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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경기도에서 한 청년이 카페[footnote]필자가 운영하는 인문학 카페 (편집자)[/footnote]에 찾아왔다. 그는 세상이 너무 부조리하다면서 열의를 보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문제인지 알게 됐어요. 예전부터 카페 입간판 보면서 이런 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직장 그만두고 꼭 같이 일하고 싶어요.”

춘천에 아무런 연고가 없긴 하지만, 당장에라도 이사 올 수 있으니 꼭 자신을 직원으로 채용해달라고 했다. 열정적인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지만, 함께 일할 여건이 안 돼서 채용하진 못했다.

두 달 뒤, 우연히 그의 페이스북에서 시댁을 기피하는 여성을 이중잣대라며 비하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보았다. 여성 혐오 성향 페이스북 페이지의 게시물을 공유한 것이었다. 나는 그가 보였던 모습과 게시물 속 비하 발언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그가 뭔가 오해를 하는가 보다 생각하고 댓글을 달았다.

‘김치녀’라는 여성 비하 표현을 쓰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정의를 추구한다고 말했던 너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한국 여자들의 이중 잣대를 더욱더 강조하며, 너도 그런 거 아니냐며 오히려 나를 몰아붙였다.

몇 번의 댓글이 오간 뒤, 더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거 같다고 판단하고 연락을 끊었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정의를 외치며 김치녀를 욕하던 그의 모습이 분리되고 겹쳐지면서 섬뜩하게 아른거렸다. ‘카페에서 같이 일을 하지 않길 정말 다행이다.’ 싶은 안도와 함께 ‘대체 왜 그러는 걸까.’ 하는 의문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Mister Kha, CC BY SA
Mister Kha, CC BY SA

돌이켜보니, 그와 비슷한 지점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꾸준히 있었다. 이름이 ‘인문학카페’이고, 입간판에 종종 사회의 부조리를 썼기 때문인지, 주로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들이 카페에 찾아왔다. 그들은 역사철학, 과학 등의 풍부한 지식으로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면서도, 종종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했다.

한참 국가권력을 욕하다가 ‘박근혜는 여자라서 열등하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는 친구도 있었고, ‘결혼을 안 해서 여자인데도 모성애나 따뜻함이 없다.’, ‘결혼한 여자가 진짜 여자들을 대변할 수 있지.’라며 비혼을 폄하하는 친구도 있었다. 카페 운영진이 모두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문제야.’라는 말을 하거나, 외모 지적을 하거나 무례한 농담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겼다.

아무리 웃자고 한 말이었어도 다른 약자를 비하하는 게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기에 내 예민함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당시 나는 무조건 ‘이명박근혜’만 욕하면 모두가 진보로 통하는 줄 알았던, ‘아름다운 세계평화’를 꿈꿨던 순진 무식한 사람이었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부조리를 함께 바꿔보겠다고 찾아온 그들을 오히려 고맙게 여겼고, 곧 죽어도 화합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작년은 유독 활발하게 사업과 활동을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모였다. 겉으로 보기엔 풍성하고 아름다워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침묵(해야)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인원이 많고 빠르게 확장되는 게 단순히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결국, 작년 가을에 함께 활동했던 사람 반 이상과 결별을 선언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었어도 이별은 힘들었지만, 시원한 마음이 더 컸다.

이별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건 사랑과 정의, 평화를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건 쉽지만,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적인 폭력을 성찰하며 함께 맞춰나가는 건 무척 어렵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언제나 ‘피해자’이거나 ‘운동가’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고, 나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무척 어렵다.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여전히 실수하고, 내 모순과 생각 없이 뱉은 말과 태도를 두고두고 생각하며 부끄러워 숨고 싶을 때가 많으니까.

덕분에 지금은 작년보다 함께하는 인원은 줄었지만, 조심스러운 태도와 섬세한 감수성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설사 실수하더라도 “뭘 그런 걸 가지고 따져.”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임옥희 선생님은 함께 밥을 먹으러 갈 때 누구에게든 “혹시 채식하나요?”라고 묻는다. 당연히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치느님’을 외치는 문화에서, 채식하냐고 묻는 태도는 무척 사소해 보이지만 많은 부분을 반영한다.

연애 상담을 하겠다고 찾아와서, “저는 이성애자 여자인데요.”라고 우선 밝히는 청년도 있다. 으레 연애의 기본값이 ‘이성애’인 사회에서, ‘굳이’ 이성애자임을 밝히는 말도 중요한 감각이다. 누군가의 사생활(가족환경, 연애 유무, 인적사항 등)을 굳이 물어보지 않는 문화도 좋다.

게이 LGBT 성차별 성평등 성소수자

이렇게 조심스러운 문화, 존중하는 문화 속에 살다 보니 이런 태도가 유별난 게 아니라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건 도덕 선생님이 ‘거짓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다. 거짓말은 어떤 맥락에서는 정말 ‘선의’가 되기도 하지만, 혐오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건 용납되어선 안 된다.

기분이 나빠서 무심코 뱉는 욕이라도, 웃자고 한 농담이라도, 일상적 문화라도 아닌 건 아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가 아니라, ‘내가 몰랐구나. 잘못했네.’라고 말해야 한다. 지적받아서 기분 나빠할 게 아니라, 마땅히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내 사소한 생각과 말이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폭력에 돌 하나 얹는 행위라는 걸 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낮아져야 한다. 더 예민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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