법은 권력분립의 원리를 명시했으나, 실제 제도적 균형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와 국회의원 4년 임기는 미국식 권력분립 구조를 모방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같은 해 혹은 1년 이내에 열릴 수 있도록 허용해 권력 집중의 가능성을 오히려 열어두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지방선거의 ‘불규칙한 주기’는 정국 운영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흔든다.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다음 선거가 1년여를 앞두고 있으면, 정부는 협치보다는 야당과의 대결을 택하기 쉽다. 이러한 대치의 경험은 이후 여야 간 협력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경제적으로도 장기적 경제정책보다는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는 선심성 정책 유인이 커지고, 집권 초기의 거시경제적 전략 구상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이처럼 불규칙한 선거 주기는 권력의 균형이 아닌 충돌을 낳고,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불확실성을 키운다. 선거 시점마다 정책의 방향이 단기적·선심성으로 변하고, 정권마다 규제와 재정정책이 방향을 바꾸는 현상은 바로 이런 제도적 불규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표현은 현실의 활력을 포장하지만, 그 역동성은 종종 ‘불안정의 다른 이름’이 된다.

영화 ‘1987’ (2017, 장준환)

권력분립의 실질화와 선거 주기의 조정  

이제 한국은 헌정질서의 안정성과 실질적 권력분립을 확보하기 위한 헌법적 재설계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핵심은 형식적 권력분립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선거주기, 임기 구조, 부분 교체제 등의 제도 설계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일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의 주기를 명확히 분리하고, 일정한 리듬으로 선거가 교차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조정해 연임을 허용하거나, 국회의원 임기를 조정해 선거가 2년 단위로 엇갈리게 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특정 시기에 한 정치세력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권력 견제만 강조하다 행정부가 무기력해지는 극단적 상황이 우려된다면, 미국 상원의원의 부분 교체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되, 국회의원을 일정 비율만 주기적으로 교체함으로써 정치적 지속성과 권력 견제의 메커니즘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는 정책의 단절을 줄이고, 갑작스러운 정국 변동에도 시스템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장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기본질서가 지도자 개인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고, 제도적 견제의 자동적 작동 위에 서야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례가 보여주듯, 헌정 체제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한 시기 한 정당의 압도적 승리가 제도적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생명은 제도를 끊임없이 보완하려는 노력 속에서 유지된다.

한국의 차세대 헌정질서는 권력 균형의 미세한 공학을 복원해야 한다. 불규칙한 선거 주기를 바로 잡고 권력 집중 가능성을 줄이는 섬세한 제도 설계가 뒷받침될 때, 역동성은 불안정이 아닌 성숙한 안정성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성숙한 민주공화국’이 완성될 수 있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모습. 2016. 11. 19. 광화문. 사진 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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