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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칼럼] ‘여성 심정지 환자에게는 브래지어 풀거나 제거하지 않’고 ‘가슴 조직을 피해 자동제세동기 패드를 부착하라’는 2025년 한국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 관하여. (⏳4분)

최근 발표된 ‘2025년 한국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의 한 지침이 화두다.

“여성 심장정지 환자에게는 브래지어를 풀거나 제거하지 않고 위치를 조정한 뒤에 가슴조직을 피하여 자동제세동기 패드를 맨 가슴에 부착할 것을 권고한다.”

2025년 한국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 중에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 문구를 접하면 오해를 낳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우리 사회가 이 지침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우려스럽다. 하지만 나는 저 짧은 문장 속에서 단순한 의학적 지침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복잡한 딜레마와 그를 넘어서기 위한 전문가들의 깊은 고뇌를 느낀다.

과학적이고 국제 표준에도 부합하지만…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심정지 환자를 보며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이라는 가정이 현실이 될 때다. 심정지 환자의 생존은 그만큼 분초를 다투는 싸움이다. 그런데 여기 불편한 진실이 있다. 통계적으로 유독 여성 환자에게서 목격자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시행률이 낮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우선 의학적 팩트부터 명확히 하자. ‘와이어가 있는 속옷 위에 제세동을 하면 위험하다’속설은 과장됐다. 최신 연구들에 따르면 브래지어 착용 상태에서의 제세동이 심각한 화상이나 기기 오작동을 유발한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실제로 유럽(ERC)이나 미국(AHA) 역시, 속옷 제거로 시간을 지체하는 것보다 빠른 제세동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즉, 옷을 벗기지 말라는 한국의 지침은 과학적으로 안전하며, 국제적 표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외국 지침이 “방해가 안 되면 굳이 제거할 필요 없다”는 ‘허용’적 입장이라면, 2025년 한국 가이드라인은 “벗기지 말고 패드를 부착하라”고 적극 ‘권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이 유독 ‘탈의 불필요’를 강조한 배경에는 우리 특유의 사회적 맥락이 강하게 작용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크롬(브라우저)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한 모습.

법적 진실과 공포 사이… 지침은 실용주의적 타협

의학적, 법적으로 응급 구호 활동(CPR, 제세동)은 성추행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진실’과 ‘대중의 공포’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현장 데이터는 대중의 공포가 실존함을 보여준다. 국내외 여러 연구에서 여성 심장정지 환자는 남성 환자에 비해 목격자 심폐소생술을 받을 확률이 유의미하게 낮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여성 환자에 대한 CPR을 주저하는 주된 이유로 ‘성범죄 오해에 대한 두려움’은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성추행이 될지 모른다는 ‘미신’을 믿는 대중의 공포가, 환자의 생존율을 갉아먹는 ‘통계적 실체’가 되었기에, 대한심폐소생협회는 계몽보다는 즉각적인 ‘행동 유도’를 택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권고는 구조자들에게 ‘법적으로 안전하니 신경 쓰지 말라’라고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대신, ‘벗기지 않아도 되니 주저 말고 붙여라’라고 행동 양식의 변화를 유도한, 일종의 실용주의적 타협이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것들

물론 우려되는 지점도 분명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벗기지 말라’는 지침은 역설적으로 ‘벗기면 오해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공식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자칫 ‘응급처치 중 신체 노출은 위험하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어, 향후 다른 응급 상황(외상 환자의 의복 제거 등)에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법이 당신을 보호해 주니 적극적으로 하라’는 메시지 대신 ‘오해받을 짓은 피해서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문제다. 이는 의학적 정당성과 사회적 인식의 충돌 상황에서, 대중의 잘못된 통념에 영합한 아쉬운 결정으로 비치기도 한다.

협회의 고뇌에 찬 결단

하지만 응급환자에서 최우선 가치는 ‘생존’이다. 사회적 인식 개선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당장 멈춘 심장을 뛰게 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번 지침은 ‘설령 미신과의 타협이라는 비판을 듣더라도, 그로 인해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가겠다‘는 대한심폐소생협회의 고뇌에 찬 결단이다.

‘장기적 인식 개선’보다는 ‘당장의 생존율 향상’이라는 임상적 목표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며, ‘법적 논쟁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의사 결정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전술적 선택이다. 즉, 가이드라인의 결정은 단순한 의학적 권고를 넘어선 ‘고도로 계산된 사회공학적 타협’이자, 동시에 ‘위험한 줄타기’이다.

‘미신을 타파하는 데 드는 시간과 사회적 비용보다, 당장 그 미신을 우회하여 살릴 수 있는 생명의 가치가 더 크다.’

2025년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은 ‘당위’와 ‘존재’ 사이의 괴리에서, 현실의 비합리성을 수용하였다. 이 선택이 훗날 우리 사회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이 지침을 받아들이는 우리 태도에 달려있다. 나중이 처음을 바꿀 수 있다.

본질은 오로지 ‘생명’, 패드를 붙이고 버튼을 눌러라!

복잡한 논쟁을 뒤로 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본질은 명확하다. 속옷을 벗기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안 벗겨도 패드 부착이 가능하다면 즉시 시행하고, 방해가 된다면 제거해도 된다. 쓸데없는 걱정에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 중요한 원칙은 단 하나, ‘최대한 빠르게’ 전기 충격을 주는 것이다.

‘망설이지 마라. 벗길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패드를 붙이고 버튼을 누르는 것만 생각하라.’

이번 가이드라인은 우리 사회의 불신 비용을 보여주는 씁쓸한 자화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끝에 있는 건 오직 생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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