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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라는 유머 커뮤니티가 인터넷상에 횡행하는 극우성향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사실상 굳어버린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이미 언론, 학술, 개인매체 등 담론판의 여러 공간에서 많은 논의가 오갔기에 싫증이 날 법도 한데, 세월호 유가족 단식 조롱 “폭식투쟁” 이벤트 덕분에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4pYrIPbcFs

폭식투쟁으로 새삼 주목받는 일베 

특히 이번에는 이들이 오프라인에서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일본 재특회와의 유사성이 더욱 주목받고(걱정거리가 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주로 극우적 사고의 ‘결집’이라는 측면에 주목하는 식이다.

극우 사고의 결집은 물론 중요한 일면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재 일베로 대표되는 일련의 모습을 더 흥미롭고 위험하게 하는 살짝 다른 부분에 주목한다. 바로 특정 소재의 ‘하위문화’로 결집한 어떤 성향이 극우화’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몇 가지 가설과 대처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당장 2010년대 초반 이글루스의 뉴스비평 밸리만 해도 애초에 단련된(?) 넷 극우들이 결집한 공간이었지만, 일베는 막장 유머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놀다가 그중 상당수가 극우적 논리로 무장하게 된 공간에 가깝다. 그렇기에 극우 정치 이념 하나만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다층성을 지니곤 한다.

하위문화라는 속성

사실 PC통신 서비스들의 익명게시판에서 디시인사이드의 막갤(막장사고 갤러리), 코갤(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 등을 건너 결국 일베까지, 국내 하위문화와 극우화의 교차점은 은근히 그리고 이미 여러 번 존재했다. 왜 그럴까 이유를 논하려면, 우선 하위문화의 흔한 메커니즘에서 시작해 볼 수 있다.

  1. 하위문화는 쉽게 대항문화의 속성을 띄곤 하며, 깊숙이 들어갈수록 당대에 주류 도덕 권위로 받아들여지는 어떤 것들에 대한 일탈적 저항 정서가 강하다.
  2. 그런 저항으로 도래할, 상상력을 풍부하게 발휘한 어떤 어렴풋한 이상향을 둔다.

즉 어떤 하위문화의 속성을 보려면, ‘무엇을’ 도덕 권위로 상정하고 저항하는가와 그 결과 ‘어떤 세상을’ 동경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베 역시 마찬가지다.

1. 일베는 무엇에 저항하는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도덕적 권위의 위치로 상정되곤 하는 것은 크게 두 방향인데, 하나는 장유유서 운운하는 ‘전통’ 질서고, 다른 하나는 민주적 가치의 긍정이다. 그게 민주화운동 역사에 대한 예의든, 현대적 양성평등이든, 여러 차별금지든 노동권이든 간에.

두 가지 도덕적 권위 

그런데 두 가지는 사회적 정착의 강도가 상당히 다르다. 전자는 어기면 패륜으로 일컬어 질 정도로 혹독하게 굳어있지만, 후자는 애매하다. 이쯤에서 압축근대화 그리고 압축 민주화의 현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바로 각종 현대 민주적 가치의 도덕률이 큰 틀에서는 형식적으로 소개되어 있으나 사회적으로 충분히 “합의”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좀 더 기술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가치들의 당위에 대한 선포는 있으나 지배 담론 및 제도로 안착한 불가침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교육현장에서조차 보편적 인권이 교과서에는 명시되지만 학교생활에는 적용을 거부당하는 기묘한 중간 상태 아니던가. 광주 민주화운동 간첩 음모론을 TV에서 떠들어대도 제재가 있는 둥 마는 둥 아니던가. 다시 말해, 민주적 가치들이 도덕으로서 이미 꼽히고 있으나 온전히 정착한 것은 아닌 애매한 중첩 상태에 놓여 있다.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중에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중에서
두발, 복장 규제가 인권 침해인가?
두발, 복장 규제에 대해 교사, 학부모와 학생 간의 인식 차이가 매우 크다. (출처: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민주적 가치에 대한 공격은 (상대적으로) 쉽다

이런 상태에서 기성 도덕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저항을 보자면, 전통 도덕률은 이미 확고한 인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저항은 사회적으로 대충 용납하기 어렵다. 반면 상대적으로 민주적 가치에 대한 공격은 훨씬 쉽다. 특히 아직 미완의 프로젝트인 진보적 가치에 대한 저항은 더욱 쉽다.

민주적 가치를 내세운 사회 진보의 ‘추구’ 자체를 지배적 도덕으로 간주하여 저항하는 꼴이다. 그런데 그런 저항이 극우 논리와 겹쳐서 포개진다. 한국사회 기준에서 극우 논리는 바로 가부장적 권위주의, 개인능력 만능론, 소속에 기반한 차별의 옹호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이유로 결국 도덕률에 대한 저항이 오히려 권위주의에 복속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비교: 미국의 막장 하위문화

눈을 돌려 보면, 미국 막장 하위문화의 산실인 4chan의 /b/ 게시판 역시 여러 최악 수준의 쓰레기 논평들이 넘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이곳 이용자들이 대충 용납하는 도덕률은 그간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수준의 민주적 가치고, 주로 저항하는 도덕률은 정숙함(decency)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무슨 말이든 다 하고 누구에게나 까이는 무정부주의적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니 인종차별, 여성혐오 논평을 날리는 사람도 많다. 여기에 다른 사용자들은 그것을 기회 삼아 그를 격하게 비난하는 풍경도 흔하다. 자정작용이라기보다는, 독이 독을 누르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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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chan 운영자인 m00t의 TED 발표가 이런 자세(아나키즘 공간을 목표)를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고, 4chan을 매개로 활동을 시작한 해커 그룹인 어나니머스의 지향성도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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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베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저항을 통해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은 또 어떤가.

“모두가 평등한 병신의 세상”

일베의 사상
일베의 목소리를 성실하게 모아낸 연구서로 [일베의 사상]을 추천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정리하자면 “모두가 평등한 병신의 세상”을 표방한 바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활동 동기를 잘 담아냈다고 그 동네에서 큰 호응을 얻은 만화 “일베충의 일기“를 다시 들춰보면, 그 “평등”은 무슨 사회관계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권리회복이라는 의미다. 작품이 그려내는 설명에는 기본적으로 ‘약자-강자’라는 이야기 구조가 존재하고, 약자에 대한 연민이 넘친다.

그런데 그 약자란 민주화를 내세운 도덕 권위에 대한 복종을 거부해서 핍박받는다고 느끼는 자기 자신들이다. 그들이 힘을 뭉쳐서 자리를 찾는 아주 그림 같은 해방 서사다.

밑밥, “내가 이런 대접 받을 사람이 아닌데”

일베 사용자들의 약자-강자 정체성 이입을 논한 박권일은 그들에게서 두 가지 인식으로 ‘강자 선망’과 ‘피해자 되기’를 관찰하고, 두 가지가 모순이 아니게 되는 지점을 ‘타락한 능력주의’라는 한층 추상화된 이념 층위로 지적한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만화에 이미 암시되었고 그냥 정체성 층위 자체에서 간편하게 그런 모순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매끈한 통합된 인식이 있으니, 바로 “나는 강자여야 했는데 사정에 의해 위축된 약자”라는 것이다. 보편적 일상어로 치환하면, “내가 이런 대접이나 받을 사람이 아닌데” 정도로도 표현할 수 있고, 해방 서사의 훌륭한 밑밥이다. 이 경우 최종지향점은 당연히 “내가 대접받는 세상”이다.

일베충의 일기 중에서
일베충의 일기 중에서

먹잇감: 호남, 진보 활동가, 나와 안 사귀는 여자, 세월호 유족…

이런 인식이 그룹 안에서 동질성을 다지며 숙성해 증폭하면, “내가 당연한 대접을 못 받는 원인, 즉 잘난 것도 없는데 부당하게 좋은 대우를 받는 자들이 나쁘다”는 인식으로 타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저항하고자 하는 기성 도덕(민주적 가치)에 결부한 공격 대상일수록 우상 파괴의 쾌감은 더욱 커진다. 그 먹잇감은 호남계, 진보 활동가, 나와 안 사귀는 여자, 세월호 유족 등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앞서 꼽았듯 이들에 대한 사회적 불리함은 아직 실제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서, 이들에 대한 공격은 진보적 변화를 거절하는 극우와 자연스레 맞닿는다.

3. 막장 문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식의 접근을 시도하는 이유는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하위문화로 인식하여 대처하는 방식의 효용을 역설하기 위해서다.

특정한 하위문화 봉쇄? 불가능하다!

우선, 특정한 하위문화는 없앨 수 없다. 이를 마음대로 원천봉쇄 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의 자유’ 원칙 같은 당위와 규범론을 떠나, 그냥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 없앤다고 나서봤자 다른 공간에 비슷한 무언가가 다시 생겨날 뿐이다.

일베 상황 대처 매뉴얼 중 일부
한 일베 이용자가 만든 일베 상황 대처 매뉴얼 중 일부. 일베가 막히면 다른 커뮤니티를 장악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하위문화라는 속성에서 볼 때 이들의 정치 행동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데, 전면으로 나서고 진지하게 대외적 행동을 할수록 더는 재미있는 하위문화가 아닌 평범한 극우집단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일반 대중들도 상당 부분 그들을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행동에 따른 법적 책임 묻기 

이런 인식 위에서 할 수 있는 대처는, 이들을 하위문화이기에 그나마 내버려두는 범위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위문화 영역 밖으로 나오면, 그만큼의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확고하게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실천하는 방법은 매우 명확하다.

하위문화로 킬킬거리다가 더 진지하게 마음먹고 행동으로 나온 이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그 구체적인 행동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대중 정치세력과의 연계 가능성 차단하기

일베류 활동가들의 하위문화적 조롱 이벤트는 실체적 운동 효과 없이 단순히 대내적 단결과 대외적 반감만 만드는 감정적 성과에 머문다. 반면 이런 한계가 극복되는 문제의 순간은 주류 집단이 이들의 홍보력을 노리고 손을 잡는 때다.

뉴시스, 하태경 “일베 등 20대 우파들 아직은 희망있다”
뉴시스 기사 캡쳐

그들이 우익 정치세력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 동반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현실적인 대중 정치세력에게는 도저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될 수 없음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 상식과 합리에 바탕한 여론으로서 기성 정치세력에게 일베와 같은 막장 하위문화와 확실하게 선을 긋도록 인식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실무에서는 여러 경계선 사례들이 오가겠지만, 기본 원칙은 대략 이런 방향이 바람직하다. 이런 것을 더 쉽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법조 절차 도움 주기의 체계화, 이들이 공직에 연루되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명확히 하는 망언 자료들의 체계적 공개 등의 구체적인 대처 과정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런 대처가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가. 여러 소송으로 법적 책임을 지고, 현실 정치세력이 활용하기에는 곤란한 인물로 이미지가 굳어지다 보니 일부 극우 동네 말고는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 한 미디어 사업자를 떠올려 보자. 그를 떠올린다면, 이 방법론의 성공 가능성도 어느 정도는 점칠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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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하태경 의원 발언은 정말 충격적 이었습니다.
    미래에 일베출신 장관, 국회의원이 나온다면…
    상상으로도 끔찍합니다.
    보수의 미래를 일베에서 찾다니…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건지…

  2. 좌우를 떠나서 일베같은 우익커뮤니티뿐만이 아니라 좌익커뮤니티인 오유나 mlb파크 같은 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치인이 나오면 나라 말아먹죠. 무엇이든 정치란 정치에 관련해 많은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해야지 인터넷으로 주워담은 지식으로 정치이야기를 떠벌리는 사람들이 할만한 것은 못됩니다.

  3. 맞는 말입니다. 정치가 되었든, 교육자가 되었든, 공무원이 되었든 전문지식과 소양을 갖춘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베같은 우익커뮤니티는 공중파 티비에서도 다룬걸 본적이 있어 어느정도 감이오지만,
    오유나 mlb 역시 ‘일베같은’ 좌익커뮤니티 인가보죠?
    아직 ‘일베같은’ 사이트는 ‘일베’ 말고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일베는 ‘반상식’ ‘반인륜’ 의 대명사로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왼쪽’의 사이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구요. 있다면 또 하나의 불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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