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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수 없는 권력과 언론의 전쟁…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무거운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창간 24주년 기획 특별 기고로 보낸 글을 오마이뉴스의 양해를 얻어 동시 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의 창간 24주년을 축하합니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다면 수많은 원인 가운데 하나로 언론 정책의 실패를 꼽아야 한다. 하필이면 대통령 주변에 이동관 같은 사람들이 득시글하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비극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악의 언론 정책과 불통의 메시지 전략의 반면교사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의 여덟 가지 착각.


몇 가지 결정적인 패착을 살펴보자.

첫째, KBS를 장악한다고 해서 여론이 달라질 거 없다. KBS 하나 발가벗고 뛴다고 해서 김건희 명품 가방 사건이 묻힐 리 없고 낮은 지지율을 커버칠 수도 없다.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대통령 권한이라 치더라도 결국 쫄려서 그렇다는 걸 모두가 안다. 일을 키워 놓고 뒤늦게 덮으려 하니 덮어질 리가 없다.

둘째, 방송통신위원회를 우리 편으로 심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공영 방송 사장을 몇 명 갈아치울 수는 있겠지만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정작 얻는 건 별로 없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런 방송 안 보면 그만이고 볼거리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방통위는 원래 치고받고 싸우는 곳인데 그게 싫다고 우리 편만 두 명 남겨놨다. 그런 방통위에서 하는 어떤 결정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겠나.

셋째, 기자회견을 피한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간단히 털고 갈 수 있는 질문이 점점 더 불어나 급기야 정권의 발목을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KBS 신년 대담 같은 건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넘어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할 판인데 V1과 V2가 보시기에 흐뭇했던 듯 설날 아침에 재방송까지 했다. 그만큼 정무적 판단이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넷째, 바이든-날리면 논란 같은 건 애초에 이길 수 없을뿐더러 찍어 누르려 하면 할수록 오해와 불신이 커지기 마련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을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이런 논란은 질질 끌면 끌수록 불리하다고 조언했을 텐데 윤석열이 말을 안 듣거나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MBC 기자를 전용기에 안 태우겠다고 한 건 옹졸할 뿐만 아니라 윤석열의 지지자들도 쪽팔려 할 일이었다.

다섯째, 언론사 압수수색을 아무리 해봐야 겁 먹을 기자들이 아니다. 감옥에 쳐 넣을 수도 없고 (어차피 영장도 대부분 기각된다.) 기사를 막을 수도 없다. (정권이 꿀릴 때 하는 일이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법원이 특별히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대통령이 부정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끌벅적하기 마련이고 여론의 비판을 뭉개고 가면서 성공한 정권은 없다.

여섯째, 방송통신심의위를 앞세워 뉴스타파를 징계하겠다고 한 건 코미디였다.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 운운했지만 아무런 징계도 못했다. 방송이야 허가 또는 승인 사업이지만 인터넷 신문을 보도 내용을 문제 삼아 제재할 방법은 없다.

일곱째,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가짜뉴스’ 때려잡기도 봉창 두드리기나 마찬가지다. ‘우리 편’이 아닌 언론 보도를 ‘가짜’로 매도하는 건 갈등을 부추겨서 국정 동력을 잠식하는 소모적인 편 가르기다.

여덟째, 진짜 문제는 언론의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대결하려는 태도다. 굳이 언론을 적으로 만들고 국민들과 싸워서 얻을 게 뭐가 있나.

정권을 잡으면 그 어느 언론보다 강력한 스피커를 갖게 된다. 해명할 건 해명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설득하면서 가면 된다. 그런데 윤석열은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지지 기반을 허물고 스스로 고립됐다.

윤석열의 언론관은 다음 한 마디로 설명된다. “답변하지 마십쇼, 좌팝니다.” (대선 후보 시절 수행비서가 한 말이다.)

이명박은 이동관 때문에 망했다.


27년 검사 경력이 사회생활의 대부분인 윤석열은 원래 언론을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검사들은 주변에 받아 쓰는 기자들이 넘쳐난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게 일이고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쁜 놈 잡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법이고 언론과 부딪힐 일이 없거나 있어도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게 검사들이다.

하필이면 이동관이 윤석열의 언론 특보였던 건 비극이 아니라 희극에 가깝다. 이동관은 애초에 이명박 정부의 몰락에 책임이 큰 사람이다. 조중동에 종편(종합편성채널)을 안겨주고 MBC와 소송을 벌이고 방송사에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언론 보도에 시시콜콜 개입했다. 그래서 성공했나?

이명박 정부는 이동관이 잘못해서 무너진 게 아니라 이동관이 잘해서 무너진 것이다. 광우병 촛불 집회부터 시작해서 4대강 사업, 용산 참사, 천안함 침몰, 자원외교 등등 사고가 터질 때마다 여론을 틀어쥐려 했고 그때마다 지지율이 급락했다. KBS와 MBC를 잡고 종편이 거들어주면 적당히 깔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여론에 귀를 닫고 폭주하는 정권의 끝은 비참했다.

▲ 2015년 12월 15일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서울 서초구 한 웨딩홀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웃고 있다. 왼쪽은 이명박 전 대통령. ⓒ오마이뉴스

그렇다고 탁현민 같은 사람을 갖다 쓰라는 말이 아니문재인 정부 시절 김의겸이나 고민정이 잘했다는 말도 아니다. 언론과 싸우는 대통령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 원래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더 많은 비판을 받기 마련이지만 겸허하게 비판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극복할 때 권력의 정당성을 지킬 수 있다.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잘못을 인정해야 힘이 생긴다.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진실은 남기 마련이고 그래야 바닥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커피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윤석열이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커피가 아니다. 윤석열이 검사 시절 친분에 따라 수사를 축소하거나 중단했다는 의혹이 있다면 당연히 보도할 가치가 있고 윤석열에게는 해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애꿎은 뉴스타파를 아무리 털어봐야 윤석열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워낙 복잡한 사건이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꿀릴 게 없으면 왜 이렇게 배배 꼬고 봉창을 두들기나. 긴 건 기고, 아닌 건 아니고, 까놓고 말하고 털면 될 일이다.

윤석열에게는 퇴로가 없다.


윤석열에게는 지금 퇴로가 없다. 한동훈을 내세워 총선에서 선방하면 남은 3년을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지만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라면 식물 대통령은커녕 조기 퇴진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이준석이 윤석열의 문제를 “기술적 미숙이 아니라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 게 맞는 진단일 수도 있다.

조선일보가 “레임덕이 문제가 아니라 임기와 상관없이 물러나는 것만이 ‘선장 없는 나라’의 혼란과 참담함을 면하게 하는 길”이라고 경고한 것은 그냥 엄포가 아니다. 2016년 10월 태블릿 사건이 터지고 용도 폐기된 박근혜를 가장 앞장서서 공격한 신문이 조선일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윤석열이 지금처럼 언론을 멀리하고 김건희를 감싸고 돈다면 이 정권의 남은 3년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고 싶으면 애초에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최승호(뉴스타파 PD)가 말한 것처럼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

‘나눔과 봉사의 국민 대통합 김장행사’에 참석한 윤석열(대통령 부부). 2023. 11. 27.

윤석열은 KBS 신년 대담에서 “참모들이 써준 예상 질문과 답변을 보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그래서 나라 꼴이 이 모양이란 걸 알아야 한다. 국무회의할 때마다 혼자 떠든다고 해서 ‘59분 대통령’이란 별명도 붙었다. 최근 일련의 돌발 행동을 보면 뉴스를 제대로 보거나 읽기는 하는지 구중궁궐 용산에서 민심의 보고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아직 정권의 반도 안 지난 시점이니 조언하자면 지금이라도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질 사람을 가까이 두고 기꺼이 비판에 직면해야 한다. 스스로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비로소 뭐라도 새로운 걸 시작해 볼 수 있다.

윤석열과 오바마의 차이.


윤석열은 며칠 전 대학 졸업식에서 소리치는 학생의 입을 틀어막고 끌어냈지만 버락 오바마(전 미국 대통령)은 달랐다. “청년을 막지 말라”고 경호원을 제지하고 대화에 끌어들였다. 청년은 “이민자 추방을 막아달라”고 외쳤고 오바마는 “그런 권한은 나에게 없다”면서도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이라고 끌어안았다.

“만약에 제가 의회의 입법 절차 없이 모든 사안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미국은 법치 국가입니다.

제가 가려는 건 더 어려운 길입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는 거예요. 당신이 원하는 것과 똑같은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길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2013년 11월 25일 이민 개혁안 관련 연설 중에서.

왼쪽 이미지는 2013년 당시 연설을 중계한 CNN 방송 동영상을 캡처한 것으로, 구호를 외치며 기습적으로 시위하는 학생들 모습과 이를 막으려는 경호원을 오히려 제지하는 오바마(당시 미국 대통령)를 보여준다.

사과의 3A는 동의하고(Agree) 사과하고(Apologize) 행동하는(Action) 것이다. 핵심은 비판을 대하는 태도가 실제로 행동의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쫄리면 안 된다. 두들겨 맞을 건 맞고 반박할 건 반박하고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 참모들에게 예상 질문을 다시 뽑아오라 하고 기자들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디올 백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많다. 다시 강조하지만 “질문을 받지 않으니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윤석열을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해도 좋을 것이다. ‘파우치’ 하나 때문에 정권을 잃을 셈인가. 이 정도 조언을 할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이 ‘입틀막’ 정권은 이미 망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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