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노동법 밖 노동자 1.] “사장님인가요, 노동자인가요?”… ‘기타’로 밀려난 노동의 이름들. (조규준/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
🌈 노동법 밖 노동자 (‘소셜코리아’ 기획 특집)
자영업자와 노동자라는 이분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노동법 밖 노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임금근로자 10명 중 1명이 ‘노동법 밖 노동자’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권리를 보장해야 할까요? 열린 공론장을 지향하는 ‘소셜 코리아’는 ‘노동법 밖 노동자’에 대한 연속기획을 통해 이 문제를 심도있게 짚어보고자 합니다. (소셜코리아 편집자)
퇴근길에 배달앱을 한 번 켜 보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식당 이름과 소요시간이다. 누군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누군가는 학습지를 들고 골목골목을 헤맨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골프장 페어웨이에서 손님 캐디백을 메고, 누군가는 보험계약서를 들고 고객의 마음을 설득하러 간다. 이들은 우리 생활 곳곳에 있지만, 하나의 질문 앞에서 갑자기 존재가 흐릿해진다.

‘사장님’으로 불리는 ‘종속’ 노동자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긱워커’, ‘독립계약자’, ‘종속계약자’ 그리고 ‘가짜 3.3% 사장님’까지, 이들을 지칭하는 이름은 매우 풍성하다. 마치 새로운 노동의 시대를 맞아 세밀한 분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작 이 많은 이름들이 이들을 더 잘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회색지대로 밀어 넣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된다. 이름은 많아졌는데, 이들을 책임지는 제도와 법은 여전히 ‘임금근로자냐, 자영업자냐’라는 오래된 이분법에 멈춰 있기 때문이다.
특수고용노동자, 혹은 법률 용어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모두 ‘사장님’이다. 근로계약 대신 위임·도급계약을 맺고, 사업자 등록증을 들고, 소득세 3.3%를 떼고, 4대 보험은 스스로 알아서 가입하라는 말을 듣는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한 자영업이다. 하지만 일하는 방식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보험설계사는 하루 대부분을 특정 보험회사 상품만 판매한다. 학습지 교사는 한 교육회사 교재만 들고 다니고, 건설기계 기사 상당수는 특정 건설사의 공사에 사실상 고정적으로 투입된다. 택배기사와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 기사들 중 상당수도 비슷하다.
이들은 스스로 거래처를 찾아다니기보다는, 하나의 플랫폼이나 기업이 부여하는 물량에 의존해 일한다. 어떤 일을 할지, 얼마를 받고 할지, 어느 시간대에 투입될지에 관한 결정권도 상당 부분 기업이나 플랫폼이 쥐고 있다. 평점이 낮으면 (배달)콜이 줄고, 수락률이 떨어지면 벌점이 쌓이고, 어떤 경우에는 이유도 모른 채 계정이 정지된다. 겉으로는 ‘나의 사업’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한 회사의 ‘매우 불안정한 직원’처럼 일하는 셈이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는 스마트폰을 통해 음식 배달서비스를 하는 대표적인 플랫폼기업이다. 여기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는 늘어가고 있지만 이들을 책임지는 제도와 법은 여전히 ‘임금근로자냐, 자영업자냐’라는 오래된 이분법에 멈춰 있다. ©쿠팡이츠 앱 화면 갈무리

세계적 현상, ‘회색지대 노동자들’
해외에서는 이들을 주로 ‘긱 워커(gig worker)’나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라고 부른다. 우버(차량 호출 및 승차 공유, 음식 배달 및 화물 운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제공하는 미국의 플랫폼 기업), 도어대시(글로벌 음식 및 소매 배달 플랫폼 기업) 등에서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가 대표적이다.
유럽연합은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노동자(economically dependent worker)’ 또는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피고용인(economically dependent self-employed)’이라는 용어를 쓰며, 이들에게도 단체교섭권과 사회보험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름과 법체계는 달라도, ‘독립 사업자의 탈을 쓴 종속적인 노동자’라는 공통된 현실을 포착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오면 사정이 훨씬 복잡해진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가짜 자영업자’, ‘종속계약자’, ‘가짜 3.3%’ 등… 학계, 정부, 노동단체마다 사용하는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마치 이름을 많이 만들어낼수록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듯하다. 하지만 당사자의 눈으로 보면 상황은 정반대이다.
산재보험법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일부 직종에 한해 인정하고, 통계청은 ‘의존계약자’를 새로 분류하겠다고 하며,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짜 3.3% 사장님’이라는 말로 현실을 자조한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들을 보호할 제도는 여전히 모호하다.
‘사실 나도 노동자인데’…‘기타’로 밀려난 사람들
이 복잡하고 다양한 이름 붙이기 경쟁은 통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어떤 연구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가 166만 명쯤 된다고 하고, 다른 조사에서는 플랫폼 노동자가 80만 명이라 한다. 또 다른 보고서는 원천징수 사업소득자가 847만 명을 넘어섰다고 말한다. 숫자만 보면 ‘꽤 큰 집단이다’ 싶지만, 막상 정부의 공식 통계표를 펼쳐 보면 이들은 ‘비전형 근로자’로 뭉뚱그려져 있다. 분류와 지표가 표준화되지 않아 시계열 비교도, 직접적인 국제 비교도 쉽지 않다. 그 결과, 통계상으로 드러나는 규모와 현장에서 체감되는 실질 규모 사이에 적지 않은 괴리가 생긴다.
이 혼란의 비용은 결국 노동자들에게 돌아온다. 통계에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집단일수록 정책에서도 뒷순위로 밀려나기 쉽다. 실업급여, 산재보상, 국민연금, 최저임금, 근로시간 규제 같은 제도들은 여전히 ‘정규 근로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 있으면서도, ‘나도 사실상 노동자인데’라고 말할 공식적인 자리를 얻지 못한 채 제도 밖 주변부에 머물게 된다.

디지털 전환, 유연화, 그리고 탈고용의 제도화
특수고용노동자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집단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정규직을 줄이고 외주·용역·파견·도급을 늘리면서 이미 ‘사장님인 노동자’들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플랫폼이 더해지면서, 누구나 앱 하나만 깔면 ‘내가 사장’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 모델은 유혹적이다.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도 필요한 업무를 유연하게 배치할 수 있고, 경기 침체가 오면 계약을 줄이기만 하면 된다. 플랫폼은 알고리즘으로 콜을 배정하고, 평점으로 성과를 관리하며, 계정 정지로 사실상의 ‘해고’를 집행한다. 법적으로는 사용자의 지위에 있지 않지만, 이들이 실질적인 관리·통제를 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이 구조는 ‘유연함’과 ‘불안정’이 뒤섞인 모순이다. 시간과 장소를 어느 정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소득은 계절과 수요에 따라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인다. 아플 때 쉬면 그날은 무급이고, 사고가 나면 ‘당신은 우리 직원이 아니므로 산재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기 쉽다. 고립된 환경에서 동료와 함께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다.

디지털 전환은 노동을 잘게 쪼개고, 계약을 개인 단위로 흩어놓고, 책임은 각자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이것을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말로 포장해 왔지만, 특수고용노동자의 일상에서 그것은 ‘탈고용의 제도화’로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어떤 이름이 더 근사한가’가 아니라 ‘어떤 이름이 현실을 가장 잘 포착하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국제노동기구(ILO)가 말하는 ‘의존계약자(dependent contractor)’라는 개념이 있고, 한국에서는 이미 법과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말이 있다. 두 표현이 가리키는 사람들은 상당 부분 겹친다.
굳이 새 이름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자리 잡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보호 범위를 넓히고, 국제 비교가 필요할 때는 국제노동기구 분류에 맞춰 통계를 다시 배열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라벨이 아니라, 그 라벨에 따라 어떤 권리와 보호가 따라붙느냐이다.
핵심은 제도적 보호와 위험 예방
앞으로 우리는 ‘이 사람은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도급계약서를 썼으니 자영업자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 사람이 실제로 누구에게, 어떻게 통제를 받고, 어디에 소득을 의존하며, 계약이 끊겼을 때 어떤 위험에 놓이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예’가 많이 붙을수록, 우리는 그 사람을 특수고용노동자이자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 용어 정리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정교한 분류와 제대로 된 통계는 출발선에 서기 위한 최소조건이다. 우리에게 특수고용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업종에 몰려 있는지, 사회보험 가입률과 소득 수준은 어떤지를 모른다면 정책 설계는 말 그대로 암전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숫자는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노동자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것은 결국 권리와 제도다. 특수고용노동자를 어떤 이름으로 분류하든,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산재·고용보험, 쉴 권리, 최저 수준의 보장소득, 그리고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지금의 논쟁은 학계내 논의에 그칠 것이다.
지금도 많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자신을 ‘어느 회사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느낀다. 회사는 ‘직원이 아니다’라고 하고, 국가는 ‘자영업자라서 노동법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다. 시장에서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공급자’ 가운데 한 명으로 취급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분류 논쟁 속에서, 이들은 통계표의 구석에서 ‘기타’로, 제도 밖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바꿔야 할 것은, 바로 이 시선이다.
누구의 노동도 ‘기타’로 남지 말아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이제 주변부의 예외가 아니라, 디지털 전환과 노동 유연화 속에서 드러난 일자리의 또다른 얼굴이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가 아니라, 이들이 더 이상 통계와 제도에서 ‘기타’로 남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할 때, 새 학기 교재를 들고 찾아오는 선생님을 맞이할 때, 보험설계사와 상담을 할 때, 우리는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 앞에서 일하고 있는 이 사람은, 어떤 이름으로 분류되든, 최소한의 권리와 안전망을 보장받고 있는가?” 노동시장의 분류표는 복잡해지고, 이름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중이, 정책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결국 확인해야 할 것은 단 하나이다.
‘어떤 노동도, 어떤 노동자도 더 이상 ‘기타’로 남지 않도록.’
이제 남은 일은, 이 당연한 말을 제도와 일터의 현실로 바꾸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