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콜드케이스 13.]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인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분석합니다. 이번 케이스는 미 대선을 관통하는 해리스의 ‘자유’ 프레임 전략. (14분)
미 대선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봐야 하나. 몇 가지 ‘힌트’를 얻고자 미국 최대의 경합 주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사는 캡콜드(김낙호 교수, 드렉셀대학교 커뮤니케이션과)에게 미 대선의 프레임 전쟁, 그 현재 스코어를 물었다.
[캡:콜드케이스 ep.13]
미 대선 프레임 전쟁:
해리스, 공화당의 ‘자유’를 되찾아오다
질문 정리: 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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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4년 8월 27일 밤~28일 새벽에 있었던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 가독성을 고려해 질문은 소제목과 본문으로 맥락화하고, 김낙호 교수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1. 해리스, 공화당의 ‘자유’를 영리하게 탈취하다
이번 미 대선 최대 이슈는 낙태와 이민이다. 해리스는 직접 ‘낙태’라는 표현을 쓰기보다는 “당신 몸에 관해 결정할 자유”라고 말하면서 결국 낙태, 성정체성 등을 포괄한 몸에 관한 자유를 말한다(후술 참고). ‘권리’라는 말도 쓰지 않고, ‘자유’를 전략적으로 민다. 반면, 공화당은 이민자 공포, 강한 지도자, 타자에 대한 배제와 같은 걸 이미지 전략으로 밀고 있다.
해리스의 ‘자유’ 프레임 전략의 ABC를 하나씩 살펴보자.
프리덤, 민주당의 프레임 전략
성공적인 담론 전략의 황금률이 있다. 새로운 걸 제안하면 소화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는 걸 우리 것과 섞어라. 새로운 걸 배워서 좋아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는 걸 제시하며 외쳐라, 그 가치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게 ‘프리덤’, 자유다.
미국 역사는 자유의 역사다. 그런데 바이든이 후보였을 때는 흔히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민주제’를 핵심 프레임으로 밀었다. 트럼프 당선 = 민주제 붕괴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민주제라는 정치 운영 시스템에 관해 별로 세세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 민주제가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은 미국 시민권 시험의 기본일 정도로 중요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도 2/3가 탈락하는 수준이다. 민주제는 보기보다 와닿지 않는 표현이고, 비교 범주가 없다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뭔가 느껴질 리 없다.
하지만 자유는 어떤가. 자유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또 감각적이다. 마음속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한번은 속박된 경험이 있고,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좌절의 기억도 있다.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자유는 와 닿는 표현이다.
리버티, 공화당이 선점했던 자유
그런데 사실 보수 공화당 쪽에서는 자유라는 개념을 오랫동안 꾸준히 강조해 왔다. 정부가 뭔가 하려고 하면 간섭하고 개입한다는 맥락에서 기업의 자유를 주장한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 자유롭게 돈을 벌려고 하니까 정부는 좀 개입하지 마라! 공적 개입, 사회적 개입을 줄여라. 그런 맥락에서 자유라는 말은 쉽게 줄여서 말하면, ‘탈규제’.
좀 짚고 넘어가면, 영어에서 자유는 엄밀하게는 크게 두 가지 용어로 구분되어야 하는데 자주 혼용되고 있다.
- 적극적 자유: 내 의지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 = 프리덤.
- 소극적 자유: 간섭받지 않고, 개입당하지 않을 자유. = 리버티.
자유는 리버티의 의미로 프리덤이라는 용어까지 수십 년 동안 보수 쪽에서 전용해 왔는데, 이번 민주당 전당 대회가 그런 프레임을 뒤집었다. 트럼프가 강한 리더십을 내세우자 오히려 그가 강한 정부를 만들어서 당신의 자유를 침해하려고 한다고 정반대로 치고 나온 거다.
해리스, 연설 속 네 가지 자유
이런 적극적 자유의 맥락에서 해리스가 대통령 후보 수락을 포함한 여러 연설에서 강조한 네 가지 자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경제의 자유: 공화당에서는 세금 덜 내는 기업의 자유, 사업 규제 푸는 자유를 말하지만, 해리스는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고 지내는 게 아니라 위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자유를 강조한다. 뭔가 시도할 수 있는 자유, 성공할 수 있는 자유는 공적인 관점에서는 교육권과도 연결된다. 특히 큰 기업만 유리하지 않도록 경쟁할 수 있도록 누진세 등, 적극적 분배 정책과 논리적 연계를 가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유라고도 말한다.
- 총기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자유: 보수는 총기 소유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해리스는 총 맞지 않고 안전할 자유를 말한다. 더 긍정적이고 더 많은 사람을 포괄할 수 있는 프레임이다. 특히 아이들이 총 맞게 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이 총으로 내 몸을 지켜야 한다는 어른들보다는 훨씬 더 많을 테니까.
- 내 몸에 관한 결정권을 행사할 자유: 이 자유는 낙태권, 트랜스 등을 포괄한다. 내 몸은 내 것이라는 거다.
- 투표할 수 있는 자유: 미국은 선거 제도가 좀 이상한 게 자동으로 선거인으로 등록되지 않고, 내가 따로 선거하겠다고 등록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불리한 유권자를 등록하기 어렵게 공화당은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해리스가 말하는 투표할 수 있는 자유는 기본권인 참정권에 다름 아니다.
해리스는 평등권에 관한 개념을 포함해 자신이 대권을 잡으면 실현하려는 거의 모든 주요 정책을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포섭하고 있다. 그렇기에 대선 테마 송으로 선정한 것도 비욘세의 ‘프리덤’이다! 참고로 트럼프는 온갖 가수들 노래를 쓰려고 했다가 거의 다 퇴짜를 맞았다. 노래 틀다가 시간이 더 남으면 존 바티스트의 ‘프리덤’도 트는데, 두 노래 모두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유’ 프레임 전쟁에서 오히려 공화당은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이제 해리스를 떠올리는 어떤 이미지와 가치가 연상되는가? 초기 이미지 구축 과정에서 프리덤을 성공적으로 장착한 해리스의 또 다른 캐릭터 중 하나는 조이(JOY), 바로 기쁨이다.
조이(기쁨), 전당대회 전까지 캐릭터 구축 전략
전당대회 전까지 3주~4주 동안 해리스의 이미지 전략은 ‘조이(기쁨)’로 함축할 수 있다. 인기 없는 부통령이 갑자기 대선 후보가 됐다. 어떻게 무엇으로 어떤 이미지로 어필할 것인가. 그 초반 기세를 놓치면, 트럼프 진영에 의해 부정적인 이미지로 규정당할 수 있다. 물론 트럼프가 해리스를 남쪽 이민자 이미지와 연결 지어 ‘보더 차르’(국경총책임자.)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려 했던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하는 중이고, 너무 미약한 이미지 전략으로 판가름 났지만.
그렇게 트럼프 캠프는 헤매는 중에도 해리스는 경박하다는 이미지를 또 씌우려고 했다. 낄낄 웃고, 엉뚱하게 춤추고. 그런 공격을 올 걸 민주당은 뻔히 알았기 때문에 해리스는 오히려 ‘기쁨을 알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조이’를 프레이밍 한다. 탁월한 전략이었고, 이에 관해선 지난 인터뷰에서 길게 설명한 바 있다.
프레임 전략 대성공: ‘조이’ 받고 ‘프리덤’ 더!
그리고 이제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를 공식적으로 수락하면서 그 ‘조이’에 ‘프리덤’을 얹은 거다. 그리고 놀랍게도 538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해리스 선호도가 그랜드 크로스를 앞두고 있다. 미국 정치인은 불호가 더 클 수밖에 없는데도 긍정적인 이미지로의 프레이밍이 아주 성공적이다. 이런 추세가 선거 당일까지 이어진다면, 역사 교과서에 남을 정도로, 정치 PR 역사에 남을 정도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팀 월즈를 부통령으로 뽑은 것도 해리스의 탁월한 선택이다. 언론에서는 표면적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샤피로를 뽑으라고 밀어붙였다. 샤피로는 뭐랄까, 마치 백인 오바마 같은 느낌이다. 검사 출신이라는 것은 다르지만, 카리스마가 있고, 이념 폭이 포용적이고, 젊고 공격적인 엘리트다. 그래서 즐거워 보이진 않는다. 엄청나게 심각하고 진지해 보인다. 일 중독자처럼 느껴지고. 공격적인 이미지다. 해리스도 검사 출신이라서 샤피로가 부통령 후보가 됐다면 서부 검사 + 동부 검사의 싸우자 이기자에 가까운 팀이 될 뻔했다.
하지만 해리스와 팀 월즈와의 결합은 더 조화롭다. 공공서비스 경험, 그러니까 하사관, 고등학교 선생님, 공직 선거에서는 비도시지역에서 당선돼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푸근한 이웃 아저씨 같은 월즈의 서민 느낌이 해리스 캠프에 더해졌다. 똘똘한 중노년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랄까.
월즈라는 사람은 워싱턴 정치 엘리트처럼 엄청난 펀드 투자하고 주식을 소유하고 그런 게 전혀 없는 사람이다. 오로지 있는 건 연금계정뿐이다. 대형 투자 그런 거 없다. 그걸 사람들은 굉장히 좋게 봤다. 그걸로 히트 치니까 보수 쪽에서, 밴스가 특히 연금계정만으로도 엄청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공격했던 건데, 주임원사까지 올라갔다가 상사로 제대했는데, 공화당은 이것도 트집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군인연금, 교사연금 등 연금은 잘 나오니까 연금계정만으로도 여유가 있는 건 사실일 거다. 그런데 그렇다고 엄청난 월스트리트 자본가 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월즈를 선택한 것 또한 ‘조이’ 프레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미네소타 특유의 낙관적인 말투. 그게 캠프의 큰 무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거다. ‘위어드’ 같은 히트 유행어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음은 물론이다. 해리스에게는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결국 월즈를 선택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월즈에게 아주 기대가 크다.
위어드? “트럼프는 이상하지(위어드) 않걸랑요!”
위어드는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다.
- 이미지와 프레임: ‘위어드’는 어떻게 2024 미 대선 판도를 흔들고 있나 (2024년 08월09일)
공식 정책, 연설에서는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인터넷에서는 고정 레퍼토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제로 계속 트럼프 캠프에는 사람들이 영 이상한 짓들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3후보로 나왔던 로버트 케네디가 공화당에 합류했는데, 그 또한 영 이상한 사람이다. 케네디 가문이 그렇듯 원래 민주당 계열이었는데도 환경운동에 몰두하다가 좀 이상하게 극단주의자가 된 경우다. 반문명에 빠지고, 백신 반대론자가 되고…
그런 사람이 이상한 발언, 이상한 행동을 계속했다. 한마디로 ‘위어드’한 사람. 그런 사람이 트럼프에 합류하니 더 까일 거리가 늘어나고 있고, 그때마다 ‘위어드’는 아주 쏠쏠한 활약을 한다. 밴스도 계속 이상한 발언을 하고 있어서 ‘위어드’로 놀려 먹기엔 아주 좋다.
월즈의 부통령 수락 연설의 감동 포인트
월즈는 고등학교 교사 시절 풋볼 수비 코치도 했다. ‘코치 월즈’라는 애칭도 있다. 수락 연설 막바지에 대형 정치연설을 자주 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풋볼팀 응원 격려는(‘펩 토크’) 많이 해봤다고 말하면서 전체 판세를 풋볼 경기에 비유했다. 풋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농구로 좀 바꿔서 설명하면, 지금 경기가 30초 남았는데 1점 뒤지고 있다. 그런데 공격권은 우리한테 있다. 제대로 몰아갈 타이밍인데, 우와, 다행히 최고의 팀이다. 싸우면! 이긴다! 싸우면! 이긴다! (관중과 서로 번갈아 가면서 함성).
정치 현장을 미국인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스포츠 경기 현장에 비유해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정치가 생활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은근슬쩍 상기한 거다. 내용으로는 하나도 빠질 것이 없는 명연설이고, 이런 감성적이고 영리하며 따뜻한 접근은 아주 훌륭하다.
월즈의 연설은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결국은 교수를 감복시켜서 교수가 제시한 방식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리포트 A 받는 학생이랄까. 그에 비해 해리스 수락연설은 이렇게 리포트 쓰면 A 받는다고 지시는 있었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저울질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과제를, 절묘하게 결국 A 받은 학생에 가깝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가자 주민들의 존엄과 자결권까지 언급했을 정도니까. 반명 공화당의 전당대회 연설은 너무 엉망이어서 굳이 비교할 가치조차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대선 이슈
- 총기
- 세계 분쟁 지역
- 인종차별
- 공공교육 투자
사회 전체로서 관심을 끌며 선거를 좌우할 이슈들은 이민자와 낙태권이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더해서 각자 당사자성이 강한 이슈들에 주목하는 게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나라는 개인에게는, 평범한 강의 현장이나 생활 속에서 총 맞기 싫으니까 총기 규제가 중요하다.
미국 한국 두 사회에 걸쳐있는 신분이니까 미국의 분쟁 개입 정책이 중요하고, 코로나 시국에서 아시아인 대상 혐오범죄 들끓은 것을 기억하니 인종차별 대처 정책에 관심을 둔다. 교육기관에서 일하는 만큼, 사회를 얼마나 공공교육에 투자하게 만드는지가 항상 개인적인 이해와 연결돼 있고. 모두가 이런 구체적 주목점을 인식하고 모아내면 더 나은 정치판이 될텐데 싶다.
2. 미 대선 길라잡이: 피해야 할 것들
한편, 이번만큼 극적으로 움직이는 미 대선에 관해서 어떻게 잘 정보를 파악하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선, 워싱턴과 뉴욕 대도시에만 눌러앉은 한국 ‘특파원’이 전하는 현지 언론 보도 ‘우라까이'(베껴 쓰기)를 읽느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전혀 없다. 종로에서 취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을 왜 뉴욕이고 워싱턴까지 보낸 사람에게 시키는지 자체도 잘 모르겠지만. 몇 가지만 지적하자.
뉴욕타임스! 하지만 항상 공정 보도의 모범은 아니다
우선, 모든 매체는 자체적인 동기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아무리 저널리즘의 최고 수준이라고 칭송받는 매체,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라고 해도 자신의 동기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그 고전적인 동기(목적)는 강한 영향력이 있는 객관적인 느낌의 언론 매체가 되고 싶다는 것. 바이든이 트럼프와의 대선 토론에서 ‘죽 쑨 뒤’에 바이든을 향해 강도 높게 후보 사퇴를 압박하고, 자신의 코드에 맞는 젊고 스마트한 샤피로(필라델피아 주지사)를 처음에는 대선 후보, 다음에는 부통령 후보로 은근슬쩍 민 것도 그래서다.
참고로 지난 인터뷰에서도 말한 것처럼 뉴욕타임스는 ‘똥을 똥이라고 부르지 않은’ 우를 범하고 있다. 트럼프의 기행과 악행(‘똥 그 자체’)을 마치 객관 저널리즘으로 다뤄줄 정당한 취재 대상인 것처럼 ‘정상적으로’ 보도한다. 그런 보도 행태가 지금 트럼프식 사고의 사회적 정상화를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보도에서 뉴욕타임스, 특히 칼럼니스트나 애널리스트를 인용할 때는 제발 맥락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출처가 뉴욕포스트? 걸러라
뉴욕포스트 같은 우익 타블로이드지의 추문을 받아쓰는 보도는 깨끗하게 걸러내라.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이런 자극적인 이슈들은 눈길을 끄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이슈에 눈길을 주는 사이에 정말 중요한 이슈들은 흐려지고 뭉개지고 사라진다.
왜 미국 사회에서 낙태가 중요한지(우리 사회에도 마찬가지지만), 왜 자유를 선점하기 위해 공화당과 민주당이 저렇게 전략적인 프레임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 이런 이슈는 어떻게 삶의 맥락 속에 맞닿아 있는지를 살펴볼 기회를 뉴욕포스트 같은 선정적인 황색언론, 그리고 그런 언론의 이야기를 ‘클릭 저널리즘’을 위해 받아쓰는 한국 언론에 의해 잃어버린다.
순간의 쇼킹한 이슈에 정말 중요하게 곱씹어야 할 이슈가 가려진다. 물론 어떤 것이 미국에서 선정주의 매체인지 누구나 항상 파악하고 있을 수는 없는데, 그런 경우에는 잠시 판단을 유보하고 우선 한번 해당 매체의 사이트를 찾아가 보라. 확연하게 드러난다.
극우화된 X(구 트위터)
제발 영어권 소식에 대해서는 좀 트위터(X) 그만 취재해라. 이건 정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문제와 연결되는데,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트위터는 중요한 정치적 발언의 출처였고, 신뢰할 만한 언론인이 다수 활동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기억, 그런 관성으로 계속 트위터를 인용하면 안 된다.
머스크가 X라고 개명한 트위터는 영어권에서는 그냥 ‘일베’가 된 지 오래다. 그는 트위터를 인수해서 결국은 극우가 판치는 일베스러운 사이트로 만들어버렸다. 돈을 낸 계정, 충성도 높은 유저만 머스크 팬덤을 구성하고, 극우적 성향이 강해졌다. 전체적으로 극우 판타지, 사이비 메시아… 그게 머스크가 처한 상황이다. 머스크 본인도 미디어사업을 화끈하게 말아먹은 극우 헛소리꾼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게 극우화된 상태에서도 기존 기성 매체들이 공식 계정을 아예 없애진 않아서 정상적인 계정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착시다. 헷갈리지 마라.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오염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X라는 소셜미디어 속에서 주목받는 이야기들이 있고, 그 패턴이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꼭대기로 올려서 주목받게 하는 알고리즘이 있고, 그게 머스크에 의해 극우 편향으로 변질되고 오염됐다. 그런 경향을 가지도록 체계적으로 알고리즘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좋아하는 걸 띄어주기 위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식 트럼프 지지를 표방한 이후에 더욱 그런 경향이 강화하고 있다. 그런 맥락 속에서 개별 메시지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데이터의 함정: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 점수 좀 그만 인용해라
질적인 현장 보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그런 과정에서 심층적인 이슈에 둔감해지다 보니 양적 데이터에 의존하기 쉽다. 미국의 대선 데이터는 한국보다 훨씬 더 뒤죽박죽이고, 여론조사에 관한 법적 제한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신뢰도가 아주 낮은 조사도 많다.
그래서 여러 개의 여론조사를 합쳐서 다시 분석하는 ‘메타분석’이 발전하긴 했지만, 조사 주체에 따라 방법에 따라 그 결과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데이터를 잘못 해석하기 딱 좋다. 그런 맥락 없이 그냥 절대적인 잣대인 것처럼 제시하면 상황을 왜곡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RCP 점수다.
RCP는 2000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온갖 여론조사를 합산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라서 보는 사람을 혹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RCP를 안전한 통계라고 여기는 미국 매체와 한국 매체가 여전히 많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RCP가 단순 평균이라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노골적인 의뢰주 친화적 여론조사, 이상한 방법론의 조사들이 하염없이 늘어났는데 요즘 세상에 그런 방법으로 신뢰할 만한 결과가 나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둘째, 2017년 즈음 RCP는 우익 자본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데이터와 함께 병렬되는 기사 모음에서도 노골적으로 트럼프 친화적인 경향성을 띠기 시작했다. 같은 숫자를 보더라도 제시된 맥락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좀 더 도전적인 방식으로 메타 분석을 시도하는 것, 예를 들어 538 모델을 개인적으로는 선호한다. 이쪽은 각 여론조사 회사의 정확도와 일관성을 과거 수년간의 이력을 바탕으로 평점화해서 합산에 반영하는 식이다. 물론 여기에도 맥락이 있는데, 538을 원래 만들었던 네이트 실버라는 인물은 지금은 정작 쫓겨나서 개인 뉴스레터로 기존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538에서 사용하는 개량 모델을 적극 비판하는 중이다. 이런 세상에서 단순 합산이라니, RCP 인용하는 국내 보도들을 독자들은 그냥 무시하는 게 좋겠다.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 데이터는 신성하지 않다. 데이터 그 자체로 객관성을 공정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람 속이기 가장 쉬운 수단이 데이터다. 데이터는 어떻게 맥락화하는가에 따라 영향받는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데이터는 특히 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3. 미 대선 길라잡이: ‘지역지’에 주목하라
내가 사는 펜실베이니아는 대표적인 경합주다.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지에는 전국지 보도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소식이 있다. 우리나라도 울산이나 광주, 제주도 소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그 지역에 터 잡은 지역신문을 참고하는 게 좋은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은 땅이 워낙 커서 각 주의 독립성이 강하고, 특히 대선에서 주목받는 경합주 7개 남짓이 있다. 전국 단위로 파악하면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슈들이 있다. 그럴 때는 좀 더 깊이 들어가 ‘주 단위’로 이슈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전국지가 바라보는 시선은 ‘내부의 시선’이라기보다는 ‘외부의 시선’이라서 그런 관점으로는 제대로 된 쟁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물론 뉴욕타임스도 ‘뉴욕’에서 시작한 것이고, 워싱턴포스트도 마찬가지로 워싱턴DC 기반이지만, 동네 특성상 전국 단위 이슈를 많이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 파악하는 미 대선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전국지 소식은 많지만, 경합주 단위의 소식에서는 미흡함이 많다.
(지역)방송보다는 지역신문
방송 보도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리포트 꼭지는 대체로 1분~2분 정도의 한정된 시간 제약이 있다. 그리고 방송사는 지역 소식을 따로 집중해서 심층 편성하기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TV 스타일 영상 보도의 문제인데 ‘영상’은 이슈의 개념적 설명이나 맥락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잘 만든 다큐를 떠올려 보라. 텍스트로는 더 짧고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는 내용도 매우 길게 영상으로 묘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로 된 텍스트(신문기사)는 추상과 구체를 조화롭게 섞어 개념과 감성을 전략적으로 구성할 수 있지만, 영상은 눈에 항상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고, 개념적인 설명을 영상으로 보여주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효율화를 고려할 때 감각에의 호소만 강조하는 경향성이 생기고, 그런 매체성에 의해 선정주의에 이끌리기 쉽다. 영상의 비용과 경제성을 고려해도 쉽지 않다.
펜실베이니아 지역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The Philadelphia Inquirer)가 펜실베이니아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지다. 물론 더 세밀하게 각 도시지역 농촌지역 쪼개다보면 그에 못지않게 귀중한 소규모 지역지들도 있지만. 보도 품질도 아주 높고, 지역 안에서의 여론 향배, 지역 노조나 지역민의 각 이슈에 대한 반응을 훨씬 더 민감하게 반영한다. 외부의 관찰은 늘 피상적이기 쉬운데, 뉴욕타임스나 AP나 CNN 같은 것만 보고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의 역동적인 이슈들을 따잡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전국 단위의 ‘데이터’만 보게 되고, 정말 생각해 볼 만한 이슈와 쟁점에 관해서는 놓친다. ‘데이터’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자.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인상적 기사
노조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보도한다. 의견 칼럼도 훨씬 더 ‘당사자’ 입장을 강조해 직접적이고 솔직하다. 뉴욕타임스 등은 기계적 중립을 내세워서 트럼프가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농도를 낮춘달까, 형식적 객관주의를 동원한달까, 그렇게 묘사한다는 데 반해서 필리인콰리어러는 좀 더 직접적으로 옳고 그름에 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지역민의 이해를 훨씬 더 두텁게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다.
바이든이 대선 TV토론을 망쳐서 사퇴 여론이 비등했을 때 특히 뉴욕타임스는 바이든과 트럼프가 발언한 ‘정책과 이슈 그 내용’이 아니라 바이든의 기침과 노쇠한 모습에 더 주목했다. 그리고 아주 이례적으로 바이든의 후보 사퇴를 강도 높게 주장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해당 토론에서 반인권, 반노동 문제 발언을 한 사람은 트럼프라고 지적하면서 트럼프를 비판했다. 누가 더 젊어 보이고 늙어 보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필리 사람의 삶에는 그런 반노동적인 관점과 세계관이 더 중요했던 거다. 그러니까 본질을 비껴가는 뉴욕타임스에 비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그 핵심을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결론? 한마디만!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자. 특히 매체 종사자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